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솔광의 의미
'꽃들의 싸움이라'해서 화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1월의 상징에 왜 꽃도 아닌 학이 등장하고 솔가지가 등장하는지 이에는 기막히고도 슬픈 전설이 있다. 원래 소나무는 나무가 아닌 꽃이었다. 그것도 그냥 꽃이 아닌 소 잡아먹는 꽃이었다. 원래 이름은 '소잡이꽃'이란 이름의 꽃이었는데 이게 세월이 흘러 흘러 소나무가 되었다.
'소잡이 꽃'으로 인해 삼천리 금수강산에 소(牛)라는 소 는 몽땅 씨가 말라가자(소잡이 꽃의 향기를 맡은 소는 죽을때 까지 소잡이 꽃에 온몸을 비비고 지랄발광을 하다 결국 정기가 고갈되어 죽었다고 한다.)
결국 태양신은 천상에 살던 학을 내려보내 소잡이 꽃의 상큼한 향기와 넘치던 물기를 온통 빨아먹게 하여
소잡이 꽃의 꽃잎은 뾰족한 솔잎으로 변하게 하였다. 아침 안개보다 보드랍던 꽃대는 뭉툭하고 거친 소나무 껍질로 변하게 되었다.
그뒤로 세상의 모든 풀을 네개의 위로 소화시키던 소도 유독 솔잎만은 소화시키지 못했다.(그래서 화투는 소의 위(胃)를 본따서 띠별로 네장씩 이고 총48장이 되었다) 소를 매어둘때도 소나무 가지는 무조건 피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부터 연유된다. 하지만 지금도 소나무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는 이 세상 어떤 꽃향기도 흉내낼수 없는 청아함을 가지고 있다. 휘영청 늘어지는 고송의 자태는 그옛날 아름답던 소잡이 꽃의 고혹스런 실루엣을 연상케한다.
그렇다면 왜 솔광의 학은 태양을 바라보며 시뻘건 눈을 흘기는 걸까? 그것의 연유는 이렇다.
지상에 내려가서 소잡이꽃의 악행을 근절시키면 그 댓가로 학을 봉황으로 거듭나게 해주겠다던 태양신의 허튼 공약에 피눈물을 흘리며 태양을 노려보는 학의 모습과 그 학의 발밑에선 이미 나무의 솔잎으로 변해버린 소잡이꽃의 꽃잎이 학을 바라보며 한서린 원한을 뾰죡히 세워 톡톡 쏘고있는 모습을 솔광에 담아논 것이다.
그냥 억지로 만든 얘기인 듯 하고 혹은 화투를 만든 일본인 들의 생각을 알아보자.
■1월 송학
해는 새해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다. 소나무는 정초에 집 앞 대문에 세워두는 장식물로 이를 가도마츠[門松]라 한다. 이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으로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한 뜻이 있으며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번성하라는 뜻이 있다.
■2월 매조
2월에 해당하는 매조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그려져 있다. 매화 축제는 2월에 시작되는데 벚꽃 못지않게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꽃으로 문학작품에 단골로 나오기도 한다.
■3월 벚꽃
일본의 벚꽃 축제는 3월 최고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3월의 화투 문양은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차 있다. 일본인들은 벤토(도시락)를 싸가지고 벚꽃 밑에 자리를 펴고 먹고 마심으로써 가족애와 동료애를 다진다.
■4월 흑싸리
4월 문양은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흑싸리로 착각하고 있다.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빗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가을철에 이것을 베어 햇볕에다 말리면 갈색으로 변한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로,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로 쓰인다.
■5월 난초
5월 문양은 난이 아니라 '붓꽃'이다. 난은 습지와는 상극 관계이며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이다.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다 만들어놓은 산책용 목재 다리이며 세 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다리 끝에는 붓꽃을 감상하는 사람이 있는데, 삼광에서와 마찬가지로 화투 하단의 보이지 않는 1인치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
■6월 모란
6월 문양은 모란이다. 모란은 고귀한 이미지의 꽃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본화에는 모란과 나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화에선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다. 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가 엿보인다.
■7월 홍싸리
7월 문양은 싸리나무다.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그러나 이 문양은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제작자의 창작인 듯하다. 여기에 멧돼지가 나오는 이유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이다.
■8월 공산
8월 문양엔 산, 보름달, 기러기 세 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8월이 일본에서 ‘오츠키미(달맞이)’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문화적 암호다.
■9월 국화
고스톱꾼들은 9월 화투를 유난히 좋아한다. 9월은 일본에서 국화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계절이다. 그 쌍피에는 ‘壽(목숨 수)’ 자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인 헤이안시대부터 유래한 ‘9월 9일에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10월 단풍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수사슴과 단풍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11월 오동
오동은 가장 각광받는 화투 패다. 속칭 ‘똥광’으로 불리는 오동의 광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 역시 오동만이 유일하게 3 장이다. 오동의 광에는 닭 모가지 모양의 조류와 싹 같은 것이 등장한다. 닭 모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조류는 평범한 새가 아니다.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다. 검은색의 싹은 오동잎이다. 오동잎 역시 일왕보다도 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막부의 쇼군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현재에도 일본 정부나 국공립학교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화폐 500엔 주화에도 오동잎이 도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다.
■12월 비
절기상으로 12월은 추운 겨울이다. 그런데도 비광을 살펴보면 눈모양 대신 낯선 선비 한 명이 양산을 받쳐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수양버들 사이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고 그 옆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며 일어서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개구리가 왜 12월에 등장했을까. 이는 일본의 ‘오노의 전설’을 묘사한 것이다.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小野道風, 894~967)’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그는 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머나먼 방랑길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오노는 수양버들에 기어오르려고 노력하는 개구리의 모습을 보고 “미물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가”라는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 조그만 화투에 일년을 그대로 담아 놀다니 좀스럽기도 하지만 미래지향적 아니었나 싶다.
화투를 치면서 별로 알고싶지는 않지만 그 의미는 알아두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