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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052>
갈비집에서 식사와 함께 소주를 마시고 그 여세를 몰아
가라오케로 옮겨 미팅을 끝냈을때는 밤 11시반이었다.
입사면접때 같은팀이었다가 연수도 같이 받았지만 이제 각기
부서가 달라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 5만명이 넘는 일성전자의
사원틈에 섞이면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도 할수 없는 것이다.
"자, 그럼 행운들을 빈다."
가라오케 앞에서 김명천이 정색하고 세명의 동기를
둘러보았다. 이중 끝까지 갈자는 누구인지 또 중도에서 탈락할
사람이 있는지도 알수가 없는것이 인생이다.
"러시아에서 잘 지내."
이제는 강석규도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서로 돕고 지내자구."
"연구실로 가끔 연락해."
박종일이 웃음띈 얼굴로 김명천의 손을 잡았다.
"우리 입사 면접때의 그 기백을 잊지 말자구."
"우린 같은 방향이야."
서나미가 김명천에게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구."
"그렇군."
머리를 끄덕인 김명천이 강석규와 박종일을 보았다.
"그럼 우린 간다."
그들과 헤어져 택시 정류장으로 다가갈 때 서나미가
김명천에게 말했다.
"포장마차에서 한잔 더 할까?"
"좋지."
독신자 숙소는 어제 정리해서 오늘밤 여관에서 자고 내일
고향 어머니한테 내려갈 작정이었던 김명천이다. 어머니와
사흘간의 휴가가 끝나면 하바로프스크로 날아가야 한다.
서나미가 웃음띈 얼굴로 김명천을 보았다.
"강석규가 나한테 살짝 3차 가자고 했단 말이야. 그런줄이나
알고있어."
"줏가 올리려는 수작인줄 알고 있겠다."
김명천이 정색하고 대답하자 서나미는 팔짱을 끼었다.
"떠난다니까 서운해. 같이 있으면 자주 만날수 있을텐데."
그들은 근처 골목 안쪽에 있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았다. 포장마차 손님은 그들까지 네명 뿐이어서
한산했다.
술과 안주를 시킨 김명천이 서나미의 옆 얼굴을 보았다.
화장기가 거의 없었지만 윤기가 흘렀고 곧은 콧날 밑의 입술
윤곽이 선명했다. 김명천의 시선을 느낀 서나미가 머리를
들더니 빙긋 웃었다.
"뭘 봐?"
"널 기억해 두려고."
"어이그 닭살."
어깨를 치켜올려 보였던 서나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애인이 정말 떨어져 나간거야?"
"그래."
"팀장 수단이 좋은줄 알았는데 과대포장된 모양이군."
서나미하고는 신입사원 연수때도 같은조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성품은 거의 익혔다. 강석규와 박종일도 물론 같은
조여서 친숙해졌지만 김명천은 서나미로부터 전해지는
분위기가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남녀의 감정은
느낌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느낌을 받지 못하는 상대라면 없는
것이나 같다.
"자, 한잔 해."
서나미가 앞에 놓인 소주병을 들면서 생기있게 말했다.
소주에다 양주를 마셨고 폭탄주까지 돌렸지만 서나미의
표정은 말짱했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러는거야."
개척자<053>
서나미가 한모금 소주를 삼키고는 심명천을 보았다.
"아직 여사원이 임원으로 승진된 케이스는 없어. 하지만 난
임원이 될거야."
"될수 있겠지."
정색한 김명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까지 일성전자가 경쟁을 뚫고 성장해 간다면 말이야."
"두고 봐."
서나미가 다부지게 말하더니 김명천의 잔에 술을 채웠다.
신입사원 연수때도 서나미는 토론이나 시험, 또는
현장실습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었다. 2차 면접때 산악행군에서
낙오한 것을 빼고는 그 어느것에도 남자들에게 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 목표는 일성전자의 CEO야. 기간은 앞으로 25년후."
"그럼 네가 49살때인가?"
"어쨌던 40대에 CEO가 될테니까."
"그렇게 되면 날 좀 봐주라."
"그때 김명천씨가 빌빌거리고 있다면 아마 퇴사해야 할걸?"
"더럽군. 내가 미리 그만둬야지."
"오늘밤 나,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돼."
불쑥 그렇게 말한 서나미가 김명천의 시선을 받더니 빙긋
웃었다.
"어차피 나도 내일부터 이틀간 휴가니까 난 동해안이나
가겠어."
"이거 영광인데."
"2차 면접때 낙오했던 날 업어준 보상쯤으로 치부하면 돼."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되겠지?"
"뭘?"
"좋아한다던가 미래를 함께 설계하자는 따위."
"또 닭살."
이맛살을 찌푸린 서나미가 술잔을 내려놓더니 팔목시계를
보았다.
"호텔에 가자."
서나미가 정색하고 말했다.
"분위기 있는 곳으로."
그때 김명천의 머릿속에 얼핏 임재희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그때 임재희와 호텔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년도 되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신분이
달라졌고 여유가 있게 된 것이다. 포장마차를 나온 그들이
택시를 탔을때 서나미가 운전사에게 말했다. "성북동 칼튼
호텔요."
순간 김명천의 가슴이 철렁했다. 임재희가 데려간
호텔이었던 것이다. 택시가 속력을 내었을때 좌석에 등을 붙인
서나미가 머리를 돌려 김명천을 보았다.
"김명천씨가 다른 남자들과 다른점이 하나 있었어."
"뭔데?"
"날 의식하지 않은것. 예를 들면."
서나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 앞에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것 같았어. 때로는
그것이 날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아서 허전하기도 했지."
"음. 효과가 있었군."
얼굴을 굳힌 김명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고등학교때 수학 선생님이 가르켜준 방법이었는데."
"달관한 사람 같기도 했고."
김명천의 반응에 상관없이 서나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믿음이 간거야."
그것은 세파를 많이 겪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밑바닥
생활부터 해온 사람들은 기회가 왔을때 가볍게 다루지 않는
법이다. 고맙게 여기며 정중하게 받는다.
그것이 서나미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였을 수도 있다.
김명천이 낮게 말했다.
"네가 꾸밈없이 자란 성품인것 같다."
"난 어둡고 끈질기고 계산에 밝은 성격이야. 네가 몰라서
그래."
다른 사람에게는 처음 털어놓은 말이었다.
개척자<054>
호텔방에 들어온 후에 서나미는 지금까지의 기세를 잃고
허둥거렸다. 쓸데없이 화장실을 두번이나 들어갔다 나왔으며
커튼도 걷었다가 다시 쳤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있던 김명천이
보다 못하고 서나미에게 말했다.
"정신 산만해지니까 이리와 앉아."
"어떻게 해봐."
이맛살을 찌푸린 서나미가 김명천을 노려보았다.
"내가 어색하지 않게 뭘 좀 해보란 말이야."
"가까이 와야 뭘 어떻게 하든지 할것 아냐?"
"가긴 뭘 가?"
그러자 김명천이 일어나 욕실로 다가갔다.
"나, 씻고 나올테니까 그동안 마음 좀 가라앉치고 침대에
들어가 있어."
김명천이 턱으로 전등 스위치를 가리켰다.
"불도 끄려면 꺼놓고."
욕실에 들어간 김명천이 대충 샤워를 하고 나왔을때
침실안은 어두웠다. TV는 물론이고 탁상등도 꺼놓아서 탁자에
붙여진 전광시계만 깜박였다.
"이런, 불을 다 꺼놓으면 어떻해?"
했지만 김명천은 어둠속에서 얼굴을 펴고 웃었다. 옷을
소파위에 대충 걸쳐놓은 김명천이 침대로 올라갔을때 곧
서나미의 몸이 닿았다.
"수줍은거야, 아니면 어색한거야?"
서나미의 팔을 잡은 김명천이 옆에 누으면서 허리를 당겨
안았다. 그러자 서나미가 브레지어에 팬티만 걸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김명천은 먼저 서나미의 맨 어깨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서나미는 두팔을 늘어뜨린채 가만 있었으므로
김명천은 브레지어의 후크를 풀어 내렸다. 그러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유방이 튀어 오르면서 김명천의 손에 가득 잡혔다.
김명천의 입술이 이제는 서나미의 젖가슴으로 옮겨졌다.
"아파."
입술로만 젖꼭지를 물었는데도 서나미가 김명천의 어깨를
밀었다.
"살살해."
김명천은 서나미의 팬티를 끌어내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였지만 서나미의 제의를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인 김명천이다. 그러고보면 석달간의
연수기간에 서로간의 호의가 쌓여왔다고 봐도 될것이었다.
김명천이 곧 몸을 합쳤을때 서나미는 온몸을 밀착시키면서
두손으로 어깨를 감아 안았다. 서나미의 뜨거운 문은 벌써
넘쳐나고 있는데다 반응도 격렬했다.
"아, 좋아."
신음과 함께 서나미가 탄성을 뱉었을때 김명천의 몸은 더욱
뜨거워졌다. 방안은 거친 호흡과 함께 신음으로 가득찼고 젖은
냄새로 메워지고 있었다. 서나미가 절정에 올랐을때는 방안의
열기가 터져나갈 것처럼 압축되어 있을때였다. 환성같은
신음을 뱉으면서 서나미가 폭발했을때 김명천도 함께 올랐다.
둘이 동시에 절정에 올랐다는 것을 같이 확인하는 순간에는
일체감이 일어난다. 두팔로 김명천의 목을 감아안은 서나미가
여운을 즐기려는듯 몸을 붙이고는 떼지 않았다.
"좋았어."
김명천이 서나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 보너스를 오래오래 기억할께."
"흥."
가쁜숨을 몰아쉬며 서나미가 땀으로 범벅이된 얼굴을
펴면서 웃었다. 그러나 감은 눈은 뜨지 않았다.
"잘 지내."
서나미가 허덕이며 말했지만 김명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밤을 마지막으로 두번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성전자는 그만큼 큰 회사이다.
개척자<055>
김명천이 익산 시내의 반지하 전셋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2시반경이었다. 단독주택의 반지하 전셋집은 방 두개에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20평 규모였는데 어머니와 동생 김정은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김명천을 맞았다.
"어이구, 왔구나."
김명천이 방으로 들어섰을때 어머니가 손을 잡더니 눈물을
쏟았다. 달수로 따지면 9개월만에 만난 어머니는 몸이 말랐고
피부도 창백했다.
어려운 형편에서는 몸이 마르면 당사자나 보는사람 모두가
불안해지는 법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김명천이 어머니를
보았다.
"몸은 어때요? 괜찮아?"
"괜찮다. 걱정없다."
걱정없다는 표현은 김명천이 전세값 인상분을 그동안 다
보내주었고 지난달부터는 150만원씩을 생활비로 송금한데
대한 치사일 것이었다. 옆에 서있던 여동생 정은이 김명천에게
물었다.
"오빠, 점심 먹었어?"
"응, 휴계소에서 먹었다."
6살 아래의 김정은은 김명천이 아버지처럼 믿음직했고
어려운 존재였다. 실제로 정은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으로
김명천에게 업혀다닌 기억뿐이다. 세 식구가 방에서 마주보고
앉았을때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언제 떠난다구?"
"사흘후 오후 2시 비행기를 탑니다."
김명천이 가볍게 대답했다. 발령을 받고 어머니한테 미리
전화로 내용을 이야기 해 주었던 것이다.
"두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니까 오히려 서울에서 익산에
오는 것보다 시간이 덜 걸려요."
뻔한 소리였지만 가까운 거리라는 인상을 주는 효과는 있다.
어머니의 안색을 살핀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 있으면 언제라도 비행기 타고 올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곳은 춥다면서?"
"겨울에는 춥지, 여름에는 덥고."
"여름도 있는 곳이냐?"
"그럼."
김명천이 옆에 잠자코 앉은 김정은을 보았다.
"네가 어머니한테 더 자세히 설명해 드려라. 인터넷에 들어가
하바로프스크를 보여 드리든지."
그리고는 김명천이 뒤로 벌렁 누웠다.
"아, 좋다. 집에 와서 식구들하고 같이 있는 것이."
"난 이제 소원 다 풀었다."
어머니가 김명천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네가 일류 회사에 취직을 하고 정은이가 복학을 해서, 모두
다 네 덕이다."
"다 어머니 복이지."
"오빠, 고마워요."
김정은이 뒤늦게 인사를 했다. 어머니를 닮아서 뼈대가
가늘고 섬세한 용모의 미인이었으나 허약한 인상이었다.
"너, 다이어트 하냐?"
김명천이 묻자 김정은이 놀라 머리부터 저었다.
"아니, 난 본래 이래요."
"너도 건강해야지, 그래야 어머니 걱정 안시켜 드린다."
"알았어요, 오빠."
"내 월급은 어머니한테 보내도록 했으니까 네 등록금이나
생활비도 충분해. 이제는 마음 놓고 공부나 해."
"네, 오빠."
김명천이 어려운 정은은 어렸을때부터 존댓말을 써온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은 눈을 감았다. 이것이
행복이다. 김명천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을 내
능력으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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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눔 그만함 됐다 ㅎㅎㅎㅎㅎ
긴 글 올리 시느라 수고 하신는 덕분에 잼밌게 읽고 갑니다.
ㅎㅎ 좀금 쑥 스럽긴 하네요~~
잘보았습니다...ㅎㅎㅎ
언제? 끝나는겨~~~~???
아직 멸었음,ㅎㅎㅎㅎㅎ 뭔가는 개척이 되어야 끝나지 않을까???
요즘여자들 너무쉽게 무너지네..?
명천이가 이제사 소원이 하나씩 이뤄지니까 마음이 놓이네 ㅎㅎㅎ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