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니엘의 영민함과 영적 고결함, 왕의 꿈의 비밀까지 알아내는 모든 지혜와 영적 통찰력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니엘의 고백처럼 그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있었습니다.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단 2:30)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단 2:28)
다니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알았습니다. 바르고 분명히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때로 우리는 열심만 다한다고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열심이 바른 진리위에 서 있지 못할 때 마치 주님을 만나기전의 바울처럼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욱 주님을 괴롭히는 결과를 거둘 수 도 있습니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행 22:7)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다 성경을 펴고 성경을 가르치지만 정말 말씀을 통하여 드러내기 원하는 하나님의 심정, 그 마음을 드러내는 이는 많지 아니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우리가 간절한 마음, 주님의 심정을 알고, 깨닫기 원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의 깊은 의미들을 알게 해 주십니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복음을 깨닫고 경험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우리에게 더욱 겸비하고 진실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주관하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확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결한한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에는 다니엘의 금식기도를 기록합니다. 얼마나 간절했기에 얼마나 절실했기에 금식하면서 기도했을까요? 금식기도는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식음을 전패하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무엇이 이렇게 절실했기에 금식하며 간절한 소원을 아뢰었을까요? 우리도 그 간절함과 진지함으로 다니엘 9장을 펼쳐봅니다.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1-2)
이것이 다니엘이 기도한 이유였습니다. 개인의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필요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민족을 향한 간절한 간구였습니다.
다니엘은 신앙과 인생의 방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온 종일의 분주한 일과에 골몰하는 동안, 그의 생각은 때때로 외교(外交)문제와 인사(人事) 행정에 몰두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내 문제와 국가 산업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하루 세번씩 기도드리는 시간이 되면 그의 방향 감각은 정위치(正位置)에 되돌아왔다. 폭풍을 만나 요동하는 배가 이리저리 선체를 가누어도 나침판의 바늘이 정남북(正南北)을 가리키듯, 다니엘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곳 예루살렘을 향하였다. 떠나온지 70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은 황무한 채 적막만이 드리웠을 예루살렘이 다니엘에게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그립고 소중한 약속의 도성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두고 맺어진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때문이었다. 성전이 낙성되었을 때, 솔로몬이 드린 봉헌(奉獻)의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요 언약이기도 했다.
「솔로몬이...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천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주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하므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땅의 원근을 물론하고 끌어간 후에...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돌아와서...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와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대하 6:12-14, 24, 36-39, 25).
바로 이 일을 다니엘이 하였고, 이를 위한 기도를 다니엘이 드린 것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선지자로 예언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이미 기록된 성경의 허락을 자신이 성취시키기도 한 것이다.
다니엘서6장의 기도가 바로 다니엘서 9장의 내용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역사적 시점의 일치 (다리오 왕 시대)
다니엘서 6장: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된 직후의 사건입니다(단 6:1).
다니엘서 9장: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단 9:1).
두 장 모두 동일한 통치 초기(메대-바사 연합군의 바벨론 점령 직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즉, 다니엘이 사자 굴 사건을 겪을 당시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영적 고민이 바로 9장의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의 방향과 목적 (예루살렘)
다니엘서 6장 10절: 다니엘이 기도를 쉴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방의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9장 2-3절: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 만에 그치리라"는 것을 깨닫고,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이 6장에서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던 이유는 단순히 고향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9장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포로 귀환의 약속)이 성취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6장에서 다리오 왕의 조서(기도 금지령)가 내려졌음에도 다니엘이 기도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지금이 바로 이스라엘의 운명이 결정될 70년의 기한이 차는 결정적인 시기(9장의 배경)**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기도는 개인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약속 이행이 더 중요했음을 9장의 기도가 증명해 줍니다.
다니엘서 6장은 다니엘의 **기도하는 모습(태도와 신앙)**을 보여주고, 다니엘서 9장은 그 시기에 그가 드렸던 **기도의 알맹이(내용과 신학)**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9장의 기도는 다니엘이 사자 굴의 위협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간절한 소망의 실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더 4:16) 목숨을 내걸었던 그 심정과 진배없다.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는 기도,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막으려고, 사탄은 바사의 고관들의 심령을 작동하여 왕외에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겠다는 다니엘7장의 기도 금지령을 내린 것이었다. 영적 싸움은 기도의 싸움이다. 기도를 멈추게 하려는 사탄과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우리의 싸움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들과 공중의 권세 잡은 악한 영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엡 6:12, 쉬운)
다니엘은 포로의 기간에 대한 동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들을(렘 25:11, 29:14) 열심히 읽고 연구한 끝에, “그 연수를 깨”닫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 만에 마치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포로되어 온 기원전 605년으로부터 계산하면, 벌써 68년(605 BC - 538 BC)이 지난 것이다.
오랫 동안 대망해 온 예언의 성취를 눈 앞에 두고, 다니엘은 예언이자 동시에 약속인, 그 예언이 기필코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포로 회복의 약속이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와 순종을 전제로 하는 조건적인 예언임을 깨닫자, 자신이 범죄한 민족을 대신하여 회개하고 자복하여 그 조건을 채우기로 결심하였다.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0-1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 9:3)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도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성경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도 사람 편의 태도에 따라 재촉되거나, 지연될 수 있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행 3:19-21, 벧후 3:12). 신령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없이 하나님께서는 하시지 않을 것이다”(Without Him we cannot, but without us He will not.).
다니엘의 기도는 회개와 자복으로 시작한다. 왜 바벨론 포로 70년을 가야만 했는지에 대한 그 분명한 이유를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해결되야 모든 축복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단 9:4)
바로 그들의 죄 때문에, 언약을 지키지 않은 그들의 불충을 고백한다. 그는 백성의 죄와 자신의 죄를 동일시 한다. 그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죄, 나의 죄임을 고백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모세가 보여주었던 진정한 중보의 바른 태도이다.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단 9:5-6)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9-10)
그 핵심적인 징벌의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11)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9:13)
그렇다면 그들이 범한 율법의 내용이 무엇인가?
역대하에서 우리는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역대하 36:21)
"너희가 대적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폐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년을 누릴 것이라 그때에 땅이 안식년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폐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레위기 26:34-35)
그 기간은 그들이 언약을 깨트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다니엘은 자신들의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나 이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의지하여 탄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한다.
“[17]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18]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단 9:17-18)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9)
간절한 기도를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심으로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달려오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과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당신의 아들까지도 주신 하나님께서 아까워서 주지 못하실 게 뭐가 있겠는가?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그 간절한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70년포로의 기간이 끝나고 고향 예루살렘의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도 그러한 경험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포로기간이 끝나고 우리의 영원한 본향,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