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쓴 "파란 돌"을
오디오 북으로 들었습니다.
맨 처음 글귀에
"오랜만에 당신을 불러 봅니다.
거긴 지낼만한가요?
난 여전히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
............................................
나도 자주 당신한테 그렇게 말하지요.
그런데 당신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언젠가 글에서 읽었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면
바람으로 , 구름으로 , 햇살로....
무엇이 되어서라도 곁에 온다 하더군요.
나는 그 글에서 희망을 얻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그 무엇을 알아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요 며칠은 뜰에 새들이 놀러 왔습니다.
당신은 새가 되어서도 오더군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단감이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작년 10월 어느날
감이 완전하게 익기에는 이른 철이라
그중 잘 익은 것을 골라 따느라 손등에 상처가
몇군데 생겼었지요 .
참으로 미안하고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올해도 감나무에 감이 많이도 열렸을 텐데
당신한테 감나무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당신 생각에 감을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내 식탐은 그것과는 무관한가 봅니다.
마켓에 가서 몇번 단감을 샀습니다.
당신이 심은 감나무의 감보다는 맛이
덜 하더군요.
당신이 따다 주었던 감보다 맛있는 감은
이 세상엔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어둠이 좀 내려앉았을 때 산책을
나갔습니다.
당신한테 이야기했던 담쟁이넝쿨이 가득한 벽
옆길을 걸었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담쟁이 잎은
단풍이 들었을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잎들이 다 떨이 지고 마른 가지로 겨울을
보내고 봄이면 새 잎이 돋아나겠지요.
나는 그 새로운 생명으로도 당신을 만날 것입니다.
내 집에 움직이는 물건 하나 놓는 게 좋다고
사 준 풍경을 현관에 매달아 놓았다 말했지요.
큰 종 밑에 작은 종 세 개 그리고 위아래에
말이 한 마리씩 두 마리가 있던 것을
당신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고른 것이었으니까요.
가끔 가서 그 풍경을 흔들어 보기도 한답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그러는가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빈속에 커피 마시지 말라고
당신이 내게 잔소리를 많이 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속이 쓰려서 커피를 줄이고
있답니다.
당신의 말을 들어야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이 기침할 때는 내 숨도 멈춰지곤 했는데
몇 달 전부터 나도 기침을 자주 합니다.
오늘 정기검진으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서
기침 이야기를 했더니 약을 처방해 주더군요.
환절기 알레르기 천식인 것 같다고요.
당신이 있었다면 내가 당신한테 옮은 것이니
물어내라고 떼를 써 보았을 텐데요.
그러면 당신은 뭐라 했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당신이 떠난 뒤 많이 힘들었습니다.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아진 게
나 혼자만이 아는 변화입니다.
슬프지도, 마음 아프지도 않은 듯이 살아내는 것이
처음보다는 힘들지 않습니다 .
차마 당신의 무덤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그곳에서 보이는 바다를 담아 왔습니다 .
가끔 그 바다를 봅니다 .
그러면 둘이 나란히 바다를 바라 보는것이라
나는 생각 합니다 .
내가 놓고 온 자주색 국화꽃 화분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나는 매일 당신이 잠든 그곳에 마음의 꽃 한송이를
꽂으러 갑니다 .
내 걱정은 마세요 .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살라는 말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려 합니다.
오랜만에 가을 편지를 씁니다.
거긴 지낼만한가요?
난 여전히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첫댓글
오디오 북으로 읽은
한강 작가의 '파란 돌'을 듣(읽)고,
첫 글귀를 보고서,
아녜스님의 '당신'이라 불리는
그리운 그분에게
가을 편지를 쓰셨네요.
누구라도,
저만큼 물러나고 있는 계절에 느끼는
낙엽 흩날리는 초겨을이 오면,
그분에게 안부를 묻고 싶기도 하지요.
아녜스님의 편지를 보시는 그분은
그분은 무척 행복해 하실 겁니다.
저는 오디오 북을 보면,
책으로 직접 읽는 것 처럼
집중이 잘 안된답니다.
집안 일을 하면서 보니까 그렇는지,
잘 못하면, 놓쳐 버려요.^^
저도 오디오 북을 일을 하거나 잠자기전에
듣기 때문에 집중이 안 되고 또
기억도 잘 안 납니다 .
그런데 마음에 와 닿는것은 다시 제대로
듣기도 합니다 .
가을엔 편지가 쓰고 싶어 진다 하지요 .
수필방이 좀 한가해서 수취인 없는
편지를 써 보았습니다 .
환절기에 건강 잘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제게는 저보다 8살이나 아래인 아내가 있기에 아내없이 사는건 상상 못해봤습니다
제가 가끔 얘기합니다. 나죽고 나면 딸하고 잘살아하면 딸하고 같이 못산다 하고
딸한테 아빠죽고나면 엄마하고 같이 살아하니까 엄마하고는 같이 못살고
가까운데 살면서 자주 찾아가겠다고 하네요
그산님의 아내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잘 알것 같습니다 .
지금처럼 오랫동안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키아누리브스와 산드라블록이 주연한 '스피드'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첫장면부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더니 끝까지 가슴조이게 하는 아주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아녜스님의 가을편지도 첫 구절부터 가슴을 당기며 보게됩니다
연민, 사랑, 정, 그리움이 차례로 배어나오고 ,,,,다 읽으니 먹먹해집니다.
잔잔한, 그리고 아름다운 가을편지 잘 보았습니다.
바닷가재님이 보신 영화 '스피드'를 저는 못 보았습니다 .
볼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
한강의 '파란 돌' 을 듣고 책 내용이 저랑 상통되는
부분이 많아 글로 써 보았습니다 .
그리고 바닷가재님이 읽어 주셔서 감사하며
수필방에서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
아녜스 님의 가을편지가
가슴 먹먹하게 와닿습니다.
차분하게 써내려 간 편지 속
그분.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
그분께서 떠난 뒤 아녜스 님 혼자만 아는 변화.
웃음보다는 눈물.
아녜스 님의 변화를 그분은
알고 계시겠지요.
부칠 곳 없는 이 가을편지가
바람결에라도 그분께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베리아님의 댓글은 늘 따스합니다 .
그리고 글 쓴이의 마음을 잘 이해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답니다 .
저의 마음도 잘 헤아려 주셔서 감사 합니다 .
날씨가 점점 추워 지겠네요 .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어떠한 말씀도 드릴 수 없어서.
아름다운 그리움. 정도로..
켜쇼님이 놓고 간 꽃으로 제게는 선물로 느껴집니다 .
참 곱네요 .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한강의 소설을 유튜브로 몇개 들었더니
여러 다른 작품들도 자동으로 올라와서
들은 것 중 '파란 돌'도 있었습니다.
잔잔했지만 바닥에 아름다운 아픔이
깔린 편지 나레이션 같다.. 생각했는데...
아녜스님의 가을 편지에서도 그 비슷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아녜스님이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사실수록
그분도 그곳에서 더 편히 잘 계실 겁니다.
요즘 한강의 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
듣다가 자고 ,자다가 또 듣고
그래서 기억을 잘 못합니다 .
그런데 '파란 돌'은 정신 말짱할때
다시 들었습니다 .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
당신에게 가을 편지를 쓰셨군요.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을편지 잘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수필방이 한가해서 글 하나 마음가는대로
썼습니다 .
고맙습니다 .
왠지...... 먼저 세상을 떠나신 친하게 지내셨던 성당 교우님에게 보내시는 편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네 ...
그냥 당신이란 호칭을 썼습니다 .
아녜스님의 모습 뵌 적 없고 오직 글로서지만
세월을 함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그 대상을 누구라 말하지 않아도
그를 향한 아녜스님의 마음만 읽어도
글 속의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지는 특별함을
갖게 되는 것이요.
에드거 앨런 포우가 써내려간
애너벨리 이야기만이
빛나고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마음을 다해 지켜내고 지켜지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견고한 사랑도 있음을 알겠습니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해도네님은 저보다도 더
저를 아는것 같다고 말했었지요 .
그래서 가끔 부끄럽게도 하지만
누군가와 제 속 마음을 공유한다는것이
행복하기도 하답니다 .
늘 따스한 벗이지요 .
해도네님은 저에게 그렇습니다 .
고맙습니다 .
잘읽고 갑니다.
저도 그런 풋풋한 편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