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전략회의 토론회] 좌파, 대선 독자후보 전술 논쟁 벌여
진보-좌파 운동 진영은 87년 대선이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대선 독자후보를 한 번도 내지 않은 적이 없다. 진보나 좌파란 단어 자체가 빨갱이와 동의어였던 시절에도 대선 독자후보 전술은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MB와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에 반대하면 누구나 진보가 되는 시대에 진보-좌파 진영의 대선 독자후보 전술은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진보적 대중정당 노선을 걷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유력한 당내 대선 후보나 지도부들이 민주당과의 야권 후보단일화를 거론하고 있어 민주-통합진보당 대선후보 단일화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가 아닌 좌파진영의 독자적 대선 후보는 엄청난 사퇴 압력을 받을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진보전략회의 주최로 열린 ‘4.11 총선 평가와 좌파 정치의 진로’ 토론회에선 대선 독자후보 전술에 관한 열띤 토론이 이뤄졌다.
장석준, “명확한 노동자 후보가 비정규직 강령에 집중한 대선운동”
이날 토론에서 대선 문제에 대해 포문을 연 토론자는 장석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장석준 당원은 “이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상황에서 대선에 대한 이야기가 좌파정치의 진로에 시급한 문제”라고 운을 뗐다.
장석준 당원은 “96년 총선까지는 혁명적 좌파들이 총선에 후보를 내고 혁명적 선전선동도 했지만, 2000년부터는 민노당으로 창구단일화라고 생각했는지 급진좌파들의 선거대응이 전무했다”며 “제가 사노위(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공동 실천위원회)회원이었다면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 밀집지역에 독자후보를 내고 적극적으로 선전선동을 할 계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에 평가가 필요하며 의회주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적극적인 대중정치 발전 계기에 소극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장석준 당원은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대선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고 토론을 이어갔다. 그는 “87년 이후 후보 사퇴는 있었어도 좌파후보가 없던 적은 없었다”며 “처음으로 민주당과 구별되는 민중운동 후보를 내지 못할 상황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장석준 당원은 “통진당은 유시민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심상정이 나오더라도 연립정부를 전제한 후보일 텐데 이를 방관하는 것은 민중운동 진영이 민주당에 휩쓸려가는 것을 방조하는 것이 된다. 시급하게 머리를 모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석준 당원은 또 “진보신당은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고민은 많지만, ‘혼자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하는 감정적 외로움이 큰 듯하다”며 “사노위든 녹색당이든 진보신당 바깥에서 함께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오면 자신감을 가질 듯하다. 더 늦어지면 안된다”고 제안 배경을 덧붙였다.
그는 이어 “지금은 92년과 비슷하다. 당시 수구적 정권에서 자유주의 정권으로의 교체 얘기가 나오는 속에서 어렵게 백기완 대선 후보를 내세웠다”며 “당시는 대선을 치르고 나서 하나의 진보정당을 만든다는 목적을 염두에 뒀지만 이번엔 합법정당운동과 비제도적 계급정당운동이 쉽게 합치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중운동의 돌파구를 여는데 기여하는 대선운동이 되어야하고, 후보도 명확한 노동자 후보가 나오고, 배타적일 정도로 비정규직 강령에 집중한 대선운동 방식을 고민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광, “정치에 자기 투쟁 위탁해 자신감 잃은 노동자, 대선투쟁 의미 있나”
반면 김재광 사노위 회원은 “과거에도 민중후보 전술을 썼던 때도 있고 없던 때도 있다”며 “투쟁을 통해 선거를 돌파하는 데에 대한 명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달리했다.
김재광 회원은 “희망광장이나 쌍용차 투쟁이 제도정치 수준에서 유의미하지 못한 상황에서 후보를 내고 투쟁으로 돌파할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있다”며 “진보신당을 포함해 올해 총선에서 후보를 내서 투쟁으로 돌파한 컨셉이 됐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김재광 회원은 “19대 총선만큼 노동자후보나 계급운동 성장,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같은 기존 좌파의 담론이 전혀 언급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며 “한국에서 진보란 말은 이제 위험한 말이 됐다. 이제 자유주의를 진보라고 본다. 혁명이나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수준에서 규정되고 개념화 되지 않았다. 자본가계급이 설정한 모든 개념을 수용하다보니 진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재광 회원은 “대중은 그런 개념을 추종하는 것”이라며 “자기 삶이 굴종에 있지만 이 사회에서 실현될 민주·정의·자유는 자본가계급의 개념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 선전선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이 된다. 저희 조직내부에서도 후보전술에 대한 논의도 했지만 실력이 모자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4.11 총선 이후 현장의 동지들을 만나면 모두 선거결과를 안타까워한다. 당장 현장이 어려워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며 “4.11 전에는 대화를 하자던 사측이 탄압을 시작하고, 중소자본가까지 노동자에 대해 정서적 우위를 차지한 것 같다. 현장은 정서적 우위를 빼앗긴 순간 굉장히 후퇴한다. 그래서 거꾸로 선거 결과에 집착하는 이율배반적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이 정치화 되지 않았고 자본가의 담론에 대항할 자기담론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동자가 자기 투쟁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상황에서 대선투쟁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다”며 “자기 투쟁력이 약화되면서 정치를 위탁하다 자기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에 대한 전선 형성 없이 대선 후보를 내는 것이 과연 유의미한가”라고 반문했다.
김재광 회원은 또 “87년과 92년 민중후보 전술 당시의 대중동력을 봐야한다”며 “적어도 그 시기는 현장에서 자기 싸움이 힘의 기반이었다면 지금은 그런 것을 고민하지 않고, 과거를 회고하며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다.
“대선 흐름 있어야 2013년 거리 투쟁 가능” VS “조직화 플랜 있어야”
이런 반론을 두고 장석준 당원은 “사실 대선에 대해 확신은 없다. 계속 같이 고민하자는 것”이라며 “당위적 측면을 보면 대선 투쟁을 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할 수 있느냐가 본심”이라고 토로했다.
장석준 당원은 “대선 독자후보를 결의하면 혁명운동 수준의 결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완주할 것이냐 아니냐로 논란에 휩쓸릴 수 있다. 쉽게 시작할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대선에서 통진당보다 왼쪽 진영의 독자적 대응이 없다면 2013년 이후 상황은 너무 어려울 듯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만약 민주진보연합후보가 대선에 이기면 제도권 야당은 수구 꼴통 새누리당이 되지만, 거리의 야당은 우리가 될 것”이라며 “그 경우도 대중적 실체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대선에서 흐름을 만들지 않으면 2013년 이후 바닥을 치고 반전 시키는데 어렵다는 논리적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고민하는 게 솔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재광 사노위 회원은 “87년이나 92년 대선투쟁은 민주노조 운동의 성장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 시기가 혁명적 시기가 아니라서 (합법적) 선거공간에서 투쟁을 했다”며 “지금은 우리에게 어떤 무기가 있나 봐야한다. 전술개념에서 저어할 이유는 없는데, 자기 힘을 가지고 무기로 작용할 만 한 게 있나 하는 고민이 있다”고 밝혔다.
김재광 회원은 “87년 이후에는 조직 노동자의 힘이 존재했다. 말 그대로 조직돼 있었다는 의미”라며 “박근혜도 비정규직 문제는 다 얘기하지만, 조직화 플랜을 가지고 그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희망버스와 희망광장은 조금 다르다”며 “희망광장은 조직된 싸움이었고, 희망버스는 대중의 자발적 싸움이었다. 희망버스가 대안이라고 말하는 순간 (좌파의) 정치력은 없는 것이 된다. 자발적 투쟁을 다음투쟁으로 엮어야한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노총을 비판하지만 민주노총 총파업이 중요한 이유는 민주노총이 조직돼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선 문제는 그런 전망이 있다면 해볼 수 있겠지만, 더는 팔 집도 없고, 월세로 살고 있어 더 취약해졌다”며 “87년이나 92년은 젊어서 다 팔아 먹었지만 그 이후는 자신이 없어서 선거를 못한 기억이 더 있다”고 덧붙였다.
배성인 한신대 교수는 “진보신당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경로를 밝히지 못했다. 물론 진보신당의 생존은 중요하지만 생존전략 자체가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는 “좌파는 더 이상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 이미 진보대통합 논의 때부터 진보의 의미는 변했다”며 “명확하게 좌파를 선언하고 좌파플랜이 있어야 한다. 진보신당도 진보좌파에서 진보라는 단어는 (통합)진보당에 줘버리고,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10년의 계획으로 가야 거기서 규모있는 선거투쟁이 가능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출처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5978&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