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총리실 자비드 악탈씨 전환데요” 최근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비서가 아연
긴장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슴을 알려 줬습니다.
“악탈씨, 안녕하십니까? 이제병입니다”
“이사장님, 축하합니다. 지금 막 총리주재 ECC (Economic Coordination Committee : 경제안건 조정회의) 각의에서 귀사가 도입하는 버스에 대해 모든 세금을 감면해 주기로 의결을 했습니다.”
“16댑니까? 32댑니까?”
“16댑니다. 왜, 성에 안 차십니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곧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더 이상은 대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지난 3개월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눈 앞에서 되새김되고 있었습니다.
II. 덴마크의 어느 만화가가 작년말엔가 그렸다는 회교 예언자 모하메드의 커리커춰. 모하메드의 얼굴을 흉칙한 털복숭이 테러리스트로 묘사하고 머리엔 심지가 불타고 있는 폭탄을 터번처럼 얹고 있는 그림입니다. 제가 봤을때도 서구인들의 이런 교만한 자세에 개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럴진대 막상 무슬림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들은 예언자 모하메드를 신성시하여 얼굴은 물론 신체의 어느 부위도 형상화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 하여 금기시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써야할 때도 꼭 이름뒤에 PBUH(Peace Be Upon Him)을 붙이는 정돕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그리도 중요하다면 마찬가지로 타인종들이 믿는 회교나 불교에도 진지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고 최소 희화화만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커리커춰가 금년들어 갑자기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프랑스와 독일의 신문에 전재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수십억의 인구가 목숨을 걸고 신성시하는 대상을 흉칙한 테러리스트로 희화화시키고는 언론의 자유라구요? 입장을 바꿔 모슬렘이 예수님을 이런 형상으로 신문에 게재했다면 당장에 십자군전쟁이라도 일으킬 사람들 아닙니까?
예상대로 회교국들의 반응은 심각했습니다.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NWFP (North West Frontier Province : 파키스탄 4대주중의 하나) 는 그 중에서도 관심의 초점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탈레반의 양성처였을 정도로 회교 원리주의의 중심지이고 오사마 빈 라덴의 가장 유력한 은신처로도 꼽히는 곳입니다. 州정부도 원리주의자 야당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며 심지어 우리 버스에서도 서양냄새가 나는 ‘audio-video service’조차도 제공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파키스탄 전국은 아연 엄청난 긴장에 휩싸였습니다.
III. 2월 14일, NWFP정부는 州내의 모든 운수업체에게 대규모 항의소요가 예정된 2월 15일은 모든 영업을 중지하고 버스는 각자의 터미널에 주차하여 둘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뭔가 석연치 않아 보호대책을 묻자 경찰병력을 파견하여 만전을 기하겠다는 답신이 왔습니다. 통상 페샤와르가 주 터미널인 버스 16대와 밴 3대등을 한꺼번에 동일한 장소에 계류하게 된 이유입니다.
또 NWFP의 많은 영업소중 페샤와르가 제일 규모도 컸고 영업소장으로도 제 나름대로는 가장 심임하는 자베드가 있어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됐었습니다. 본부에 오래 데리고 있어 잘 아는 친구로 사람이 정직하고 특히 회사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젊은 친구입니다. 따라서 Swat보다도, 아보타바드, D.I.Khan 터미널보다도 그 중 마음이 놓였었습니다. 또 우리 터미널 바로 옆이 공용주차장이라 수없이 많은 버스들이 지척에 주차하고 있다는 점도 여차하면 ‘共助’가 되겠지 싶었습니다.
IV. 2월 15일. 조마조마한 가운데 계속 급보가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10시경부터 시작된 소요는 시내 도처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한 떼가 몰려 왔다가 다른 쪽에서 또 다른 군중들이 몰려 오고. 그때마다 자베드및 터미널 직원들은 바리케이드가 쳐 진 터미널 구내 밖으로 나와 ‘漫評을 규탄하는 현수막’들을 들고 시위군중을 격려하고 일정 한도에서는 군중들과 함께 어울리고들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11시경, 보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옆의 공용터미널에 자리한 동업자들이 느닷없이 “’D’ for ‘Denmark, ‘D’ for ‘Daewoo’”라는 팻말을 급조하여 군중들의 관심을 우리 회사쪽으로 돌리며 선동하고 있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보고였습니다. 연이어 직원중 1인이 이미 총을 맞았다는 보고가 올라 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페샤와르는 마약과 총기거래가 거의 아무런 제약없이 이루어 지는 곳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총기를 휴대하고 있고 또 총기의 사용도 빈번한 곳입니다) 이 시점에서 파견된 경찰들은 전원 도주를 했습니다. 하도 돌발적으로 벌어진 상황이라 경찰들은 변소로 뛰어 들어가 제복들을 벗어 던지고 내복차림으로 도주를 했다 합니다.
NWFP경찰에 전화를 했습니다. 군대에도 전화를 했습니다. 이슬라마바드의 소위 권력자들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대사관에도 전화를 하고 ---- 회사의 일부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매달릴 곳은 공권력뿐이었습니다. 한결같은 대답들이 돌아왔습니다. “금방 지원병력을 보낼테니 염려마시오!”
동료가 총에 쓰러지고 빤히 아는 동종업체직원들이 총을 쏴 대며 버스에 방화를 시작하자 직원들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졌습니다. 자베드가 앞장 서서 근처 가게에 들어 가 총기 4정과 탄알 약 600여발을 강취해와 직원들 앞에서 외쳤답니다. “버스냐? 우리의 안전이냐?” “버스가 더 중합니다!” “죽기로 싸우자!” (제 말씀이 전혀 과장이 아닌 것은 그 후의 여러 진술을 통해서 입증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하늘을 향했던 총구가 차츰 내려져 맞 교전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수천명대 단 60명의 대결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습니다. 1시간 40여분에 걸친 사투도 ‘불의 축제’에 꼬여 드는 나방이들을 쫒아 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울음으로 범벅이 된 자베드의 전화는 오히려 저를 갈아 앉혔습니다. 이미 모든 버스는 재로 변했답니다. 와중에 사무실은 철저히 약탈당하고 불붙고 있는 버스에서 와이퍼까지 희희낙락 탈취해 갔답니다.
“어디에 있나?”
“구석진 곳에 피신해 있습니다”
“몸조심하게! 참, 정부의 지원병력은 왔었나?”
“사태악화의 우려가 있다는 핑계로 단 한 명도 안 왔습니다”
V. “간다!” 제 성질을 아는 직원들 모두 아연해 할 때 그 중 나이먹은 수힐이 정색을 하며 제 팔을 잡았습니다.
“어딜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딘 어디야? 페샤와르지. 이 상황에 내가 본부에 앉아 있게 됐나?”
“왜 이러십니까? 가서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겁니까? 이미 페샤와르는 모든 것이 불 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또 페샤와르만이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 곳 라호르는 어쩔꺼며 다른 도시들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며칠 있으면 이 곳에 오게 되어 있는 미국대통령 부시 때문에도 전국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고, 날이 갈수록 소요는 더 심해질 뿐입니다. 사장이 안 계시면 누가 이 모든 것을 지휘합니까?”
“-------. 그럼 페샤와르는 어떻게 하지?”
“결정을 내리십시오. 당장의 복구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후 천천히 결정하시겠습니까?”
“------“ 그 와중에 복구를 꿈꾼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이미 불과 피를 본 군중들이 있는 앞에서 복구를 한다? 아니라면 그렇다고 멍하니 기다려?
VI. 하도 악을 써대다보니 2-3주전 수술받아 아직 완치가 덜 됐던 목구멍 수술부위에서 다시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끊었던 담배를 서,너대 연달아 피운 뒤 (나쁜 줄 몰라서가 아니라 몸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직원들을 불렀습니다.
“누가 내 대신 가겠나?”
“제가 가겠습니다.” 젊은 과장 까시프가 주저없이 나섰습니다. 연이어 서, 너명이 자원을 했습니다.
“현지 직원들을 수습해서 복구를 시작하게! 그리고 인근의 라왈핀디나 다른 터미날에서도 지원자를 모집하게. 계속 보고하고. 단, 정말이지 다치면 안 되네.”
“당장 떠나겠습니다” 두 손을 마주 잡은 까시프의 두 눈에 눈물이 비쳤습니다. 아니면 제 눈에 뭐가 그렁대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VII. 상황을 재점검했습니다. 페샤와르는 페샤와르고, 다른 도시까지도 화를 당한다면 그것은 즉 회사의 종말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곳이고 심각하긴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슬림들의 악에 바친 항의, NWFP고, Punjab이고가 없었습니다. 라호르만 해도 길가에 다니는 차량들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Punjab주수상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NWFP에도 전화를 했습니다. 엄청난 피해를 TV를 통해 생생히 목도한 수상들의 반응은 진지했습니다. 즉각 대우 터미널이 있는 모든 도시에 특수부대원 (Frontier Constabulary)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봤던 중무기들이 터미널앞에 배치됐습니다. 이들 F/C에 대한 일반의 두려움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들의 별명이 ‘머리와 심장은 없고 가진 것은 오직 눈과 손가락뿐이다’할 정도로 무자비한 진압특수부대랍니다.
버스의 주차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운행이 끝나면 인근의 경찰이나 군부내 내부로 주차케 했습니다. 목적지 터미널에 안전이 보장 안 되면 인근의 길 가에서 승객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운행은 최소한도로 줄여야만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근일내로 파키스탄을 방문할 예정으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긴장은 긴장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VIII. 까시프일행으로부터 보고가 왔습니다. 터미널로 잠입(?)하여 피신해 있던 터미널 직원들을 독려하며 즉각적인 복구작업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낮을 꼬박 새웠답니다. 갈아 입을 내복조차 없는 채. 중장비를 수소문하여 불탄 버스를 구석으로 치운 후 천막을 사들여 임시매표소까지 마련하였답니다.
교전을 진두지휘하던 자베드는 일단 먼 곳으로 전보조치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져 보복받을 것을 우려한 조치였습니다. 주정부및 군대의 확약을 받았지만 도무지 미덥지 않아 10명의 특수부대원을 1개월 기한부로 고용(일종의 용병)하여 최대한의 보안조치를 마련한 후 다른 터미널로부터 페샤와르로 버스운행을 재개토록 했습니다.
IX. 응급조치를 끝낸 후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했습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웬만한 TV와 신문사들은 거의 모두가 기자들을 파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당히 선언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직원 모두는 漫評사건을 마음속으로부터 비난합니다. 저는 이 사건이 만평과는 전혀 무관함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금번 항의의 진정한 의미를 저는 잘 알고 있으며 저 또한 여러분들과 똑같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요의 뒤끝에는 항용 꼭 몰지각한 자들의 방화나 약탈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곳이 뉴욕이던, 또 최근 세상을 시끄럽게 한 뉴올리언스건 똑 같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 이곳 페샤와르에서 재연됐을 뿐입니다.
저희 회사는 외국회사이기 이전에 파키스탄의 회사이며 회사의 자산인 버스도 바로 파키스탄인 여러분들의 공동자산입니다. 어디에고 있을 수 있는 이번 난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귀중한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금번 사태를 계기로 저는 더 겸허하게 여러분 고객들을 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페샤와르는 사고 이틀후 이미 운행을 재개했습니다. 약속드립니다마는 일주일내로 운행을 정상화시키겠습니다. 버스 16대가 불탔으나 저희는 그 갑절인 32대를 들여 와 운행을 강화하겠습니다. 불탄 자리에는 저희 회사 최고의 터미널을 짓겠습니다. 더 튼튼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한 써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다음날 제 인터뷰기사는 파키스탄의 거의 모든 신문에서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저는 졸지에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외국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날 늦게 사무실에 돌아 와 이 나라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의 초고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X. 반응은 예상을 넘었습니다. 격려편지만 500여통이 넘어 왔고 개중에는 회사와의 거래를 저때문에 단절당한 납품업자의 것도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총리의 편지도 답지했습니다.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승객들의 반응도 의외였습니다. 사고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 주었습니다. 경쟁사를 비난하며 임시로 차린 천막으로 찾아들 오셨습니다. 사실 사고도 사고지만 저의 더 큰 고민은 사고이후의 승객들의 반응이었습니다. 혹시 외국회사임이 과민하게 부각되어 탑승거부운동이라도 일어나면 어떡하나? 테러대상버스로 인식되면 어떡하나? 버스라는 재산의 손실이야 어찌어찌 감수한다 하더라도 승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이야말로 치명적인 손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오그라드는듯한 하루, 하루였습니다마는 행운의 여신은 저희에게 밝은 미소를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XI. 보험사가 카라치로부터 급히 찾아왔습니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여부를 기다리는 긴장감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왜 16대씩이나 하는 버스를 한 곳에 주차시켰나요?” “소요가 있을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텐데 어떤 필요조치를 취하셨나요?” 면접시험 치르듯 차분히 설명을 했습니다. 다음날 부보금액 전액의 50%가 수표로 왔습니다. 후일담입니다마는 부보금액 전액 (장부가의 104%에 해당)을 수령했습니다. 자기 회사 생긴 이래 몇 안되는 엄청난 보험금액이며, 작년 계약갱신시 폭동보험을 추가시킨 행운에 대해 축하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XII.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해 보십시다.”
느닷없는, 그러나 고민 고민끝에 내놓은 제안에 직원들 모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습니다. 재무를 담당하는 이남이 머뭇 머뭇 말을 꺼냈습니다.
“어떤 형태로요?”
“현금보상이야 어렵겠지만, 정부로서도 당연히 귀책사유가 있으니 세금감면이라도 받아야하지 않겠소?”
“무슨 세금이요?”
“교체용으로 들어 오는 버스에 대해 세금감면을 신청하면 어떨까?”
버스를 도입하게 되면 관세가 20%, 판매세 15%, 원천징수세 6%및 자본세 7.5%등 48.5%의 세금이 붙습니다. 자본세는 나중에 환급을 받으니 제외한다 하더라도 35~40%에 달하는 고율의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논리가 안 맞습니다. 이미 보험사로부터 세금이 포함된 기준으로 보험금을 받았는데 정부에 감면을 신청한다면 이중으로 혜택을 받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여보시오! 보험사 지급금액이야 장부상의 금액이지 실제가치를 반영하는 금액은 아니지 않소? 더구나 버스가 16대나 없어진 후의 그 막대한 운영손실은 어떻게 하겠소? 정부로서도 응당 소정의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니오?”
다른 직원이 또 나섰습니다. “현실을 너무 도외시하시는 것 아닙니까? 정부에서 왜 책임을
지겠습니까? 비슷한 전례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사실상 금번의 소요로 가장 큰 피해
를 입은 업체는 노르웨이의 Telenor (현지 통신업체)이고 기타 KFC나 McDonald뿐만 아니
라 심지어 현지인들이 경영하는 은행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마는 어느 업체고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청구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다가 망신만
당할텐데요.”
그때 눈치 빠른 이남이 끼어들었습니다. “좋습니다. 한 번 부딪쳐 봅시다” 이남이란 친구, 한다면 하는 친굽니다. 당일로 영업담당 수힐, 재무담당 이남을 데리고 이슬라마바드로 떠났습니다. 우선은 부딪쳐봐야 하니까요. 이날부터 새벽에 라호르를 떠나 새벽에 라호르로 돌아 오는 강행군이 시작됐습니다. 라호르에서 이슬라마바드까지는 대략 5시간이 소요되고, 또 라호르는 본부니까 며칠씩 비워 두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XIII. “이사장님, 법률검토라도 했습니까?” 그나마 원군이 필요해 찾아 간 대사관에서는 차석인 참사관이 거의 조소를 흘리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시 대사는 한국에 출장중). “억울해 하시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이 나라에서 유사한 사태에 대해서 보상을 실시한 전례라도 있나요?”
직원들도 똑 같은 점을 지적했었고 대사관에 오기 전 몇, 몇 알만한 곳에 타진을 해 보았습니다마는 민간인간의 충돌로 빚어진 손해에 대해 정부가 보상을 실시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회신만 받았었습니다. 이 나라엔 소요가 워낙 빈번하고 툭하면 자살폭탄사고가 터지는 곳입니다. 또 묘한 것이 소요를 하다가는 지나가는 버스에 불 지르는 것이 다반사인 나라인데 (승객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도 불을 질렀다는 경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정부보상을 단 한푼이라도 받아 보았다는 업체는 전무했었습니다. 아니 되지도 않을 일이라 시도조차 해 본 회사도 없었답니다.
“사장님, 시간낭비가 아닐까 싶은데요” 더 이상 대사관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XIV. 집권여당의 총재이자 한국의 명예총영사인 쵸드리씨. 연신 위로의 마음을 표하며 총리와 의논을 해 보겠다곤 했지만 면담하는 와중에도 이곳, 저곳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내방객도 워낙 많아 도저히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무슨 병이라나, 주기적으로 몸 안의 혈액을 갈아 주어야하기 때문에 근일내로 미국을 가야만 한답니다. 총리면담주선 약속도 어쩐지 공허하게만 들렸습니다. 측은해 하는 표정만 건네 받은 채 물러날 수 밖에요.
XV. 여당의 원내총무인 드레이샥. 연방정부의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젊은 아들은 현재 펀잡정부의 재무장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대단히 비중있는 정치인입니다. 아들(펀잡 재무장관)은 2004년말 저희가 한국에 초청한 적도 있었고 평소에도 아주 가까이 지내던 처지라 그의 집에도 몇번 들렸었습니다. 그러면서 두어번 드레이샥씨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총무님. 저희가 비록 현지회사입니다마는 엄연히 외국투자기업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권유하는 대로 주차시켜둔 버스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유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이 나라에서 철수는 않는다 해도 최소 향후 투자계획에 엄청난 차질이 생길 것은 명백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저희 회사가 파키스탄의 교통문화개선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은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저희 회사는 이익이 남더라도 전액 재투자를 하고 있지 본국송금도 안 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는 정부에서 격려를 해 주셔야만 합니다. 금액의 다과가 문제가 아닙니다. 파키스탄정부가 외국투자가를 위하여 어떠한 파격적인 조치도 마다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이 사건은 한국에서 제일 유력한 일간지에 1면 톱으로 보도된 사건입니다. 총무님께서도 잘 아시고 계실 삼성도 이 사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현대도, LG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아가 일본기업, 영국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와 주십시오.”
놀랍게도 말이 끝나자마자 원내총무는 총리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비서실장 대시오. 없어요? 그럼 그 밑의 자비드 악탈좀 바꾸시오. ----- 아! 자베드? 날쎄. 지금 삼미의 사장을 그 곳으로 보낼테니 사정을 잘 좀 들어 주었으면 하오. 총리에겐 내가 직접 만나 설명을 하겠소.”
원내총무 드레이샥. 66세임에도 불구하고 정력이 넘쳐 보이는 그는 그 큰 손으로 제 두 손을 꽉 잡더니 힘있게 말했습니다. “나도 대우버스를 타 보았소. 정말이지 파키스탄에 가장 필요한 변화를 가져다 준 기업이오. 또 우리 아들을 통해 여러번 들었지만 당신들은 정말 순수하고도 진정한 기업인들이오. 내 최선을 다 하리다. 당신 말마따나 이번의 사태를 외국투자가에 대한 모범으로 보일 계기로 삼으십시다. 총리를 만나던, 장관들을 만나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나한테 했던 얘기 그대로만 하시오. 만날 사람들은 내가 다 주선해 주리다.”
XVI. 재무차관 (장관은 총리가 겸직), 조세청장 (파키스탄은 국세청과 관세청이 한 개의 부서로 되어 있습니다), 국회부의장, 총리실의 여러 비서, 재무성의 수많은 관료들— -
버스가 불타는 사진, 총에 맞아 부상당한 우리 직원들의 사진, 철저히 약탈당한 사무실의 텅 빈 모습, 이틀만에 천막으로나마 재개시킨 터미널의 사진을 들고 만나는 사람마다에 진심어린 호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적극 돕겠다는 말들은 하지만 겉치레로만 보이고 어쩐지 믿음성이 없었습니다. 조세청장같은 경우에는 “사정은 알겠지만 금년도 세수목표를 채우기 어려운 실정이 돼 놔서 ---- 또, 제가 옛날에 대우를 담당해 봐서 잘 아는데 ------ ”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습니다. 대우는 과거 고속도로 M-2수주시 여러 가지 소문에 시달렸었고 특히 와중에 정권이 전복되는 바람에 관계됐던 공무원 여럿이 곤욕을 치뤘던 것은 이곳에서는 사실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그 대우가 몇년 후 다시 찾아 와 ‘혜택’을 부탁하니 뭔가 대단히 께름직했을 법도 했겠죠.
XVII.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 件 처리의 실세는 경제수석인 쌀만박사임을 자연히 알게 됐습니다. 공식직함이 ‘Advisor to Prime Minister on Finance (총리 재무고문)’인 쌀만박사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경제통인 아지즈총리가 직접 발탁한 실세중의 실세랍니다. (파키스탄은 내각책임제로 각 부서의 장관은 국회의원이어야 합니다. 차관은 공무원출신입니다. 따라서 의원이나 직업관료가 아닌 사람으로 꼭 필요한 사람은 고문의 명칭으로 채용하여 필요에 따른 권한을 주고 있습니다) 면담을 신청하자 바쁘다는 핑계로 정중한 거절회신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못 움직이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드레이샥씨를 다시 찾았습니다. 쌀만박사도 차마 드레이샥씨의 부탁만은 거절할 수 없었나 봅니다. 단 10분의 면담시간을 할애받았습니다. 시간은 없어도 할 말은 다 해야 했습니다.
“저희 회사가 이만한 사건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파키스탄정부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페샤와르엔 가장 최신의 터미널을 짓고 싶습니다. 또 금년 중으로 카라치를 취항해 이 나라 최초로 전국 연결망을 갖춘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운수사업외에도 진출할 계획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본사가 건설회삽니다. 건설분야는 물론이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버스조립업등 제조업에도 진출하고 싶습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주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저희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소?”
“며칠 전 보내드린 편지에서도 말씀드렸었습니다. 버스 16대가 소실됐지만 교체용으로 그 갑절인 32대를 도입중에 있습니다. 이들 버스의 도입에 따르는 세금을 면제해 주십시오.”
10분 할애받은 시간이 어언 40분을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XVIII. 총리면담은 차일 피일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세금의 감면은 어찌 됐던 총리의 결정사항이기 때문에 꼭 만나야는겠는데 워낙 바쁘신 분이었습니다. 드레이샥씨를 통해 삼미의 요망사항을 상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는 파악됐으나 막상 면담까지는 성사를 못 시키고 있었습니다. 와중에 총리가 영국을 방문할 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나라에서는 상위자가 해외출장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에는 대행자를 지명해 자신의 모든 권한을 위임한답니다. 따라서 총리부재중 재무부의 업무는 위임받은 사람이 전결케 되는데 바로 이 수임자가 쌀만박사라는 겁니다. 쌀만박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이사장. 32대 모두에 대해 감면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조세청장을 전화로 불러 우리가 신청한 32대 감면件을 즉시 기안해서 올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다음날 오후 쌀만박사 비서실 책상위에는 쌀만박사가 서명한 조세청기안서가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채 놓여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재무차관과 함께 미국으로 출장가는 쌀만박사를 비행장까지 찾아가서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아! 파키스탄에도 기쁨은 있었습니다.
XX.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지막(?) 확인차 전화를 걸자 자비드 악탈 (총리 경제담당비서)은 묘한 여운을 풍기며 말을 뱅뱅 돌리고 있었습니다. “쌀만박사가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 귀사가 감면신청을 낸 대상기관은 총리거든요. 재무장관이 아니에요. 당신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저나 조세청장이나 32대 전부를 면세해 준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상 강한 거부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불탄 버스는 16대인데 왜 32대씩이나 해 줘야 합니까? 조세청장이 전화를 했습디다. 신청상대가 총리이니 총리귀국후에 결정하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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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과 쌀만박사간의 눈에 안 보이는 알력이기도 했지만, 기실 32대의 면세가 무리임은 영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보험사 수령액이 이미 알려져 있어 32대에 대한 세금감면까지 받으면 실 손해액수를 훨씬 상회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태껏은 운행손실이 엄청나다는 핑계를 댔었는데 ‘예상을 전혀 초과하는 승객들의 반응’때문에 운행손실은 아주 미미하거나 오히려 사고전 수익을 초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분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 실장께서 만나잡디다” 전화를 끊기 전 자비드가 냉정한 어투로 남긴 말이었습니다.
XXI. 쌀만박사가 외유중인 상태에서 총리 비서실장 자베드 말리크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대하는 태도는 공손해도 말 하나, 하나에 빈 틈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후 차분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여러 사람에게 얘기해 왔던 것을 다시 한 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곤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인도에는 지금 외국기업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자동차회사도, IT회사도 너나 없이 뛰어들어갑니다. 한국인들도 수천명이 체류하고 있고 현대도, 삼성도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헌데, 이곳 파키스탄은 어떻습니까? 외국인들이 떠납니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알고 있는 저만 해도 분한 사실입니다. 사실, 이곳에서 투자를 확대하는 업체가 누굽니까? 작은 규모지만 바로 저희같은 회삽니다. 백주에 강도를 당해도, 엉뚱하게 버스 16대를 잃어 버려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런 회사를 격려해 주십시오.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투자가를 마음으로 격려하는 조치를 내려 주십시오. 그리곤 한국과 일본 신문에, CNN에, BBC에 공동으로라도 파키스탄정부의 이 조치를 널리 알리십시다. 이 사태를 신선한 정부홍보의 기회로 삼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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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II. 며칠후 자비드 악탈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총리께 보고하자 이 사안을 ECC (Economic Coordination Committee : 경제 조정회의)에 회부키로 최종 결정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드레이샥씨의 첨언에 따르면 종전 대우스캔달에 대한 께름직함이 아직 남아 있어 회의체의 집단결정형식으로 하는 것이 총리가 마음부담을 더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지 며칠후, 사고싯점으로부터는 정확히 3개월 1주일만에 민간끼리의 충돌로 인한 손해에 누구도 믿지 않았던 파키스탄 최초의 정부 보상조치가 의결된 것입니다.
後記
세금감면문제도 결정되고, 보험문제도 물론 전부 타결되었습니다. 무서운 집념앞에 높은 현실의 벽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마음 뿌듯하게 한 것은 승객들의 놀라울 정도의 반응이었습니다. 사고난지 두달후의 실적, 즉 4월의 월간실적을 뽑자 거짓말같게도 8년 회사역사를 통털어 두번째로 높은 월간 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성수기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직원들의 단결력도 전과 달리 높아졌습니다. ‘하면 된다’는 이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정부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파키스탄 승객님들에게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일심단결하여 저를 믿고 따라 준 직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다른 생산일정을 뒤로 미루고 우리 버스를 우선적으로 생산해 주신 대우버스에도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32대가 안 되서 섭섭치 않냐구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과욕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도 32대 전부에 대해 감면을 받았더라도 그건 불안한 특혜였을 겁니다. 계산이 너무나 빤하고 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수고해 주신 공무원 여러분들에게도 누가 될 것이니까요.
이제 저는 회사를 떠나려 합니다. 물론 상장까지는 해 놔야되겠죠. 상장 ---- 본사와 관계없는 업종으로 해외에서의 직상장은 아직까지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파키스탄을 떠나고자 합니다. 많은 할 말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첫댓글 quick quick come Lahori, 가칭 "1000days in Stan" 집필하면서 못다마신 식초나 진하게 마셔보자. 짜샤.
중동(파키스탄도 포함되는지는 몰라도) 이스람권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역시 아라비안 나이트야. 신밧드리가 되어 돌아 오시는건가? 라호리여.
그 동안 매우 활약이 컸구려. 귀국하거든 얼굴을 맞대고 얘기를 들어보세.
어려운 곳, 힘든 여건 속에서 일생일대의 장엄한 일을 하셨네그려.
지진과 폭동을 이겨 낸 사나이가 만든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