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프카즈 일기 10 / 디리바바 Diri Baba
디리바바 전설은 본래 동굴 속에 산다 아득한 벼랑에 매달린 채 비와 이슬에 깊이 젖을수록 전설은 풍요로운 물살이 되어 허기진 필부의 가슴을 두루 적신다 바람에 풍화된 현자의 낡은 손이 한 페이지씩 코란을 넘길 적마다 다람쥐도 와서 듣고 사슴들도 창밖을 기웃거린다 디리바바가 한 번 기침을 할 때마다 자두 열매도 서둘러 맛이 들고 문밖의 가을날도 붉게 물든다 현자가 한 번 옷깃을 여밀 적마다 새로 태어난 전설들로 붐빈다 |
10. 디리바바 Diri Baba
수피Sufi는 냄새를 두지 않는다
몸에 아무런 빛깔과 향기도 입지 않는다
디리바바는 수피를 자처하지 않는 수피였을 것이다
수피이기 전에 마음 좋은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따뜻한 봄날은 골고루 나누어 주고
서리와 추위는 비켜서지 않았으므로
누구나 그 너그러운 그늘 아래로 와서
저들이 지닌 추위와 서리를
조용히 녹이고 돌아갔을 것이다
Diri Baba는
‘살아있는 할아버지’라는 뜻
늙은 수피는 죽어서도 살아있는가
이역 땅, 쉐마키Shamakhy의 벼랑 끝에 묻혀서도
카프카즈의 백성들을 가르치는가
‘Living grandfather’는 죽지 않는다
육신이 살아 있을 때부터 영험靈驗이 지펴서
현자가 손을 대면 무슨 상처도 치유되었기에
영혼이 아픈 여염들은 누구나 찾아와서
효험을 얻어서 돌아갔었다
이적이 줄을 이어
소문은 사방으로 퍼져서
모든 아이들의 할아비가 되고
몸져누운 이들의 위로가 되었었다
디리바바는 이란 땅에서 건너온 수피
단신으로 달랑 코란 하나만을 들고
머나먼 이역인 카프카즈로 와서
이곳 마라자Maraza 마을에 정착한 후로
알라를 전파하고
영원을 가르치고
분노와 두려움을 몰아내며
세간을 떠도는 영욕을 잠재웠었다
중세의 저 어두운 시절을 등에 업고 찾아와
암흑을 몰아내어 빛을 일으키며
반목하는 형제들에게 평화를 가르쳤다
수피의 지도자가 한 번 허리를 굽히자
쉐마키와 마라자의 백성들이 다투어 찾아와
경의와 존경을 바쳤으니
지금은 절반쯤 전설이 되어
우유 빛 돌의 벼랑에 몸이 묻혔다
옥타곤 무늬의 격자창
1402년에 지어진 디리바바의 묘는 고독하다
수피의 묘는 벼랑 끝에 있다
흡사 벼랑 끝에 아스라이 매달려 있는 형국
바위산은 깎아 세운 듯 가파르다
영묘와 모스크로 된 2층 구조의 건물
외관은 초라하고
내부는 더욱 적막하다
살아 있을 때 집이 없는 할아버지가
죽어서 어찌 집을 두랴만
벼랑으로 오르는 계단은 너무도 비좁아
두 사람이 비켜설 곳도 없다
내부의 풍경은 너무도 을씨년스러워
영묘라 할 것도 없고
모스크라 할 만한 것도 없다
1층은 명상의 방
2층은 묘소
늙은 수피가 앉아 있던 자리 앞의 서안書案 위에는
코란이 펼쳐져 있고
묘소는 차라리 명상의 방이다
옥타곤octagon 무늬의 격자창은 오랜 세월의 풍화에 시달려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8각형 무늬의 유리창은
오랜 세월의 우로에 시달려 피로한 기색
일곱 계단 이후는 모두 천국의 계단이라지만
현자의 천국은 너무도 쓸쓸하다
그러나 이적은 죽지 않는다
현자의 자취는 살아서 사람을 불러들인다
가난한 자는 오늘도 찾아와서
디리바바 명상의 자리
주린 가슴을 기적으로 채워서 돌아간다
지혜는 결코 죽지 않기에
수피의 지혜에 기대어
내일의 고단한 삶을 물어보고 돌아간다
나는 모스크 위쪽의 산정으로도 올라가 보았지만
산정에서 바라보는 아득한 벌판은
살아남은 자의 생업의 물결들로 넘친다
사방은 적막하다
영욕이 돌아가고 없는 자리에
유월의 따가운 바람이 분다
지금도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는 수피의 지혜 앞에
여름날의 열매가 익는다
쉐마키의 하늘은 너무도 과묵하다
뙤약볕에 익은 전설의 부피가
나의 눈앞에서 자꾸만 부풀어오른다
(이어짐)
첫댓글 종교의 힘은 위해하네요. 이슬람 선지자의 묘를 가파른 벼랑위에 저런 석조로 만들었다는 것이 위대한 백성들의 힘이요, 염원이 아니었나 싶네요. 참으로 어려운카프카즈의 역사가 되어 이어오고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