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던져라 / 이승하
던져라 박찬호처럼 류현진처럼 혼신의 힘으로
타인의 가슴이 아닌 미트 속으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배구공처럼 때리고 탁구공처럼 치고
농구공처럼 던지고 축구공처럼 차라
내 몸은 탁구공처럼 가벼울지라도
내 마음은 골프공처럼 단단했으면 한다
올인원은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럭비공처럼 안고 뛰어야 할 때도 있었다
사람을 헤치고서, 뿌리치고서 터치다운
목표지점까지 앞만 보고 내달려야 할 때도 있었다
경기에서는 대승도 있고 대패도 있을 테지만
인생에서는 실패만 아니면 다행이다
공의 안은 비어 있어 공(空)이다
비어 있어야 한다
비워낼 줄 알아야 하는데
채우려고만 햇다 살아보니 공허였고
경기장 밖의 공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구가 둥글게 생긴 것처럼
세상은 모나지 않고 둥그런 것을
그래서 혼신의 힘으로 던지는 것이다 공을, 공허를
-- <시산맥>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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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 시인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 『나무 앞에서의 기도』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예수·폭력』 등.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으로 경기문학대상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