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산 정상에 세워진 서장대(화성장대)에 서서 화성 전체를 둘러보던 정조(1752-1800)의 빰 위에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굶어 죽어가는 참혹한 모습이 뇌리에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11세 아이였던 '이산'에게 그 일은 평생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충격이었던 것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하여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그가 죽임을 당한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영조가 궁 중에서 가장 미천한 신분인 무수리였던
‘동이’를 어머니로 두었던 이야기의 행간에 숨어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희빈 장씨의 소생이 숙종의 뒤를 이어 경종이 되었지만 재위 사 년 만에 죽게 되자, 동이의 아들인 이금이 그 왕위를 이어받아 영조가 된다. 하지만 영조는 자신을 후원해 줄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전무하였다. 당시
가장 큰 정치적 세력인 노론과의 타협을 통하여 왕실의 안위를 보장받았던 영조는 노론 세력의 정치적 지분을 보장해 주었고 이러한 정치적 야합을 통하여
서로에게 필요한 권력과 이권을 나누는 상황이 고착화 되어진 것이다.
사도세자는
이런 불합리한 권력분배 시스탬을 개혁하여 왕실의 권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나 그 역시 후원세력이 전무하였다. 영조는
정치에 대한 세자의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을 경계하였고 노론은 자신들의 기반을 위협하려고 하는 사도세자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사도세자는
노론 세력의 우두머리이며 영의정이었던 홍봉한의 딸이자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와도 심각한 불화에 빠지게 된다.
고립무원의
좌절스러운 상황은 사도세자로 하여금 궐 안에서 광기 어린 살인 행위를 일으키게 만들었고 기괴하고 포악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으며
아비인 영조를 죽이려고 칼을 품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게 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스스로 자신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세웠고 죽임을 앞두고서야 용서를 빌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영조의 냉혹한 정치적 결정을 번복시키지 못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임으로써 원손인 이산이 이어받을 다음 왕실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부자의 정리마저 가차없이 버려야 얻어지는 것일까?
정조는 뛰어난 임금이자 효자였다.
1789년에 들어, 죄인의 신분이 되어 양주 배봉산 (현재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위생병원 자리)에 묻인 아버지 사도세자를
이곳 수원화성과 행궁에서 가까운 ‘화산’으로 이장했고 ‘현륭원’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현륭원 인근에 있었던 페사를
복원하여 조성한 용주사로 하여금 사도세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원찰로 삼은 것이다.
정조는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하여 수원화성’이라는 작은 왕국을 건설하였고 그 왕국을 아버지에게 바침으로써 왕이 될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효를
실천하고자 애썼다. 수원화성을 쌓을 때 정조는 강제로 동원된 민초들에게 임금을 지불했으며 이는 전대미문의
획기적인 발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화성의 축조에 필요한 전체 공기를 삼분의 일로 단축하는 기적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성을
완성한 정조는 성 밖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성 안에서 살도록 이주시켰고 정착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성을 아버지께 바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위 기간 중
모두 13차례에
걸쳐 행궁을 찿았고 행궁에 갈 때마다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려고 노력했으며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는 ‘화산의 ‘융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행궁에서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아버지 곁(융릉)에 뭍으라 명하였으며 그곳이 지금의 건릉이다. 이로써 사도세자와 정조는 살아서 이루지 못한 꿈을 죽어서 비로서 이루게 된 것이다.
첫댓글 우리동네 입니다
그렇군요, 지난달에 두번 답사했지요. 수원이 드러내놓고 자랑할만한 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아름다운것에는 항상 그만한 아픔이 있기마련이네요.
단종의 사연과 쌍벽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좋은 상식감사합니다 ^^
다음 달에는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를 찿아갈 생각입니다. 전주는 제가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이구요..
도움이 되셨다니 반갑습니다.^^
@율촌산방(문도환*광명) 아하 그러시군요 ^^전국 사적지를 다 다니시는군요^^
정조가 수령의 힘을 너무키워놓고 갑자기 죽음으로써 순조때부터 헌종~철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죠~~~ 정조도 공부하다보면 답답한부분도 많은 왕이죠^^
저도 화성 한바퀴도는데 하루종일 걸렸습니다~~ㅎ
수원 화성을 소개하려다보니 사도세자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간략한 글을 쓰다보니 한 면만
들어있습니다. 그렇게 보아주시면 좋겠습니다. ^^
저의 운동 코스네요. 알고보니 아름다운 운동코스만이 아니였네요 다음에 지날땐 한번더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운동 코스입니다. 정말 부럽더군요. 저도 혈압에 문제가 있어서 매일 뒷산을 오릅니다만 화성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원성에대해 알게되어 고맙읍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기쁩니다. ^^
수원성에 그러한 사연이 있었군요!
한번 다녀 왔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다녀 온 제가 부끄럽네요!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별 말씀을요.^^
다만 사연을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고 합니다..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해박한 역사지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역사 공부 하고 갑니다..............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