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판다’면 대부분 여성입니다. 드물게 남성이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여성이라고 지목됩니다. 지금도 인정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한 때는 직업으로 공인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디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마도 사회적 공인보다는 음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도, 그것을 찾는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주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밤거리에서 이루어지고, 낮이라 하더라도 남모르게 은밀히 거래됩니다. 참으로 오래된 직업 아닌 직업이지만 어디에서나 으슥한 그늘에서 움직입니다.
왜 시작되었을까요? 일단 대부분 여성이라고 하였는데 처음 그 여성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우선 수요가 있었기에 공급이 가능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급원은 욕망보다는 삶의 다급한 필요 때문에 지원(?)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뭔가 생활비를 벌려 하니 그 자금이 필요합니다. 소위 사업 자금인데 가지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몸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수요와 공급이 형성됩니다. 어느 쪽도 자랑스럽게 거래할 사업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 만족할 만한 조건이 형성되기에 거래는 성사됩니다. 한 쪽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자신의 생활 유지를 위해 그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때로 부부 사이의 갈등 소재가 됩니다. 심하면 가정 파탄까지도 이를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 풍기를 문란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억제하고 제한하며 법적으로도 통제합니다. 형사적 벌칙을 정하여 시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래는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법이 있어도 크게 제한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어쩌다 단속하느라 요란을 떤다 해도 말 그대로 요란만 떠는 식이지요. 우리가 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식으로 말해서 걸린다 해도 보통 ‘재수 없어서’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갑니다. 단속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아마도 의식에 큰 차이는 없을 듯합니다.
살해당한 여인들의 대부분은 그 일이 경제적 궁핍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혼자 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돌보아야 할 가족도 있습니다. 취재를 하려니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쫓아내려 합니다. 그래도 가슴에 맺힌 아픔과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토로합니다.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가족에게는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는 사랑하는 딸이고 외동딸입니다. 어느 날 살해되었는데 어디 하소연도 하지 못합니다. 슬픔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난의 눈총과 그 소리를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동네에서 쫓겨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불과 1년에 16명이 살해되었습니다. 법정에서 17명이라고 말하니 스스로 16명이라 정정해줍니다. 아주 당당하게. 경찰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해결해주었으니 표창이라도 주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한 태도에 항의하지 않습니다. 법정 밖에서는 오히려 구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요. 그 살인마의 가족마저 사회적 영웅시 합니다. 아내조차 잘 하였다고 추켜세워 줍니다. 십대 어린 아들에게조차 당당하게 이야기해줍니다. 딸은 아직 너무 어려서 분간을 하지 못합니다. ‘사이드’는 그저 평범한 가장입니다. 낮에는 남들처럼 일하고 때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냅니다.
종교와 결합한 신념은 극단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소위 광신이라고도 말하지요. 종단, 종파가 어디이든 광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은 믿음의 행위라고 말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행위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소위 ‘공동의 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절대라고 하지만 범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권력화 된 종교입니다. 세상 권력까지 쥐면 왕 이상의 절대권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사회적 인식까지 점령합니다. 전통으로 굳어지고 사회일반의 사고가 되고 의식이 됩니다. 변하거나 조정되기도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그런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21세기 최첨단 사회임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이 굳어져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그대로 대물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려워집니다. 겨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어린 자기 여동생을 도구로 살해 연습을 하는 비디오를 보면 치가 떨립니다. 그 죄가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살인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도모하는 종교가 종교인가 묻고 싶습니다. 영화 ‘성스러운 거미’(Holy Spider)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성스럽네요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한 주를 빕니다. ^)^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2월의 마지막 날, 복된 하루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