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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등산 |
김준수(가명) | 서울시 관악구 |
일터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실업 수당을 받게 됐지만 그 이후는 캄캄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다. 외출을 덜 하고, 약속을 끊고, 하루 한두 번 라면을 끓였다. 절약에 대한 강박관념은 나를 바깥세상과 차단했고,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보냈다. 초밥을 들고 찾아온 오랜 친구는 나더러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 뒤로도 집요하게 나를 채근하기에 마지못해 상담소에 갔다. 상담사는 나의 기나긴 중언부언을 '종일 아무것도 안 한다.'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사소하더라도 규칙적으로 하는 일 없나요?" "창문으로 산을 봐요. 몇 분이 됐든, 멍하니." 너무 형편없는 대답이어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상담사는 눈을 빛냈다. "그 산에 한 번 올라 보는 건 어떨까요?" 감명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등산이라니, 뻔하고 성의 없는 처방인데다 아저씨들이나 갖는 취미 아닌가. 그러나 이튿날 아침, 나는 산 초입에서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맸다. 변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보다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였다. 산을 오를수록 점점 숨이 찼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오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지난 두 달간 본 것 중 가장 넓은 하늘 때문이었는지, 빨려 들 듯 선명하게 짙푸른 초목 때문이었는지, 그 갈피마다 흥청망청 흐드러진 철쭉 때문이었는지. 오르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세 걸음 이상 앞을 내다보지 않을 것. 보폭을 좁힐 것.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갈 것. 어느새 정상이 목전이었지만 긴 시간 방에 틀어박혀 있던 탓에 체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한쪽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이 아저씨 준비 하나도 안 하고 왔나 봐!" 그러고 보니 나처럼 추리닝에 운동화만 신고 온 사람은 없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겨우 한마디 했다. "저 아저씨 아닌데요." 아주머니는 깔깔 웃더니 물과 초콜릿을 줬다. 그 모습이 어쩐지 초밥을 좋아하는 나의 오랜 친구와 닮아 보였다. 마침내 오른 정상은, 뭐 별거 없었다. 저 멀리 손톱보다 작은 건물들 사이로 내 방 창문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가늠할 길이 없었다. 오랫동안 관 같은 방에 있던 스스로가 용했다. 반쯤 기어서 집에 돌아와 꼬박 이틀을 앓았다. 일자리를 잃은 뒤 가장 혼곤했던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보니, 산은 언제나처럼 같은 자리에 있었다. 어딘가에 내 발자국도 품고 있겠지만 그걸 아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백수다. 그날 이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이따금 이력서를 돌리고, 친구를 초대해 삼겹살을 대접하고,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는 걸 빼고. 상담사도 오랜 친구도 다른 지인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하긴 하지만, 정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삶의 요령 몇 가지를 체득했을 뿐이다. 너무 멀리 보지 않을 것, 보폭을 줄일 것, 조급해 하지 말 것. 고작 등산이라니. 그렇게 뻔하고 고리타분한 아저씨 취미로 인생이 바뀔 리 없지 않은가. 발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_ 미하엘 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람은 비록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고 하지만 본래 인간은 유아독존이 안 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난다. 가족, 친구, 제자, 동료, 직장인 등으로 일터에서, 산에서, 장터에서, 여행지에서, 경쟁자로서, 보호자로서, 봉사자로서....이렇게 각기 다른 여러 형태의 만남을 통해 나를 알고 세상을 알아간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연을 쌓아가며 자기의 삶을 조금씩 완성해 간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공생관계를 이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하면서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본래 타인에게 의지하는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가운데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가정, 학교, 직장, 단체 등 여러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가지고 교류하며 살아간다. 함께 어울리고, 함께 채워주고, 함께 위로하며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인생에서 사회활동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듯이 자신을 모르면서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면서 타인과 경쟁하게 되고 그 경쟁에서 이겨야 좋은 인생 성공한 인생이 된다. 물론 경쟁에서 이기면 성취감, 즐거움은 얻게 되지만 공정하지 못한 경쟁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타인과 세상 눈치 안 보고 누구와 경쟁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소신껏 살 수는 없을까.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까이 가지만, 곧 서로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라며 멀리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또 추위를 느껴 가까이 가게 되고 이내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떨어지며 추위와 아픔 사이를 왕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아내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최적의 상태로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뜻함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보고 그에게서 장단점을 찾게 되는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된다. 어떤 사람이든 장점만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려 하고 상대방은 또 보고 싶은 면만 보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 인생이 즐겁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면 힘들고 외롭다. 상대방의 장점을 알면 인간관계가 쉬워진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더 믿는 것이니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별하고 상대가 싫어하는 말 하지 말며 남과 비교하는 말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말에 조심하자. 그런데 세상이 너무 변했다. 애완동물이나 기계와 살기를 원하는 혼족 문화와 노후에 혼자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산다는 것은 공동체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의 공간을 넓혀가다가 늙어가면서 삶의 공간이 사라져 가는 것, 자기 인생 다할 때까지 따뜻한 인간관계로 삶의 공간을 넓히려 애쓰자. 김교환 기자 |
Say You'll Be There - Spice Girls (Vintage Style Cover) ft. Kyndle, Tawanda, Ta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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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여유로움으로
봄기운 만끽하면서
좋은 하루보내세요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향기 가득한 불 금 멋지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핑크하트 님 !
편안한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