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길에 접어들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고개너머 교현리까지는 4.5km. 이 길이 더 넓혀지거나 포장되지 않은 건 산악인들이 중심이 된 우이령보존회의 노력 덕분이다. 잔설기답게 이제 녹기 시작하는 길은 꽤나 질퍽거린다.
우이령은 이홍렬 작사 작곡의 가곡 <바위고개>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강북구청에서는 덕성여대 맞은편 솔밭공원에 커다란 <바위고개> 노래비를 세우고 추모음악제까지 성대하게 연적이 있다. 그러나 생전에 이홍렬씨는 바위고개가 우이령이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바위고개가 어디에 있는 고개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의 대답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고개이지만,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나라의 모든 국토가 바위고개입니다”였다.
또 한 가지 <바위고개>에 관하여 잘못 알려진 사실은 작사자가 이홍렬이 아니라 그의 친구인 이서향으로 중학교 시절인 14세 때 지었으나 이서향이 월북한 이후 이홍렬 작사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부인 백난영씨의 증언이다. 이는 1934년 도쿄(東京) 상문사(桑文社)에서 간행한 <<이흥렬작곡집(제1집)>>에 가곡 <행복>과 함께 <바위고개>의 작사자가 서향(曙鄕)으로 분명히 나와 있으며, 또 1939년 6월 8∼9일 경성 부민관에서 개최된 동아일보사 주최 제1회 <전(全) 조선창작작곡발표 대음악제> 팸플릿에도 마찬가지로 나와 있음을 통해 명백히 입증되고 있다.(1934년 악보에는 곡명이 '바우고개'인데 어떤 연유로 언제부터 '바위고개'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갯마루까지는 1.5km, 1965년에 공병대가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 너비로 길을 닦기전에도 이 길은 있었다. 버스가 뜸하게 다니던 시절 교현리 사람들의 서울 나들이길이었던 셈이다. 비가 제법 내리고 외투가 젖기 시작한다. 대전차장애물이라는 안내판을 달고 있는 시설물이 장난감처럼 초라해보인다. 보다 강력해진 무기체계 덕분에 현대전에 맞지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나 할까.
도랑에는 산악초소 입간판이 쓰러져 있다. 한때 저곳에는 전경대원이 지키고 있으면서 북한산과 도봉산을 이어서 등반하려는 이들을 막았다. 지금도 여전히 출입금지 구역이며 이제는 전경대원 대신 벌금 50만원 간판이 길을 막는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산수유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겠지만 아직은 계곡에 눈과 얼음이 남아있다. 그 위로 차가운 비가 내리는 오후 산은 아직 겨울이다.
봄날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다.
우이령길은 하루 전까지 탐방예약 필수
당일 현장 접수 및 입장 불가
- 매일 1,000명씩 예약가능(강북구 우이동에서 500명, 양주시 교현리에서 500명)
- 예약은 인터넷(www.knps.or.kr)에서 가능하며, 정원에 미달하더라도 현장에서 접수 및 입장 불가
- 이용일로부터 15일 이전 오전10시부터 1일전 오후5시까지 예약가능하며, 1인당 10명까지 가능
- 전화예약은 노령층(65세 이상),장애인,외국인만 가능 (둘레길운영단 : (02) 900-8085)
주의사항
- 09:00~14:00까지만 출입가능하며 16:00까지 하산해야 함.
-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예약자, 동행인) 지참.
기타
- 이용료 없음.
문의
- 우이탐방지원센터(강북구 삼양로 181길 349, 02-998-8365)
- 교현탐방지원센터(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93<구주소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산47-10>, 031-855-6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