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크눌프의 히말라야 여행 (2) - 상해의 빛과 그늘 1.

[크눌프]

장대비 퍼붓는 칭따오 해변.

이 여행은 처음부터 비의 여행이었다.

칭따오 항에 도착해 함께 내린 (배에서 알게 된) 캐나다 친구 Neil, 베이징을 거쳐 몽골로 가겠다던

한국인 학생 이민영과 함께 택시를 타고 칭따오 훠차찬(기차역)이 있는 시내로 왔다.

오랜만에 써보는 중국 인민폐, 오랜만에 써보는 아주 초보적인 중국말, 오랜만에 보는

중국의 거리 ... 모든 것이 너무도 낯익거나 혹은 몹시도 낯설었다.

배낭과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어져만 갔다.

장대비에 갇혀버린 칭다오의 중국인 식당.

지난 겨울, 칭따오에 한번 다녀간 적이 있다며, 또 맛있게 먹은 식당이 있다며

캐나다 친구 Neil이 앞장서 데리고 간 식당은 기차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세 여행자가 비에 흠뻑 젖은 새앙쥐 꼴이 되어 식당을 찾았다.

나는 옛기억을 더듬어 '후이궈러(回鍋肉)'를 시켰고, 중국 여행경험이 많은 이민영은 내게

추천 음식이라며 '친장러스(**肉絲)'를 주문했다. 모두 만족스러웠다.

(삼겹살, 돼지고기 등으로 만든 이 음식들은 한국인 입맛에 썩 잘 맞는다. 강추 요리) 

정작 맛있는 식당이라고 데리고 온 Neil만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瑕┛타?다 남겼다.

칭따오(청도)맥주를 눈 깜짝할 새 6병이나 마시고, 술꾼 셋이 불콰해졌다.

식당 종업원을 데리고 나가 비퍼붓는 칭따오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주방장까지 불려나오고 식당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술에 취한 캐나다 친구 닐은 거의 코믹과 장난의 고수였다.

상해 행 기차. 맞은편 침대 칸에 잠든 Neil 닐.

칭따오 역에서 기차표를 끊었다. 베이징으로 향한다는 이민영은 저녁 6시 기차를 타고,

상해로 향하는 나와 닐은 함께 오후 1시 반 기차를 탄 것이다.

중국 기차는 크게 (고급-저급순으로) 루완워(軟臥), 루완쭤(軟座), 잉워(硬臥), 잉쭤(硬座)로 나뉜다.

가장 비싸고 부드러운 침대칸이 루완워이고, 가장 싸지만 힘들고 딱딱한 좌석칸이 잉쭤이다. 

예전엔 외국인이라면 예외없이 값 비싼 루완워를 타야 했으나, 이젠 그런 외국인 차별이 없어졌다.

궁한 주머니로 여행온 이민영은 북경까지 스무시간을 딱딱한 의자칸인 '잉줘'에 앉아 가겠다고 했다.

차삯이 우리 돈으로 불과 몇천원 밖에 하지 않을 것이다. 젊음은 좋은 것이다.

나와 닐은 칭따오를 1시반에 출발해 이튿날 아침 10시 반에 상해에 도착하는 '잉워' 편을 끊었다.

중국돈으로 300유엔(원), 우리 돈으로 3만 5천원 정도다.

일전에 탔던 기차들이나 이후 탈 기차들에 비한다면 '칭따오 - 상해' 노선의 기차는

상당히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상해나, 청도나 중국의 소위 뜨는 도시이기 때문일 터다.

상해행 잉워 칸의 내부. 칭따오를 지나 제남을 지나 기차는 남행한다.

닐Neil을 만난 것은 칭다오 행 페리 안에서였는데, '론리플래닛 중국' 편을 손에 쥐고 있는 나를 보고

녀석이 말을 걸어오며 인연이 시작되었다. 배 안에서 밤새 술을 마신 듯,

아침부터 술냄새 진동하며 곧잘 까부는 외국인을 만난 게 그닥 반가울 리 없었는데, 

녀석도 칭다오에서 곧장 상해를 간다는 것이었다.  마침 캐나다 인이라 하여, 작년 시베리아 횡단열차서

만나, 아직까지 인연을 잇고 있는 캐나다 친구 데이브와 베스를 떠올렸다.  

캐나다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닐은 경주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며 돈을 모아 중국으로 온 것인데,

상해에서 남쪽의 광쩌우로, 홍콩으로, 마카오로 그리곤 풀문 시즌에 태국 코팡간 섬으로 향한다 했다.

도박의 도시 마카오, 마약 파티의 천국 코팡간 ... 완전히 젊음의 흥청망청 일정이었다.

녀석의 발에 화상이 나 있어 이유를 물으니, 녀석은 갖고 있던 디카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녀석의 학원 송별회날, 경주의 어느 술집 앞에서 모닥불을 피고 있는 친구들 ...

그러다 갑자기 모닥불 속으로 맨발로 뛰어든 것은 바로 닐이었다. 술에 얼마나 취했기에

모닥불로 뛰어들어 화상을 입었겠는가. 이 녀석, 나랑 코드가 딱 맞거나 안 맞는 녀석일테다.

마침내 상해!

닐을 만나 괜찮았던 것 중 하나는 녀석이 갖고 있는 정보로 싸고 괜찮은 숙소를 얻은 것이다.

녀석이 프린트해온 자료를 갖고 상해 역에서 전철을 타고, 얼마간 걸어 상해 남동쪽 구역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들 수 있었다. 국제 유스호스텔 증을 갖고 있던 나는 더욱 할인을 받아 1박에 60원!

즉 우리 돈으로 8천원 정도에 묵은 셈이다. 10여년 전엔 북경 같은 곳도 값싼 숙소가 많았는데,

4년 전 북경행에서는 방을 못 구해 1박에 10여만원 하는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북경 물가에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상해에서 그것도 시설이 썩 괜찮은 유스호스텔에

방을 잡은 것은 행운과도 같았다. 방에 배낭을 던져둔 채 다시 닐과 밖으로 나와 지하철을 탔다.

오후 2시쯤, 번화가에 가깝다는 인민공원 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에 내리니 ...

아! 정녕 이것이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가난과 궁핍에 침체되었던 나라 중국의 땅이란 말인가!

비상하는 중국의 상징, 푸동 지구.  푸동지구의 상징, 둥팡밍주(東方明珠).

인민공원 역에서 동쪽으로 일직선을 이룬 거리는 상해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난징동루(南京東路).

대략 1km, 명동을 동에서 서로 가로지른 거리보다 조금 더 길 법한 이 거리는 갖가지 음식점과

백화점,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그 거리를 한번 지나치며 눈에 들어온 맥도날드 햄버거점만

줄잡아 예닐곱 개는 되었던 듯하다. 아! 이것이 정녕, 중국이란 말인가?

난징동루가 끝나는 지역에 도시는 멀리 양자강 하류와 황해 바다가 만나는 거대한 강과 마주치게 된다.

이름하여 황푸장(黃浦江). 황푸강을 중심으로 이제까지 지나왔던 구역을 푸시(浦西)지역이라 하고,

강을 건너 십여년 전까지만해도 버려진 땅이었던 푸동(浦東)지구라고 한다.

지난해 인천 송도신도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의 인천, 일본의 오사카(?) 등 이른바,

아시아 경제 중심지를 쟁탈하기 위한 경제 특구의 모델로 거론되었던 곳이 바로 푸동지구였다.

과연 ... 황포 강 건너편에서 바라다 보이는 푸동지구의 마천루들이 범상치가 않았다. 

가장 눈에 잘띄는 건물인, 사진의 동방명주 빌딩은 주사기를 거구로 뒤집어 놓은 듯하다는비난과 함께,

중국의 지폐에도 등장할 만큼 비상하는 중국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푸동 지구의 마천루들.

황푸강을 건너 푸동지구로 가는 법 : 지하철을 타는 것이 가장 쉽고 저렴하다.

도심에서 다소 먼 '양푸다리', '와푸다리'로 건너도 되지만 불편한 편이다.

낭만적인 황포강을 건너 꿈의 별천지인 푸동지구를 향하고 싶어하는 관괭객들의 발길을 끄는

탈 것이, 마침 있긴 하다. 바로 난징루 끝에서 만가게 되는 '와이탄 관광터널'이 그것.

최신형 열차가 화려한 조명의 터널을 통해 강을 건너 강 맞은 편에 관광객을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웬만해선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채 5분 정도 걸리는 이 터널을 건너는 데 드는 비용은

30원. 그 돈이면 한끼 뽀지게 식사를 할 수 있고, 맛난 맥주도 몇 병 마실 수 있다.

함께 건넌 닐도 그랬지만, 정말로 시시하다. 

푸동지구, 비가 내리는 ...

사실, 그 명성과 신화에 비한다면, 푸동지구는 썩 훌륭하지 않다.

시끌벅적하고 활기넘치는 강 건너 푸서지구에 비한다면 이곳은 관광객들만 더러 보이는 유령도시같다.

몇개의 휘황찬란한 빌딩이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강 건너에서 본 것처럼 빽빽하지도 않고,

저기 사람들이 근무나 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설렁했다. 아울러 휘황한 빌딩 사이로는

아직 제대로 철거되지 않은 괴괴한 폐허의 건물들이 눈에 띤다.

그것이 중국의 현주소다. 그것이 상해의 현주소고, 푸동의 현실인 듯싶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는 반복하는 푸동지구에서 닐은 우산을 접었다 폈다 했다.

다시 돌아온 난징루의 저녁.

건널 때는 터널을 건넜지만,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탔다.

난징루의 중간 지하철 역에 내려 난지루로 올라섰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하나 둘 씩 켜지고 있었다.

이 녀석, 닐Neil은 참으로 이상한 녀석이었다. 술에 취했을 때는 그토록 장난꾸러기에 재밌는 녀석인데,

술 기운이 없이 돌아다니던 하루는 함께 다니기 힘들 정도로 과묵하고 재미없었다.

줄창 걷는 것을 즐기는 나에 비해, 녀석은 편하게 바와 카페에 기웃거렸고,

한끼라도 중국음식을 먹고픈 나에 비해, 녀석은 맥도날드와 콜라만을 찾았다.

저녁 식사, 마침내 내가 제안했다. 2시간 가량 식사를 제각각하고, 여기쯤서 만나자고.

가이드북에 적힌 '선다청(沈大成)'이란 유명한 음식점을 찾아, 상해에서 꼭 먹어보라는

'샤오룽바오(小龍包)'라는 만두와 항주 우육면(牛肉面)를 주문해 먹었다. 할 말이 없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혹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만두가 있는데,

자그만 만두 속에 따끈하고 달콤한 육수가 폭, 터뜨려지는 샤오룽바오의 맛은 단연 압권이었다!

(최근 명동 중국대사관 부근에 새로 연 식당의 샤오룽바오가 심심찮은 입소문으로 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중국/히말라야 여행 중 가장 맛있는 저녁을 그날 먹은 듯하다.

황푸강 서쪽, 강변을 따라 달리는 차들...

황푸강 서쪽 도심, 육교 위에서 바라본 푸동지구의 마천루들.

그 어느 곳에서 가난과 비위생,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겪은 옛 사회주의 중국의 자취를

조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흑묘백묘론'의 등소평과 상해 시장 출신의 강택민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황푸강, 그리고 푸동지구.

이 강은 세계에서 3번째로 길다는 양자강의 하류, 창강의 지류로 흘러와

한국과 공유하고 있는 서해, 황해로 흐른다.

한국 쪽에서 허위허위 달려온 석양이 이제 막 항푸강에도 비끼고 있었다.

황푸강의 야경.

상해의 명물 황푸강, 황푸강을 가장 제대로 즐길만한 방법은?

황푸강 선착장에서 58유엔 하는 야간 유람선을 탔다.

우리의 한강과 거의 비스하고, 세느강 보다는 조금 더 큰 폭의 강을 따라

수많은 유람선들과 (옛 함선을 본따 만든) 관광선들이 황푸강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황푸강 아래쪽으로 내려와 와푸다리 부근까지 향했던 유람선은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와

양푸다리 못미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이 좀 넘은 듯 ...

뱃전에 부숴지는 것들이란, 세계 유명 기업들의 현란한 네온사인들과 푸동지구의 비상하는

빌딩들, 푸서지구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야상해(夜上海)'의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옛건물들,

그리고 맥주 한잔에 기분좋게 안기는 저녁 바람이었다. 

그렇게 상해의 밤은 깊어만 갔다.

*

동양의 매춘부, 동방의 파리, 벼락부자들의 도시, 주사위를 굴려서 부정 이득을 취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곳이자 모험가, 사기꾼, 도박꾼, 마약 밀매자, 게으른 부자, 멋쟁이, 실업계의 거물, 선교사들, 폭력배,

뒷골목 포주들의 영역이며, 혁명이 시내에 그 뿌리를 내리면서 혁명을 꿈꾸며 춤추는 도시인 상하이는

지나간 긴 세월 동안 공산주의자들이 새로운 중국을 찾아서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망각의 도시였다.
- <론리 플래닛> 중국 편에서 

크눌프.

[엽기녀]

진짜루 작년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ㅋㅋ 전 가이드님이 우리 사장님이셨거든요 ㅋㅋ 동방명주와 야경 진짜 멋졌어요 젤루 싫었던 건 돼지꼬리가 최고급요리라고 사주신 기억 아직도 으윽~~~ 요리빼고 다 좋았답니다. 상해는 생각보다 좋은 도시였던 기억이...

[메타몽]

저도 상해 갔을 때 생각이 나네요^^ 전 그 때 상해에서 청도로 침대 버스 타고, 청도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때 버스 안에서 자다가 디카 잃어버리고-_-; (다행히 보험으로 보상은 받았어요) 쩝. 중국 음식도 전 입에 잘 맞았거든요. 중국 음식이 젤 기억나요 ㅋㅋㅋ

[쯔용~★]

유익한 정보 감사드려요. 5년전 상해에 갔었는데 전 정말 수박 겉 핧기 식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