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이고 지리서인 《산해경》의 주요 내용은 고대 신화, 지리, 동물, 식물, 광물, 무술(巫術), 종교, 고사(古史), 의약, 민속, 민족 등의 분야로 이루어졌으며 원래 《산해도경(山海圖經)》이라고 불리는 지도책이 같이 있었으나 위진(魏晉) 이후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산해경》의 작자와 제작기간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과거에는 우(禹)를 도왔던 백익(伯益)이 지은 것으로 여겼으나 현대 중국학자들은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일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대략 전국시대 초기부터 한나라에 걸쳐 파촉(巴蜀), 산동 및 제(齊) 지방 사람이 쓴 것을 서한(西漢) 시대에 합쳐서 편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원래는 32편이었으나 현재는 18편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서한의 유향(劉向), 유흠(劉歆) 부자가 간추려 교정(校定)하고 곽박이 주를 단 것이다.
《산해경》이라는 서명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대완전(大宛傳)〉에서인데,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책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없는 기서(奇書)”라고 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진대의 곽박이 여기에 주를 달았으며, 이후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산해경》과 관련한 문헌 고증, 지리, 민속, 역사, 의술 등 다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 중 청나라 때 유명한 사학자이자 문학자인 필원(畢沅)은 곽박의 주석에 다른 학자들의 주석을 증보하여 《신교정산해경》을 펴냈으며, 특히 1980년 중국신화학의 석학인 원가(袁珂)가 《산해경교주(山海經校注)》를 출간한 이후 이 책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자리 잡게 되었다. 《산해경》은 외형상으로는 지리서나 박물지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주로 동식물, 이인(異人), 이역(異域)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였고, 일부 신화도 실려 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노신(魯迅)은 이 책을 좋아하여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여러 가지 《산해경》 판본을 수집하여 소장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중국소설사략》에서 이 책을 ‘옛 무서(巫書)’라고 하여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으로 보기도 하였다. 산신에 대한 제사에서 쌀을 바친다든가, 곤륜산(昆侖山)이나 건목(建木)과 같은 산과 나무에 대한 숭배, 가뭄 때 희생되는 무녀(巫女)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판단이 더욱 확실해진다. 또한 《산해경》은 다른 고서에는 잘 보이지 않는 왕해(王亥), 제준(帝俊) 등은 왕조의 조상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동이계(東夷系) 민족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산해경》이 한국의 고대 문화와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산해경》은 중국 고대의 지리‚ 역사‚ 신화‚ 민족‚ 동물‚ 식물‚ 광산‚ 의약‚ 종교 등 다방면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산해경》이 갖는 가치는 단순히 중국의 신화와 관련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인근의 여러 민족들, 한국·일본·월남·티베트·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의 고대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산해경》은 동아시아 고대인의 꿈과 무의식에 뿌리를 둔 원형적 이미지들을 집대성한 상상력과 환상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동아시아 고대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조선(朝鮮)·숙신(肅愼)·맥(貊) 등과 관련되는 지명들이 등장하고 이른바 동이(東夷)계 문화가 적잖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 상고사 수수께끼를 풀어갈 단서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규보(李奎報)가 〈산해경의힐(山海經疑詰)〉, 〈산해경의어(山海經疑語)〉 등을 남겨 산해경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였고, 신흠(申欽)은 광해군 때 춘천에 유배하면서 〈독산해경(讀山海經)〉 13수를 지었으며, 박지원(朴趾源)은 《산해경》의 내용을 소재로 삼은 그림인 〈산해도(山海圖)〉를 열람해보고 〈수산해도가(搜山海圖歌)〉를 지었으며, 이덕무(李德懋)는 〈산해경보(山海經補)〉를 지었다. 또 정약용은 〈송진택신공유백두산서(送震澤申公游白頭山序)〉에서 “백두산은 《산해경》에서 말한 불함산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렇듯 《산해경》은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꾸준히 읽혀져 왔다.
최근 일본에서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십이국기》의 저자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도 자신의 작품의 근거를 《산해경》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우리가 《산해경》을 중국의 신화집으로만 보지 않고 동아시아 고대문화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뿌리로 간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동양고전종합DB(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