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준 국회의원 1명에게 지원되는 수당과 활동비(세비)는 연간 1억5426만 원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다 의정 활동 지원 경비로 1억1279만 원이 더 들어가고, 보좌진(4급 2명, 5급 2명, 6·7·8·9급 4명, 인턴 1명) 9명의 급여 5억3865만 원까지 합하면 의원 당 8억570만 원이 들어가는 셈입니다. 정치는 4류인데, 의원 1인 유지비가 세계 최고로 비싸다는 것이 정설일 겁니다.
사무실 운영지원, 공무출장 등 교통지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 비용은 별도인데, 이게 끝이 아니고 의원은 연간 선거자금으로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엔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가히 국회의원 천국입니다.
사실상 급여인 의정 활동 지원비(1억1279만 원)는 논외로 하고 세비(1억5426만 원)만 놓고 보면 미국(2억2367만 원), 일본(2억1500만 원), 독일(1억7794만 원) 등에 이은 세계 9위라고 하지만 경제 규모로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 의원 세비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65배입니다. 비과세가 많아 세후 연봉으로 따지면 4배를 넘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2.31배인 일본, 2.28배인 미국, 2.03배인 영국보다 훨씬 높습니다. 덴마크(1.54), 스웨덴(1.38), 노르웨이(1.22) 등 북유럽 선진국의 의원 연봉은 GNI의 1.5배 안팎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너무 많은 봉급이 한국 정치를 망치는 주범일 겁니다. 각종 특권은 차치하고 급여만으로도 일반 국민의 4배를 버는 고소득이니 한번 잡은 의원직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의원직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니 권력자나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날 바른 소리는 언감생심이고 자기 진영이나 실세를 위한 돌격대, 홍위병, 앞잡이로 나서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습니다. 선거 때마다 40∼50% 물갈이를 해도 여의도 정치판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1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표적 이유는 공항 의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목지뢰 밟으면 목발 경품’ 발언이 부상하며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은 곧 취소됐지만, 난 ‘아, 이거다’ 싶었다. 38억원 부동산, 37.6억원 빚의 갭투기 변호사(부동산업자에 가깝다), 정치를 잘 못 배운 음란 예찬 청년 정치인, 횡령·음주운전 등 전과 11범 범죄자 등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금배지에 달려드는 이유를 말이다.
최 전 의원 말대로 한번 특권의 맛을 보면 헐떡거리고 (국회의원) 하려 한다. “예를 들어 봉도사(정봉주)가 제주도에 식구들과 여행을 가면 공식 출장이 아닌데도 신분증 내고 티케팅할 때가 되면 공항이 시끌해지면서 (의전이) 막 나온다. (중략) ‘아, 국회의원이 이런 게 있었구나’라고 처음 느끼신 거다.” 어디 이뿐인가. 비행기 비즈니스석, KTX 특실 좌석,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 모두 무료다.
보좌진 9명에 의원사무실 지원 경비로도 1억원이 나온다. 후원금으로 매년 1억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을 챙길 수 있다. 그러니 공식 연봉은 1억5700만원이지만 이런저런 혜택을 다 합하면 실질 연봉은 5억원이 훌쩍 넘는다.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약국 공짜, 회관 내 내과·치과·한의원은 가족까지 공짜다. 이런 특권 조항이 무려 186개다. 아마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가면 특권은 더 늘어날 것이다. 신의 직장이다.
#2 미국 워싱턴DC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에 우연히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주)과 동승했을 때 본 광경이다. 50개 주에 2명씩 총 100명인 상원의원은 거의 대통령급이다. 그런데 탑승부터 짐 찾기까지 의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야구모자 쓰고 배낭 하나 멘 채 다른 승객과 똑같이 줄을 서 수속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워싱턴 근무 시절 만난 하원의원 대부분도 늘 약속장소에는 우버를 타고 나타났다. 기사 딸린 검은 고급 승용차 같은 건 없었다. 일본은 미국보다는 조금 특권이 있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지방 선거구 의원이 국회 출석을 위해 도쿄와 지역구를 오갈 때에 한해 열차 일등석 무료 탑승권, 월 3회 무료 항공권을 주는 정도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가량인 스웨덴의 국회의원 연봉은 1억 원에 ‘불과’하다. 일을 많이 하고, 일을 잘하면 뭐라 시비를 걸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은 OECD 35개 국가 중 국민소득 대비 세비는 3위인데, 의회의 효과성 평가는 꼴찌에서 2위다. 이런 국회의원들에게 국민 혈세로 돈과 특권을 퍼주는 건 낭비이자 모순이다.
#3 총선까지 앞으로 13일 남았다. “세 자녀 대학등록금을 면제하겠다” “금융소득세를 폐지하겠다” 등 선심성 공약이 난무한다. 여야 가릴 게 없다. 선거 막판으로 가면 더할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아무도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면제, 폐지해야 할 건 그런 것 말고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특권이다. 이미 수준 미달의 후보 공천 시스템, 국가관도 뚜렷하지 않은 비례대표가 위성정당이란 희한한 자동출입문을 타고 국회에 입성하는 현실을 국민들은 목도했다. 이들에게 왜 세계 최고급 특권을 줘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 조국혁신당은 이 문제에 아무런 답이 없다. 그나마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달 초 ▶헌법상 불체포 특권 폐기 ▶의원 정수 250명으로 50명 감축 등 7개 사안을 공약으로 발표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186개 의전과 특권 모두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정봉주’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야 국회의원이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머슴이란 인식을 뿌리내릴 수 있다. 그것만 돼도 성공이다.
어느 정당이건 먼저 그걸 약속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자. 지금 아니면 바꾸기 힘들다.>중앙일보. 김현기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신의 직장, 국회의원
북유럽 선진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스웨덴 46.4%, 노르웨이 46.2%, 핀란드 45.5%, 덴마크 43.6% 등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의 여성 비율도 40%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회 투명성, 민도 등이 높아 정치가 권력이 되기 어렵고 그만큼 ‘먹을 게’ 없는 점도 있겠지만, 세비가 많지 않아 국회의원이 매력적인 직업이 못 되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 평균 수준의 급여를 받고, 권력자보다 봉사자로 일할 사람이 아니면 정치판을 찾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정치가 깨끗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의원 세비 지급의 근거가 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은 ‘이 법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의원의 직무활동과 품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당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로 시작하는데, ‘품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 보전’이라는 문구에 절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국민 혈세로 지급되는 의원 보수 결정을 의원들이 한다는 데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어물전을 고양이에게 맡긴 셈이기 때문입니다. 의원들은 나라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기들 세비 올리는 데엔 의기투합한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철천지원수처럼 머리 터지게 싸우다가도 세비 인상 땐 사이가 좋아져 만장일치로 통과합니다. 세비 관련 결정은 국회의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독립기구에 맡겨야 하고, 세비를 국민 평균 소득의 1.5배 정도로 고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문화일보 김세동 논설위원의 글 "의원 세비도 확 줄여야 한다"를 인용했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 있을 수가 없겠지만 국회에 관한 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귀영화에만 매달리니 이런 국회와 의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귀신도 부러워한다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오늘 다시 300명이 탄생합니다.
2회 영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