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에서의 바쁜 일정으로 늦은 저녁 무렵 버스로 지나가면서 보았다. 입구에 '봉헤찌로'라는 안내글씨가 있다. 이곳은 구도시로 구식 주택이 많다. 가이드는 여기서 15분 거리에 산단다. 모두 한인상가 밀집 지역이다. 꽤나 긴 블록에 조국 동포들의 값진 땀이 고인 곳이다. 상파울로 한인상가 밀집지역인 봉헤찌로Bom Retiro 거리다. 봉헤찌로 한인타운(코리아타운)이다. 브라질 상파울로의 한인 마을, 또는 해외 한인마을로 불린다. 브라질 한인교포의 수는 약 5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중 98%가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도시 상파울로에 집중되어 있다. 한인들 중 약 60%인 약 3만 명은 여성의류제품의 생산과 도·소매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한국의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에 해당하는 봉헤찌로(Bom Retiro) 구(區)와 브라스(Brás) 구(區)이다. 2010년 상파울로 市정부가 시조례를 바꾸어 봉헤찌로를 문화특구로 지정하게 된 근본 배경은 2006년 상파울로 주정부의 한국총영사관에 대한 “한국의 문화의 날” 행사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인사회에서는 2008년 11월 당시 한인회의 박동수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시 있었던 동포와의 간담회 때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째든 당시 총영사였던 김순태가 2008년 12월부터 상파울로 시의회와 접촉하고, 그 결과 상파울로 시(市)정부가 시조례를 바꾸어 봉헤찌로를 문화특구로 지정하게 되었다. 최근 이들 지역에서 한인상인들의 소유 상점의 수는 각각 약 1,500개와 약 1,800여로 추정되고 있다. 교민 80%가 의류업에 종사한다. 그래서 사업 때문에 이곳에 모이기 시작해서 식당 등이 들어왔다. 한인타운이 조성되었다. 의류업으로 돈을잘 버는 교포상가란다. 하루에 1억원을 매출하기도 한단다. 교민들은 모두 의류업으로 성공했단다. 상파울로 시정부가 봉헤찌로를 상파울로 한인구역으로 명명했지만, 실질적으로 이곳 건물의 소유주는 대부분 유대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인회를 비롯한 브라질 한인사회는 이곳에 한국을 대표할 만한 기념상징물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상파울로 시(市)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그동안의 한인들의 공로, 봉헤찌로 활성화와 성장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봉헤찌로 재개발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파울로 정부는 봉헤찌로의 일부를 문화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며,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과정에서 한인타운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리베르다지 구(區)가 1950년대 ‘일본인 촌’으로 명명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상파울로 시(市)정부는 도시 확장사업의 일환으로 일본계 이민자들에게 그곳의 땅을 무상공급하며 그곳의 개발비용과 개발방식을 전적으로 그들에게 부담시킨 바 있다. 따라서 재브라질 인본인 사회는 시정부가 닦아놓은 길옆에 가로등을 설치하며, 그곳을 일본식 건물을 세웠다. 한편, 우리나라는 1959년 10월 31일 국교를 수립하고, 1962년 7월 주 브라질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여 2006년 현재 존속하고 있다. 1970년 10월에는 상파울루총영사관을 설치하였으며, 브라질은 1965년 5월 주한 상주대사관을 개설하였다. 우리나라의 대 브라질 이민사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 6·25전쟁 후에 50명의 반공포로가 인도를 거쳐 브라질에 이주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가 브라질 이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1962년 보건사회부차관을 단장으로 한 우리나라 이민관계 시찰단이 브라질을 방문하여 브라질정부로부터 우리나라의 이민 30세대를 접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에 따라 1963년 2월 이민 17세대 92명이 제1차 이민단으로 산투스항에 도착한 후 상파울루 근교농장에 정착하였고, 1964년 5월 제2차 이민 68세대 350명이 브라질에 건너갔다. 그러나 이들은 농지와 환경에 대한 사전지식의 결여로 대부분 상파울루 등 대도시에 집결하여 상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브라질정부는 우리 나라의 농업이민 접수를 중단하고 기술계 이민만을 접수하였다. 브라질 이민이 사실상 중단되자 국내 이주희망자들은 개인초청, 직계초청 등을 남용했으며, 한편으로는 파라과이 등 제3국을 통해 불법으로 이주하여 브라질정부에서 입국사증을 거부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그 뒤 1981년 1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브라질내 불법체류자에 대한 임시등록이 실시되어 약 4,800여 명의 교민이 임시거주허가를 취득하였다. 또한 브라질정부는 이들 임시거주자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1983년 12월 제정하였고, 이에 따라 임시거주허가자들은 영주권을 발급받았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대한우호정책을 취해왔으며 최근 양국간 통상증진 및 자원협력 등 실질관계가 긴밀해지고 있다. 브라질 먼 나라에서 성실하게 살면서 아름답게 일구어 놓은 한인거리 봉헤찌로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오늘은 늦어서 버스 안에서 이 거리를 보며 지나가기만 한다. 빈부 격차가 큰 나라다. 돈 있는자가 돈 번다. 개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연 15~20%의 이자를 준다. 그러나 대출 받으면 연 500%까지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어느 날 이자가 들어온단다. 내가 안 맡겨도 내게로 돈이 들어온단다. 은행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네 돈 조금 썼어' 한단다. 손님들의 돈을 운용할 뿐 돈의 이동은 전혀 없다. 돌려 막기 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출은 큰일 난다. 회사 대출은 연 56~58%로 그리 높지 않다. 한국기업을 선호한다. 물건의 질이 좋고 AS가 잘 되어서 그렇다. 야근 수당도 낮시간 급여의 2배를 준다. 이곳 사람들은 일 을 안 한다. 오늘 내일분까지 일하여 돈 벌면 내일은 일하러 가지 않는다. 특히 노동자들이 그렇다.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노는 것이다. 퇴근 후 목욕하고 춤추러 나간다. 거리에서도 흔들고 춤춘다. 현지 교퍼 가이드는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배우고 열심히 노는 것은 브라질인에게서 배우는 것이 좋더란다. 슈라스코로 저녁을 먹었다. 고기 뷔페요리다. 가장 맛난 부위를 궝서 먹는다. 테이블에 한쪽은 녹색, 한쪽은 적색인 표를 놓아두었다. 녹색은 고기를 받겠다는 표식이고, 적색은 고기를 안 받겠다는 표식이다. 음식점 직원이 고기를 들고 오면 그때마다 그 표를 녹색이나 적색으로 구분해주면 된다. 이 나라는 소가 많아서 쇠꼬리 1짝에 1만 원정도다. 이 나라도 꼬리찜을 먹는다. 고기 값이 매우 싸다. 그런데 이곳의 고기는 좋은데 가죽은 질이 나쁘다.관리를 하지 않아서 부패해서 그렇다. 석식 후 국제선공항으로 이동한다. 파리행 비행기를 탑승하고 귀국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