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어릴 적 학교에서 교내 콩쿠르대회가 열리면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내신다.
" 나가야지" 하시며 싱긋 웃으신다. 아주 어릴 땐 이미자 씨의 노래를 흉내 내어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불러 보기도 했었다. 그때는 t.v가 귀하고 라디오를 듣던 시절이라
트로트를 따라 부르는 내가 재미난 구경거리 였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힘이 들면
힘이 드는 데로 흥얼대고 기쁠 땐 기쁜 대로 슬플 땐 슬픈 대로 혼자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40대 중반의 어느 날이었다.
춘천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열린다고 거리에 현수막이 걸렸다. 도청 밑 시민회관에서
예심이 열렸다. 곱게 단장하고 친구까지 대동하고 예 심장으로 갔다. 예 심장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거기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반갑다고 하는데
나는 불편했다. 하필 이런 곳에서 만날게 뭐람! 아는 얼굴을 만나고 나니 심장이 두근대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고 반주 없이 마이크만 들고 하는 노래였는데 내가
선택한 곡은 " 허영란의 날개"였다.
첫 소절을 시작했다. '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 한번 걸어라~'
' 땡'... ... 이럴 수가 이제 뛰어라 젊은이여 그리고 날아라 아 ~까지 나와야 하는데
아쉽게도 일어나자마자 끝나버렸다.
휘적휘적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오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를 쳐다보는 친구에게 " 아이씨 날기는커녕 뛰지도 못하고 끝났네.
그래도 일어났으면 날지는 못해도 뛰는 것 까지는 했어야 하는데 ,,,,,, 뛰지도 못하게 하네 "
하며 마주 보고 박장 대소를 했었다.
내게 있어 노래는 친구이고 위안이었다.
이적의 ' 걱정 말아요'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아리~아리 ~이 쓰리 쓰리 이~~ 민요도 배워서 불러본다.
우리의 노래 민요에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정서가 깃들어있다. 특히 아리랑의 후렴구에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라는 가사는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놀면 놀고 안 놀면 안노는 것인데
노는 것도 아니고 아니 노는 것이니 절묘하고 유쾌하다.
무슨 용기로 노래자랑까지 나갔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지난날의 추억으로 남았다.
고단한 일상에서 노래로 위로받고 울고 웃었다.
남아있는 시간들도 오랫동안 노래가 나의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될 것이다.
첫댓글 문창반 총무님 다시 축하드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첫 문장과 끝 문장의 매칭도 일품입니다.
사혜나씨 작품(시, 수필)도 올려주셨으면....
땡, 했으니 추억이 오래가고 글의 소재가 되었지, 예선 통과해서 본선에서 입상권에 들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였겠지요.
건필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