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를 위한 묵상변승우 명서 베드로(평화방송 TV국장)
1993년, 파격적인 영화 한 편이 할리우드를 강타했다. 「필라델피아」라는 제목이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세상의 멸시를 받아야 했던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였는데, ‘죽음보다 참혹한 차별과 경멸’이 스크린에 가득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다 쓰러진 주인공 ‘톰 행크스’의 창백한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동성애자 대다수의 현실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영화만큼이나 힘겹다. 교회도 그 고통에 공감해왔다. 그러기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어쩔 수 없이 동성애 경향을 보이는 이들을) 존중하고 동정해야 하며 어떤 차별의 기미도 보여서는 안 된다”(2358항)고 가르친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시련에 안타까워하는 교회의 목소리는 볼륨을 키우기 어려웠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듯한 세간의 오해가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교회의 위로는 항상 소극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천적으로 동성애 성향을 타고난 이들에겐 사회에서 당하는 부조리 못지않게 교회의 몰인정이 한(恨)이 되었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동성애자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맞춰가는 거대한 사랑의 퍼즐에서 아직 비어 있는 몇 조각 중 하나이다.
10월 19일 끝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임시총회’는 교회의 포용을 기다려온 신자 동성애자들에게 실망과 희망을 함께 안겼다. ‘동성애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 포함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성전 밖에서 떨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다시 한 번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하지만, 전에 없던 가능성이 보였다. 희망의 정체는 ‘소란함’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수준의 ‘열린 토론의 장’을 이끌었고, ‘감히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스스럼없이 구체적으로 나눠졌다. 비록 “동성애 성향이 있는 남녀에 대한 존중”을 명시한 문구가 막판에 삭제됐지만, 표결 방식이 2/3 찬성이 아닌 과반수 결정이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선하고 정직한 소란함’이 가져온 결과였다. 투명한 담론은 꺼지지 않고 이어져 마침내 하나의 물음에 닿을 것이다. “그리스도라면 저 아파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을까?” 이번 임시총회를 “희망적”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다.
몇 년 전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가 동성애자들의 아픔을 다뤄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에서 아들의 커밍아웃을 들은 어머니가 남편에게 울먹였다. “셀 수 없이 죽고 싶었대. …엄동설한 삭풍 속에 우리 아이 벌거벗겨 세워놓지 말자. 바람막이 쳐주고 옷 든든히 입혀 우리가 난로가 되자….” 어머니이신 교회의 자비 또한 같으리라고 확신한다.
동성애가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흔들릴 수 없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껴안아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교회의 소명이란 사실 또한 자명하다.
비단 동성애자 문제뿐 아니다. 교회는 쉼 없이 그리스도 백성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의 길을 고민할 것이고, 그때마다 성령께서 주시는 ‘소란함의 은총’이 그 길의 폭을 넓혀주리라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야전병원”이라고 말했다. 그 자비의 병상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활짝 열려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