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사냐? 오벧에돔이냐?
(사무엘하 6 : 1-11)
오늘 읽은 사무엘하 6장에는 아비나답 집에 있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 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삼하 6:3) 웃사와 아효가 하나님의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열심히 다윗성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라며 소들이 갑자기 뛰자 웃사가 손으로 법궤를 붙잡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웃사는 이 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7)
1. 웃사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7절)
본문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가 무엇을 잘못해서 죽임을 당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궤는 이동할 때 제사장이 어깨에 메고 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웃사는 이 법궤를 소가 모는 수레에 얹고 갔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소를 기를 때 코를 뚫어서 코뚜레를 꿰는 이유는 그 고삐를 잡아 소를 원하는 데로 움직이기 위함입니다. 소가 뛸 때 웃사는 궤를 붙들지 말고 소의 고삐를 잡아서 소가 뛰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웃사가 법궤를 붙들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붙들어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받고 성령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법궤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기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통해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법궤를 앞세워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법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나와 부족한 사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문제가 있습니다. 눈물납니다. 힘들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은혜를 베풉어 주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은혜가 나에게 있습니다. 능력이 나에게 있습니다.
권세가 나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방법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방법대로 살아 갑니다.
웃사가 법궤를 붙잡아 하나님의 궤가 안전해졌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고 웃사는 ‘법궤가 나 때문에 안 넘어졌다’라며 하나님을 지킨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좋고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들거나 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아무리 세우려고 해도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면 넘어지고 맙니다. 반대로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붙드시면 우리는 세워집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스가랴 4장 6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2. 오벧에돔에게 임한 복이 있습니다.(11절)
본문 9절에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모셔 오려고 했지만 웃사의 죽음으로 두려움을 느껴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6장 10-11절에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그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 온집이란 가축이나 밭의 소산을 말합니다.
농사도 잘되고, 가축도 잘되고 번창하는 놀라운 역사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니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소유를 족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3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하나님은 눈에 보이도록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오벧에돔의 집은 여호와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복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복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은 오벧에돔의 집에 임했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수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오직 오벧에돔의 집에만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잘 아는 집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방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잘 알았던 집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궤를 영접한 오벧에돔의 집에 큰 기쁨과 믿음과 평안의 복을 주셨습니다.
큰기쁨과 믿음과 평안의 복이 승리교회성도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편의주의로 살지 않고 세속주의로 살지 않고 다원주의로 살지 않고
오직 예수님, 오직 복음, 오직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큰 기쁨과 믿음과 평안의 복이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역대상 16장 37-38절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있게 하며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육십팔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았고”
다윗 왕은 오벧에돔을 법궤를 지키는 사람으로 임명하고 문지기 직분을 주었습니다. 성전을 지키는 직무를 주었습니다. 성전을 지키는, 법궤를 지키는 직무는 그 당시에 아주 귀한 직분이었습니다. 상류층 사람들만이 이 직책을 소유하고 성전을 경호하고 수비했습니다.
특히 오벧에돔은 남방 문을 수비했는데, 이 남방 문은 왕만이 통과하는 문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직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게 성전을 지키고, 법궤를 지키는 새로운 직분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역대상 24장 4절이후에 오벧에돔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8절에 “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헝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오벧에돔은 아들이 8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으므로 그 아들 중에서 다스리는 자가 나오고, 큰 용사가 나왔습니다.
다 능력이 있어서 직무를 잘 행했습니다.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 아들, 손자, 그 후손들이 62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법궤를 잘 섬김을 통해서 자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문이 번성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손들이 다 능력이 있어서 직무를 잘하고 부요하고 형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큰 용사들이 나왔습니다. 능력 있는 자가 나왔습니다.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대에서는 잘 되고 찬란하다가 자식 대에 가서는 쫄딱 망하여 패가망신한 집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궤를 잘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손, 아들·딸을 번창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승리교회는 웃사처럼 아닌 오벧에돔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신명기 6장 7절에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않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잘만나는 복을 받으셨나요? 나를 도와 주고 협력할 사람을 만나셨나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십시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침반과 시계를 보세요. 나침반은 방향이고 시계는 속도이다.
속도보다 방향을 잘 잡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오늘도 살아갑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에 목숨걸고 사십시오.
로마서 12장 1절에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