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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 어떤 기관이나 전문가가 선정한게 아닌 일개 축구팬이 뽑은 베스트입니다.
- 전문가 혹은 신문이나 잡지 등을 참고했으며, 제 생각을 넣어 만든 글입니다.
- 선수들의 영상이 남아있다면 최대한 보려고 했으며, 보기 힘들었다면 전문가들의 평가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없는 선수가 있을 수 있으니 재미로만 봐주세요.
- 평가는 '잉글랜드 국가대표'로서가 아니라 '잉글랜드 국적'입니다
- 경력, 기록, 커리어 모두 잉글랜드 국대만입니다.
잉글랜드
별명 : 삼사자 군단
FIFA 월드컵 참가 21회 中 15회
[1950,54,58,62,66,70,82,86,90,98,02,06,10,14,18]
주요 성적 : 우승 1회 [66], 4위 1회 [90]
UEFA 유로 참가 15회 中 9회
[1968,80,88,92,96,00,04,12,16]
주요 성적 : 4강 2회 [68,96]
최다 출전 : 피터 쉴튼 [125경기]
최다 득점 : 웨인 루니 [53골]
고든 뱅크스
1937년생 / 골키퍼 / 1963-1972 / 73경기
대표 클럽 : 레스터, 스토크
월드컵 우승 1회, 유로 4강 1회
잉글랜드를 넘어 축구사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 클럽과 국대를 가리지 않고 안정감 있는 퍼포먼스를 보인다 하여 사람들에게 '잉글랜드의 은행'이라고 불렸던 전설이였다. 비록 현역 시절 전부를 중위권 클럽인 레스터와 스토크에서 활약했으나 뱅크스의 기량만큼은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있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리 네빌
1975년생 / 라이트백 / 1995-2007 / 85경기 0골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로 4강 1회
90-00년대 맨유의 핵심. 공수 안정된 밸런스와 날카로운 크로스 능력이 인상적이였던 선수였다. 또한 그는 기복이 적었고, 일관된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믿음을 주던 선수였으며, 어떤 윙어와 파트너십을 맺어도 자기 몫을 다 해내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맨유를 거쳐간 윙어들 중에서도 특히 베컴과 호흡이 잘 맞았는데, 베컴과 네빌 라인은 맨유의 라이벌 팬들 조차도 인정하던 최고의 오른쪽 라인이였다.
바비 무어
1941년생 / 센터백 / 1962-1973 / 108경기 2골
대표 클럽 : 웨스트 햄
월드컵 우승 1회, 4강 1회
베켄바우어에 견줄 수 있는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 막강한 수비력을 자랑했던 그는 지금 현재까지도 수비력 최강의 수비수들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삼사자 군단의 리더로 참가했던 66년 월드컵 당시 대회 내내 기복없는 플레이와 상대 공격수들을 모두 틀어막는 수비력으로 잉글랜드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자기 자신은 대회 실버볼을 수상했다. 차기 대회인 70년 월드컵 당시에도 엄청난 수비력을 선보였으며, 그 해에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서독의 게르트 뮐러에 이은 2위에 오른다.
빌리 라이트
1924년생 / 센터백 / 1946-1959 / 105경기 3골
대표 클럽 : 울버햄튼
최초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가입자)에 가입한 전설. 리더십이 뛰어났던 그는 자신이 출전했던 105경기 중 90경기를 주장으로 참가했다. 라이트는 20년의 선수 시절을 오직 울버햄튼을 위해 뛰었으며, 단 1번도 우승이 없던 울버햄튼을 무려 3차례나 리그 정상에 올려 놓았다. 또한 제 2회 발롱도르 시상식이던 1957년도 당시에는 디 스테파노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애슐리 콜
1980년생 / 레프트백 / 2001-2014 / 107경기 0골
대표 클럽 : 아스날, 첼시
첼시, EPL 그리고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 위협적인 공격 가담과 빠른 발을 통한 막강한 수비력이 인상적이였던 선수였다. EPL 시절 호날두의 천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후에 호날두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상대해 본 최고의 선수로 콜을 뽑았을 정도였다. 콜은 아스날과 첼시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둔 선수로 전자의 팀에서는 03-04 시즌 무패 우승을 후자의 팀에서는 2012년 런던 클럽 최초의 챔스 우승을 이뤄냈다.
스탠리 매튜스
1915년생 / 라이트 윙어 / 1934-1957 / 54경기 11골
대표 클럽 : 스토크, 블랙풀
찰튼, 무어와 함께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잉글랜드의 상징. 무려 50세까지 현역으로 뛰어 '할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마법같은 드리블 실력 때문에 '드리블의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형적인 클래식 윙어 스타일의 선수로 드리블이 좋았으며, 좋은 주력과 개인 기술, 아름다운 크로스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선수였다.
또한 그는 1956년 전시즌 리그 19위이던 블랙풀을 리그 2위까지 올렸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로 등극했다.
브라이언 롭슨
1957년생 / 중앙 미드필더 / 1980-1991 / 90경기 26골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스트 브롬
월드컵 4위 1회
암흑기에 빠져있던 80년대 맨유의 자존심. 박스 투 박스 유형의 미드필더로 공수 안정된 밸런스와 강인한 체력, 좋은 활동량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캡틴'이라는 별명 답게 리더십이 아주 뛰어났던 선수였으며, 그 영향력은 퍼거슨의 맨유에 가서도 여전했다. 한성질 한다는 로이킨 마저도 "같이 뛸 수 있어 영광이였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
바비 찰튼
1937년생 / 공격형 미드필더 / 1958-1970 / 106경기 49골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월드컵 우승 1회, 유로 4강 1회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선수. 중거리 슛, 패스, 골 결정력, 시야, 조율까지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니고 있던 선수였다. 또한 공미였음에도 수비 가담력이 좋았으며, 그라운드 내에서의 대담함과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그라운드의 노동자'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톰 피니
1922년생 / 레프트 윙어 / 1946-1958 / 76경기 30골
대표 클럽 : 프레스턴 노스 앤드
매튜스와 더불어 40-5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던 스타 플레이어.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했으며, 빠르고 민첩한 선수였다. 또한 프레스턴 시절 14년간 474경기에 출전해 210골을 넣었을 만큼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피니는 과거 배관공으로 활동했던 이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프레스턴의 배관공'이라고 불렸는데, 프레스턴의 라이벌 팬들은 '유능한 배관공과 10명의 떨거지들'이라 부르며 피니의 능력을 인정하는 한편 다른 모든 선수들을 디스했다.
케빈 키건
1951년생 / 처진 공격수 / 1972-1982 / 63경기 21골
대표 클럽 : 리버풀, 함부르크
돋보이는 앞니와 민첩한 플레이 때문에 'Mighty Mouse'(강한 생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전설. 70년대 초중반 전성기 리버풀의 주전이였으며, 리버풀에서 6시즌동안 리그 3회, 유로피언컵 1회를 포함 총 9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77년도에는 독일 함부르크로 모험을 떠났고, 함부르크에게 분데스리가 1회, 유로피언컵 준우승 1회의 커리어를 안겨주었다. 또한 함부르크 시절에는 뛰어난 활약상을 인정받아 78년과 79년 2차례의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지미 그리브스
1940년생 / 스트라이커 / 1959-1967 / 57경기 44골
대표 클럽 : 첼시, 토트넘
월드컵 우승 1회, 유로 4강 1회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그리브스는 강력한 킥력과 다양한 슈팅스킬, 헤더, 골 결정력 등 완벽한 스트라이커였다. 그리브스는 현역 시절동안 450골을 넘게 넣었으며, 잉글랜드 리그 최다 득점왕 (6회), 잉글랜드 1부리그&프리미어 리그 통합 최다 득점(357골), 토트넘 최다 득점(266골) 등 골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가지고 작성했다.
브라이언 클러프
1935년생 / 감독
대표 클럽 : 더비 카운티, 노팅엄 포레스트
현실에서 FM을 했던 명장. 1967년 2부리그에 있던 더비 카운티에 입단했고, 2년뒤인 69년에 2부리그에서 우승하며 1부리그로 승격했다. 그리고 3년뒤인 72년도에는 1부리그에서 우승했으며, 이듬해인 73년도에는 유로피언컵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구단주와의 불화로 해임되었으며, 브라이튼과 리즈를 거쳐 1975년 2부리그에 있던 노팅엄 포레스트에 입단한다. 이후 노팅엄을 2부리그 3위로 승격시켰으며, 1978년도에는 1부리그 우승, 1979년과 80년도에는 2연속 유로피언컵 우승이라는 엄청난 커리어를 만들어 낸 마술사같은 사람이였다.
2군
피터 쉴튼
1949년생 / 골키퍼 / 1970-1990 / 125경기
대표 클럽 : 레스터, 스토크, 노팅엄, 사우스햄튼
월드컵 4위 1회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 (1390경기) 비록 큰 키는 아니였지만 우수한 반사신경과 민첩성, 위치선정, 예측력, 기복없이 꾸준한 플레이 등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50대 직전까지 뛸 만큼 체력적인 부분이 뛰어난 선수였다. 현역 시절 다양한 클럽에서 뛰었던 그는 레스터 시절에는 2부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노팅엄 시절에는 클러프의 지휘하에 1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유로피언컵 우승을 경험했다.
존 테리
1980년생 / 센터백 / 2003-2012 / 78경기 6골
대표 클럽 : 첼시
첼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좋은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보여 준 강력한 수비, 지능적인 위치선정 능력과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 그리고 대담함을 지녔던 선수였다. 첼시 유스 출신으로 2000년대 중후반 첼시의 핵심 멤버였으며, 드록바, 램파드, 체흐와 함께 팬들에게 '첼시의 척추라인'으로 불렸다.
리오 퍼디난드
1978년생 / 센터백 / 1997-2011 / 81경기 3골
대표 클럽 : 웨스트 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맨유를 대표하던 스타 중 하나. 리즈에서 3400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맨유로 이적한 그는 2000년대 중후반 세르비아인이던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환상적인 파트너십으로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비디치와는 반대로 볼을 잘 다루던 선수였으며, 지능적인 수비, 경기를 읽는 능력의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어 비디치와 함께 서로의 약점을 잘 보완 할 수 있었다.
토니 아담스
1966년생 / 센터백 / 1987-2000 / 66경기 5골
대표 클럽 : 아스날
유로 4강 1회
'Mr. Arsenal'이라고 불리는 아스날의 원클럽맨. 센터백으로서 딱히 단점이 없었으며, 수비조율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던 선수로 90년대 형성됐던 아스날판 '철의 포백'에서 수비라인의 리더 역할을 맡았었다. 벵거시대 이전부터 아스날에서 활약했으며, 벵거 이전인 89년과 91년, 벵거 시대인 98년과 02년 총 4차례의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데이비드 베컴
1975년생 / 라이트 미드필더 / 1996-2009 / 115경기 17골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축구를 넘어 영국의 아이콘. 그는 매우 정확한 롱패스와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유명하며 뛰어난 활동량과 체력까지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맨유 시절 '퍼기의 아이들' 멤버로 1999년 잉글랜드 최초의 트레블에 크게 활약하며 그 해 열린 발롱도르에서 히바우두에 이은 2위에 올랐다.
스티븐 제라드
1980년생 / 중앙 미드필더 / 2000-2014 / 114경기 21골
대표 클럽 : 리버풀
리버풀의 상징. 공격부터 수비까지 많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공미부터 수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1998년 18세의 나이에 베가드 헤겜 대신 투입되었으며, 이듬해인 99년도부터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살이 되던 해인 00-01 시즌에는 팀의 미니 트레블(FA컵, 리그컵, UEFA컵)을 이끌었으며, 2005년도에는 이스탄불의 비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팀에 5번째 빅이어(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선물했다.
프랭크 램파드
1978년생 / 중앙 미드필더 / 1999-2014 / 106경기 29골
대표 클럽 : 첼시, 웨스트 햄
21세기 첼시의 전성기를 이끈 핵심 멤버. 중앙 미드필더였음에도 공격 본능이 탁월했던 선수로 강하면서도 정확한 킥력과 엄청난 골 결정력, 패스와 활동량 등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곳에서 터지는 환상적인 골들 때문에 'Super Frank'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첼시의 가장 헌신적인 4인방인 드록바, 테리, 체흐와 함께 '첼시의 척추라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폴 개스코인
1967년생 / 공격형 미드필더 / 1988-1998 / 57경기 10골
대표 클럽 : 뉴캐슬, 토트넘, 레인저스
월드컵 4위 1회, 유로 4강 1회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 창의적이고 기술이 뛰어났으며, 패스와 넓은 시야, 스피드, 체력, 균형감각 등의 많은 장점이 있었다. 개스코인은 클럽과 국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국대에서는 90년 월드컵 4위와 96년 유로 4강을 이끈 팀의 핵심 멤버였다.
게리 리네커
1960년생 / 스트라이커 / 1984-1992 / 80경기 48골
대표 클럽 : 레스터, 토트넘
월드컵 4위 1회
잉글랜드 역사상 월드컵에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스트라이커.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폴란드를 상대로 6골을 넣으며 월드컵 득점왕을 수상했고, 차기 대회인 90년 당시에는 아일랜드, 카메룬, 서독에게 4골을 넣으며 잉글랜드를 월드컵 4위에 올려 놓았다. 그는 매너있는 플레이로 유명한 선수였으며, 그런 리네커의 모습을 본 팬들은 그에게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웨인 루니
1985년생 / 처진 공격수 / 2003-2016 / 119경기 53골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버튼
'하얀 펠레'라는 말을 들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악동. 안정적인 볼 배급과 일명 '절구통' 이라고 불리던 드리블, 단단한 피지컬과 강력한 슈팅이 인상적이였던 선수였다. 2004년 에버튼을 떠나 맨유에 입단한 그는 맨유에서 13년간 활약하며 5번의 리그, 1번의 FA컵, 1번의 챔피언스 리그 등 총 16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맨유 최다 득점, 잉글랜드 최다 득점 등의 주요 득점 기록도 갈아치웠다.
딕시 딘
1907년생 / 스트라이커 / 1927-1932 / 16경기 18골
대표 클럽 : 에버튼
지미 그리브스 마저도 한수 접을 수 있는 최강의 득점력을 지닌 레전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공중볼 능력, 강력한 피지컬, 네트를 찢을듯한 강한 슈팅과 정확한 골 결정력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선정까지 지녔던 선수였다. 그는 주로 에버튼에서 활약했던 선수였으며, 에버튼에서 14년간 447경기에 출전해 395골(경기당 0.88)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작성했다.
밥 페이즐리
1919년생 / 감독
주요 클럽 : 리버풀
'붉은 제국'이라고 불리던 리버풀의 수장. 페이즐리는 본래 리버풀 출신의 선수였다. 1959년 리버풀에 부임한 빌 샹클리의 수석 코치로 15년간 활약했고, 샹클리가 떠난 1974년도부터는 리버풀의 감독이 되었다. 이후 그는 9년간의 감독생활 동안 오직 리버풀에만 있었으며, 9년동안 6번의 리그, 3번의 유로피언컵, 1번의 UEFA컵 등 총 20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다.
아쉬운 선수들
레이 클레멘스
대표 클럽 : 리버풀
포지션 : 골키퍼
리버풀 최고의 전성기이던 60-80년대 리버풀의 수문장. 리그 5회, FA컵 1회, 유로피언컵 3회, UEFA컵 2회 등을 들어 올렸다.
지미 암필드
대표 클럽 : 블랙풀
포지션 : 라이트백
50-70년대 블랙풀의 전설로 평생을 블랙풀에서만 뛴 원클럽맨. 블랙풀의 홈경기장인 블룸필드 로드를 찾아가면 지미 암필드의 동상을 볼 수 있다.
필 닐
대표 클럽 : 리버풀
포지션 : 라이트백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측면 수비수. 70-80년대 붉은 제국 리버풀의 주전으로 8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유로피언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또한 엄청난 철강왕으로 필드 플레이어임에도 무려 400경기 이상을 연속으로 출전한 대기록도 가지고 있다.
글렌 호들
대표 클럽 : 토트넘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70-80년대 잉글랜드의 대표적인 플레이메이커 중 하나. 77-78 시즌 2부리그에 있던 토트넘을 승격시켰고, 이후 토트넘의 FA컵 2연패, UEFA컵 우승에 아주 큰 공헌을 했다. 후에 스카이스포츠에서는 호들을 토트넘 역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폴 스콜스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대표 클럽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퍼거슨의 맨유에서 전술적 핵심 역할을 맡았던 미드필더. 명품이라고 해도 될만큼 아름다웠던 중장거리 패스가 인상적이였던 선수였다.
앨런 시어러
대표 클럽 : 뉴캐슬
포지션 : 스트라이커
EPL 출범 이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 EPL 통산 최다 득점, EPL 통산 최다 헤트트릭 등 골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을 지니고 있다.
조니 헤인스
대표 클럽 : 풀럼
포지션 : 처진 공격수
풀럼 역대 최고의 선수. 지능이 좋았으며, 게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플레이메이커였다. 또한 플레이메이커 답게 패스 능력이 매우 좋았는데, 축구 황제 펠레가 "내가 본 선수들 중 가장 패스를 잘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
첫댓글 항상보면 찰튼경은 머리숱이 아쉬움 젊을때부터ㅠ
그래도 20살 당시에는..
그러다가 60년대 초 무렵부터 점점..
이게 66년이던가....
@AC 밀란 머리숱날아가는건 순간이네요
@롭슨 한 4-6년만에 저렇게..
2군ㄷㄷ
그러고보니 2군에 요즘 선수들이 많이 모여있네요
케인도 들어갈수 있을까 했는데 2군도 짱짱하네
케인은 아직 힘들지 않을까 해요
가장 좋은건 국대에서 확실한 무언가를 남기는거겠죠
이번 월드컵이 기대되네요
@AC 밀란 한준희 위원말로는 리네커 이후로 최고의 스트라이커라 말씀하셔서 ㅋㅋㅋ 아직 어리니까 기대해봐야죠
2006년 월드컵만 우승했으면 역대 베스트가 많이 달라졌을까요?
센터백과 골키퍼는 모르겠어요. 무어는 절대 안빠질테고 라이트는 음 글쎄요 라이트도 워낙 기념비적인 인물이라
그래도 제 주관이지만 우승을 했다는 가정이 있다면 빠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드필더에선 피니 대신 베컴, 롭슨 대신 제라드or램파드가 들어갈 것 같고
공격도 키건 대신 루니가 유력하지 않았을까요?
활약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미 그리브스 월드컵. 한골이라
잉글 국대면. 리네커 일듯
아 잉글랜드 국대가 아니라 국적이예요 ㅎㅎ
테리가 국대빨리은퇴해서 못들어간 느낌인대 ㄷㄷ
ㅎㅎ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뱅크스여 박원순이여
아 그러고보니 닮긴 했네요
저 사진 보면서 누군가 닮았다고 느끼긴 했었는데
케빈 키건 흔한 동네 아저씬줄 알았는데 레전드였군요ㄷㄷ
엄청난 선수였어요
커리어만 봐도 리버풀 전성기 시절 주전에 함부르크로 이적해서는 리그 우승, 유로피언컵 준우승에 발롱도르만 2번..
커리어로만 따지면 잉글랜드 공격수들 중에서는 최상급인 것 같아요
루니보단 오웬아닐까여 제 생각인데 루니이전 역대최고득점자였고 국제무대활약도 오웬이 좀 더 낫다고봐서요
그렇게 보셔도 된다고 봐요. 오웬도 워낙 대단했으니
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루니가 낫더라구요
일단 뭐 최다 득점이기도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웬은 리버풀 당시 전성기에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지만 짧았고, 루니는 맨유에서 오웬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였지만 꾸준하고 오랜기간 정상급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 높게 봤어요.
저도 임팩트 같은 부분에선 오웬이 루니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요
퍼디난드 대표클럽에 웨스트햄이 들어가나요? 리즈 아닌가요
대표 클럽에 큰 의미를 두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대체로 오래 뛴 클럽이나 생각나는 클럽들 위주로 적은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