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9일 새벽 일본의 연합함대가 여순항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시작됐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러일전쟁 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으며, 창의적인 전술을 구사하여 대마(對馬)해전에서
크게 승리함으로써 일본 사람들에게 군신(軍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1847년 규슈에서 태어났으며 원래 어렸을 때 이름은
쥬고로오였으나, 성인이 되면서 헤이하치로로 이름을 바꿨다.
1871년 동료 11명과 함께 영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당시 나이는
25세였다. 8년간 영국 유학에서 해군전술과 넬슨 제독의 정신 등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 그는 그해 7월에 중위, 12월에 대위, 그 다음해
12월에 소좌가 되는 등 승진을 계속해 나갔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낭속 함장으로 출정하여 승리함으로써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도고는 승진을 거듭하여, 러일전쟁의 전운이 짙어질 무렵인 1904년 12월 중장으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되었다.
▲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 그는 젊은시절 세계 최강의 해군 국가였던 영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그곳에서 교회를 다니면서 성가책과 성서를 교재삼아 영어를 배운 뒤, 이를 바탕으로 해군 관련 교재를 공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마해전은
1905년 총 50척으로 편성된 러시아 연합함대가 베트남 후안홍항을 출발해 5월 27일 새벽 대한해협에 도착해 북상함에 따라 러·일 함대간
벌어진 전투다.
적을 발견한 도고는 전 함대에 전투개시를 명하는 동시에 기함 마스트 높이 “황국의 흥망이 이 일전에 달려 있다. 전
장병은 한층 분발 노력하라!”는 유명한 신호기를 올림으로써 전 장병의 사기를 일시에 고무시킬 수 있었다.
이어 일본 연합함대는 곧
유명한 적전대반전의 정(丁)자 기동(일명T자 기동)을 시작했다. 이 丁자 기동은 도고 장관이 청일전쟁 시 황해 해전에서 적을 놓친 경험을 살린
기동으로, 우선 적의 정면으로 가서 적의 회피를 막고, 급회전으로 접근한 뒤 변침하여 적에 대하여 丁자의 태세로 위치하는 일련의 전술기동이다.
丁자형은 당시 포전(砲戰)을 지속하기에는 가장 유리한 태세였고, 포전기량이 우월했던 일본함대가 대비한 가장 중요한 전술의
하나였다.
전투 결과 일본 함대는 러시아함 격침 19척, 포획 5척, 포로 사령장관 이하 6000명, 억류 병원선 2척, 무장해제
6척, 도주 중 좌초 및 침몰 2척이라는 대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전과는 100여년전의 트라팔가르 해전시 넬슨 영국 제독의 대승리를 상회하는
완전한 승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승리의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그 첫째는 적의 앞에서 180도 회두하여 집약시킨
포전 전술의 우월함에 있었다.
둘째는 오후의 전투부터 야간전투, 이어서 다음날 전투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함정배치와 운용이었다.
이것은 유명한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 참모의 작전계획에 의한 이른바 7단계 전법이었다.
그 외에 일본해군의 우월한 사격기량과
도고를 중심으로 한 장병들의 높은 사기도 승리의 요인이었다.
러일전쟁의 결과가 전세계에 알려지자, 영국에서는 도고가 영국에서
수학하였음을 자랑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해군협회에서는 편지와 함께 넬슨의 머리카락 일부와 넬슨의 흉상을 보내고, 도고의 머리카락을
보내주면 영구히 보관하겠다고 하여 이에 응한 바 있다고 한다. 1913년 4월 원수로 승진한 그는 이듬해 4월 황태자 교육기관의 총재가
되어 7년간의 대임을 마치고는 성장(聖將)으로 불리워졌으며, 1934년 5월 4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으로 도쿄시가
관할하는 명예묘지에 안장되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