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아름다운 덤터기
내 세상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좀 특별한 구석이 하나 있다.
덤터기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지난날은 한사코 덤터기를 쓰지 않으려 애쓴 세월이었다.
손해 보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 ‘이순’(耳順)이라는 예순 나이가 넘어서면서부터는, 툭하면 덤터기를 쓰고는 한다.
덤터기 씀으로 손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때론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지더라는 경험을 거듭거듭 하면서부터다.
그래서 요즘엔 덤터기 쓸 기회가 있으면 그냥 푹 덮어쓰고 만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아내와 두 아들에게 덕담 삼아 해준 말이 있다.
곧 이 말이다.
‘아름다운 덤터기’
엊그저께인 2020년 2월 18일 화요일의 일이다.
이른 아침에 아내와 함께 서초동 성당 인근의 ‘활기원’(活氣院)을 찾았다.
나는 경추 디스크에서 비롯된 왼팔 마비 증세로 자세교정을 받아야 했고, 아내는 손가락 관절 류마티스로 역시 자세교정을 받아야 했다.
내가 먼저 한 시간 남짓의 자세교정을 받았다.
그리고 내 뒤를 이어 아내가 같은 시간의 자세교정을 받게 됐는데, 그 시간을 그냥 무료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차에 늘 비치해두고 있는 책이라도 읽으면서 그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고,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동안에, 내 핸드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확인해 봤더니 알림표시였다.
바로 ‘활기원’(活氣院) 곽치산 원장의 생일이 이날이라는 사실을 을 알려주는 알림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자세교정을 받고 그곳 활기원에서 빠져나온 터였으니, 무시해도 그만일 것이었다.
그러나 내 양심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랬다.
‘다시 올라가 임마! 그래서 생일 축하해 드려야지. 멀리 있으면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 바로 이 건물에 계시잖아 임마! 게다가 마누라 류마티스 고쳐주고 있는 중이잖아 임마! 면전에서 생일 축하해드리는 것이 마땅한 거야! 이왕 축하하는 김에, 맨입으로 할 것이 아니라, 케이크라도 사 들고 가서 축하를 해드려 임마! 마침 바로 옆에 ’김영모 제과점‘ 있잖아. 그 주인이 고등학교 후배라면서. 그동안 그 빵집 앞을 숱하게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그 빵집 안 들렸었잖아. 마침 잘 됐네. 후배의 그 빵도 좀 사주고, 곽 원장 생일 축하도 좀 해줘 임마! 그걸 일석이조라는 거고, 꿩 먹고 알 먹고 한다는 것이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한다는 것 아니냔 말이야. 돈 아깝다 생각하지 마! 허구한 날 헛돈 써대면서, 그 몇 푼 한다고, 아끼려고 드는 거야. 오늘 쓰는 돈은 그대로 감동 한 소쿠리가 되는 거란 말이야. 아름다운 덤터기가 되는 거지. 우물쭈물 하지 말고, 당장 실행 해! 임마!’
결국 그 양심의 말을 들었다.
“제 생전에 저를 찾는 손님한테 생일 케이크를 선물 받아보기는 오늘 처음입니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이 케이크는 오늘 저녁에 집으로 들고 가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맛있게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에게 이 감사한 사연에 대해 설명을 할 것입니다. 귀한 덕담 자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와 같은 감사의 말과 함께 내 그 선물을 받는 곽 원장의 얼굴에 함박꽃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하루 뒤인 같은 달 19일 수요일의 일이었다.
저녁나절에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으로 나를 찾아온 귀한 방문객이 있었다.
우리 문경중학교 18회 동문으로 우리들 ‘재경문경시산악회’의 핵심 일꾼인 이성환 사무국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서초동에서 누구와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그 누구가 바람을 맞히는 바람에 허탕을 치게 되었다고 했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선배인 나를 문득 생각해서 달려온 것이라고 했다.
오겠다는데, 손사래 쳐 오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오라고 했고, 그래서 온 김에 저녁을 같이 했고, 술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일찌감치 저녁밥은 먹었고, 이어진 술판도 어지간히 끝났다 싶을 때쯤에, 이 국장이 그렇게 화장실 핑계를 대면서 슬그머니 일어서고 있었다.
‘핑계는 저리 대지만, 필경 오늘 이 저녁 밥값 술값 덤터기 써주려고 가는 걸 거야.’
내 짐작이 그랬다.
그리 짐작했으면서도, 내 묵묵히 그냥 뒀다.
슬쩍 이 국장의 동태를 살폈다.
역시 그 짐작대로였다.
화장실로 가는 척하더니, 금방 뒤돌아서서 계산대를 찾고 있었다.
아름다운 덤터기였다.
이날 이 국장은 판 끝에 헤어져 가면서, 이렇게 한 마디를 남겼다.
“덤터기 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을 내게 띄워 보냈다.
글 한 줄 없이, 그저 달랑 음악 한 곡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 곡, 내 너무나 좋아하는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의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 그 노래였다.
또 그 하루 뒤인 같은 달 20일 목요일인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야들이 온다네요.”
점심때쯤에 아내가 하는 말이 그랬다.
대충 누군지 감을 잡았다.
그래도 시치미를 딱 떼고는, 이리 물었다.
“오긴 누가 온다는 거요?”
슬쩍 음성을 높였다.
반갑긴 하면서도, 그동안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않음에 대한 내 작은 분풀이를 담은 것이다.
“누구긴요. 춘천 아들이 점심 먹으러 온다는 거예요.”
그렇게 답을 하는 아내의 음성에도 살짝 꼬임이 있었다.
내 응대는 그쯤에서 끝을 냈다.
아내의 그 꼬임으로 시비를 하다가는 자칫 부부싸움으로 번질 위험성이 없잖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뒤에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으로 들이닥친 막내와 막내며느리와 함께 서초동 먹자골목에 새로 개업한 ‘등촌 샤브 칼국수’집을 찾아 점심을 같이 했다.
그 끝의 일이었다.
“야들 빵 좀 사주세요. 엊그제 그 빵 참 맛있던데...”
아내의 말이 그랬다.
그 순간, 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마누라가 왜 내게 덤터기를 씌우는 거야! 이 달 월급도 아직 안 줬잖아! 그러면서 왜 나보고 돈 쓰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김영모‘ 그 빵집이 여기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 사주고 싶으면 당신 혼자 데리고 가서 사줄 일이지, 왜 굳이 나를 끌어들이느냔 말이야!’
속생각은 그랬으나, 입 밖으로는 꺼내지를 못했다.
겨우 꺼낸 말이란 것이, 이랬다.
“좋아. 가자. 이왕 사주는 거, 야 친정 어른들 몫도 챙겨드려야지.”
입에 발린 말이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 폭 풍경화 같고 한 권의 책 같을, 내 얼굴에 드러나는 풍경으로 금방 속내가 들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잠깐의 사이에, 내 속마음에 진정을 실어야 했다.
그래서 정작 입으로 그 말이 튀어나갈 즈음에는, 흔쾌히 기뻐하는 내 마음을 담은 얼굴 표정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비겁한 선심이었다.
“아버님, 이런 고급 빵집은 제 생전 처음이에요. 빵이 참 맛있어요. 공짜로 맛보는 빵이 갖가지여서도 좋고요. 저들만 챙기시는 것이 아니라, 제 친정집까지 챙겨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챙겨주시는 아버님 마음을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친정집에서도 참 좋아하실 겁니다.”
김영모 빵집에서 빵을 골라 담던 막내며느리가, 내게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었다.
막내며느리의 그 한마디, 내 비겁한 선심을 아름다운 덤터기로 새롭게 포장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