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끔 현재의 삶은 덤이거니 하고 느낄 때가 있다.
"끼~~~ 이이익!!!"
난 그때 죽었어야 했다.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살았다!
그땐 산다와 죽는다는 말 뜻도 제대로 모를 나이, 여섯 살이었다.
도시에서 자라, 산이며 들이며 강이며 자연의 놀이터가 빈약했던 나는 여섯 살 되던 해에 새로운 놀이를 개발했다. 엄청 짜릿하고 즐거운 놀이를...
새나라 택시(바닥이 지금 차보다 많이 높았음)가 도로를 굴러 다닐 무렵.
골목을 나서면 도로가 있었다.
대구시 대봉동 예전 경북고 바로 앞 도로.
저쯤 멀리서 드문드문 택시가 오면 적당한 거리에서 나는 냅다 길 건너로 달렸다. 물론 내 딴에는 안전한 거리라고 생각될 때 뛰었지만, 운전기사님 입장에선 위험 천만한, 가슴을 쓸어내릴 아찔한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놀이라고 차가 더 가까이 왔을 때 뛰는 스릴을 즐기게 되면서, 그 놀이는 저승사자도 깜짝 놀라 손에 땀을 쥐게 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여덟 살짜리 골목 누나가 같이 길에 나와 내 놀이를 지켜보고, 난 여섯 살 꼴에 괜히 우쭐하여 남자다움을 뽐내느라 여러 번의 묘기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시도를 하던 중, 앗! 출발이 늦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발도 꼬이고 그냥 도로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새나라 택시는 내 위를 덮치고...
"끼~~~ 이이익!!!"
눈을 떠보니 난 길바닥에 엎어져있고, 내 어깨 양 옆에 자동차 앞바퀴 두 개가 보였다. 머리를 들어보려 했더니 택시 밑바닥에 머리가 부딪혔다.
지금 생각하면 온몸에 저릿한 소름이 돋는데...
그때 나는 차에서 급히 내린 아저씨의 다리를 발통 사이로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일을 우짜지. 엄청 혼 날 텐데..."
아저씨는 차마 차 밑을 볼 용기가 나지 않으셨는지 그대로 서 계셨는데, 내가 차 밑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오니 내 생각과는 달리 나를 엄청 반기시면서 덥석 양팔로 안아 올리셨다.
"너거 집 어데고..?" 떨리는 목소리셨고,
"저쪽인데예...???"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나를 집 입구에 내려놓으시더니, 동네 아줌마와 이야기하고 계시던 어머니에게,
"아 쫌 잘 보소!!" 냅다 고함치시고 바삐 사라지셨다.
그 사건은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있다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기사 아저씨의 반가운 웃음이 이해되었지만,
'아저씨 그때 참말로 미안했심데이. 정말로 모르고 그랬어예. 용서해 주이소. 지금 생각해 보마 아저씨와 전 아주 큰 전생의 인연이 있었는 것 같네예'
지금까지 그 일만 생각나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고, 매번 사과드리고 용서를 빈다.
그 일을 이야기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는데, 훗날 안 보이는 나를 찾으러 나왔던 큰형이 그 순간을 목격했다는, 오금이 저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해줌으로써 그 아찔한 사건은 사실이 되었다.
내 삶은 그 후로 덤으로 사는 것 같아 참 좋은데... 왜 내가 그때 삶을 덤으로 더 받아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는 늘 궁금하다.
그 이유를 알 때까지는 그저 삶을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첫댓글 덤으로 사는 인생.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린 날에 그런 일을
겪으신 마음자리 님.
참 개구쟁이였네요.ㅎ
그때 살아있어서 고운 님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름답게 사시잖아요.ㅎ
몇 년 전에 길가다 주차하던 차가
뒤에서 들이받아 그 자리에서
나뒹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이 세상에 아직도 내가 할 일이
남았구나 생각했지요.
손에 땀이 날만큼 아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호기심도 많고 개구져서
여러 혼날 일들 많이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한 세 번 정도는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ㅎ
여섯 살 사내아이가 그런 스릴을 즐겼다니?
혹시. 내 손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지금 일어난 일처럼 소상하게 기억하시다니 ᆢ
저희 형제들은 모이면 저런 추억담들
나누기를 좋아해서 오래 기억 하나봅니다. ㅎ
전생이 있었다면 마차수리를 아주 잘하는 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마차의 후손들인 자동차들이 보답을 하는거고..지금 하시는 일도 그렇고.
저는 소화기가 조금 안좋은데 전생에 과음을 해서 소화기가 복수를 하는 거라고 합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ㅎ
제가 상상하기를 좋아하는데
재미있는 소재를 주셨습니다. ㅎ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놀란 가슴,
순간 포착의 심정이겠지요.
참 개구진 마음자리님 ~
옛날, 어느 분이 개구졌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한 분에게,
호기심이 발동해서 개구쟁이 짓을 잘하는 어린이는
훗날, 창의력이 많은 어른으로 재탄생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인지도 모르면서요.
마음자리님은 그 분보다 10 배는 더 한 분입니다.^^
그래서, 지루하게 살지 않는 길 위의 한 분이신 것 같네요.
조마조마 하면서도, 덤으로 산다는 것에...^^
제가 생각해도 참 아찔하고 조마조마한
장난이었습니다.
생명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어떤 분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었던...
꿀밤 쎄게 맞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ㅎ
그때의 엉뚱한 호기심과 공상들이
글 재료로 남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ㅎ
장난 꾸러기 셨구나..
어휴 읽는내내 가슴이 조마조마...진짜 숨이 막히는 줄...
근데 경북고 가는길에 큰 통나무들 쌓아 놓았던 목재소 같은 곳있지 않았나요?
저 그 동네 살았거든요.
통 나무 위를 마구 뛰어다니고 놀았었는데...
놀랍습니다. ㅎ
그때 제가 살던 집, 판자로 된 뒷담이 커쇼님이 말하는 그 목재소(제 기억엔 동명 목재소)와 공유하는 담이었습니다.
그 담 넘어 목재소에선 돼지우리도 담장 가까이 만들어 두어서 형과 같이 올라가 돼지 구경하던 생각도 나네요. 그 돼지우리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는데 언제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ㅎㅎ
동네 동생 맞네요. 정말 ㅎㅎ
전 그곳에서 8살까지 살았습니다.
우와~~~~
저는 77~79년도 까지 살았어요.
달성맨션 c동.
1층은 상가가 있었구요..
반가워요. 오라버니...
ㅎㅎ 네, 다시 더 반갑습니다.
정말 큰일 날뻔하셨네요
저는 군대시절 T/S훈련때 제가 탄 트럭이 언덕길에서 굴러 전복되었는데
저는 지붕호로 사이 몸이 날라가 논바닥에 쳐박혔고
함께 날라간 다른 세명은 바위에 부딛쳐 중상으로 의병제대하고
차에 남은 사람 셋은 차에 깔려 순직했고
저만 무사히 끝까지 33개월 만기제대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수송부대에서 근무를 했는데
그산님이 겪으신 사고와 비슷한
사고가 나서 장병 5명이 사망한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산님도 천운이 함께 하나봅니다.
그 기사분 차 밑도 들여다 보지 못하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셨을 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그때는 인정이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었기 다행입니다.
요즘같이 댜혈질 많은 시대 같으면
기사분이 더 무섭게 야단치고 화 내셨을 것입니다.
그리 죽을 고비 넘기셨으니
마음님 오래오래 무병장수 하실게 확실합니다.
그 기사분 생각만 하면 그저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날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어릴적 철없이 산 날들이라지만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참 많습니다.
마음자리님이 일찍 이성에 눈이뜨셨나요?
여섯살짜리 아가가 여덟살 누나한테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하셨다니 ....
일찌기 액땜 하셨으니
덤으로 오래 오래 지금처럼 즐겁게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텀 치고는 너무도 큰 덤을 노렸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