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문학 - 을지문덕장군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5. 19.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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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문학 - 을지문덕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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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0. 16:30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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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향토대백과 민속문화관 : 구전문학
을지문덕장군
을지문덕장군과 관련된 전설은 수나라침입자들을 반대하는 싸움의 총지휘관으로서의 뛰어난 지략과 전술을 보여주는 전투담들과 그를 애국적 명장으로 신비화한 이야기이다. 증산군의 석다산, 평원군의 불곡산의 석굴 등에는 그의 출생과 장수로서의 성장과정을 전하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석다산은 평안남도 증산군 서해바다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기슭에는 적성골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여기에서 을지문덕장군이 태어났다고 한다. 마을에는 마음씨 곱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한 여인이 있었다. 때는 여름철이었다. 어느날 여인은 밭에서 김을 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석다산 기슭에서 방금 새가 날아난 자리에서 새알을 한알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여인은 태기가 있어 열달만에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훗날의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장군이었다. 장군은 어릴 때에 서해바닷가에서 소금을 굽는 일을 하며 자라났는데 힘이 세었다. 한번은 길가에서 송아지만큼 큰 짐승이 길을 막고 으르렁거리기에 몽둥이로 후려치고 번쩍 허공에 들어 메쳤는데 그 짐승이 바로 호랑이었다. 을지문덕은 외적의 침입이 그칠새 없어 나라를 지킬 장수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이때 한 노승이 왕을 찾아뵙고 “고구려에 전대미문의 귀인이 태어났소이다. 이분만 찾아내며는 큰 싸움에도 능히 대처할 것이오니 장차 고구려의 융성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오이다”라고 말하였다.
노승은 왕의 명령을 받고 나라의 방방곡곡으로 그를 찾아 다니다가 적성골 대장간에서 쇠메질을 하는 장사를 보고 그가 나라에서 찾는 귀인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을지문덕은 나라에 등용된 후 수나라대군을 물리침으로써 명장으로서 그 이름이 수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지금도 석다산에는 을지문덕장군이 무술을 닦을 때 사용하던 돌집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석다산 맞은편의 산을 마우산이라고 하는데 이 산에서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이 나왔다고 한다. 고구려궁전에는 유명한 장수가 석다산에서 무술을 닦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때 임금은 외적의 침입에 대처하여 나라를 지킬 용맹한 장수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임금은 측근 신하를 시켜 그러한 장수를 찾아보도록 하였다. 신하 일행이 석다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마침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비호처럼 사라지는 것이 보이고 그 뒤로는 무수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신하 일행이 신기하게 여겨 가보니 장수가 말을 타고 지나간 곳에는 나뭇잎들이 낙엽 지듯 하나도 없이 다 떨어졌는데 그 가지만은 하나도 상한 것이 없었다. 장수의 검은 신통히 나뭇잎만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신하 일행은 과연 훌륭한 장수라고 탄복하며 그와 빨리 만나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면서 소나기가 퍼부었다. 신하 일행은 가까운 석굴을 찾아 비를 긋게 되었는데 그 석굴이 바로 장수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비가 억수로 퍼부었으나 장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굴밖에서는 가끔 빗속을 뚫고 용마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고 번쩍이는 신검이 번개치듯 하늘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장수는 검술로 비를 뿌리치는 무술을 익히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비가 멎고 하늘이 개이자 장수가 석굴로 돌아왔다. 신하 일행이 그를 마중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장수는 비 한 방울 맞지 않았다. 신하가 신비하게 여겨 그 사연을 물으니 장수는 이 신검으로 비를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아직 검술이 능하지 못하여 제 투구에 빗방울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투구를 벗어 보이는 것이었다. 신하는 장수의 그 용맹한 기상과 조화무궁한 검술을 목격하고 임금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니 임금은 곧 그를 불러 고구려군사를 맡겼으니 그가 을지문덕이었다.
을지문덕장군은 고구려의 운명과 관련되었던 수나라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라를 수호하기 위하여 떨쳐나선 군사와 백성을 지휘한 애국명장으로 이름을 떨침으로써 그 이름은 동방대국이었던 고구려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인민들 속에 간직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사람들은 대국명장 하면 누구보다 먼저 을지문덕장군을 들었고 어머니들이 부르는 ‘자장가’에도 “대장되면 을지문덕되라” 하며 존경하고 사랑하여왔다.
마지막 수정일
[네이버 지식백과] 을지문덕장군 (조선향토대백과, 2008., 평화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