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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년실업(靑年失業)은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실업에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외환위기 이래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 중 하나.[1] 한국에서의 취업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상위권 중견기업의 사무직&생산직에 가기 위해 많은 구직자들이 처절하게 경쟁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중소기업(그렇지 않은 일부를 제외한), 파견직, 일용직, 비정규직에 취업한 것을 일반적으로 취업했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를 많은 청년들이 피하려고 하기에 취업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노동법을 준수하며 평균 세전 3천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 기업(이상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상위권 중견기업)은 구직자 중 약 15%만 갈 수 있기 때문에 학벌, 전공, 스펙 등에 의한 경쟁이 벌어진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직자는 이런 곳에 갈 수 없고, 이런 곳을 못 가는 구직자가 늘어나서 취업난이 생긴다. 대한민국의 80%의 이상 기업은 파견직, 일용직, 비정규직과 같은 신분 불분명한 직장이거나 소규모 회사의 정규직이다. TV에 나오는 취업박람회 같은 경우, 명문대 이상이나 서울 중상위권 대학교 출신들은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의 질이 낮기 때문에 절대로 안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청년실업난이라고 하면 15세~29세의 구직의사가 있는 청년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장년/노년실업, 여성/남성실업 등의 단어는 쓰지 않으면서, 유독 청년층에만 한정해서 쓰는 독특한 용어다. 사실 이는 당연한 일인데, 사회에 진출하고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해야 할 청년기에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개인적 비극을 넘어서서 사회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015년 세계은행(WB) 발표 자료에서 전 세계의 18억 명 가량의 청년(15~29세) 중, 1/3가량이 무직이거나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왔다. 2019년 3월 통계청 보도자료를 보면,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10.3%로 나왔다. 대략 100만 명가량의 청년들이 실업자라는 말이다.
1.1. 일자리가 전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해 다른걸 다 떠나서 일자리의 유무만 보면 일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이를 증명하듯 알바나 일자리 구인구직 사이트나 각 지역의 구청등과 연계된 사이트 등에는 다양한 알바나 일자리가 올라와 있다,즉 환상의 동물 마냥 일자리가 없다는건 아니고 어쨌든 일자리가 존재하는것 자체는 사실이긴 하다. 다만 그냥 일자리가 있는것과 그곳이 좋은 일자리인 것과는 다르며, 정확히는 일자리가 없다기 보다는 양질의, 처우가 열악하지 않으면서도 워라벨이 보장되는 등, 즉 요즘 구직자들이 좋아할 만한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험하면서 대우가 안 좋다거나, 최저시급에 의거해서 노동시간에 따라 월급을 주거나, 노동시간이 매우 길거나, 정신적으로 고되거나, 육체적으로 고되거나 특별한 자격증이 있어야 하거나 경력직만 구하거나 하는 일자리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 다만 이런 일자리는 병원비가 소득을 웃돌아버리기 때문이다.물론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나가는 돈이 상당해서 남는게 별로없고 이런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보험 가입이 상당히 어렵다.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아르바이트를 구인하는 사업자가 줄어들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최저시급 인상으로 사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면서 근로자를 적게 고용하게 되었다.
구직자 대비 일자리 개수 즉, 구인배수가 1을 넘는 나라는 제법 있으나, 그 나라들도 좋은 기업에는 경쟁률이 치열하다. 옆 나라 일본은 구직자 1명 당 회사 1.5개라고 하니 취업 상황이 좋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 기업들이 좋은 기업일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즉, 구인배수는 1 이상이면서 좋은 기업들의 비율이 높아야 취업난과 구인난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아무리 구인배수가 1을 넘어봐야 그 기업들 중에 블랙기업 비중이 높을 경우 그나마 좋은 기업들조차 블랙기업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미스매치 현상으로 인하여 우수 중소기업들이 구인난을 겪는 이유와 같다.
무엇보다 인권에 대한 인식도 늘어났고 접할 수 있는 정보력도 늘어난데다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기 힘든 일자리는 구직자가 회피, 거부하거나,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개인이 투자한 시간과 비용, 스펙에 비해서 형편없기에 거절하고 사정에 따라 거절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조선의 한량이나 일제강점기 룸펜, 일본의 고등유민처럼 어느 정도 여유 있는 계층에서는 자신과 맞지 않는 일자리나 노동을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나 현재는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e-나라지표)구인 구직 동향
일단 위 링크의 구인배수(구인인원수/구직자수) 지표 통계상으로는 2020년 기준 0.39로 구직자 100명당 일자리가 39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구직자 본인의 능력, 희망분야, 조건, 기업규모, 그리고 구인측에서 원하는 지원자의 조건 등과 같은 구인과 구직 간 매칭을 전혀 따지지 않고 구직자 전원이 아무 직장에나 들어간다고 가정해도, 구직자의 절반은 원천적으로 대한민국 국내에서는 구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취업이 불가능하다.[3] 일자리가 전혀 없다고 표현하려면 정량적으로 어느 정도로 일자리가 없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구인배수가 1.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취업시장에 대해 사실은 일자리가 어느 정도 존재는 한다고 표현하기엔 무리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으나, 해당 통계를 해석할 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통계는 공공고용안전망(Work-Net)에 인터넷을 통하여 구인·구직 신청을 하거나, 고용센터를 직접 방문하여 등록한 구직자 및 구인처로, 구인 및 구직관련 정보를 통한 실적 파악 및 제한된 노동시장에 대한 분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즉 잡코리아나 인크루트 등 민간 취업정보 사이트를 이용하거나 공무원, 대기업처럼 공채 등을 통해 자체적인 방법으로 구인하는 구인처들과 반대로 고용센터나 워크넷에 등록하지 않은 구직자의 정보는 통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하게 청년의 범위를 몇 살부터 몇 살까지로 지정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근대 사회의 경우에는 결혼과 동시에, 혹은 만 18세(혹은 만 15세)가 되면 성인으로 간주했고, 부족사회의 경우에는 성인식을 통과하면 보통 성인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의술과 통신술, 교통수단, 복지의 성장과 발전 등으로 삶의 질 추구, 평균수명 증가, 평균 학력 상승 등이 동시에 나타나 사회 진출 유예기가 길어지면서, 전통적인 청년과 다른 연령대에도 과거 청년과 같은 의미의 연령대, 역할이 나타났고, 따라서 청년과 중년의 범위를 어디부터 어디까지로 봐야 되느냐에 대한 반론, 이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의 범위, 청년실업의 범위를 어느 연령대까지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학자, 연구원마다 각자 의견이 달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만을 놓고 본다면 보통 2000년대 이전까지는 19세~29세 사이를 청년으로 봤지만, 2000년 이후의 대한민국에서는 30대 초반, 32, 33세까지 청년으로 보다가 2010년 이후에는 35세까지를 청년으로 보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4]
청년취업지원제도에 근거하면, 정부에서는 만 34세까지를 청년으로 보고 있다. 즉, 만 35세가 되는 순간부터 청년이 아니다.
이 문서에서는 대한민국 청년실업 현상을 중심으로 다룬다. 그래서 2008년 무렵부터는 20대 개새끼론, 88만원 세대, N포세대, 대학 5학년, 헬조선, 노예계약, 열정페이처럼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표현도 나왔다.[6] 이런 것은 열악한 일자리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와 기성세대의 피해의식 때문에 생겨난 단어들이기도 하다.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10%이상이라서, 체감 실업률이 유독 꽤나 높다.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고졸 학력자보다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이 국가 통계로 처음 확인됐다.
자세한 내용은 청년실업/원인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
2.2. 부정적 영향[편집]2.2.1. 교육기간 장기화 및 공무원 준비 열풍
취업 경쟁에서 낙오[7]한 대학생이 어학연수나 재수강 등을 하거나 졸업을 미루면서, 대학교를 5년 이상 다니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또한,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전문자격 획득이나 편입, 전과 등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재학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 인재의 낭비를 초래하는 일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결국 2010년도 중후반부터 취업난과 대기업의 혹독한 직장생활에 질린 명문대 출신 학생들이 7~9급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무원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 및 추가경정예산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청년 취업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지만, 이미 취업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에게 공무원 월급으로 줄 세금을 걷기 위해 증세되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이로 인해 국가 부채만 쌓일 수도 있다. 공무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건 덤이다.
이런 현실은 공시족을 양산하는 데 단단히 일조한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인원만 무려 30만 명 내외며, 자격시험에 붙은 사람이 대폭 늘어나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저임금에 시달리거나 일자리를 못 얻는다. 자격은 취득했지만 TO가 나는 것과는 별개다. 일단 공석이 생겨 발령이 날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도 고스란히 실업자 신세다. 그나마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돼 있어서 기분 좋게 아르바이트 정도로 시간을 때울 수 있긴 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과감히 쳐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우선 이들도 무려 30만 명이다. 절대다수가 투표권 있는 성인이라 정부가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고, 애초에 한국의 대기업들은 낮은 수준의 고용창출능력을 갖고 있으며, 중소기업들은 고용 보조금이나마 주니까 그나마 채용하지 그마저도 안 주면 답이 없는 수준이다. 이들이 시험 안 치고 한꺼번에 빠져나오면 그것도 그것대로 큰 혼란이고[8] 기껏 취업한 직장인들도 블랙기업과 빠른 정년 퇴직[9], 불안한 노후대비로 인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경력직 공무원, 공무원 시험 준비로 계속해서 공무원 진입을 시도하는 중이다. 일단 명목상으로나마 취업의도가 있다고 판단되어져서 청년실업률에서 제외된 인원인데 이들이 한꺼번에 추가돼 버린다면 통계청장도 당장 짐 싸서 도망가고 싶어질 절망적인 값이 나온다. 이는 진영불문 정치권에서도 진심으로 사양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 밝히기이다.
2.2.2. 사회 발전 저해와 인력, 시간적 낭비
청년층이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시간낭비이지만[11], 사회적으로도 인력낭비이고, 국가적 소모, 낭비이다.
무엇보다 사회의 고학력화가 진행되었다면 그에 걸맞게 정신노동,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문화관광산업, 대중문화 산업, 게임, 음악, 예술,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개발, 금융산업, 요양 간병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들을 육성하고 키웠어야 했다. 고학력화가 진행되는 추세에 따라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 서비스업 등에 대해서도 지원, 육성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기는 커녕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낸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대기업은 물론 국가주최 공모전에서 뺏어가려고 하는 등[12] 뽑아먹기에 혈안이 되어있어 하청업체 이상으론 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화, 유행가요, 음악 등의 대중문화는 천박한 것,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유치한 것, 게임은 공부 방해하는 유해한 것, 예술은 돈벌이가 안되고 쓰잘데기 없는 것 등의 편견, 무지어린 시선 역시 문화예술 산업 등의 발전을 저해해왔고, 자기만의 올바름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려는 일부 꼰대들의 무지와 아집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창작의 자유는 무수히 사장되어왔다.
게임 산업만 해도 무조건 시간낭비, 잉여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벌어들이는 부가가치와 외화에도 주목했어야 했다. 게임으로 인해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것은 꼬투리잡기일 뿐, 공부를 할 학생들은 알아서 스스로 한다. 말을 물가에는 데리고 가도 물을 억지로 먹이지 못한다는 속담을 알면서도 다들 암암리에 무시하는 것이다. 공부에 뜻이 없는 자녀들이 공부하지 않는 탓을 게임에게 돌리고, 프로그래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학부모들 본인들의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셧다운제가 이런 발상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법안이다. 잠재적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게임 산업을 적극 육성, 지원해야할 대한민국 정부도 지원은커녕 과거의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각종 검열과 탄압, 내용편집 강요를 자행하여 수많은 작가, 예술가들의 표현력, 창작의욕을 꺾어온 주범들이다. 여기에 기독교는 어설픈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각종 검열과 탄압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은 침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고학력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는데,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외면과 쌍팔년도식 제조업 단순육체노동 올인정책은 결국 학력과 일자리의 미스매치와 함께 청년들의 인생과 시간을 헛되이 잡아먹게 만들고 말았다. 거기다가 대기업 중심의 산업시스템은 중소기업 생태의 악화를 불러와 가뜩이나 부족한 취업 선택의 다양성을 더욱 좁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학력화에 자신이 없으면 제조업도 반도체, 바이오, 공작기계등 고부가가치 제조업 육성했어야 했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은 단순 제조업와 달리 지식과 자본 숙련된 기술이 요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넘어 아무나 할수 있는 분야가 아니며 부가가치가 높은 제조업이라 저학력자들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설립 남발을 방관한 한국 정부도 문제점이 있다.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과 이에 따른 입시 위주 교육을 비난하기 이전에, 대학을 진학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했었다. 특히 불필요한 고학력화로 인한 인력수급의 미스매치 조절이 어려웠다면, 애당초 대학 설립 당시부터 설립 기준을 강화하거나 일부 설립을 억제했어야 했다. 이것을 예상 못했을 리가 있었을까? 정책 수립 과정에서 몇가지 결론, 결과도 예측하지 못했을까? 지방자치단체 역시 인구 유입이라는 명목하에, 무분별한 대학 설립, 대학 유치를 부추겨왔다. 해당 대한민국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의 업적으로 남게 될테니까. 그러나 정부는 너도나도 대학 설립하는 것을 제재하지도 않고, 심사하지도 않고, 지역들 대학 유치하겠다고 소란피워도, 대학 설립을 남발했다. 그렇게 대학 신설, 설립을 남발해놓고 청년층에게만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탓하는 것은 책임전가에 불과하다.
2.2.2.1. 세금 수입 감소
청년실업이 장기화될수록 거두어들이는 세금의 양이 줄어들고 반면 세금으로 부양해야 될 인구는 증가한다. 실업 후 결혼 포기 크리로 인구 감소하면 하향평준화 거두어들이는 세금은 줄어들게 되는데, 써야 하는 돈은 늘어나므로 문제가 된다. 노점상들처럼 불법 수익을 내며 탈세하는 건 아니나, 일각의 여론은 노숙자와 함께 세금을 내지 않는 무법자로 간주하는 듯하다. 실업자 1인당 한 달에 걷히는 간접세는 거의 없다. 서민층의 실업자라면 간접세는 한 달에 10만 원도 걷히지 않는다. 술, 담배[13]를 하는 니트라면 꽤 나오겠지만
대한민국은 천연 자원이 없어서 따로 소득을 늘릴 곳도 없다. 그리고 실업자와 노숙자들에게서 세금이 걷히지 않으므로 취업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이 내는 세금 납부의 양이 많아지고, 이러면 조세 정책에 차질이 생겨 일반 국민(취업자, 자영업자)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사회 각 분야의 생산성 저하와 각종 사업의 실패 및 포기, 경제가 순환되지 못하는 현상 등을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부양하는 세대의 고통은 덤이다. 다만 애초에 현대국가에서 세금은 소득과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물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청년실업자들은 노점상들처럼 불법 수익을 내며 탈세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낼 돈이 없는 것이며, 오히려 돈을 줘야 한다. 그리고 헌법상 국가가 실업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킬 권한 같은 것은 없다. 애초에 스탈린도 집과 강제노동을 같이줬다.
따라서 청년실업자가 많아질수록 국가의 전체적인 소득은 하향평준화될 것이고, 이는 전체적인 생활수준 하락으로 이어지며, 부양자들 입장에서 빈곤율 또한 높아질 것이다.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는 고학력화와 함께 사회에 첫 데뷔하는 연령, 즉 처음 정식으로 취직하는 연령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었다. 사회진출 연령대의 상승이 청년의 실업, 실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산업현장에 진출하는 청년의 수가 감소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고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통합 과정을 졸업하면 보통 연령대는 18세~19세가 된다. 그러나 전문대학이나 종합대학 진학시 21세~23세, 종합대학 24세~25세가 된다.
만약 어떤 군면제자가 재수, 휴학, 검정고시 등의 절차를 밟지 않는다면 고교 졸업시 19세, 2년제 전문대 21세, 3년제 전문대 22세, 4년제 대학 졸업시 23세가 될 것이다. 만약 군필이라면 2~3년이 추가되어 각각 21~22세, 23~24세, 24~25세, 25~26세가 될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졸업 직후~졸업 1년 내에 취업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연령대가 병역 이행 기간을 포함해 전문대를 졸업하면 24~25세,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26~27세 정도 된다. 여기에 N수생의 존재도 급증하고 있어, 이 경우 병역이행 기간을 합치면 빨라도 28~29세가 된다. 군대 시기와 휴학과 복학 시점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1~2년의 시간을 더 허비하게 된다.[14]
만약 경제적인 문제로 한두 학기 더 휴학한다면 결과적으로 30대 초반에 사회에 첫 데뷔[15]하는 것이 보통이고, 늦으면 30대 중반, 빨라도 27~28세는 되어야 졸업이 가능하다. 여기에 2009년 무렵에는 일찍 과정을 마쳤다 해도 졸업유예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16] 그 결과 아무리 빨라도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운이 좋아 30대 전에 졸업하면 20대 후반에 처음 사회에 진출하게 되지만, 취업 시장은 더욱 녹록치 않고, 오히려 경력직 채용, 고령자 우대, 퇴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데다가 임금피크제는 기성 노동자들의 반발로 기업에서는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게 된다. 이래저래 청년층이 취직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만약 진짜 신입을 뽑는다고 치면, 기업은 기업대로 신입이니까 젊으면 젊을수록 좋기 때문에 갓 졸업한 파릇파릇하고 어리버리한 새내기를 채용하려 든다. 졸업 후 1, 2년 (자의든 타의든) 놀다가 신규 입사한다는 사람 면접장에까지 불러서 1, 2년동안 뭐했냐고 면박을 주는 일이 속출하자 아예 이수 학점 조절로 졸업을 고의로 늦추는 대학 5학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은 개별 전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채 문화, 잦은 이직을 로열티의 부재로 간주하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 첫 직장이 어디냐가 중요해졌기 때문에, '취업준비생'이라는 특이한 계층이 존재한다.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어학, 스펙, 대외활동을 쌓으며 지원을 반복하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신규자 채용과 신규자 채용 후 수습하는 데 드는 시간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일부 기업체에서는 경력직만을 채용하게 되므로, 청년층은 휴학이나 대학 재학을 연장하는 등으로 졸업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도 한다. 혹은 대도시는 정보력도 있고 교통편도 편리해서, 당분간 기술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그 결과 청년층의 사회 첫 데뷔 시기는 점차적으로 늦춰지게 된다.
이렇게 재수(혹은 삼수) + 병역 + 휴학 + 졸업유예가 겹치면서 일반적인 서민 남성은 아무리 빨라도 30대 초반이 되어야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병역의무가 없고 취업 경쟁이 덜한 나라에서는 애 딸린 가정까지 꾸리고 사회의 기둥이 되어 일하는 연령대가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2019년 한국은행에서 발간된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 비교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에 해당되는 20-24세 실업률은 OECD 평균과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20대 후반 25-29 연령대의 실업률은 OECD 평균의 2배 수준이다. 똑같이 공채 문화가 존재하는데도 일본과 다른 점은, 일본은 남성들이 병역 의무가 없으며, 4년제 대학 입학률이 한국보다는 낮은 수준이고[17],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이 보통이다.[18] 대학 졸업 후 공백기가 있으면 뭔가 특이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취업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거나 그냥 프리터로 전직하므로, 그냥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19] 그러므로 한국과 같이 극단적으로 사회 진출 연령이 늦어지진 않는다.
2.2.4. 정신질환의 증가
정신질환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불안이다. 많은 연구들이 불안과 정신질환의 연관성을 지적하고 있다.[20] 오죽하면 불안장애라는 분류군도 있겠는가. 그런데 이 불안은 최근에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늘어나고 있다.[21] 신자유주의가 진행되어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22] 이 영향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받고 있지만 특히 청년층에게 더 크다. 청년이라는 나이대가 예나 지금이나 자아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불안정한 시기이고 게다가 청년들은 청년실업의 증가로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력과 기존의 일자리를 가지고 시작하는 장년층보다 아무것도 없는 청년층이 신자유주의의 고통을 더 많이 받는다. 즉 청년실업은 정신질환의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다. 아예 인과관계가 거꾸로 된 것. 게다가 정신질환이 생겨도 스스로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23] 제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증세가 더욱 악화된 뒤에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진 가족들이 정신과로 끌고 가거나 뭔가 큰 사고를 일으키고 나서 정신감정을 받다가 증상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아 큰 문제가 된다.[24]
성남의 비영리단체인 일하는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300명의 약 34%에서 우울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14.7%가 자살 생각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2.3. 가치관의 다양화에 따른 대립과 갈등
가치관의 변화, 다원화와 함께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들도 점차 증가하였다. 여기에는 성적 쾌락 외에도 이런저런 감각적 쾌락을 포함한다.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부류가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를 불신하는 이들에게 불쾌감과 거부감을 주는 것처럼,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 역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서로 충돌하기 쉽다. 가치관과 생각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서, 생각처럼 쉽게 고치거나 바꾸기도 좀 어렵다.
이전부터 암암리에 배척해온 심하게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대해 조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분란을 야기할 인간으로 보아 인사담당자나 기업가 입장에서 배척하는 일이 있었다. 여기에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 타협을 모르는 인간, 혹은 타 종교나 신념을 가진 인간들 역시 채용 과정에서 걸러내는 일이 등장하고 있다. 보통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장, 직업에는 취직하지 않으려는 현상이 고학력자나 상위계층은 당연하고, 그 사회의 중산층을 포함한 중간계층 정도만 되어도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간혹 그런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자신의 적성이나 미래, 능력치 그밖에 환경적 요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취직, 직업을 구하는 인간들도 어느 정도 존재해 왔다. 이런 것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행동하도록 알려주거나, 불필요한 언행이나 접촉을 삼가거나 거리를 두도록 코치하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청소년이나 어린이, 청년층을 지도하거나 다잡아줄 어른이 없는 환경에서 그런 인간이 일부나마 등장하여 회사, 직장에서 갈등, 대립을 일으켰고 간혹 사건, 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서구는 19세기, 동아시아는 1980년대 이후 각각 나라마다 개인주의가 사회에 보편화되고 어떤 양보나 타협을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된 상태에서,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며 삶의 목표로 삼는 유형의 인간도 눈에 띌 만큼 나타났기에 이들과 타인간의 사회적 갈등, 대립도 증가하고 있다. 마음에 안드는 이웃을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도시 지역 일부와는 달리, 직장 생활과 학교 생활에서는 이런 유형의 인간들도 상대해야 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하루종일 봐야 된다. 가치관이 전혀 다른데 따른 스트레스와 감정 대립에 개인주의적 가치관, 양보나 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겹치면서 역시 취직에 대한 적극적 거부나 회피, 소극적인 회피, 그밖에 채용 기피나 거부 등의 현상도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어떤 종교적인 신념, 어떤 도덕윤리적 믿음을 가진 인간이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대립, 갈등을 일으키는 새로운 유형의 트러블메이커로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자기만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강요하거나, 거부할 경우 매장하려 든다든가, 아니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타인, 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반하는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갈등도 확산되고 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이 옳다는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런 배려를 해야 될 이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항상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서로 최대한 피하거나, 부딛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다면 다소 갈등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중 한쪽이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여, 피하지 않는다면 대립,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양쪽 다 자신이 옳다는 어떤 사상적, 종교적인 확신을 가졌다면 대립과 갈등은 더욱 더 피할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성적 쾌락 외에도 감각적인 쾌락, 만족을 추구하려는 유형의 인간이 증가하고 있다. 개인주의 확산, 인간관계에 서투른 인간, 외동자녀나 2명의 자녀라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집착수준의 애정, 형제자매 많은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자란 한국기준 86세대 이상, 일본기준 단카이세대 이상 세대들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등 이런저런 환경적 요인도 갖추어졌다.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주는 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하거나,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려는 것이 늘고 있다. 그리고 쾌락 추구에 반해 책임감이나 결과는 회피하려는 현상도 증가하여 갈등, 대립을 지속, 확산시키고 있다.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의 증가,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인간과의 대립과 갈등 역시 취업이나 취직, 사회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기업체나 기관에서 채용 과정에서, 혹은 전 직장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혹은 이 사람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 대학 교수 등과의 대화를 통해서 걸러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다면평가가 직장 동료나 아랫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동료나, 직원의 승진, 승급을 제한하고 걸러낼 수 있다면, 이렇게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등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인간으로 보고 걸러내는 수단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심하게 내성적인 인간, 개인주의적인 인간을 조직에 맞지 않는 인간, 조직에 분란을 야기할 인간, 원만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고 걸러내려는 일은 진작부터 암암리에 행해졌다. 여기에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유형의 인간, 어떤 종교적인 신념, 믿음을 가진 인간, 사상적인 신념을 가진 인간, 타협을 모르는 인간 역시 잠재적인 조직문화 부적응자로 여기고 어떻게든 꺼리거나, 걸러내려 한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14세기 도시문화가 나타나고 1850년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로 세습이나 국가에서 정해주지 않고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회가 등장했다.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회사, 직장에서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그렇게 조성되어왔던 것이다.
2.4. 예상되는 사회변화
청년실업 만성화는 사회변화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2.4.1. 사회적 공동체의식(연대의식) 약화
청년실업의 만성화로 인하여 청년층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점차 감소하고 고립되거나 인간관계를 축소하고 기피하는 세태가 계속되면서 동료의식이 약화되거나 소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개인주의의 확산 및 자기중심적인 유형의 인간들이 증가한 상태이다. 사회가 안정된 이후 한 세대가 지나면, 그 다음세대부터는 생존에 연연하는 것, 자기 삶 외에도 자녀의 삶에도 투자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여기에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었더라도 직장생활을 통해 최소한의 단기간, 혹은 근무기간 중에 형성할 수 있는 인맥이나 인간관계조차 점차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굳이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도, 직장 동료를 통해 인간관계를 새롭게 형성하거나 새로운 가정을 꾸릴 기회가 충분하였다. 그러나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기간제근로자, 아르바이트생, 용역, 사회복무요원 등 다양한 계층의 근로자나 공무원이 동시에 한 직장에 근무하면서, 본인이 말발이 뛰어나거나, 호감을 주지 않는 이상 서로간의 인간적인 접촉은 최대한 꺼리는 쪽으로 가는 추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가 다소 어려워진 상태. 따라서 소속감, 연대감, 동지의식 등도 희박해지거나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점차 개인주의화와 개인화가 지속되고, 나는 고생했는데 등의 각종 피해의식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회 분위기, 한국사회 특유의 폭넓게 퍼진 이중잣대와 신뢰상실(가령 사기 등)로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토대로 불신과 증오, 의심으로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경우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4.1.1. 기존 각종 사회친목단체의 약화
수도권 인구집중화 시대에 태어난 청년층과 그 청년층의 청년실업이 만성화되는 것은 사회단체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1980년 거품경제와 1993년의 버블 붕괴 이후 저명한 대학이 아닌 대학의 동창회, 동문회 문화가 1980년대부터 서서히 사라지거나 축소되면서, 거의 뜸해지거나 소수만 모이는 형태로 바뀌어갔다.
청년실업의 만성화로 인해 개인주의는 더욱 심화되고, 과거에 비해서 더욱 치열해진 취업시장으로 인해 과거의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이어지던 인간관계가 더이상 유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 1970년대생 이후 수도권이나 대도시, 신도시에서 태어난 청년층이 압도적이다보니 사실상 향토의식이 희석되고 나아가 취업시장 경쟁으로 인하여 사회단체 참여조차 여유가 없는 실정이다.[25] 이들은 과거의 농촌사회와는 다르게 유년시절부터 평생을 따라가는 인맥 같은게 거의 희박할 가능성이 높다.
청년층의 공급(?)이 단절된 사회단체들의 말로는 '축소' 또는 '소멸'이다.[26][27]
위의 기사에서 보이는 이른바 3대 조직은 대한민국의 혈연(특정한 관습을 포함), 지연, 학연을 대표하는 사회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치열해진 취업시장과 각박해진 사회에서 청년층이 참여할 만한 동기가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청년실업의 관점에서는 번듯한 직장의 존재와 회비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요소들을 한데 버무려 잘 보여주는 것이 미주 한인 동문회이다.[28]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이나 실직, 이혼 그밖에 경제적 몰락 때문에 동창회와 동문회를 꺼리거나, 나가지 않는 이들이 기존에 소수 존재하였으나, 청년실업의 장기화와 만성화로 인한 상호간 불편함과 갈등요소 등이 겹쳐져, 일부 시골지역이나 지방 외에는 점차 축소되는 추세에 있다.[29]
종친회의 경우는 도시권역에 위치한 종친회마저 고령화로 인해 노인들의 친목회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농촌지역의 종친회는 해당지역의 고령화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젊은층들 사이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문화나 예술, 체육 혹은 취준, 자기 계발 등의 키워드 아래 취미를 공유하거나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를 하는 각종 동호회나 동아리, 스터디, 소규모 모임, 문화 행사, 번개, 축제, 강의, 뒤풀이 등이 남아 있었지만, 2020년이 되면서 사실상 모든 조직, 모임, 단체, 팀, 클럽 활동이 날아가거나 집합 금지 위반으로 공중분해되었다.
2.4.1.2. 종교의 약화 혹은 탈종교화
공동체의식 약화는 청년층이 기성 종교를 외면하게 만든다. 개인주의가 상당부분 확산된 가운데 청년실업 등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기존 종교나 기존 윤리의식에 대한 회의감, 의심도 더욱 증폭될 것이다. 특히 종교적 신앙적 경건성 보다는 헌금이나 십일조에 집착하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계 특유의 환경과 타종교, 타 사상에 대한 과도한 배척과 과도한 공격, 배타성 등은 이미 고학력자나 일부 중산층들에게도 충분히 염증, 부정적인 시선을 준 데다가, 청년실업이 만성화된 상황에서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교회처럼 주기적으로 회합,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는 암암리에 스펙 경쟁이 발생하기 일쑤이며, 연애-결혼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보니 청년 실업자, 즉 백수는 그 자리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교회 내에서도 그러한 계층을 신경써주지 않는다면 거의 퇴출, 탈퇴에 가까운 자진 이탈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숫자가 줄어든 조직은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유입책을 실행하지 않는 한 조직의 약화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
다만 문제점이 있어도 신앙의 차원을 넘어 종교는 물질적 것 이외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 고려대 심리학 교수 허태균은 "어쩌다 어른"에서 사회 질서가 잘 지켜지는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그 나라 주류 종교를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언급하며, 종교가 해체되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심각한 가치의 공황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보편적 윤리와 도덕으로 규정한 상당수의 개념들은 종교적 가르침에서 왔으며, 종교의 해체는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가 나올 수 있는 통로의 소멸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반대급부로 사회의 세속화는 명예와 도덕 등의 무형의 가치를 계속해서 평가절하하고, 오로지 금력과 권력의 획득만을 미덕으로 삼는 천박한 풍토를 형성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코로나19가 한국에서 전파되는 과정에서 종교집단의 우두머리라고 자칭하는 이들[30]이 악영향을 많이 미쳤고, 이들을 교회 연합이 제대로 규제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 자체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추면서 청년실업에 대한 반발 자체는 사그라들은 것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청년실업의 정도가 심해지고 종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증가해 종교이탈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어두운 전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종교단체가 변해야 한다. 십일조와 같은 물질적 이득을 포기하고, 금전적 스펙을 비교하는, 또다른 작은 사회로써의 종교가 아닌. 물질적 가치 그 이상을 추구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본연의 가르침을 따르며 희망과 용기를 준다면 오히려 전후 기독교의 급격한 확산처럼 종교가 더욱 퍼질수도 있다. 결국은 종교단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2.4.2. 소비의 실용주의화
소비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물건을 소비하지 않는 실용주의가 일종의 문화로 자리잡게 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화훼와 같은 품목들은 청년층이 소비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인 괴리가 발생한 상태이다. 예전 같았으면 구입했을 꽃에 대해서 청년실업과 취업경쟁으로 인해 소비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청년층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31]
특히 일본에서는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다. 현재 일본 젊은 세대들은 부모세대들이 젊었을때 보다 소비를 적게하고 있으며, 특히 사치품에는 관심을 가지지를 않아서 현재 일본경제에 발목을 잡고있는 현실이다.
2.5. 청년층의 근로의욕 약화와 사회불만 증대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층은, 나이가 들어서도 취업을 못하거나 임시직을 전전하는 불안정 취업층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져서 사회 불만세력으로 바뀔 여지가 생긴다. 청년실업자가 늘어날수록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노숙자, 히키코모리화, 인터넷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언제든지 사회 불만세력으로 돌아설 여지가 있다. 건전한 근로의욕을 잃고, 자살과 사회적 일탈행동, 심지어는 범죄에 손을 댄다.[32] 이러한 청년들이 집에서 2D나 게임, 인터넷으로 허송세월하면 그나마 낫다. 남들에게 피해라도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 불만세력에 들어가면 얘기가 다르다. 이슬람 무장단체와 반군이 안정적으로 조직원을 확보하는 원천이다. 이슬람 무장단체나 반군이 날뛰는 국가에서는 하나같이 청년실업이 심각하며, 실업을 해소할 대책조차 내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청년층은 국가에게 불만을 품은 지 오래다. 그 때문에 반사회 조직에 들어가서 테러를 일삼는다.
또한 국가에서도 지원이 필요하게 되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부모가 부유층이거나, 대도시에 수억 원대 아파트가 있는 수준이라면 구직을 거부하고 그냥 지낸다. 이들은 중상층 이상의 갓수까지는 아니지만, 몇 년씩 취직을 못 해도 아쉽지가 않아서 그냥저냥 시간을 보낸다.
적게 벌어서 적게 쓴다는 마인드가 2019년에 상당부분 확산된 상태다. 돈이 급할 때만 일시적으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30대, 40대들도 늘어난 상태.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굳이 취직하거나 돈을 벌 이유도 없다. 사람은 원하는 것, 관심사, 취향이 각기 다르다. 내 취향과 다르다 해서 상대방을 과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이나 근대의 빨갱이처럼 마녀로 몰고가는 일은, 편협하며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다. 내 취향과 다르다 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은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적은 돈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니트족으로 남는다.'고 결정했다면, 그것을 억지로 바꿀 여지는 없다. 그나마 쌍팔년대에는 물가라도 낮았지 지금은 월급과 물가차이가 갈수록 더 빡세지고 있다.
직업과 직장생활이 청년층에게 자부심이나 메리트를 주지 못하는 것 역시 청년층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취직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단순히 입에 풀칠하려고, 먹고 살기 위해서 취직하는 시대는 한참 지났다. 박봉과 불쾌한(아니면 노예 같은) 처우는 싫으니까, 아예 무직자로 살려는 사례도 늘어난다. 적은 돈을 받고 불쾌감을 견디느니 무직자로 남는 셈이다. 그들에게는 집에서 부모에게 잔소리를 듣거나, 눈치를 보는 쪽이, 적은 돈을 받고 불쾌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낫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취직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쌍팔년대 말. 여가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처우도 나쁘고, 인격적 대우가 없으며,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면 청년층의 취직률은 더욱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청년층은 취직을 기피한다.[33] 그리고 점점 더욱 기피할 것이다.
2.5.1. 청년층이 나쁜가?
2차적인 원인은 청년층에게도 존재하지만, 1차적인 원인은 부조리한 사회나 정치 체제 등 청년층 외의 문제가 크다.
청년층은 대부분 부조리한 사회의 피해자다. 청년층은 여러모로 열악한 사회환경에 시달리며 부조리한 사회를 바꿀 만한 조직된 힘이 부족하다. 하지만, 자신을 희생시켜야 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라면 그것도 역시 잘못이 아니다. 부조리에 당하거나 희생되지 않더라도, 회피하는 것도 일종의 저항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직업관, 직업인식도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조선이 멸망한 뒤에도 계속되는 사농공상류의 직업 귀천 사상[34], 같은 공장, 시장 가게에 일하면서도 자신과 같은 공장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젊은이를 멸시, 천대하는 현상 등 왜곡된 직업관이 청년층의 구직 의욕을 꺾고 있다.
그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한다, 너는 커서 꼭 펜대 굴려서 먹고 살아라, 하기 싫지만 가족 때문에 등, 일하기 싫은것은 본능적인 것이라 해도 역시 청년층의 구직의욕을 꺾는 언행들이다. 직업에 귀천을 두는 사회 분위기 그러니까 예를 들어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저런 일 한다.는 인식 역시 건전하지 못한 직업윤리관이다.
최근에는 다소 개선의 기미가 보이나, 예로부터 기술과 기능을 천시한 결과 전문대학들과 전문계 고등학교들은 각각 수능 성적과 연합고사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도피처로 전락한 바 있다. 우선 본인부터 본인의 희망, 원하는 것과 상관없는 학과, 관심사가 아닌 전공으로 진학해서 2년~3년간 시간만 낭비하고 나가는 케이스가 부지기수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자기 전공과는 상관없는 쪽으로 취직하는 현실이 일상다반사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기술, 기능에 대한 인식의 악화로 이어진다.
향후 기계화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여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등장, 2000년 이후로 진지하게 논의되는 중이다.[35] IMF 구제금융 직후인 2000년대 초반에는 공짜로 돈만 받으려 한다, 정부에 과도한 의존이라는 등의 비판이 더 많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불황의 장기화, 만성화된 경제위기와 취업난, 구직난, 고학력화, 빈곤, 산업용 로봇 도입으로 인해 그러한 비판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청년 스스로가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장에 일해 그 돈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백수나 니트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보고 스스로 백수, 니트족의 길을 선택했다면 그런 청년들에게 억지로 취업, 취직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세금을 적게 낸다고 눈총을 주고 멸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 삶의 질까지 포기한 사람들인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에서 충분히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36] 그리고 반성이란 단어는 잘못했을 때나 쓰는 말이다. 그들은 세금을 탈세한 것도 아니다. 진짜로 적게 내고 싶어서 적게 낸 것도 아니다. 그저 가진 돈이 적어서 적게 썼을 뿐이다. 그게 반성하라는 말을 들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년층의 방탕한 생활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2.6. 청년실업은 정부, 정치인, 기업인 등의 잘못인가?
청년들의 선택지를 좁혀 놓았다는 점과 헌법에 명시된 제대로 된 노동시장 감독을 소홀히 한 것과 고용창출 실패에 대해서는 잘못이 크다. 정부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대기업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고, 자발적(?) 야근이면 임금을 안 줘도 문제 없다는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취업을 인정해 임금상승을 막고, 근무환경 개선을 게을리하고 개선의지가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미지근해서, 사실상 대기업이나 공무원, 몇몇 전문직(판사, 의사 등)을 제외하면 답이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는 헌법에 명시된 것 처럼 제대로 된 일자리와 함께 국민의 일자리와 관련된 욕구를 해결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않아 발생한 사태에 대해서는 헌법에 따라 국가가 책임의 주체가 된다.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걸맞다고 생각되는 연봉, 급여와 근무 환경, 야근보다는 퇴근 이후의 생활 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청년층은 그 직업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 실제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평범한 고졸과 급여, 근무시간, 근무환경이 흡사한 일자리를 내놓는다면 굳이 그 일자리를 택하기보다는 구직을 미루는 쪽을 택하는 게 보통이다.[37] '그걸 이유로 들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급여가 책임감보다 더 중요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말하지만 이것은 열정페이이자 일종의 착취 정당화 논리로 악용되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청년 자신의 관심사, 흥미가 있던 직종이라면 사람에 따라 야근이나 약간의 손해 정도는 어느 정도 감수하긴 하겠지만, 청년 자신의 관심사, 흥미가 있던 직종 아니라면 더욱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적은 봉급, 열악한 근무여건, 야근을 받아듣일 것 등을 강요하는데 대한 반발로 열정페이라는 풍자, 신조어도 등장했다. 적은 돈에 열악한 환경과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부모와 주변의 눈치, 잔소리를 듣더라도 장수생, 고시낭인이 되는 케이스도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것으로는 청년층을 설득하기도 어려워졌다.
민주주의 국가의 선택 권리로써 청년들이 일자리를 선택하지 않는 부분에서 청년들에게 1차적인 책임을 떠 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선택권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임금도 주지 않고 야근수당도 잘 챙겨주지 않는 일거리가 널렸다고 해서 선택의 기회가 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택의 기회는 어디까지나 선택하는 입장에게 불이익이나 강제성이 없을 때 성립할 수 있다. 즉 청년층의 책임은 직업선택에 따른 책임보다, 국가시스템의 문제점을 그냥 방관하고 스스로 선택권을 넓히려는 추가적인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국가와 정치인들은 그들 스스로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시스템 상 책임이 가장 막중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정치인들을 뽑은 사람들과 국가의 실업해결방안들을 수용한 것 역시 현재의 국민들이며, 따라서 모든 책임을 국가와 정치인에게만 떠넘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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