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3-83)> 인문학 강좌 종강
오늘(11월 28일 화요일) 오후 1시에는 필자가 고문으로 봉사하는 서울대학교 <보건학박사회> 임원회의가 개최되었고, 오후 2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100년> 강의가 있었다. 시간적으로 두 모임에 모두 참석할 수 없어, 오후 2시 인문학 강좌를 내자와 함께 수강했다. 정하윤 박사(이화여대)가 두 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지난 3월 14일 개강한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100년> 인문학 강좌가 11월 28일 15강좌(30시간)로 종강했다. 한국 미술을 이끌어온 주요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을 살펴보았다. 강의는 시대순(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으로 진행되었으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들이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무슨 목적을 갖고 어떠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공부했다.
오늘 마지막 강의는 후원자들(전형필, 최순우) 소개와 한국미술 15강좌를 총정리를 했다. 전형필(全鎣弼, 1906-1962)의 본관은 정선(旌善)이고 호는 간송(澗松)이다. 부친(전영기)은 중추원의관을 지낸 무관출신이고 배오개(지금의 종로4가)에서 미곡상을 경영했다. 전형필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1928년 일시 귀국하여 스승 오세창(吳世昌)을 만났으며 그의 조언으로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9년 부친이 세상을 떠났고 1930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전형필은 부친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는데 논 800만 평이 넘는 거대한 재산이었다. 전형필은 인사동에 소재하는 한남서림을 인수하여 경영하면서 고서적과 서화, 화첩 등을 수집하였고,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의 거대한 재산은 국내 문화재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전형필은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1940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보성(普成)고보를 인수하여 교주(校主)가 되었으며 광복 후, 보성중학교 교장과 문화재 보존위원을 역임하였다. 전형필 생애의 최대 업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보존인데, 한글의 창제원리, 과학적 우수성, 독창성을 올바로 알릴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되고 있다.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전형필은 1962년 1월에 급성 신우염(腎盂炎, pyelitis)으로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 문화포장이 추서되었고, 1964년에는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되었다. 2014년 10월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또한 문화재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12년 12월에 전형필의 가옥을 등록문화재 제521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최순우(崔淳雨, 1916-1984)의 본명은 희순(熙淳)이며 순우(淳雨)는 그의 필명이다. 아호는 간송 전형필이 지어준 혜곡(兮谷)이다. 최순우는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황해도 해주에서 자랐다. 개성 송도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개성부립박물관에서 일하였다. 당시 박물관장 고유섭의 가르침을 받아 문화재와 미술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개성박물관에서 국립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국립박물관 학예관, 미술과장,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하였다.
1949년 당시 북한군의 개성시 외곽의 국지전으로 박물관 수장품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최순우는 판단하여 유물들 거의 대부분을 31개의 궤짝에 포장하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소개 시켰다. 광복 후 최초로 고려청자를 주제로 한 글을 썼고, 이후 사망할 때까지 600여편의 논문를 발표하였다. 그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유명하다. 최순우는 평생을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글과 전시를 통해 알리며 미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최순우는 1950년부터 서울대, 고려대, 홍익대, 이화여대에서 미술사(美術史) 강의를 했다. 1975년 서울 암사동 신석기 시대 유적지 조사에서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어 기원전 3000년임이 밝혀졌다. 이에 한국 미술의 역사를 2000년에서 5000년으로 수정했다. <한국미술 5000년전>을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 순회 전시했다.
최순우는 1984년 향년 68세를 일기로 1976년에 이사한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자택은 현재 ‘최순우 옛집’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시민문화유산 1호로 보존하고 있다. 최순우 옛집은 <혜곡최순우기념관>이라는 명칭의 박물관으로도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사진> (1)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100년, (2) 전형필과 간송미술관, (3) 최순우와 최순우옛집, (4) 한국미술 관련 책자.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28 Novembe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