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세상은 혼돈 속에 고요하고
있었다. 이번 주가 뇌우의 신 레기간스가 바람의 여신 이나번트에게 따귀를 맞고 분노하여
인간에게 화풀이를 하는 주이기는 했으나, 올해처럼 지독한 건 처음이었다.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져서 그 곳으로 오크들이 칩입해서 말을 잡아가기도 했다. 비가 이렇게 지독히 내리니
경비서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직 십일이나 남은 이번 레기간스의 주를 어찌 보낼지 아크로
스의 3초소 경비병 더스만은 이만 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이미 비 때문에 녹슬어버린 갑옷
에선 퀴퀴한 쇠냄새가 나고 축축한 가죽구두는 여기저기 실밥이 터져 벌어지고 있었다. 아
내가 만들어준 구두이기에 그는 오늘 근무가 끝나고 수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지독히도 쏟아지는군."
아돌프가 3초소 대공초소의 근무를 교대하고 휴식실로 들어오며 더스만에게 말했다. 초소장
인 더스만은 웃으며 그를 맞았다.
"하하! 내일 휴가 가는 놈이 불만도 많구만."
아돌프는 검을 벽에 기대어 내려놓고는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쳇! 레기간스가 지랄하는 날은 정말 휴가도 싫어. 집안에서 그놈의 마누라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잔소리 할 테니까? "
아돌프는 대충 물을 털어 내고 소파에 털썩 주저 않았다. 피곤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미친 레기간스 같으니."
더스만은 근무 교대장부를 펴며 아돌프의 이름을 적고 말했다.
"테스는 화장실에 갔나?"
아돌프는 거의 잠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그래, 곧 올 거야..."
그리고 아돌프는 세시간 뒤의 근무를 위해서 취침에 들어갔다.
꽈광광!! 레기간스의 천둥이 울렸다.
덜컹!
더스만은 열린 문을 닫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엇!"
더스만이 놀란 건 거의 반쯤 부서진 문짝 사이로 보인 아귀 같은 모습의 테스 때문이었다.
온몸에 피칠을 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른팔에는 그의 롱스드가 부러진 채 쥐어있었다.
카아오!! 테스의 가슴 한복판으로 매드울프가 뚫고 나오며 더스만에게 붉게 물든 이빨을
들이대었다. 더스만은 무의식적으로 오른팔을 들어 막았다. 매드울프의 이빨이 자신의 팔뚝
으로 뚫고 들어오는 색다른 경험에 더스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매드울프는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더스만의 몸을 찍어 기어오르며 더스만의 목을 물려고 했다.
물론 더스만이 매드울프 한 마리에 당할 위인은 아니었다. 그는 작년 미친오우거마을난입
난동때 오우거의 배를 갈랐던 '주산트 백작 영지의 숨겨진 검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
스런 기습에는 그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각!
그런 더스만의 목젖을 구해준 건 아돌프였다. 매끄러운 솜씨로 매드울프를 정확히
두동강내었다. 하지만 매드울프를 잡고있던 더스만의 왼손 손가락 두 개도 같이 벤 것은 어
쩔 수 없는 것이었다.
더스만은 그런 고통 따위에 몸부리치면서 검을 늦게 쥐는 어리석은 짓을 할만큼 어설픈 검
객은 아니었다. 곧바로 그는 그의 롱소드를 쥐고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나섰다. 아돌프도 따라
나선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젠장!"
그렇게 소리친 건 아돌프였다.
"레기간스가 주재하는 빗속에 매드울프라니! 젠장할 재수 드럽게 없군!"
더스만은 그렇게 말하며 초소주변에 쫙깔려있는 매드울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매드울프가 나타나는지 아크로스의 경비대로선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
다. 매드울프의 시체가 성벽높이 만큼 쌓아졌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매드울프 떼들이 나타났
다.
더스만은 잘린 손가락 부분이 빗 속에서 계속 곪아 들어 가는 걸 보고도 치료를 할 한치의
여유도 없었다. 가끔 심하게 곪았다 싶으면 상처를 도려내고 다시 붕대로 감는 정도 였다.
아돌프는 이틀전에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더스만도 이미 3초소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다. 제
5임시 초소에서 살아남은 경비 대원들과 함께 벌써 나흘째 매드울프와 대치 중이었다.
한 조가 경비를 서고 있으면 나머지 한 조는 임시 초소 주의로 방벽을 쌓고 있었다. 이십
사시간 근무 체계였기 때문에 이미 5 임시 초소에 모인 경비병 삼십 이명은 이미 한계에 다
다르고 있었다.
"젠장할! 이놈의 비만 아니면 그래도 좀 살겠는데 말야!"
우람한 덩치를 가진 살핀이 임시 방벽을 쌓으면서 궁시렁 거리고 있었다. 옆에선 피로 물
든 붕대를 손에 감은 채 방벽을 쌓는 더스만이 있었다.
"본국에선 왜 지원군이 오지 않는건지....."
작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더스만과 살핀은 들고 있던 모래가 담긴 마대를 내려놓았다.
"젠장 오늘은 왠지 안온다 싶었는데..."
살핀은 그렇게 궁시렁 거리며 옆에 꽂아 놓았던 빅바스타드를 뽑았다. 더스만은 아무말 없
이 검을 들고 가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