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을 찾았다. 소금은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다. 음식은 간이 맞지 않으면 제맛을 낼 수 없고 몸에 염분이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되어 적당량을 흡수해야 한다. 바닷물을 증류만 시키면 소금이 되는 줄 알았는데 간단치가 않다. 소금밭은 무려 스물 댓 단계나 거쳐야 비로소 양질의 소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바닷물을 끌어다 끌판으로 밀며 대패질하는데 하루 한 단계 두 단계로 옮겨간다. 꼬박 20여 일은 되어야 수분은 점점 증발하고 염도가 높아진다. 염도가 25도 정도 되면 소금 결정이 맺힌다. 창고에 쌓아두면 간수는 쪽 빠져나가고 소금만 남는다. 이렇게 완성된 소금은 염도가 85도 정도 된다. 소금밭도 현대화하여 물을 끌어오는 수차가 없어졌다. 70년대에는 갯벌을 다져서 소금판을 만들었으나 80년대에는 깨진 옹기조각이나 사금파리로 바닥판을 댔고 여유 있는 사람은 타일을 깔았다. 지금은 모두 고무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소금 창고나 염수 저장고는 예전과 똑같다. 변한 듯싶어도 벗어나지 못해 큰 변화가 없는 곳으로 슬로우시티란 이름까지 얻어 오히려 자랑스러운 브랜드로 내걸고 있다. ‘바닷물 백 바가지가 한 줌 소금’이 된다며 서두르지 않고 날씨를 탓하지 않는다. 기다림과 참아내는 인내 속에서 햇볕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천일염을 만들며 바다서 노다지 금을 캐고 있다. 소금(염화나트륨)은 짠맛이 나며 동서고금을 통해 각종 요리에 쓰였다. 방부작용 외에 식품의 맛을 돋우는 조미료 역할을 하며 청정과 신성의 상징으로 여길 만큼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중요한 자원이다. 원시시대에는 동물을 잡아먹음으로써 소금을 공급해왔으나 농사를 짓게 되면서 공급이 부족하여 직접 만들게 되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쁜 것을 쫓는데 소금을 뿌리는 관습이 있다. 소금은 생활필수품이지만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조선 시대는 물론 1962년 5월, 염전이 민영화될 때까지 국가의 전매품으로 생산, 유통, 소비를 국가가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