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섦’. 과제를 처음 접하고 난 익숙한 낯섦을 경험한 적이 있나 하고 고민해본 순간이 아마 살면서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았다면, 그것이야말로 낯선 대상에서 오는 익숙함일 것이다. 대개 이런 느낌은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익숙함에서 오는 낯섦이란, 인지하고 느끼지 않은 이상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늘 낯선 익숙함에 익숙해졌던 나는 익숙한 낯섦에 낯설어 있었다. 그렇게 낯선 ‘익숙한 낯섦’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관덕정이 나온다. 나는 이 관덕정을 초등학교 때도, 대학생이 된 지금도 종종 가곤 한다. 초등학생 때는 관덕정을 답사하러 갔다. 친구들과 함께 가서 붕어도 보고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된 지금, 난 초등학생 때보다 그쪽을 향해 더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산책하기도 했고, 학교 중앙도서관 버스를 타고 그곳에 내리기도 했다. 관덕정은 그저 나에게 친숙하면서도 익숙한 그런 존재이자 장소다. 그러나, 관덕정과 관련해 어떤 감정을 느껴보진 않았다. 그저 내가 지나가는 곳에 있는 곳, 잠시 들리는 곳에 불과했다.
근데 스무 살이 되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이 그곳을 향했다. 거기에 앉아서 대화도 나누고, 손도 잡고. 그때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와의 인연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관덕정을 지날 때면 나는 그 사람이 떠오르곤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관덕정을 보며 아무 감정과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 이후로 관덕정을 보면 힘들기도,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움직이지도 않는 그저 익숙한 대상에 불과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어떤 것을 해 하지도 않은 그 대상을 보며 난 슬픔이란 감정을 느꼈다. 같은 자리에서 보는 관덕정은 그야말로 낯설었다.
또, 스물한 살이 되고, 난 다른 사람과 함께 이곳을 다시 오게 됐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의 기억은 거의 잊힌 듯, 시간이 흐르며 기억도 바람을 타고 흘러갔는지 그와 있는 시간만큼은 그때가 떠오르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즐거웠다. 이때도 역시, 이와 함께 걷는 관덕정이 그저 재밌고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시간이 이미 꽤 지났기에 갑작스러운 것은 아닐 테지만, 어느 날 새로운 사람과 함께 바라본 그 순간의 관덕정은 나에게 또 다른 낯선 존재로 다가왔다.
익숙한 낯섦. 어쩌면 익숙했지만 낯설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나왔던 일들에 낯섦이 어쩌면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오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첫댓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살았던 지역, 거리, 건물을 지금 보면 기억과 맞지 않아서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새로운 변화가 생겼거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든 그 원이미지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많이 변했는데도 같다고 생각하든, 변한 게 없는데도 다르다고 생각하든 기억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과제물에서는 어린시절, 누군가와 만났을 때, 인연이 끝났을 때를 기준으로 하여 "사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부재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투영했던 자신이 이제는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살아갑니다. 부재와 상실이 때로는 이겨내기 힘들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 단단해지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잘 준비하고 이어나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