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새번역)
마태복음 9장 14-15절.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우리와 바리새파 사람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의 손님들이 신랑이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이니, 그 때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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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금식 기도를 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건강상 금식이 해롭다면,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별 문제가 안 된다면 금식을 권해 봅니다. 하루 한 끼 씩이나, 매주 어느 날 종일이나, 계속해서 여러 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영적 이슈들, 곧 죄와 회개, 신앙생활과 구원에 대한 ‘지극한 관심’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금식기도’ 란 무엇이겠습니까? 금식기도는 그냥 ‘지극한 관심’이 아니라, ‘대단히 지극한 관심’ 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금식을 오래 하면 죽습니다. 금식기도는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목숨을 거는 기도입니다. 한 끼라도 굶으면 몸에 괴로움을 줍니다. 배가 고프니까요. 그러니까 금식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가 주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배고픔을 느낄 때마다 계속해서 나의 기도 제목이 생각날 테니까요. 그래서 레위기(16:29, 23:26)에는 금식을 ‘스스로 괴롭게 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도’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돌이켜야 할 나의 사고방식, 버려야 할 생활습관,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될 나의 가치관, 이런 것들이 나의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그저 지나가는 연중행사로 할 수 없는 일이고, 이 기회에 내게서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의 금식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은 음식을 먹지 않고, 해가 지고 나면 새 날이 시작되므로, 식사를 하는 금식이었습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금식을 했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하면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경건하다고 여겨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던 것입니다.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나요?” 그 때 예수님께서 “결혼식 손님들이 신랑 곁에서 어떻게 금식을 하겠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스스로 신랑이라 하셨고,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들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금식의 가치를 부정한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또 “내가 곁에 있지 않은 때라면, 또 필요하게 생각될 때라면, 얼마든지 금식 기도를 해라” 하신 권유의 말씀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의 사순절 회개의 기도가 금식 없이도 진지해질 수 있다면, 금식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금식을 통해서라도 여러분의 기도가 더 깊은 경지로 들어가고 싶고, 더 진지해지고 싶으시다면, 금식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다만 될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나 금식하고 있다” 는 표를 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의 사순절의 회개의 기도가 더욱 진지하고 성실해지기를 바랍니다. 저의 기도가 금식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된다면, 그런 기회를 제게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