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한 1987년작 영화 <언터처블 The Untouchables)>은 1930년대 시카고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암흑가의 절대 권력자 '알 카포네'를 기소하기 위해, 특별 수사관 '엘리엇 네스'가 부패하지 않은 정예 대원들을 모아 특별 수사반 '언터처블'을 결성하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묵직한 내러티브와 감각적인 액션 연출이 더해져, 갱스터·범죄 스릴러 장르의 교과서같은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편집자 주)
미국 비밀경호국(United States Secret Service)이 2003년까지 재무부 소속이었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이 아는 얘기일 수 있다. USSS는 138년간 미 재무부 소속이었다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가 안보 체계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2003년 국토안보부로 이관됐다. 미국 각 행정 부처의 설치와 구분은 미국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대통령 주치의가 보건복지부 같은 부처가 아니라 국방부 소속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악관 의무대는 국방부 산하이다. 이는 곧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우주개발과 관련된 미 항공 우주국(NASA)이 연방 정부 직속 기관이지만 주로 에너지부(DOE)와 긴밀한 협약 관계로 움직이는 것도 같은 이치일 수 있다. 미국에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조직은 이름이 아예 국무부다. 뜻밖에도 브라이언 드 팔마가 1987년에 만든 갱스터 영화 <언터처블>을 보다 보면 이런 지식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미연방경찰 FBI는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엘리엇 네스(캐빈 코스트너)를 책임자로 임명한다 (사진 출처 - 언터처블 트레일러 )
<언터처블>이 개봉됐을 때 영화광 중에서도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로버트 드니로)를 쫓는 주인공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가 경찰이나 검사가 아니라 재무부 소속 수사관이라는 점이 의아했을 것이다. 재무부가 왜? 영화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쳤고 이때는 금주법 시대(1920~1933)였다. 술 없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청교도적 취지를 내세웠지만, 실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당시 헨리 포드류의 자본가들의 욕구가 가시화한 조치였던 셈이다. WASP(화이트 앵글로색슨 프로테스탄트)가 장악, 주도하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가톨릭계 이민자들(아일랜드, 이탈리아)의 세력권 확장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민자들의 정치집회는 주로 술집에서 열렸다) 사람들은 술을 못 만들고 못 팔게 하면 몰래 만들고 몰래 판다. 돈을 숨긴다. 탈세를 한다. 남북전쟁 때 위조지폐가 범람했고 이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재무부 산하에 두었던 수사팀이 금주법 시대에는 ‘깡패들’의 돈을 추적해 그들을 잡으려는 특별수사대가 된 것이다.
네 사람은 부패에 물들지 않은 팀, ‘언터처블(건드릴 수 없는 자들)’이다. 왼쪽부터 신참 경찰 조지 스톤(앤디 가르시아), 베테랑 순경 지미 말론(숀 코너리),재무성 특별 수사관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 회계사 출신 경찰 오스카 윌리스(찰스 마틴 스미스) (사진 출처 - 언터처블 트레일러)
"What are you prepared to do? " 어디까지 갈 준비가 돼 있나? 말론(숀 코너리)은 네스(케빈 코스트너)에게 계속 묻는다. 이 말은 나중에 말론이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언터처블>은 주인공 엘리엇 네스가 알 카포네를 잡기 위해 재무부로 발령받고 자신이 직속으로 관리하는 비밀 수사팀을 만든 후 마피아들과 혈전을 벌인다는 이야기이다. 네스 밑으로는 아일랜드계인 역전의 노장 경찰 짐 말론(숀 코너리)이 있고 이어 사격 솜씨가 빼어난 이탈리아계 경찰 조지 스톤(앤디 가르시아)이 들어 온다. 어울리지 않게도 소심한 회계사 오스카 월레스(찰스 마틴 스미스)도 합류한다. 오스카는 나중에 알 카포네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갱스터 무비인 만큼 <언터처블>에는 화끈한 액션, 총격전이 난무하지만, 전설의 감독답게 (브라이언 드 팔마는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세이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당대를 함께 한 인물이다) 서사 또한 심대하다. 주인공 네스는 알 카포네가 보낸 잔인한 킬러 프랭크 니티(빌리 드라고)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린다. 니티는 네스의 아내(패트리샤 클락슨)와 아이까지 죽이려 한다. 엘리엇 네스는 이중 삼중의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며 수사 조직은 조직대로 상부의 압력으로 자유롭지 못한, 진퇴양난의 상태에 빠진다. 영화는 그 중층의 모순 구조를 엮어 내는 서사가 액션 플롯만큼 재미를 준다. 로버트 드니로는 알 카포네 연기를 위해 앞머리를 다 밀었을 정도이다. 영화에서 알 카포네가 중간보스들과 회합, 만찬을 벌이는 와중에 임원 중 한 명을 야구 배트로 구타해 죽이는 장면에서는 진실로 피와 살이 튀는 느낌을 준다. 많은 이들이 이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 <언터처블>은 1980년대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 작가주의적 상업영화로 상위에 오르는 작품이다.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며 밀주로 막대한 부를 차지한 마피아 '알 카포네(로버트 드 니로). 로버트 드 니로는 알 카포네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하기 위해 앞머리를 밀고 체중을 증량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언터처블 트레일러)
<언터처블>의 명장면으로 흔히들 극 후반의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계단 총격 씬을 꼽는다. 엘리엇 네스는 이제 거의 모든 걸 잃었다. 특히 말론의 죽음이 뼈아프다. 그는 마지막으로 카포네의 비밀 장부를 작성하는 조직의 회계사 월터(잭 케호)가 시카고역을 통해 빠져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스는 조지 스톤과 단둘이서 시카고역에 잠복한다. 기차역에는 이미 마피아 단원들이 무장한 채 월터를 기다리는 중이다. 월터가 오기 일보 직전 계단 아래에서 한 여자가 유모차를 힘겹게 움직이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다. 신사로서 그걸 지켜만 보지 못하는 네스는 여자를 도와 유모차를 계단 위까지 끌어 올린다. 순간 월터가 역 안으로 들어오고 네스 팀과 마피아 간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네스는 유모차를 손에서 놓친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고 유모차는 계단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네스는 유모차를 포기하고 총격전을 벌인다. 부하인 조지 스톤이 슬라이딩하듯 유모차를 정지시키며 조직원을 사살한다.
기차역 계단에서 총격신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모차가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이 장면은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유모차 시퀀스'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더한다 .(사진 출처 - 언터처블 트레일러)
계단 아래에서 안전하게 착지한 유모차, 그래도 총격전은 멈추지 않는다. (사진 출처 - 언터처블 트레일러 )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무성영화 시대의 교과서로 불리는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 중 오데사 계단 씬을 언터처블에서 오마주했다. (사진 출처 - 전합 포텐킨 스틸 컷)
이 장면은 영화가 공개된 직후부터 세계영화사에 남을 것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이 계단 씬을 영화 역사 초기를 장식했던 소련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 중 오데사 계단 씬에서 그대로 가져오며 오마주를 바쳤다. <전함 포템킨>은 1905년 러시아 제국 흑해 함대 소속 전함 포템킨의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후 전함이 오데사 항에 정박하자 코사크 기병대가 수병과 (이들을 지지했던) 비무장 시민들에게 발포하며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이후 레닌의 혁명에 전조가 되는 대사건이었다. <전함 포템킨>이 세계영화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가 된 이유는 몽타주 기법 때문이다. 몽타주 기법은 쉽게 말해서 스틸 컷 여러 장을 이어 붙여 편집하는 것을 말한다.
기차역 계단 위에서 기다리는 엘리엇 네스의 표정 한 컷, 그의 품 안에 숨겨져 있는 권총 한 컷, 기차역 시계 한 컷, 그 시계 밑에 있는 조직원이 성냥을 질근대는 모습 한 컷, 계단 아래 숨어 있는 네스의 부하 조지 스톤 얼굴 한 컷,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여자의 손아귀 한 컷, 유모차 안에서 생글거리는 아기 얼굴 한 컷, 다시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것 한 컷 등등을 이어 붙이는 것이다. 곧 무슨 일이 터질 거라는 긴장감,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이 장면은 정말 잘 찍은 것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당시 연출 정점의 시기였다. 사람들 모두 이 씬을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감정을 움직이고 누선을 자극하다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언터처블>의 명장면은 따로 있다. 네스 팀은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마피아 조직의 행동이 임박했다는 점에 위기감을 느끼고 가능한 한 동선을 같이 하려고 한다. 마피아도 그걸 안다. 이들은 엘리엇 네스를 엉뚱한 장소로 유인한 뒤 말론을 ‘친다.’ 노련한 말론은 자신을 노리는 칼잡이를 제거하지만 아뿔싸, 킬러 니티마저 잠복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말론은 니티가 쏜 톰슨 기관총 여러 발을 맞고 쓰러진다.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네스는 말론이 피 웅덩이에서 죽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철철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말론은 온 힘을 다해 네스에게 정보를 넘긴다. 카포네의 회계사 월터가 기차역에 오는 시간이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숨이 넘어가기 전에 말론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왔을까 싶게 네스의 멱살을 거세게 잡고 자기 얼굴에 바짝 끌어당긴다. 그리고 절규한다.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할 거냐고! 너는 어디까지 갈 준비가 돼 있냐고?! (What are you prepared to do?)” 그리고 아일랜드 출신의 이 강인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경찰 말론은 숨을 거둔다. 네스는 흐느낀다.
"What are you prepared to do?" 말론은 네스를 보며 묻는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대답 대신 오열하는 네스 .언터처블의 장면을 AI로 새롭게 그렸다.
이 영화가 국내에 상영됐던 1989년은 노태우 정부 때로, 끊이지 않는 국가 폭력과 부패로 사회가 극심하게 혼란스러울 때였다. YS와 노태우 그리고 JP는 이듬해인 1990년 3당 야합을 만들어 낸다. 당시는 국내 관객들, 특히 학생운동을 하던 젊은이들이 바야흐로 ‘너는 어디까지 갈 준비가 돼 있느냐?’는 질문에 스스로가 답을 마련하려고 애쓸 때였다. 영화의 명장면은 시대적 아젠다와 궤를 같이할 때가 많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말론 같은 선후배를 많이 잃었으며 그래서 무수히 흐느끼고 있을 때였다.
‘당신은 어디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건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같은 의미의 질문으로 이 사회에 작동 중이다. 과거의 유령은 현재의 사람들을 각성시킨다. 그리하여 결국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숀 코너리는 이 죽음의 질문 연기로 이듬해인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탔다. 숀 코너리는 2020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타협하지 않는 정의, 마피아 거물 '알 카포네'를 무너뜨리다 - 영화 언터처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