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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삼하23:8~39
2.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
8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지휘관의 /두목이라/ 그가 /단번에/ 팔백/ 명을 /쳐죽였더라/
9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 한/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이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거기에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
10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니 /그는/ 용맹스런 /일을 /행한 /자라 /일찍이/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
21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더라/
22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 삼십 /명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 대장을 /삼았더라/
24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명 /중의 /하나요/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 소바/ 사람 /나단의/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를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3. 하나님과의 대화
말씀 안으로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모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
다윗의 37명의 용사들이 다윗과 함께 싸웠다고 기록하신다.
이름이 하나하나 기록되어 있다.
그중 세 명의 큰 용사와 또 세 명의 용사, 그리고 31명의 두목들이 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중에서 첫째는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먹고 싶다는 다윗의 지나는 말을 듣고 그 사소해 보이는 말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달려 나간 세명의 용사의 이름이 기록이 안 되있다.
다만 그들이 삼심 두목 중 세 사람이었다고만 기록하신다.
그리고 두번째 세명의 용사 이름 중 한 명이 기록 되어 있지 않다.
아사헬과 우리아는 죽임을 당했다는 걸 보면.. 아마도 이 중에는 기록 당시 죽었던 사람들이 이름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압 생각이 났다. 다윗의 큰 누이의 아들. 다윗 왕국의 개국 공신이면서 쫒겨 다니던 시절에도 다윗과 함께 생사를 함께 하던
용사.
그러나 다윗의 명령보다 자신의 성질. 판단. 감정에 따라 다윗의 명령에 불복종하며 강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
이 사람이 용사의 이름에 기록이 안 되 있는 거다.
아사헬도.. 아비새도.. 기록이 되 있고, 아비새와 함께 개국 이래, 그리고 압살롬의 반정을 처단한 후에도 권력의 자리에 있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아마도 두 번째 용사 중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한 사람이 요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건 개인적인 사견이다.
평생 다윗과 함께 했고,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고, 왕권을 강화해 나가는데 누구보다 앞장 섰던 요압이 하나님의 말씀에
.. 다윗에게 충성했던 한 사람으로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다윗의 "충성된 신하"가 아니었
다고 판단하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윗과 함께 쫒겨 다니며.. 다윗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다윗과 함께 울고 웃고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중요한 시점에 결국 자신의 탐욕. 자신의 판단. 자신의 분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의 명령을 반하는 자는 그게 실은 그의
모습인 거다..
그에게 있어서 왕은 다윗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던 거다.
반면 다윗의 명령도 아닌 다윗의 지나는 말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적진을 달려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떠 왔던 세 두목은 정말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자신들의 왕을 사랑하고 충성했던 인물들이구나. . 하는 생각이 든다.
다윗이 차마.. 마실 수 없었던 물.
하나님 앞에 부어 드릴 수 밖에 없었던 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다윗은 얼마나.. 깊이깊이 고마와했을까...
다윗 평생 이 일은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의 사건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이름을 우리들에게, 나에게 감추셨다.
하나님 나라에 그 이름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그 이름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기념책에 그 이름이 새겨진 믿음의 증인들을
하나님은 정말 많은.. 증인들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이 땅을 살아 가는 많은 성도들에게조차 .. 그 이름을 감추실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때때로 들려져 오는 순교의 소식들.
몇 달 전에 북부 나이지리아의 대학에서 맞아 죽은 여대생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무슬림들에게 학내에서 맞아 죽었다. 나이지리아는 전세계에서 순교자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이다. 해마다 천여명이 순교를 하는데 .. 내 기억에 2022년에는 5000여 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렇게 나이지리아만 순교자가 많이 일어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 확실한 것 하나는..
그들은 십자가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심한 곳은 교회 안에 십자가가 아닌 흑마술에 사용하는 우상을 강대상 뒤에 십자가의 자리에 걸어 놓은 개신교회도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아프리카의 개신교는 종족신앙과 뒤엉켜 있고 목회자들도 한달 또는 삼개월 과정의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런데 그런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에서 매년 무슬림들에게 많은 개신교인들이 순교를 한다. 난 순교의 현장을 동영상으로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반항을 전혀 안 하더라.. 불태워 죽임을 당할 때에도.. 바닥을 구르거나 뛰어 다니지도 않고.. 묶이지도 않았는데 그냥 때리는대로 맞아 주고.. 불로 태우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그 성도들은 어떻게 그렇게 죽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왔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은 그 나라의 교단 안에도.. 어느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죽음인 거다.
그들과 하나님 만이 아시는.. 그러한 죽음.
삼십 한명 중의 세 명인 그 용사들의 이름이 세상에 새겨질 필요는 없는 것 맞다. 알려져 봐야 뭐 하겠나..
사람들이 알아봐야 우삼 삼는 것 밖에 더 하겠나...
모세의 시체를 숨기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어쩌면 이 세 용사의 이름을 숨기신 것도 그 시대를 살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세 용사와.. 지금의 나를 위해
숨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다윗과 같이 그 이름이 세세에 이르도록 새겨지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긍휼이고
그 세 용사와 같이 그 이름을 숨기신 것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다...
또한 서른명의 두목에 포함될 정도로.. 충성된 다윗의 부하를 살해하게 했던 다윗 생각이 다니 난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정말 "상황과 환경만 허락되면.. " 자신에게 목숨과 전부를 아낌 없이 내어 주는 충성된 부하들도
자신의 정욕과 탐욕을 위해 얼마든지 죽이고야마는 악한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다윗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 가는 모든 죄인들을 다.. 어떤 죄든 지을 수 있는 소망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감동시킨 세 용사(두목)의 이름을 감추시는 것도 그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이시고..
다윗에게 이렇게 충성된 자들을 곁에 두게 하신 분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고난의 시간들 동안 다윗은 사망과 죽음. 스올의 골짜기에 머무르는 것 같아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다윗을
도우셨다. 다윗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윗이 원하는 것을 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다윗에게 허락하시며
수십년 간 동행하셨던 하나님이시다.
내게 주시는 진리의 교훈 & 회개
평생을 다윗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윗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드렸던 요압의 이름을 다윗의 용사들 사이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아 간다고 생각하고 열심과 최선과 눈물겨운 노력으로 밤낮 없이 사역을 하고..
풍성한 사역의 열매들이 맺혀지는 것 같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 오게 하는 것 같고..
청년 학생들을 세워 나가는 것 같은..
그래서 웨일즈의 대부흥 한 복판에 세워진 것 같은 그 때에도..
나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새겨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요압과 같이...
다윗의 나라를 세우실 때에 요압은 열심과 특심을 내서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많은 이방민족을 몰아 내고, 자신이 탈취한 이방 민족의 성읍에도 자신이 들어 가지 않고 전령을 보내 다윗 왕이 그 성에
들어가 다윗 왕이 이름이 높아지게 했다.
다윗이 나가지 않은 전쟁터에 나가 미친듯이 싸웠다.
수십년간...
피에 절어.. 피곤에 쩔어.. 이스라엘 나라에 주변이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신흥 강대국이 되도록
수십년간 전쟁터에서 살아간 사람이 요압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없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사람은 이름을 올리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인거다.
얼마나 많은 전임 사역자들이.... 목회자와 선교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요압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지워져 가는 요압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는 주님..
진리의 말씀으로 제 심령 깊은 곳을 계속해서. 비춰 주십시오.
생명책에서 저의 이름이 희미해져 가도.. 여전히 생명책에, 기념책에 나의 이름이 새겨져 있겠거니..
여기는...
자기 확신에 빠져 살아가지 않도록 계속 하여 저를 책망하시고 진리의 밝은 빛 앞에 서게 하소서.
결단
믿음의 길은 순종의 길. 충성의 길이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4. 암송 말씀
없음
5. 주제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6. 생활에 적용 한 가지
오늘 하루의 삶을 더 깊이 돌아 보자. 지금 나의 이름은 생명책에 새겨져 있나.. 그 근거는 무엇인가.. 돌아 보자.
7.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