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경환의 명시감상 제1권에서
간장독을 열다
김평엽
간장독 속에 어머니 들어가 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달인 말씀 그득 채우고
물빛 고요히 누워있다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
덩어리째 끌안고 사뭇 까맣게 숯물 되었다
손길 닿지 않는 깊이에서
덜 익은 상처 꾹꾹 눌러 매운 숨결 풀고 있다 씻고 있다
대바람 소리 밀물치는 뒤란
다소곳 가을 풍경 삭이는 어머니
세월 솔기마다 튿어낸 한숨, 그 위에
별빛 고운 어둠 감침질 하고 있다
칠십년 우려낸 세월
욱신거리는 것 한 바가지 퍼내고
생의 보푸라기 갈앉히고 있다
구름 조용히 베고 누운, 다 저문 저녁
이제야 정수리의 부젓가락 뽑아내고
응달 되어버린, 어머니
세상에 단풍서리 저리 곱게 내리는데
검게 삭은 애간장, 그 맑은 수면 건너는
내 울음 찬송가 보다 싱겁다
----김평엽, [간장독을 열다]({나비, 봄을 짜다}) 전문
요즈음도 농촌이나 어촌에 가보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알콜중독자이며, 무책임한 생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아버지들은이제는 늙어서 힘든 일도 하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악을 쓰거나, 또, 그것도 아니라면, 이제는 중풍이 들어서 자기 자신들의 몸도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 아버지들은 젊었을 때에도 들에 나가 풀을 뽑거나 어렵고 힘든 살림을 도맡아 하기는 커녕, 온갖 주색잡기----술과 노름과 계집질----로 일관하고, 어쩌다가 집에 들어오면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서 그의 아내들을 두들겨 패고, 자기 자신의 가정마저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연출해냈던 것이다. 그 아버지들은 삶의 목표도 없었고,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또한 그 아버지들은 노부모와 불쌍하고 어린 자식들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었고, 또, 그리고, 그의 아내에 대한 최소한도의 애정마저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 아버지들은 무목표와 무의지와 무책임에 등을 기대고, 이미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기도 전에, 자포자기한 몸으로 온갖 가정의 불화와 가난만을 연출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들의 아버지가 반인륜적인 탕자의 초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어머니는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그 한의 굴레 속에서도, 언제, 어느 때나 최선의 노력을 다한 어머니의 초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새벽에일어나 물을 길어오고 밥을 짓는 것도 어머니이며, 하루종일 밭을 매거나 바지락을 캐는 것도 어머니이다. 시아버지와 남편과 아이들의 옷을 빠는 것도 어머니이며, 온갖 채소와 패류들을 시장에 들고 나가 돈을 벌어오는 것도 어머니이다. 늘, 항상, 가난의 옷자락이 보이는 것도 어머니이며, 시어머니와 남편의 무차별적인 구박 속에서 울고 있는 것도 어머니이다. 그 어머니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옷과 고급화장품은 커녕, 이미, 젊어서 다 늙어버린 꾀죄죄한 어머니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삶의 기둥이며 희망의 등불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어머니들은 삶의 목표와 의지와 그 무한책임감의 화신들이며, 그리고 그 어머니들의 삶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나가는 순교자의 삶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는 강하지만 아버지는 약하고,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아버지는 무책임하지만 어머니는 책임감이 강하고, 아버지는 자그만 실패 앞에서도 곧잘 절망하지만, 어머니는 어떠한 실패 앞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며, 바다와도 같이 크고 위대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추기경님, 천국에 가면 친구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당신은 말한 적이 있었지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다시 내 아들을 만나볼 수 있겠군요. 글쎄, 인류 최초의 사내 아이 카인이 태어난 후로부터 어제 첫 울음소리를 낸 아이에 이르기까지 아아더만큼 기품 있는 아이는 태어나 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 봉오리는 슬픔의 벌레에게 먹히고, 그 타고난 아름다움은 볼에서 쫓겨나고, 그 애는 망령같이 말라빠져 가지고, 발작하는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창백하게 되어서 죽고 말거예요.(.....)
슬픔은 없어져 버린 내 아들 대신이 돼가지고, 그 애 침대에 들고, 나와 같이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그 귀여운 얼굴을 나타내 보이며 그 어린애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고, 그 기품 있는 온갖 재주를 생각나게 해주고, 그리고 남겨두고 간 옷을 그 애의 모습에다 입혀놓곤 합니다. 그러니 어찌 슬픔에 빠져 있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안녕히 계셔요. 당신이 나같이 심한 슬픔을 당해있다면, 나는 당신보다는 좀더 만족스럽게 위안을 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내 머리 속은 엉망진창으로 혼란해 있는데, 이 머리를 이렇게 단정하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아, 하나님! 내 아기, 아름다운 내 아들 아아더! 너는 내 목숨, 내 기쁨, 내 음식, 내 전세계다! 너는 과부인 나의 위로, 나의 슬픔을 고쳐주는 것! ----셰익스피어, [존 왕] 에서
존 왕은 아아더의 숙부이며, 그의 형님인 리처드 왕이 전사를 하자, 그 아아더의 왕관을 가로채 간 인물이다. 따라서 아아더는 그의 어머니인 콘스턴스와 함께 프랑스로 피신해 있다가, 또다시 전쟁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고, 이 대목은 그 어머니의 아아더에 대한 사랑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이다. 아아더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기품이 있는 아이이며, 어떠한 아이도 그 아아더보다 더 뛰어날 수가 없다. 아아더는 어머니의 목숨이며, 전세계이며, 그 모든 것이다. 물론, 남편의 장례식날이 곧바로 자기 자신의 정부와의 결혼식날이 된 햄릿의 어머니도 있고, 괴테가 쇼펜하우어의 천재성을 극찬했을 때, 그 쇼펜하우어를 계모처럼 학대를 했던 어머니도 있다. 하지만 그 사악한 어머니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적인 예외일 뿐, 그 어머니의 이타적인 사랑은 모든 자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 인간들의 모태요, 존재의 집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김평엽 시인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했으며,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바가 있다. 2003년 우리 {애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를 출간한 바가 있다. 김평엽 시인의 장점은 옛이야기와도 같은 서정시로 실존적 고뇌를 짊어진 인간들의 삶을 가장 날카롭고 예리하게 해부를 하고, 그 삶들을 사실 그대로 평가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간장독을 열다]는 “간장독 속에 어머니 들어가 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달인 말씀 그득 채우고/ 물빛 고요히 누워 있다/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 덩어리째 끌안고 사뭇 까맣게 숯물 되었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시인의 어머니의 ‘해부론’이며, 다른 한편, “구름 조용히 베고 누운, 다 저문 저녁/ 이제야 정수리의 부젓가락 뽑아내고/ 응달 되어버린, 어머니/ 세상에 단풍서리 저리 곱게 내리는데/ 검게 삭은 애간장, 그 맑은 수면 건너는/ 내 울음 찬송가보다 싱겁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예찬론이다. 어머니에 대한 해부론이라는 것은 ‘간장독을열다’에서처럼 어머니의 삶을 해부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에 대한 예찬론이라는 것은 ‘내 울음 찬송가보다 싱겁다’에서처럼, 그 어머니를 성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해부는 성화의 전제조건이며, 성화는 해부의 최종적인 결과이다. 김평엽 시인의 서정시는 이 해부학적인 시선과 성화론적인 시선이 마주치는 가운데서 그 역동성을 얻고 있으며, 그 아름답고 뛰어난 울림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장독이란 무엇인가? 간장독이란 간장을 담가두는 항아리를 말한다. 간장이란 무엇인가? 간장이란 음식의 간을 맞추는 데 쓰는----짠맛이 나는----흑갈색의 액체 조미료를 말한다. 간장을 담그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재래식’과 ‘개량식’이 바로 그것이다. ‘재래식 방법’은 12월 경에 메주를 쑤어 자연 발효시킨 후, 다음해 2~4월경에 소금물에 메주를 담가 1~2 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것을 말하고, ‘개량식 방법’은 미생물학의 발달로, 황곡에서 분리한 누룩곰팡이를 ‘삶은 콩’에 접종하여 메주를 만들고, 이 메주로 간장을 담그는 것을 말한다. 재래식 방법으로는 간장과 된장을 동시에 얻을 수가 있지만, 개량식 방법으로는 그것의 부산물인 된장이 나오지 않게 된다. 간장은 소금, 당분, 아미노산, 비타민 등이 들어 있지만, 그러나 그 섭취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영양식품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간장은 엄밀하게 말해서 액체 조미료이기는 하지만, 간장肝腸의 해독작용과 유해독소의 제거, 그리고 이밖에도 혈액을 맑게 하고, 비타민의 체내 합성을 촉진시켜주는 것으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간장의 기원은 약 2,000년 전이며, 간장은 우리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식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어느 집의 음식맛은 간장으로 알 수가 있다는 말도 있고, 간장의 맛이 없으면 그 해에는 크나 큰 재앙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이미, 간장의 기원과 간장의 효능을 살펴본 바가 있는 만큼, ‘간장 담그는 순서’를 적어보면 다음과도 같다.
1. 메주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후 소금물을 만들어 앙금을 가라 앉힌다.
2. 장독을 깨끗이 소독하고 말린다.
3. 독에 메주를 먼저 넣고 소금물을 독에 넣는다.
4. 붉은 건고추, 대추를 먼저 띄우고 빨갛게 달군 숯을 넣는다.
5. 양지 바른 곳에 두고 햇볕을 자주 쬐어 준다.
6. 약 2개월 후 간장과 된장을 분리한다.
7. 간장을 빼고 건져 놓은 메주를 곱게 치대면서 간장을 부어 질게 한다.
8. 항아리에 넣고 맨 위에 소금을 뿌려 덮는다.
9. 햇볕이 비치는 날 뚜껑을 열고 발효시킨다.
10. 약 한달 후 먹을 수 있다(이상 {백과사전} 참조).
우선 김평엽 시인은 “간장독 속에 어머니 들어가 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달인 말씀 그득 채우고/ 물빛 고요히 누워있다”라고 노래하고, 또한,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 덩어리째 끌안고 사뭇 까맣게 숯물 되었다”라고 노래한다. 간장독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때의 간장독은 간장을 담가두는 항아리를 뜻하지 않고, 그 어머니의 외양(몸)을 지시하게 된다. 간장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때의 간장은 흑갈색의 액체조미료를 뜻하지 않고, 그 어머니의 삶의 내용들을 지시하게 된다. 따라서 간장독은 시인의 어머니이며, 간장은 그 어머니의 삶의 내용(발효시킨 삶의 내용)이 된다. 간장독은 시인의 어머니이며, 그 간장독 속에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달인 말씀”이 그득하게 담겨 있다. 만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며,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라면, ‘일곱번씩 일흔 번을 달인’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도 들어 있고, 그 말씀 속에는 “덜 익은 상처 꾹꾹 눌러 매운 숨결”도 들어 있다. 또한, 그 말씀 속에는 “세월의 솔기마다 튿어낸 한숨”도 들어 있고, 그 말씀 속에는 “칠십 년 동안이나 우려낸 세월”도 들어 있다. 요컨대 ‘일곱 번씩 일흔 번을 달인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얼마나 크나 큰 슬픔과 한이 녹아(쌓여) 있는 것이며, 또한 그 말씀 속에는 얼마나 크나 큰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마도 김평엽 시인은 이 [간장독을 열다]라는 시를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쓰게 된 모양이며, 따라서 이 시는 그 어머니의 영전에 바쳐진 송가라고 할 수가 있다. 그 어머니는 간장독과도 같은 어머니이며, 그 어머니의 70 평생의 삶은 언제, 어느 때나 그 맛이 변치 않는 간장과도 같은 삶이다. 그 어머니의 삶은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 덩어리째 끌안고 사뭇 까맣게 숯물”이 된 삶이며, 또한, 그 어머니의 삶은 “손길 닿지 않는 깊이에서/ 덜 익은 상처 꾹꾹 눌러 매운 숨결을 풀고” 있는 삶이다. 따라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어머니의 목표가 되고, 무한히 참고 인내하며 그 삶의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은 어머니의 의지가 되고, “세월의 솔기마다 튿어낸 한숨”으로 “별빛 고운 어둠을 감침질”하는 것은 어머니의 무한책임이 된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무목표, 무의지, 무책임의 화신들이라면, 우리들의 어머니는 이처럼 삶의 목표와 삶의 의지와 그리고 무한책임의 화신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평엽 시인의 이 [간장독을 열다]라는 시는 한국시문학사상, 어머니의 영전에 바쳐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시이며, 아마도 언젠가, 어느 때는 그 영원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가령, 예컨대,
대바람 소리 밀물치는 뒤란
다소곳 가을 풍경 삭이는 어머니
세월 솔기마다 튿어낸 한숨, 그 위에
별빛 고운 어둠 감침질 하고 있다
칠십년 우려낸 세월
욱신거리는 것 한 바가지 퍼내고
생의 보푸라기 갈앉히고 있다
라는 시구를 읽을 때, 어느 누가 그 어머니 앞에서 반항할 수가 있겠으며, 또한,
구름 조용히 베고 누운, 다 저문 저녁
이제야 정수리의 부젓가락 뽑아내고
응달 되어버린, 어머니
세상에 단풍서리 저리 곱게 내리는데
검게 삭은 애간장, 그 맑은 수면 건너는
내 울음 찬송가 보다 싱겁다
라는 시구를 읽을 때, 어느 누가 그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다지고 다진 슬픔들로 사뭇 까맣게 숯물이 된 어머니, 대바람 소리 밀물치는 뒤란에서 다소곳이 가을 풍경 삭이는 어머니, 세월의 솔기마다 튿어낸 한숨으로 별빛 고운 어둠을 감침질하는 어머니, 칠십 년 동안이나 우려낸 세월을 한 바가지 퍼내고 생의 보푸라기 가라 앉히는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 인간들의 모태요, 존재의 집이요, 영원한 안식처이다. 그 어머니 앞에서 우리들은 모두가 다같이 죄인이며 불효자인 것이다. 김평엽 시인은 그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얼마나 뜨거운 피눈물을 쏟았던 것이며, 또한, 그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의 불효를 뉘우쳤던 것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모두가 다같이 영원한 어린 아이이며 철부지일는지도 모른다. 왜, 그 어머니는 “구름 조용히 베고 누운, 다 저문 저녁/ 이제야 정수리의 부젓가락 뽑아내고/ 응달 되어버린” 것이며, 또한, 나의 울음은 “세상에 단풍서리 저리 곱게 내리는데/ 검게 삭은 애간장, 그 맑은 수면 건너는/ 내 울음 찬송가보다 싱겁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찬송가보다도 싱겁게 되어버린 것일까? ‘구름 조용히 베고 누운 다 저문 저녁’은 어머니의 마지막 운명을 뜻하고, ‘정수리의 부젓가락’은 이 세상의 화로를 다독이듯이 우리들의 삶을 다독여온 것을 말하고, 그리고, “이제야 정수리의 부젓가락 뽑아내고/ 응달 되어버린”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서 저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를 말한다. “세상에 단풍서리 저리 곱게 내리는데”는 어머니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삶을 말하고, “검게 삭은 애간장”은, 비록, 애간장을 녹이듯이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언제, 어느 때나 변함이 없는 간장과도 같은 어머니의 삶을 말하고, 또, 그리고, “내 울음 찬송가보다 싱겁다”는 아무리 울고, 또 울어도, 나의 뜨거운 눈물은 어머니의 위대함에 가닿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간장은 어머니의 뜨거운 육체가 발효된 간장이며, 그 간장은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영원불멸성의 조미료를 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인간들은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비벼먹고 있으며, 또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돈과 명예와 권력과 사랑과 우정 등을 비벼먹고 있다.
오오, 간장이여, 영원불멸의 그 맛이여!
어머니는 무한히 참고 인내하는 어머니이며, 그 이타적인 사랑은 우리 인간들의 비옥한 텃밭이다. 우리 인간들이 어머니를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것은 그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가며, 그 모든 것을 다 대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간장과도 같은 바다이다. 만고풍상의 시련과 모든 더러워진 강물들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항상, 변함이 없는 바다이다. 김평엽 시인의 간장독은 어머니의 바다이며, 그 간장독에는 모든 슬픔과 한숨들이 익어서, 언제, 어느 때나 그 아름다운 맛----소금, 당분, 아미노산,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는----을 잃지 않고 있다. 어머니를 간장독으로 의물화시키고, 그 어머니의 삶을 우리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식품인 간장으로 발효시킨----표현해낸---- 김평엽 시인의 상상력은 제일급 시인의 그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간장독을 열다]라는 시만으로도 김평엽 시인은, 이미, 대한민국의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