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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역 옆 도깨비시장 샛길을 지나 수락산 자락에 접어드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바로 발밑 땅 속에서 연속적으로 폭약이 터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터널 공사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었더라면 지진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수락산 터널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일산~퇴계원 구간(36.3㎞)으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을 이어주는 연장 5.18km의 장거리 터널이다. 시행사는 서울고속도로주식회사이며 제5공구 시공사는 금호건설(3.47km)과 롯데건설(1.71km)이다.
현재 터널 굴착 공사의 공정률은 70% 이상으로 구간에 따라 2006년에서 2008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정대로 터널과 고가도로가 완공되면 1991년 12월부터 단계적으로 공사가 시작된 서울외곽순환도로(총연장 127.3㎞) 건설이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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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월 수락산-불암산 구간 공사 현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심각하지만 완공 후에 불어닥칠 환경재앙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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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시행사는 일산~퇴계원 구간의 완공으로 수도권 북부지역에 여러 가지 경제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되며, 차량 통행속도의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만으로도 개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수락산을 보면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터널 굴착 공사가 어떠한 '합법적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수락산은 떨고 있었다. 땅도, 길도, 나무와 바위도 떨고 있었다. 한파 때문에 떠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용솟음치는 진동에 의해 떨고 있었다. 떠는 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한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날마다 그 길로 산행을 한다는 지역주민 이금옥씨(51)는 "산에 들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게 폭발음인지는 최근에서야 알았다"며 "이런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막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또 "오늘 집에서 나서기 전에 지율 스님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누구 좋으라고 터널을 뚫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사가 아까운 목숨을 죽이는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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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지리정보원 25000:1 축척 지형도. 학림사 바로 아래로 터널이 뚫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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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목적지인 학림사 가는 길가에 있는 절들을 먼저 들러보았다. 최근에야 중창을 끝낸 것으로 보이는 석가사와 지장사는 건물 외벽에 쩍쩍 금이 가 있었다. 석가사는 축대 역할을 하는 30여 미터의 계단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누더기처럼 임시로 땜질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여기 저기 새로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L건설 관계자가 현장에 나와 있었다. 안전진단 때문에 나왔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측량 때문에 나왔다. 사실 안전 문제는 우리 관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터널 공사를 끝낸 상태이며, 사찰 건물 붕괴 문제는 현재 공사 중인 건설사(K건설)에게 책임이 있다"며 자리를 피했다.
학림사에 도착하자마자 경내를 둘러보았지만 얼른 별다른 흠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종무소에서 처사로 일하는 임종기씨(48)의 안내를 받으면서 기자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과 종무소, 다원, 강당 등이 있는 청학루(靑鶴樓)의 지반이 통째로 움푹 꺼져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벽 곳곳에 굵직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 건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립니다. 균열되는 속도가 눈에 보이거든요. 여길 보세요. 대들보가 장작처럼 갈라져 버렸잖아요. 새벽에 잠을 자다가도 천둥 같은 폭음소리에 벌떡 일어납니다. 금방이라도 건물이 땅 속에 파묻힐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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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림사 청학루. "발파공사를 중단하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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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임씨는 참담한 표정으로 오백나한전과 미륵불, 삼성당, 대웅전의 피해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기둥이 갈라지거나 문틀이 틀어져 문이 서로 뒤틀려 있었다. 게다가 주초석마저 계속 균열이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대웅전 뒤뜰 축대가 배흘림기둥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어 위태로워 보였다.
경내의 평평한 땅은 물론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 주변의 비탈도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었다. 땅이 갈라졌다는 것은 지하의 물이 말라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수백 년 된 주변의 느티나무들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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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불상과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가 보인다. 미륵불 기단 곳곳에 금이 가 있어 불상이 기울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600년 수령을 뽐내는 소나무 주변 땅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갈라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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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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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문 아귀가 뒤틀려 있다. 다른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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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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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뒤 축대. 배흘림처럼 둥글게 튀어나와 있다. 축대가 붕괴되면 대웅전까지 무너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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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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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각 지반과 주초석들도 심하게 갈라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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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종각 왼쪽에 있는 샘터에는 '터널 발파공사로 물이 안 나옴. 사용을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한파로 인해 샘이 얼어붙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임씨는 손사래를 쳤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이 샘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약수가 콸콸 솟아났거든요. 만일에 대비해 보온까지 한 상태인데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 물이 좋은 것은 신도들뿐만 아니라 등산객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지하수가 말라버린 겁니다. 그건 시공사 측에서도 인정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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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들과 등산객들로부터 사시사철 사랑을 받던 샘이 지난해부터 말라 있다. 경내 식당에서 사용하는 지하수도 거의 수맥이 끊어질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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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대책위 사무장 태남실씨(45)는 "지금까지는 개인의 생존권 문제로 접근했는데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절뿐만 아니라 수락산 전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행사나 시공사 모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건물 피해에 관한 보상은 한다 하더라도 산이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라며 분노했다.
또 그는 "봄이 되어 해빙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발파 작업으로 진동이 계속되면 그만큼 균열이 축적되기 때문에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건 수락산, 불암산, 도봉산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수도권 주민들의 목숨이 달린 상황이다"며 심각하게 말했다.
기자가 시행사와 시공사에 전화를 했을 때 '책임'을 인정하는 관계자는 없었다. 시공사는 모든 문제 해결을 시행사에 미뤘고, 시행사에서는 "피해 건물주들과 보상을 협의 중이지만 터널 공사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는 시공사에 물어야 한다"며 서로 책임을 회피했다.
또 시행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사는 아무런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주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저진동 기술로 발파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서 하는 말인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지금 수락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현재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천성산 터널 공사의 위험성을 예견해 준다. 더구나 단단한 화강암반으로 이루어진 수락산에 비해 천성산의 지질구조는 활성단층대로 붕괴 위험은 더욱 심각하다. 바싹 말라가는 수락산과 100일 동안의 단식으로 뼈만 앙상해진 지율 스님의 모습에서 천성산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자연환경 파괴 문제는 수락산의 사찰이나 수목들, 천성산의 늪지나 꼬리치레도롱뇽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지율 스님의 단식은 끝났지만,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의 단식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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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림사 큰스님인 도원 스님이 구청 직원들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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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김남용 |
| 학림사 큰스님인 도원 스님은 단식까지 가게 된 지율 스님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사회에 하나의 해법을 제안했다.
"육체는 소우주이며, 자연은 대우주입니다. 육체와 자연은 하나의 우주이니 우리 인간의 도리는 자연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미래를 함께 해야 합니다. 지금 보십시오. 자연을 거스르니 재앙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편의를 위한 개발도 좋지만, 앞으로는 환경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들이 환경에 대해 눈을 떠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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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오전 10:18 |
ⓒ 2005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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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머나...세상에....학림사는 제 친구네 절인데......오빠가 목사님인데 제 친구가 cc커플로 시집간 집안.....큰스님(큰형) 작은 스님(작은형)의 걱정이 크시겠군.
예전에, 백두대간에 엿락같은 철봉을 박았다고 난리를 치던 놈들은 다들 죽었나.... 화강암 지대를 폭파를 시키면, 어디가 어떻게 균열이 생길 지, 얼음을 바늘로 때려보면 알 것이다. 수락산은 이름 그대로 질 좋은 수자원 지대인데, 모두 말라버리겠다.
앞으로는 더욱 청정 자연이 가장 가치 높은 시대가 될 것인데...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후손들에게 남겨줄 청정 자연을 망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