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짐작하겠지만 전쟁터는 일반 생활 영역과는 아주 다릅니다. 왜냐하면 생과 사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비단 군인뿐만 아니라 그 지역 안에 있다면 일반사람이라고 총알이 피해 가거나 포탄이 돌아가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살합니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노약자도 없고 어린아이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유약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전투에 몇 번 참여하고 나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평소 깔끔하게 잘 지내던 사람도 군복을 입기만 하면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잘 아는 대로 그래서 우리도 예비군복을 일반사회에서 착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수녀원에 쳐들어와서는 수녀들을 끌어냅니다. 마당에 일렬로 세우더니 모두 총살시킵니다. 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숨겨주었다는 이유입니다. 성직자라고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지휘관이 독실한 신자였다면 혹시 다른 판단과 다른 조처를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또는 자기 부하들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위치에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는 지휘관의 소관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처한 부대의 안전과 휘하 장병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어차피 전쟁에는 도덕이 눈을 감고 윤리가 힘을 쓰기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사람의 기본 감정은 어디에서나 작동하기 마련입니다. 군인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상사와 부하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이성의 감정을 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막말로 좋은 걸 어쩌겠습니까?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도, 언제 적의 기습을 받을지 어떤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도 그 잠깐의 빈 시간에 사랑의 감정이 솟아납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때야말로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극한 위기 속에서라도 생겨날 수 있는 행복일 것입니다. 삶이 길든 짧든 사람은 그런 순간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삶의 활력을 주고 의미를 주고 얼마나 지속될 인생일지 몰라도 희망을 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쁨이고 행복이지요.
포대장 중위와 정훈장교 중위가 함께 부대에 남습니다. 그리고 전략상 매우 중요한 다리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일단 부대 지휘는 포대장 중위가 맡습니다. 자신의 장병들이니까요. 대포 둘과 부하들 열댓 명이 남아서 지킵니다. 그런데 근처에 수녀원이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지만 위치로 보아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전망대로 사용합니다. 알고 보니 수녀 한 사람과 장애 아이들이 숨어있습니다. 폴란드 소속입니다. 이 전쟁마당이 폴란드 영토입니다. 그곳에서 러시아군과 독일 나치군이 접전을 합니다. 그런데 폴란드 저항군이 숨어 있습니다. 묘한 형세입니다. 모두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니 말입니다. 폴란드와 러시아, 러시아와 독일, 독일과 폴란드.
아이들을 돌보는 수녀는 독일 나치군에게 학살되는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와 우호관계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러시아군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독일 나치군이 시시때때로 다가오고 습격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살합니다. 이 다리를 차지하려고 탱크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벅찹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안전까지 지켜야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도 있기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자기의 뜻을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위험에 놓여도 깨닫지 못합니다.
폴란드 저항군 속에는 러시아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원한을 품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러시아군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리를 폭파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 아이들을 지키려면 다리 또한 지켜야 합니다. 그들 사이에 분열이 생깁니다. 어쩌지요? 대규모 나치군이 쳐들어옵니다. 여기저기 포탄이 떨어지고 총탄이 빗발치듯 오갑니다. 그 속을 아이들을 데리고 참호로 피난을 합니다. 다리에는 이미 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터뜨릴 것이냐 말 것이냐 옥신각신합니다. 와야 할 지원군이 더딥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너도나도 쓰러집니다. 사랑도 총탄을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한 순간 이 땅에서의 기쁨을 지니고 떠납니다.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질문을 바꾸어 해봅니다. 신이 어떤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까? 그런 세상에 당신이 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있다면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보이는 신이 신입니까? 러시아 정훈장교는 철저히 무신론자입니다. 수녀에게 신을 들먹거리며 조롱합니다. 맘 같아서는 코앞에 보여주고 싶을 것입니다. 한 병사는 아이들 몰래 만들어놓은 선물을 주며 말합니다. 기적은 사람이 만드는 거란다. 우리는 신을 경험할 수는 있어도 증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그 차이입니다. 영화 ‘배틀그라운드 : 브릿지 전투’(Battery Number One, Edinichka)를 보았습니다. 2015년 러시아 작품입니다.
첫댓글 본디 전쟁이란 참혹과 광기가 어울어져 민간학살로 가는길
그쵸잉? 없어도 되는데 여전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