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하중 장로가 쓴 "하나님의 대사"가 베스트셀러다.
읽는 사람마다 은혜 받았다고 하고, 김하중 장로를 믿음의 표준으로 삼으려고 한다.
교회의 한 형제가 책을 건네주면서 읽고 한번 판단해달라고 했다.
읽어보니,
김하중 장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주중 대사를 역임하신 분으로,
역대 어느 주중대사보다 훌륭하게 역할을 잘 수행했으며,
대사로 있는 동안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내용이 은혜가 되고, 도전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도 역사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우려하는 몇 가지 있다. 이런 것을 피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메마르고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을
깨우는데 유익한 책으로 적극 권하고 싶다.
첫째는, 김하중 장로의 은사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는 김하중 장로를 무척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런 삶을 살기를 갈망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침묵에서 종종 좌절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답을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멋있고, 신나겠는가!
어떤 역경에서도 하나님께서 한마디만 해주신다면 우린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신령한 사람도 언제나 하나님의 대답을 듣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하나님의 대답을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갯세마네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에 봉착하셨었다.
물론 책을 보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서 모든 대답을 해주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간증이 갖는 위험중에 하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공적인 것만 묘사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사실 김하중 장로도 삶 속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침묵에 봉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김하중 장로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결코 일반화될 수 없는 은사다.
모든 사람이 그런 은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0 - 11에 보면,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어떤 이에게는...”이란 말은 “모든 자에게”라는 말과 비교되는 말이다. 성경은 모든 이에게 예언함을 주신다고 하지 않고,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주신다고 했다.
그의 사역이 아무리 귀해보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어도 우리는 그의 은사를 인정할 뿐이지 그의 은사를 일반화하여 나도 그런 은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면 주실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은사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의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은사가 나타나야 마치 정상적이고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교회에는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고 저런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다.
모두가 자기 은사를 따라 봉사할 따름이다.
김하중 장로는 예언의 은사는 가졌으나 성경을 강해하는 은사는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지금쯤 성경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기도는 탁월하지만 목회는 탁월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주시지는 않는다.
모든 은사를 다 가지고도 교만하지 않을 위대한 인간은 없다.
전지전능한 것과 비슷한 슈퍼맨의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는 타락된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주변의 사람이 그 사람을 그렇게 인식하면 그는 타락하게 된다.
오늘날 상당수의 한국의 큰 교회 목사들이 그런 이유로 주님을 떠나서 배도의 길로 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김하중 장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간주하되,
그의 은사가 표준이 되어서는 안되고,
그의 은사가 아닌 단지 그의 순종하는 태도와 주님만을 갈망하는 태도를 배우려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오해다.
김하중 장로의 간증 속에서는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말하시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속 마음을 꿰뚫어보는 말씀들을 주셔서 권면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일인칭으로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이라"로 시작하는 권면의 말씀들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런 식의 예언은 성경에서도 요한계시록 외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나 갈라디아교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가?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정경완성 이후에 이런 것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하며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은사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어떤 방식으로도 역사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정경완성 이후에도 여전하고, 여전해야 한다. 아직도 성경의 문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성경의 표준이고 어떤 것도 덧붙일 수 없음을 나도 인정하지만, 그 표준을 따라 일어나는 그 다양한 성령의 역사를 어찌 인정하지 않겠는가!
성령의 은사들이 형제들에게 힘을 주고 교회에 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언만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오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한다.
김하중 장로 자신도 기도 응답을 아는 방법 중에 하나가 기도하다가 손이 번쩍 들리면 그것이 응답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예언과는 다른 대목이다.
사실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가에 대해 아는 방법이 다양하다.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성령님이 계신다.
그분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 5:16)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립얀시는 그의 책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에서 친구 켄과 나누는 대화를 소개한다.
‘갑작스런 정욕과의 싸움, 교만에 대한 회개, 사과와 용서가 필요할 때의 강한 느낌 등 이 모든 것은 불타는 떨기나무처럼 강렬하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신다는 표시가 아니겠는가? 그런 요소들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내 속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준다네’
나는 앞에서 켄이 묘사한 그런 작은 승리들은 성경 시대에 일어났던 기적보다 훨씬 더 많은 기쁨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도소를 방문하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며, 가난한 이웃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헤비타트 운동을 벌이고, 아이들을 입양하며, 망명자 가족을 반갑게 맞이하는 많은 '평범한'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모든 일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행하고 있다.
당신은 성령충만한가? 라는 질문에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답할까?
그는 아마 성령님께서 만들어내시는 성품들 - 사랑, 기쁨, 화평, 선행 등-의 목록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표현하고 있는가?
바울의 모든 서신서는 사랑과 봉사의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기도하고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병든 자를 위로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겸손할 것을 부탁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시는 ‘평범함’-그러나 사실은 비범한-사역들을 감히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평범한 일들은 성령 충만한 삶의 표시이며, 가시적인 세계에 비가시적인 영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증거다. 패커는 그런 부분을 소홀히 여기는 교회를 질책했다.' (필립얀시.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 12장)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도 너무도 귀하고 신령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째, 사람들이 너무 의존적이 될까 두렵다.
들어보니, 요즘 김하중 장로의 간증집회가 많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김하중 장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보려고 구름같이 모이고 있으며 이 열풍은 점점 더해질 것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에게 종속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왕같은 제사장들이다.
우리는 직접 하나님께 나아간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중개자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형제들은 우리들의 지체로서 도울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의 예언에 의해서 인도받으려고 하는 것이 영적 생활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이 부분으로 인해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했는지 나는 많은 간증들을 알고 있다.
김하중 장로는 그의 책이 더 팔림에 따라 사람들이 그를 더욱 대단하게 여기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 점점 더 바쁘고 더 많은 예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예언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주시는 것이 아니다.
만일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주신다면 오히려 그의 예언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깊은 딜렘마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몰려올 때, 무언가 권면의 말을 해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신다면 그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그래서 적당히 위로해주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될 것이다.
그것은 김하중 장로에게는 무척이나 유혹일 것이다.
주님이 침묵하실 때, 침묵할 수만 있다면 그의 사역은 오래갈 것이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적당히 인간적인 생각으로 권면하기 시작한다면, 그의 사역은 오래지 않아 변질될 것이다.
나는 그분이 한국교회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순수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주님의 정직한 종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사람들의 칭송에도 스스로 낮출 수가 있다면 그의 사역은 오래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면, 그분도 예외없이 한 때 사용되고 폐기되는 저 대형교회 모 목사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정말 나는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교회에 큰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분이 참으로 진실하게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리고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해있는 이 비참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두려움없이 주님의 멧세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목회세미나라는 것이 목사들 모아놓고 주님께서 걸어가신 섬기는 삶을 본받으려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도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자기 말 잘 듣게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성도들 집 담보잡혀서 세상 돈 대출받아 예배당 크게 지을 수 있는가를 강의하는 이 기가막힌 한국 교회 현실,
형제사랑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실천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왜곡하고,
십일조와 주일성수가 복음의 핵심인양 말하고, 교회 형제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데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헌금만 강요하는 이 거짓된 설교자들을 향해서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김하중 장로에 비해 보잘 것없고 미미한 사역을 하는 자가 감히 이런 말을 한다고 질책해도 좋다.
나는 김하중 장로의 모든 것을 기도로 준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태도를 존경한다.
나는 그분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훌륭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진심만은 알아 주었으면 한다.
나는 이 책을 기도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거나 메마르고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유익한 책으로 추천한다.
첫댓글 최야곱님 교회와 가정ㅇ두루 평안하시죠
저도 이분의간증을 옛 예배당에서 간증사를초청하는
들었는데요 가만이생각해보니 주중대사 이말이 떠올라그분이구나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간증은 잘듣지 않는편이나 그당시에는 봉사의일로
그분의간증을 듣게되었는데 교회지체들 대부분 좋아하며 손뼉을치더라구요
하나님께서 각 필요한대로 은사사역을주셨는데 혹 잘나가는 간증사들은
돈벌이로 똑같은패턴의 간증을한다는소리를 듣고 간증은 그런것이아닌데
하고 저는실망을한 사랍이지요 그분을깍아내리는것이아니라
현실이 그렇게나타난다는것이 마음도 아팠지요 어째든지 저도그렇고
은사에감사하더라도 자랑은 하고다니지 말았으면 생각
감사합니다. 그런데 김하중 장로님은 제가 들어본 바로는 자랑하는 분은 아니고 매우 겸손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초심을 잃지 말고, 귀하게 쓰임받았으면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예저도 그분을 어떤 분이라고 평한것이 아니고
그분의 간증속에는 제가 혹 오해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지만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방송에도 나오신 것으로 압니다 저는 그분의저 서는 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기에 따라서 이하하는 부분도 틀리다고 봅니다
그러나 주의 나라에서 겸손하며 귀하게 쓰임받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습니다 감사해요
최야곱님 반갑습니다.^^
저는 요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분들의 생각 중에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문제입니다.
처음에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때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녀가 되었지요.
그때의 성령의 역사는 그야말로 폭팔적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하고 매스컴이나 책을 통하여 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 물질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믿는 사람들의 심령이 선악과 먹은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진정으로 회개 하라고 하시지만 세상에 몸담고 있으면서 주님을 따르는 흉내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28장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이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간증이나 집회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가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한 것이요 하신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었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선을 행하는 문제입니다.
마22장에 보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툴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과 율법사가 같이 있을때 율법사가 시험하여 물을때 이르신 말씀입니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11:13)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요13:34)
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중에 모든 계명이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형제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거듭나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달음질 하기를 향방없이 하는 것 같이 하고 싸우는 것을 허공을 치는 것 같이 구제를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오해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성경적 균형이 있는 귀한 글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중국 선교의 현실을 볼 수 있고 또 중국의 (기독교적)미래에 대한 어느정도의 가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중국의 기독교적 미래와 관련하여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중국 현지에서 교육사업에 힘쓰는 카이스트 박사 출신 최하진 부부의 스토리가 참고가 될듯 합니다. 1."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최하진,규장) 2."네 인생은 주님 것이다(최수현,규장), 그러고 보니 부부가 다 최씨네요..
균형이 정말 제대로 잘 잡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추.. (^_____________^)
잘 분석하신 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이책 신비주의적인 면 때문에 비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