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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이여
이사야 52:7-12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지난 번에 이사야 51장을 상고하면서 갑자기 화자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를 머리로 하는 주의 백성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하나님과 맺은 자들로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주관하십니다. 바벨론 포로로 있던 유다 백성 중에는 참된 주의 백성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51장 1절에 따르면 그들은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먼 훗날이지만 이사야를 통해 남겨 놓으신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라고 절규합니다. 이 절규는 주의 백성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바벨론 제국으로부터의 해방을 여호와께 간구하는 외침입니다. 이 간구 때문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바벨론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때 바벨론 포로로 있는 참된 주의 백성은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외칩니다.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이 외침은 술과 부패와 더러움에 물들어 취해 있는 예루살렘 및 그 자녀들인 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절규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의 잔이 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심판의 잔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바벨론 광야 교회는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편으로 주시는 메시야를 의지하고 일어서라고 외칩니다. 그 이유는 장차 오실 메시야는 주의 백성이 마셔야 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친히 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지 않고 오히려 죄사함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본문이 담긴 52장으로 넘어오면,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자비와 은혜를 받아 회복될 시온에게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사실 이 외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외침입니다. 이는 주의 백성이 메시아의 속량의 복음 안에서 누릴 평안과 복락을 전제로 위로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없는 위로로 시온을 깨우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사 52:1).
이제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로 있는 참된 유다 백성의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서 광야의 이스라엘을 바사의 고레스 왕을 통해 해방시키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 소식을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통한 영원한 구원과 연결시키십니다. 이는 신구약의 모든 백성은 메시야의 속량과 부활로 죄와 마귀와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원함을 얻어 영생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 어떤 감격일지, 얼마나 신나는 소식일지, 구약 백성이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모형으로 하여 우리의 감정과 생각에 와 닿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물론, 훗날에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 안에서 느끼게 되는 지옥과 죄로부터의 구원의 감격은 바벨론 제국에서의 정치적인 해방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게 클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원칙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택한 백성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 주께서는 한 시대의 가장 강력한 왕과 나라를 움직여서라도 주의 택한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칙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만유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대한민국 정부가 이 땅의 교회를 보호하고 지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세상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정치를 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 주의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섭리로 역사하셔서 세상의 강력한 나라와 군주들을 동원하여 신기하게도 주의 백성과 교회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거룩함과 진실함의 빛 된 삶이 바로 우리가 속한 사회와 나라가 부패하지 않고 주의 도구로 쓰임 받도록 하는 해답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는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붙들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품과 삶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온 세상을 향하여 주의 복음의 아름다운 향기가 될 때 전능하신 하나님 및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의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할 때 교회는 온 세상을 향해 얼마든지 주의 복을 충만하게 전할 수 있는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
20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만유)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1:20-23)
물론, 주의 예언의 계시에 따르면 주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 땅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해 배도할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참된 교회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남은 그루터기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의 어둠과 궁핍과 비참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교회의 거룩함과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여러분 각자가 신자로서 더욱 진실하고 온전한 신자가 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하고 풍성한 나라와 사회와 영광스런 주의 교회를 물려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메시야의 십자가 속량으로 거룩하여진 예루살렘 성은 소망을 갖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라고 말합니다. 부패한 예루살렘을 이렇게 부르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속량 외에 다른 근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죄악으로 가득했던 고린도 교회를 바울이 “거룩한 성도”라고 부른 것과 같은 이치이고 지금 죄 많은 우리를 성도라 부르시는 것과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52장 13절부터 53장 전체는 가장 분명하게 메시야의 대속적 속량을 노래합니다. 즉, 장차 있을 메시야의 속량 때문에 구약의 유다 백성은 거룩한 자로 간주되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에 주 여호와 하나님은 흙더미에 앉은 시온에게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라고 외칩니다. 그들의 죄가 아무리 깊어도 일어설 수 있고, 지은 죄로 인한 고통과 비참과 저주가 아무리 커도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메시야의 속량으로 언약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은혜는 무한할뿐더러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고 성령으로 새생명을 얻은 시온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칭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권합니다. 주의 의로운 옷을 입고 주의 생명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며,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속하는 구원의 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서는 복음의 공동체는 가짜 신자들과 세상 사람들이 섞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짜 신자들과 진짜 신자들을 분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정확하게 하십니다. 1절의 “이제부터”라는 시기는 바벨론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때를 말하지만, 그 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공식적으로 이 땅에 서는 때를 가리킵니다. 그때는 어린 양의 의의 옷을 입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뚜렷하게 구분될 것이기에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메시야의 의의 옷으로 가림을 받지 못한 부정한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 3:3, 5-7)
한편, 1절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마귀의 권좌를 상징하는 바벨론과 절대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죄와 마귀에 종노릇하던 주의 백성에게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알려주면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용기를 얻어 그곳에서 나오라는 소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사 47:1-4)
이제 더 이상 유다 백성은 티끌에 앉은 바벨론에게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마귀에게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의 권좌는 무너졌습니다. 어린양의 권세가 그의 권좌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께 속한 주의 자녀는 자유를 얻습니다. 자유를 얻고 한없이 즐거워합니다.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 52:2).
예루살렘의 자녀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살면서 사탄이 다스리는 바벨론 백성 사이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가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좋아한 것 때문에 바벨론 포로가 되어 살게 된 주의 자녀들입니다. 하지만 주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할 때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한없는 비참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찾습니다. 고향 땅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 만나 뵙던 주 하나님을 너무나 그리워합니다. 이에 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외치십니다. “죄와 저주와 마귀의 압제에 사로잡혀 신음하던 딸 시온이여! 메시야가 이기셨으니 그의 공로 의지하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이에 구약 교회의 대표격인 이사야가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 52:3).
사랑하는 여러분!
이 구절에서 ‘속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합니까? 속량이라는 히브리어는 ‘가알’인데, 구약 율법에 따르면 이는 기업 무를 자로서 갚을 길 없는 자의 빚을 가까운 친척이 갚아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는 나오미의 죽은 자녀들의 가알로서 그 가문의 기업을 살리려고 모압 여인 룻을 아내로 삼아 오벳을 나았습니다. 그 후 오벳은 이새를 낫고 이새는 다윗을 낳게 됨으로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러므로 보아스의 가알은 다윗의 그 씨인 먼 훗날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알, 즉 십자가의 속량을 예표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하나님 앞에서 갚아주시는 것이 궁극적인 ‘가알’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의 바탕은 그리스도의 속량입니다.
새언약이 담긴 신약을 펼치면,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로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 요한을 얻었을 때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눅 1:67-75)
또한 예수께서 태어나신지 40일째 되는 날, 즉 율법이 정한 정결 예식의 날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곳에 항상 있던 여선지자 안나를 만납니다. 이때 사도 누가는 안나 선지자가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에 대하여 말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
37 …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갓난 아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 2:36-38)
지금 이 사실은 구약의 참된 주의 백성은 예루살렘을 속량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메시야 예수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타 바울의 서신에도 그리스도의 속량에 관한 셀 수 없이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속량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18-21).
즉, 창세 전에 정하신 그리스도의 속량 덕분에 구약 시대에 바벨론 포로로 있던 자들은 해방을 얻게 된 것이고, 누구든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신구약의 백성을 망라하여 죄 사함과 영생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사야 52장 13절부터 53장까지는 실제 주의 백성의 죗값을 속량하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매우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다양같아서그릇행하여각기제길로갔거늘여호와께서는우리모두의죄악을그에게담당시키셨도다
](사 53:4-6)
그리고 주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있는 유다 백성을 향해 그들을 구원하시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그들이 과거에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또한 앗수르의 종살이를 한 것은 이스라엘이 그 제국들에게 빚을 져서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제국의 노예가 된 것 역시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빚을 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사 52:4).
무식하고 어리석은 목사들 중에는 사탄 배상설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지음으로 사탄에게 빚을 지게 되었으니 사탄에게 보상을 해서 사탄의 노예로 있는 자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류*광&수 다락방이라는 이단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빚을 졌습니까? 앗수르에 빚을 졌습니까? 바벨론에 빚을 졌습니까? 그래서 노예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사탄에게 빚을 져서 사탄의 노예가 된 것입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이런 비정상적인 신학을 만들어내는지 황당하기만 합니다.
성경은 주의 백성이 이 땅의 나라들에게 종노릇하게 되는 이유는 주 하나님과의 언약을 멸시하고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주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주의 말씀이 가리키는 장차 오실 은혜 언약의 그 씨인 메시야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 반역하며 더러운 우상들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세상에서 짓밟히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16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왕하 17:6-18)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소금의 맛을 잃고 세상에 짓밟히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율법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 14:33-35).
그런데 바벨론 포로로 있던 남은 자들은 마침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메시야의 속량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그들에게 해방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주님은 주의 언약 백성을 박해하고 괴롭힌 바벨론에게 친히 원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5-6절의 내용입니다.
[
5 그러므로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하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사 52:5-6)
여기서 주의 참된 백성을 관할하며 떠들며 주의 이름을 항상 종일토록 더럽히는 자들은 주의 백성을 멸하고자 하며 조롱하고 박해하던 바벨론에 속한 자들입니다. 애굽 사람들이며, 앗수르 사람들이며, 마귀의 종노릇하는 자들입니다. 나아가 표면적으로는 주의 백성이지만 실제로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가짜 신자들입니다.
이에 로마서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주의 멸망을 받게 될 표면적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주의 백성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주의 백성이 아닌 자들입니다.
[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17-24)
그러나 진짜 신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로 바벨론 포로에서, 그리고 사탄 및 죄책, 나아가 죄성의 노예에서 해방될 것인데 그때 주의 백성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이 받아야 할 영원한 진노와 비참을 하나님의 아들이 받게 된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은혜 언약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을 알리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이렇게 하여 바벨론 포로로 있던 주의 백성은 죄 사함을 확증 받고 마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주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죄와 마귀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주의 백성의 해방은 자신들의 순종에 그 원인이 있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표하는 메시야의 순종과 고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량을 바탕으로 허락하시는 해방은 오직 은혜로 인한 기쁜 소식이며 은혜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기쁜 소식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선한 구원의 역사가 주의 백성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은 바벨론의 노예로 있던 택한 주의 백성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반가운 발이겠습니까!
[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속량)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사 52:7-10)
어느 날 바사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제국의 바벨론 성을 공격하여 그곳에서 술을 퍼 마시던 벨사살을 죽이고 바벨론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유다 백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주의 성전을 짓도록 하라고 하며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로 있던 주의 참된 백성의 절규가 응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레스의 칙령이 떨어진 후로 이 복음을 전하는 전령관이 바벨론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유다 백성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전령관은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산을 넘으며 각 지방에 이르러 그곳의 유대인들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 해방입니다.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들까지 아끼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시는 주 하나님께서 만유를 통치하십니다. 그 통치는 마귀의 권좌인 바벨론의 멸망으로 나타나고 우상 승배로 인해 죄에 종노릇 하던 주의 백성에게는 해방과 자유를 주는 위로로 나타납니다. 그때 주의 백성은 환호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바벨론에게 종노릇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소식은 시온의 파수꾼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은 일제히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셨던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영광을 그들 눈으로 직접 볼 것입니다.
지금 8절의 이 표현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 본 시므온의 노래와 동일합니다.
[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더라
](눅 2:25-32)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바로의 압제 아래 수백 년 있다가 그 압제에서 벗어날 때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유다 백성이 주께서 산헤렙을 죽이심으로 앗수르 제국의 압제와 공갈 협박에서 벗어날 때 얼마나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를 하였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이 가져다 주는 기쁨입니다. 즉, 어둠과 마귀와 죄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선포가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패배인지 승리인지를 기다리던 파수꾼이 아군의 승리를 알았을 때 그 파수꾼이 그 승리의 기쁜 소식을 성읍에 있는 백성에게 전할 때 얼마나 감격하며 좋겠습니까?
저는 매주 매 예배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매주 매 예배마다 이 승리의 소식을 듣고 한없이 기뻐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죄인을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대신 죄값을 치르게 하시고 죄로부터, 마귀로부터,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신 기쁜 소식을 들을 때 어찌 한없는 감사와 찬송과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즐거움을 외칩니다.
[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9-15)
그런데 바울은 이 말씀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는데 그것은 사람에게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고 노래한 후에 곧바로 믿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구원하는 믿음이며 동시에 구원 이후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필요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이는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서 그때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원어로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씀’이라는 원어가 로고스가 아니라 ‘흐레이마’로 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은 그리스도의 ‘흐레이마’에서 생겨납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주시는 흐레이마, 즉 살아있는 말씀에 의해 믿음이 생겨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흐레이마,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으면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성령 안에서 읽고 기도하며 깨달아야 할 것이요, 이처럼 예배 시간에 주의 종을 통해 들려주시는 복음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받아야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의 종이 신실하게 복음을 전할 때, 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침없이 선언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러므로 우리는 기쁜 복음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만일 주의 종이 성경에서 주의 복음을 온전히 증거할 경우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실한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의 역사가,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그리스도를 닮는 영원한 복의 역사가 주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본문 7-9절에서 해방 및 자유와 관련해서 몇 가지 동일한 특징을 봅니다. 첫째, 좋은 소식은 평화를 가져옵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주의 자녀가 화목하게 되기에 하늘의 평강이 그 마음에 임하고 주의 자녀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에 임합니다.
둘째,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그 소식을 반갑게 맞이하며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죄로 인한 모든 고통과 결핍과 무질서와 불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섭리를 분명하게 의식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역시 자기 목숨을 다 바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십니다.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곳에는 천국의 기쁨과 사랑과 풍성함과 질서와 의가 넘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친히 체험합니다.
넷째,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메시야로 우리를 죗값을 속량하여 구원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안심하게 되고 또한 한없는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구속은 (가알)로서 속량과 같은 히브리 원어입니다. 즉, 값을 치르고 사셨다는 뜻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로운 목숨을 율법의 요구에 따라 우리의 죗값으로 희생을 치르시고 주의 백성을 사신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모든 만방에 나타납니다. 이는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복음의 능력이 성령을 통해 모든 열방에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세상 끝까지 모든 열방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10).
이러한 어마어마한 복음의 주인공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우리는 더 이상 죄와 더러운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죄와 마귀와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를 얻고 깨끗하여진 성도들은 더 이상 더러운 것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후 6:14-7:1)
그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앞뒤에서 호위하시며 보호하시고 우리의 삶을 친히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사 52:12).
그리고 바벨론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이후에는 더욱 거룩함과 사랑에 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율법의 강령을 이루어 가리라”(참조, 갈 5:13-16).
특히 바벨론에서 나올 때는 무엇보다 모든 관심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에 있어야 합니다. 11절에서 “여호와의 기구(器具)를 메는 자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침략했을 때 무엇보다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배 기구들을 가져갔습니다. 즉,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시온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해방된 주의 백성에게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가장 소중한 것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새언약 시대에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레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힘쓰며 복음의 능력으로 항상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힘을 낼지어다.” 그리고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라.”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홀로 만나기 바랍니다. 늘 골방 기도를 드리기 바랍니다. 말씀을 연구하며 묵상하기 바랍니다. 오직 새언약인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것이 성도의 정결함의 비결이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누림이 신자의 정결의 비결입니다.
현재 새언약 시대에 우리의 영혼은 이미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불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돈, 학력, 지식, 잘 생김, 인기, 권력 등, 위대하고 큰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지만 그 모든 것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에 소멸될 것들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은 “정결한 것”들입니다. 정결할 때 우리는 이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나타내며 허다한 영혼들에게 영원한 영생의 복과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건네주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 즉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처럼 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 즉 생명의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신자임에도 정결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그 책임을 업신여긴다면 주 하나님의 질투의 불이 타오를 것입니다. 신자임에도 정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제거하여 소멸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24).
“(그러므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이처럼 신자의 정결함이 복된 기쁜 소식을 듣고 구원 얻은 주의 백성이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본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배워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새 사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의 모든 지체가 오늘의 복음의 교훈을 듣고 더욱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아름답고 평강하고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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