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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주일설교 시편80:1-19(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본문: 시편80:1-19
제목: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오늘은 시편80:1-19절의 말씀을 통해서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한복음15: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포도원은 기름진 산에 있는 포도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왜 우리가 땅을 파서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고 좋은 종자를 사서 심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극상품 포도 열매,
좋은 열매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최고의 조건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상품 포도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말씀은 이런 전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향한 부름과 간구(1-3절)
종종 자녀들을 보면
아쉬운 것 없으면 연락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그래서 생기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좀 가끔씩 연락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연락은 오지 않으니 좋게 생각하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언제 하나님께 간구합니까?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오늘 시인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혼자만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목자여”라고
부르면서 간구를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자”
“요셉을 양 떼같이 인도하시는 분”
“그룹 사이에서 좌정하신 이”로 표현됩니다.
“목자”는 양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며
양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고
해치는 짐승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가리켜 목자로
일컫는 곳은 네 곳밖에 없습니다.
창세기48:15절에서 야곱은 자신을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창세기49:24에서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암송하고 있는 시편23:1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고 있는 시편80:1이
아마도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렇게 고백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목자라는 표현은
오늘 본문에만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요셉은
애굽 바로의 치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암시합니다.
요셉을 인도하시는 분은 애굽에서 탈출을 계획하시고
광야 여정을 안내하셨던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양 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을 통하여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습니다.
목자가 있는 한 양 떼는 안전하고 인도되고
목자가 있는 한 양 떼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는
그룹은 천사의 날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법궤는 그룹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는
언제나 백성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
그의 천사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북쪽 지파
북이스라엘에 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그리고 유일한 친형인 베냐민은
모두 북이스라엘을 대변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시인이 북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3절에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라는 말씀은
민수기6:25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을 적용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내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가 볼 수 있으면
축복과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얼굴을 우리가 볼 수 없다면
우리는 패배와 절망이 찾아옵니다.
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 천국이요
주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이 지옥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주의 얼굴을 보지 못하여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간청합니다.
이는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구원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어둠이 있다면
우리는 주의 얼굴빛이 내게 비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아픔과 실패가 있다면
그 모든 것을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얼굴빛이 나에게 비출 수 있도록
우리는 간청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2) 하나님을 향한 탄원(4-7절)
4-7절은 현실의 고난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탄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도하지만
여전히 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눈물이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고
원수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라는 말은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백성의 인내가
거의 소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외칩니다.
자신의 힘듬을 온전히 해결할 수 있는
만군의 하나님이기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이름으로 부릅니까?
병든 자에게는 치료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은혜가 필요한 자에게는 은혜의 하나님
긍휼함이 필요한 자에게는 긍휼의 하나님
어둠 속에 있는 자에게는
빛이신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부르고 있습니까?
그 하나님께 주저없이 나가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3)하나님의 과거 구원 행위에 대한 회상(8-11절)
시인은 탄원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다가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드러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들을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행하셨다면
지금도 그렇게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농부인 하나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이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에게
베푸셨던 은혜의 역사를 드러내며 고백합니다.
시인은 포도나무 비유를 언급함으로써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착 사건을 서로 결부시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험악한 애굽 땅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이 복 주신 젓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스라엘을 정착시켜 주시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착한 가나안 땅은
그들이 살기에 광활한 땅이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에 좋은 땅이었습니다.
10-11절의 상황은 하나님을 잘 섬기어서 복을 받았던
다윗의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서쪽은 지중해를, 북쪽은 유프테스 강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그렇게 그 넓은 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말기와
솔로몬의 시대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이 힘쓰셨고
은혜를 주셔서 이룬 일입니다.
시인은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을 상기하면서
구원하여 주셔서 그런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시인은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을 향한 탄원(12-15절)
그렇게 하나님께서 자신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을
상기 시킨 이스라엘은 다시 탄원을 합니다.
바로 영광스러웠던 과거는
고통스런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은
왜 애써 만드신 포도원을 “원수들”
곧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파괴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셨나요 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비난하는 말이었습니다.
왜 애써 만들어놓고 그것이 망쳐지도록
아무 일도 안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이사야5: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나라를 의지했을 때 어떻게 하시겠다고 했습니까?
그들을 보호하는 울타리는 걷어 내어 버리겠다고 합니다.
적들이 들어오도록 열어 놓겠다고 합니다.
아무나 와서 먹어 버리도록 담을 헐어 버리겠다고 합니다.
숲속의 멧돼지에게 상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멧돼지가 밭에 오면 밭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숲속의 멧돼지들은 부정한 동물을 가리킵니다.
숲속은 위험한 장소입니다.
또한 들 짐승들은 본디 기어 다니는 곤충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힘을 가진 존재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힘을 가진 존재지만
“거대한 적들”이 휩쓸고 가버린 곳에
남을 것들을 남김없이 먹어 치웁니다.
이들의 습격을 받은 포도원은
회복 불능의 지경에 이릅니다.
그래서 14절은 포도원의 회복을 바라는 간구를 합니다.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 보시고”
더 이상 우리에게 멀리 떠나 계시지 마시고
돌아와서 우리에게 임재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자신들 주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에게
주를 위하여 살아갈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정성을 기울일 대상이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망하였고 고통을 당하였지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임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5)하나님을 향한 결론적 간구 및
찬양 맹세(16-19절)
16-19절은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하는 삶을 살겠다고 맹세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을 짓밟은
원수들의 파멸을 간구합니다(16절).
원수들이 하나님이 심으시고 키우신 하나님의 포도나무
곧 하나님의 백성을 잔인하게 태워버리고 베어버렸으므로
그들은 멸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의 오른 쪽에 있는 자 곧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주의 손을 얹어 달라고 합니다.
손을 얹어 달라는 말은
힘을 실어 달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한 시인은
주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합니다(18절).
이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의지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의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거나 다른 것을 의지한다면
어찌 그 기도가 응답 되겠으며
응답받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자는 그 다음에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렇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온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했다면
그 구원이 내 삶에 이루어지도록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살아 있는 것
주님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것
그것이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
전혀 그런 삶이 없다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9절은 말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겉 모양의 변화가 아닙니다.
내가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 것에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의 얼굴 빛을 우리가 받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내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주의 얼굴빛을 백성들에게 비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목사인 저도 성도들에게
주의 얼굴빛을 비춰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도님들도 여러분의 자녀와 형제들에게
주의 얼굴빛을 비춰다랄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고난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이 우리에게 있으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도 때로 고통을 당합니다.
그렇기에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때
오늘 시인처럼 하나님이 과거에 보여주셨던
구원 행위를 다시 시작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과거에 구원해 주셨던 것처럼 행하여
자신을 회복시켜 달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순간일수록
은혜의 상징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지라도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하시듯 그렇게 행하시는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어디에도 도움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룹 사이에 좌정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도우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밝은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 분
하늘에서 굽어보시는 분임을 기억하고
그렇게 행하여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손은 얹어 주시어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편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나가면
지금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주의 얼굴의 광채 여러분에게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은혜가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