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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 다3部
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가흥강에 배를 띄우다[嘉興江放船] 병진년(1796) 4월 16일
험준한 산길 싫증이 나서 / 久厭山谿險
편리한 뱃길로 바꾸기로 했다네 / 翻思水路便
단양 동굴 가자던 약속 어기고 / 悵違丹穴約
홀로 예주의 배에 올랐더니 / 獨上蘂州船
양 언덕의 풍경이 수려하고 / 兩岸風煙麗
중류에 뜨니 사방이 다 보인다 / 中流顧眄專
모래밭엔 자색 풀싹이 돋고 / 沙茸抽紫穎
노랗고 예쁜 움들도 죽 나 있네 / 澗蘗綴黃姸
산에 해 지면 새소리 유창하고 / 山晩禽吭滑
날 푹하여 둑에 말들도 잘 노는구나 / 堤暄馬戲儇
아지랑이 모래 위에서 너울너울 / 游絲沙氣盛
노 저으면 수면은 원을 이루고 / 移櫓水紋圓
예쁘장한 봉우리들 나타나더니 / 娟妙飛峯出
비스듬한 버드나무가 휙휙 지나치네 / 逶迤臥柳遷
소용돌이치는 물 센여울로 흐르고 / 盤渦趨急瀨
울퉁불퉁 바위에 부딪쳐 울기도 한다 / 惡石吼驚泉
씽씽 부는 바람 술을 깨게 하고 / 拂拂風醒酒
찰랑찰랑 넘치는 물 뱃전을 치네 / 搖搖水擊舷
저 멀리 평지가 나타나고 / 悠然出平地
명랑한 푸른 하늘 보이니 / 開朗見靑天
가도 가도 드넓은 세계 / 世界重重豁
굽이굽이 연기가 자욱하다 / 人煙曲曲連
험하고 평탄한 길 늘 서로 바뀌고 / 險夷常遞換
걱정과 즐거움도 언제나 서로 끌지 / 憂樂每相牽
마음이 조잡하여 시속 슬퍼하다가 / 狹陋傷時俗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놀지요 / 優遊謝罪愆
내 이제 강해에 뜻을 두어 / 庶將江海志
시조와는 잠시 인연 끊으려네 / 暫絶市朝緣
나라 버리고 떠난 치이자며 / 去國鴟夷子
시 잘하는 가랑선도 있지 않았던가 / 能詩賈浪仙
큰 박은 쓰이기 어려운 것이며 / 未應容大瓠
빈 활만 보고도 겁먹는 새라네 / 久已怯虛弦
장안의 쌀 찾기 조심스러워 / 愼索長安米
영수 가 밭으로 갈 생각이라네 / 謀歸潁尾田
침착하게 젊은 예기 거둬들이고 / 沈潛收銳氣
세월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은 / 放達送流年
그 마음 항상 있어 왔었는데 / 此計心常有
오늘 따라 흥취가 야릇하네 / 今朝興渺然
들은 말이지만 요순 시대에도 / 曾聞堯舜世
기산에 숨어 산 자 있지 않았던가 / 猶有隱箕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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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족부 이부공 산장에서 뜰 앞에 있는 괴석을 읊다[族父吏部公山莊 賦得庭前怪石]
공부자는 괴이한 것 좋아하지 않았는데 / 夫子不好怪
어찌하여 괴석을 저리 두었을까 / 胡爲蓄怪石
검소하기 우 같은 이도 없었지만 / 卑險莫如禹
일정량을 공물로 정하였고 / 猶然充貢額
울림 역시 청렴한 선비였으나 / 鬱林亦廉士
배에 실을 것 기와 조약돌 아니었지 / 鎭船非瓦礫
진기하게 여기저기 구멍이요 / 譎詭多竅穴
독특한 뼈대를 갖추고 있네 / 離奇有骨骼
그 뿌리 맑은 샘에 잠겨 / 雲根侵淸泉
방울방울 물방울이 돋고 / 淋淋帶蒸液
모진 곳에는 살짝 자색이 돌며 / 觚稜潑淺紫
새파란 이끼가 선명하다 / 苔髮滋鮮碧
줄 서 있는 봉우리들 하며 / 峯崿森成列
가느다랗게 파인 골짜기들 / 厓谷細相闢
찰흙으로 붙여진 한 그루 소나무는 / 泥黏一株松
멀리 보아 천 척이나 되는 듯하고 / 遠勢似千尺
흡사 해묵은 나무 뿌리가 / 渾如古木根
울퉁불퉁 주름잡혀 있는 것 같다 / 擁腫縐襞積
모양이 오동통하면 대개 다 버리고 / 頑肥槩見黜
살이 없이 수척해야 그것이 좋다네 / 所崇在癯瘠
유독 뾰족한 봉우리 셋은 / 三峯特崷崒
옛날 풍천에서 실어온 것인데 / 舊載豐川舶
풍천이 패강 어귀에 위치하여 / 豐川扼浿口
황금과 비단이 많이 모여드는 곳 / 湊集多金帛
황금과 취석 둘을 두고서 / 黃金與翠石
슬기로운 자는 알아서 고른다네 / 智者知所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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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양강에서 고기잡이를 만나다[楊江遇漁者]
영감 하나 동자 하나 그리고 소년 하나 / 一翁一童一小年
양근의 강머리에 고기 낚는 배 한 척 / 楊根江頭一釣船
배 길이는 세 발이요 낚싯대는 두 발이며 / 船長三丈竿二丈
수십 개 촉고에다 낚싯바늘 삼천이로세 / 數罟數十鉤三千
소년은 노 저으며 배 꼬리에 걸터앉았고 / 少年搖櫓踞船尾
동자는 줄 삶느라 솥가에 앉았는데 / 童子炊菰坐鐺邊
영감은 술에 취해 깊은 잠이 들었는지 / 翁醉無爲睡方熟
두 다리를 뱃전에 걸고 푸른 하늘 보며 자네 / 兩脚挂舷仰靑天
강호에 해가 져서 흰 물결 일렁이고 / 日落江湖浪痕白
산뿌리에 물 잠기고 마을 연기 푸르를 제 / 山根水浸村煙碧
소년이 동자 불러 영감 흔들어 깨우니 / 少年呼童攪翁起
고기새끼 막 뛰놀고 해는 저물어 가는구나 / 魚兒撥刺天將夕
중류에다 그물 치고 갔다가 또 다시 오고 / 中流布網去復還
배 저으며 위아래로 오가는 게 북모양이네 / 上下刺船如梭擲
들리는 건 삐걱 빼각 노를 젓는 소리뿐 / 伊軋唯聞柔櫓聲
물인지 구름인지 색깔 구별도 못하겠다 / 蒼茫不辨雲水色
황혼에 그물 걷어 유랑에다 배를 대고 / 黃昏收網泊柳浪
고기를 따 땅에 던지니 그 냄새 향기로워 / 摘魚落地聞魚香
관솔불 밝혀 두고 버들가지에다 세어 꿰는데 / 松鐙細數柳條貫
그 불빛 물에 비치니 길다란 동룡이어라 / 鐙光照數銅龍長
농부와 장사꾼들 서로 와서 보고서는 / 野夫估客爭來看
땡글땡글 던진 돈이 상자에 그득하네 / 鏗鏗擲錢錢滿筐
풍찬노숙을 하면서도 아무런 병이 없이 / 水宿風餐了無恙
둥실 뜬 배 집을 삼아 여유 있게 노닌다오 / 浮家汎宅聊徜徉
부귀 탐내는 인간들 장사를 잘 못해서 / 人間富貴非善賈
가짜 즐거움 누리려다 괴로움만 다 산다네 / 盡將僞樂沾眞苦
아침이면 성현인 양 의관 차리고 뽐내다가 / 朝將軒冕飾聖賢
저녁이면 칼 도마로 원수처럼 대한다오 / 暮設刀俎待夷虜
수레 찬 망아지처럼 언제나 절절매고 / 跼蹐常如荷轅駒
답답하기 참으로 우리에 갇힌 호랑이지 / 鬱悒眞同落圈虎
새장의 꿩 깔끔함은 콩 탐내지 않은 것이나 / 籠雉耿介不戀豆
닭장의 닭들이 조잘거림은 시기하기 때문이야 / 塒鷄啁哳生嫌怒
어찌하여 강 위의 고기잡이 늙은이가 / 何如江上一漁翁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동서도 없다던가 / 隨風逐水無西東
유주의 이해도 까맣게 모르는 일 / 維州利害漠不聞
동림의 승패 역시 귀를 막고 산다네 / 東林勝敗俱成聾
물풀 갈대 우거진 섬 그게 바로 정원이며 / 蘋洲蘆港作園圃
갈대 이불 쑥대 지붕 안식처가 거기라오 / 葦被篷屋爲帲幪
나도 두 자식 데리고 소내에 들어가서 / 會攜二兒入苕水
소년 노릇 동자 노릇 하나씩 맡게 하리 / 令當一少與一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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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윤남고에게 써서 부치다[簡寄尹南皐] 윤이서(尹彝敍)
듣자니 지금 화성부에 / 聞說華城府
단단한 철옹성을 쌓고 있다던데 / 嚴關鐵甕重
날 듯한 누대 무지개에 닿아 있고 / 飛樓臨螮蝀
화려한 누각에는 교룡을 그렸구려 / 綺閣畫蛟龍
건업에 강산이 수려하고 / 建業江山麗
신풍에는 초수가 무성하지 / 新豐草樹濃
왕릉에 상서로운 기운 서려 있어 / 寢園佳氣盛
일만 주 소나무를 해마다 심는다오 / 歲植萬株松
탁월한 영감 윤고산은 / 卓犖孤山老
인품이 속세를 훨씬 벗어났었지 / 風標逈出塵
화란을 막으려고 간사한 자 물리치고 / 擊奸消禍亂
인간 질서 확립하려고 입바른 상소했지 / 抗疏正彝倫
한실에선 장유를 데면데면 대하였고 / 漢室疎長孺
오문으로 숨어 지낸 자진이었네 / 吳門隱子眞
강력히 주장했던 풍수설 때문에도 / 却因風水說
일천 년 두고두고 충신이 되었다오 / 天載作忠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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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김 좌랑 상우 과 창수하다[酬金佐郞 商雨]
나막신굽 자국이 지워지도록 이끼 자라 / 屐齒痕平長綠苔
그대가 가고서는 문을 열지 않았다네 / 自君之去未門開
자각에서 인 구름 둥실둥실 떠 가고 / 雲生紫閣娟娟去
단양에서 나오는 강 멀리멀리 흐르는구나 / 江出丹陽遠遠來
무단히 시서 갖고 서울에도 있어 봤지만 / 枉抱詩書留漢邸
존대 예우 받으려고 연대에 안 왔다네 / 不因尊禮到燕臺
방달이 더 깨달음인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 安知放達非深悟
앞마을 탁주잔을 괴이하게 생각 말게 / 休怪前村濁酒盃
시인은 병도 없이 혼자서 끙끙대는데 / 詩人無病獨呻吟
기껏해야 멍청이가 제 혼자 좋아해서지 / 終是癡人嗜好深
조회 이전 것이래야 그게 옛 가락이지 / 曹鄶以前方古調
하량 이후의 것들은 시끄러운 소리들이야 / 河梁而降槪繁音
언제나 해제처럼 구멍을 파려했고 / 常從海帝謀穿竅
소문의 거문고를 배우려고 애도 썼지 / 苦向昭文學鼓琴
힘을 다해 파고들 건 육경이 그만이야 / 咀嚼六經宜盡力
지금 반짝하는 것보다는 먼 장래를 보아야지 / 由來麗遠勝熏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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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김좌현 상우 과 창수하다[酬金佐賢 商雨]
느릅나무 산뽕나무 잎들이 너울너울 / 山楡野檿葉鬖髿
붉은 팥 참깨들은 싹이 나오려 하네 / 紅豆胡麻欲吐芽
반평생 공부하여 해 놓은 일 무엇인가 / 半世窮經成底事
벼슬살이 십 년 세월 농삿집이 그리웁다 / 十年游宦夢田家
서각에 해가 지니 하늘이 어스레하고 / 日沈西閣流雲氣
남호에 바람 일면 물결은 꽃이 되지 / 風捲南湖蹴浪花
정원으로 돌아가리 진작부터 다진 마음 / 將就小園心計熟
돛대 하나 떠 있는 곳 그게 바로 생애라오 / 一帆高處是生涯
더위가 불을 때듯 천지가 푹푹 쪄서 / 炎威燀爀九天薰
햇빛인지 노을인지 분간을 못하겠다 / 日色煙光漭不分
세에 눌린 토산은 모두가 불덩이요 / 勢壓土山都似火
대기는 바다를 쪄 모두 구름이 되는구려 / 氣蒸滄海盡成雲
교룡의 뜻도 모르고 뇌성벽력 야단이고 / 空雷莫曉蛟龍意
제비와 참새떼들 숲 속에서 법석대네 / 深樹何忙燕雀群
유일하게 옥병 속에 한 조각 얼음 있어 / 唯有玉壺氷一片
청랭한 지조 갖고 속세와 담을 쌓았지 / 獨堅淸操逈塵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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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달을 보고 붓을 갈겨 남고에게 부치다[對月走筆寄南皐]
바다 위 달 얼굴을 비치고 / 海月照顔白
하늘 바람 머리털을 불어 헤치네 / 天風吹髮疏
차는 석 잔을 다 마셨고 / 茶傾三椀後
종소리 구가에 막 울리는데 / 鐘動九街初
펄럭이는 뜰 가운데 나무 / 旖旎庭中樹
또록또록한 벽에 붙은 글 / 分明壁上書
옷을 털고 다시 거닐면서 / 振衣還散步
적적히 마을터를 보노라네 / 寂歷見村墟
일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 見事頗遲鈍
주위 한가하여 시 좋은 걸 처음 알았지 / 居閒始好詩
강호가 오히려 살 만한 곳 / 江湖猶有世
낭묘에 오를 기회 아마 없으리 / 廊廟恐無時
버림받는 것 나는 그게 좋아 / 擯棄吾斯樂
나라 살림 맡으면 대중이 다 비웃지 / 經綸衆共嗤
고관대작도 결국은 다 썩는 것 / 大官終亦朽
뿔을 먹은들 필경 누가 알 것인가 / 飧角竟誰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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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또 남고에게 절구 다섯 수를 부치다[又寄南皐五絶句]
후한 녹이 올 이치가 있는가 / 厚祿何曾至
실속 없는 시만 무단히 많다네 / 淸詩空自多
맹교도 화끈한 말은 없었고 / 孟郊無熱語
두보 역시 미치광이 노래였지 / 杜甫亦狂歌
가난해도 주량은 넓고 / 酒戶貧猶闊
시는 늙을수록 생각이 깊지 / 詩愁老更長
밝은 달 아래서 머리 긁적이고 / 搔頭明月下
낙화 곁에서 베개 세워 기댄다네 / 敧枕落花傍
은둔생활 괴롭도록 생각나고 / 雲林思轉苦
세상길은 갈수록 어렵기만 해 / 塵路去逾難
좋은 시 내용은 꾸밈이 별로 없느니 / 佳句多眞率
속안이 보게는 하지 말게나 / 休令俗眼看
가난한 자에게도 백발은 어김이 없고 / 白髮貧猶足
총총한 정신에도 오건은 비스듬히 쓴다네 / 烏巾醒亦斜
동가에서 좋은 얼굴로 대한다면야 / 東家顔色好
꼭 서가에 가 잘게 뭐라던가 / 何必宿西家
비 오면 둥우리에 제비 젖어 애처롭고 / 雨憐巢燕濕
날 들면 무자맥질하던 오리 말라서 좋지 / 晴愛浴鳧乾
기보를 뉘에게 물어 풀 것인가 / 碁譜憑誰解
산경이라면 혼자 봐도 되겠지만 / 山經許獨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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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또 남고에게 절구 다섯 수를 부치다[又寄南皐五絶句]
후한 녹이 올 이치가 있는가 / 厚祿何曾至
실속 없는 시만 무단히 많다네 / 淸詩空自多
맹교도 화끈한 말은 없었고 / 孟郊無熱語
두보 역시 미치광이 노래였지 / 杜甫亦狂歌
가난해도 주량은 넓고 / 酒戶貧猶闊
시는 늙을수록 생각이 깊지 / 詩愁老更長
밝은 달 아래서 머리 긁적이고 / 搔頭明月下
낙화 곁에서 베개 세워 기댄다네 / 敧枕落花傍
은둔생활 괴롭도록 생각나고 / 雲林思轉苦
세상길은 갈수록 어렵기만 해 / 塵路去逾難
좋은 시 내용은 꾸밈이 별로 없느니 / 佳句多眞率
속안이 보게는 하지 말게나 / 休令俗眼看
가난한 자에게도 백발은 어김이 없고 / 白髮貧猶足
총총한 정신에도 오건은 비스듬히 쓴다네 / 烏巾醒亦斜
동가에서 좋은 얼굴로 대한다면야 / 東家顔色好
꼭 서가에 가 잘게 뭐라던가 / 何必宿西家
비 오면 둥우리에 제비 젖어 애처롭고 / 雨憐巢燕濕
날 들면 무자맥질하던 오리 말라서 좋지 / 晴愛浴鳧乾
기보를 뉘에게 물어 풀 것인가 / 碁譜憑誰解
산경이라면 혼자 봐도 되겠지만 / 山經許獨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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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죽란시사 모임에 참여한 이가 다섯이었는데, 다섯 사람이 각기 시 네 수씩을 지었다. 네 사람에 대하여 월조에 평시를 쓰느라고 자찬은 하지 못했다[竹欄小集 與者五人 各賦四詩 爲四人月朝之評 不得自贊]
긴 수염에 하얀 얼굴 인물이 출중하니 / 鬑鬚白面異凡曹
충헌의 가문을 빛낼 만한 자손이지 / 忠憲家中是鳳毛
조달하여 세상을 좌지우지할 것 같더니 / 早達若將關世道
늘그막에 그대로 시호가 되었구려 / 晩年仍亦作詩豪
언행 남달리 거칠어도 마음은 되레 좁고 / 疏狂拔俗心還隘
남 따라 허여는 해도 눈은 따로 높다네 / 許與隨人眼更高
나머지 분들 마음이야 깊이 따질 것이 없지 / 且莫備論餘子意
죽란에는 그래도 남고가 있을 뿐이라오 / 竹欄唯識有南皐
이상은 남고(南皐) 윤이서(尹彝敍)를 찬한 것임.
소년 시절 고향에서 일찍 어울린 친구건만 / 弱歲鄕園早盍簪
지금까지 구분밖에 마음을 서로 모른다네 / 年來纔得九分心
넓고 넓은 삼강에 홀로 뜬 풀잎이요 / 芥舟獨汎三江闊
연뿌리 구멍으로 일월오성 뚫어 보지 / 藕孔交穿七曜森
애절하고 슬픈 사연을 세상이 좋다 하고 / 蜀客詞才偏見幸
뜻이 깊고 격 높으면 알아주는 이 별로 없어 / 竟陵詩體少知音
가슴속에 박힌 철주 뉘라 그걸 뺄 것인가 / 胸中寸鐵誰能拔
신선이 사는 곳에 깊이 숨어 사노라네 / 烏帽深棲紫閣陰
이상은 교음(蕎陰) 이주신(李周臣)을 찬한 것임.
푸른 수염 훤칠한 키 장후와 비슷하고 / 蒼鬚頎幹似張侯
청고하고 고집스러운 반백의 늙은이라네 / 歷落嶔崎欲白頭
드넓은 들 없으니 큰 박 어디에 둘 것이며 / 不逢廣漠誰藏瓠
속임수에 늘 빠져서 바둑판은 안 대한다오 / 積屈權奇未聘楸
초 나라 점쟁이는 첨윤에게 물으려 하는데 / 楚卜願從詹尹問
연 나라 노래꾼은 술꾼과 점점 어울리지 / 燕歌漸與酒人游
분단장을 배우려도 지금은 때가 늦어 / 欲學粉脂今已晩
봉두난발 그대로 기주에서 늙노라네 / 且將蓬髮老蘷州
이상은 중씨(仲氏)를 찬한 것임.
너야말로 천지간에 한 썩은 선비인데 / 汝是乾坤一腐儒
어찌하여 보기만 하면 그리 서로 좋다던가 / 云胡相見便相娛
맑은 의표 흐린 세상에 살기가 더 알맞고 / 淸標却善居淆俗
유한 성품 도리어 나약한 자 일깨우지 / 柔性還須立懦夫
담담하게 가는 구름 높은 산에서 쉬어가고 / 澹澹行雲游巘崿
깨끗한 방초가 잡초 속에 숨어버린다 / 涓涓芳草隱蓁蕪
조만간에 동강을 함께 가게 될 것인데 / 東江早晩成偕往
해 저문 길 가면서 야윈 말을 몰까보냐 / 肯策羸驂涉暮途
이상은 혜포(蕙逋) 한혜보(韓徯甫)를 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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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이계수 집에서 대릉 제로들을 모시고 마시다[李季受宅陪大陵諸老飮] 윤 참판 필병(尹參判弼秉), 채 판서 홍리(蔡判書弘履), 이 참판 정운(李參判鼎運) 형제이다
네 노인이 산각에 함께 모여 노는 풍류 / 山閣風流四老俱
계절은 가을인데 그저 즐거움뿐이로세 / 淸秋無事不歡娛
꽃 속에서 놀던 기생 가판을 두고 가더니 / 花間妓散遺歌板
달 아래 벗이 있어 술병을 차고 왔네 / 月下朋來帶酒壺
동분서주 맥이 빠져 누워 있는 부처 같고 / 力盡津梁如臥佛
문묵이나 다루는 쓸모없는 선비라오 / 倦隨文墨作迂儒
그물 치고 고기 잡는 취미가 이미 생겨 / 罾樔已趣觀魚具
거룻배로 오호에 뜨는 것 부럽지 않다오 / 不羨扁舟汎五湖
구름 가고 새도 가고 주위가 온통 휑한데 / 流雲度鳥一簾空
집 한 채가 쓸쓸하게 숲 속에 묻혀 있네 / 門館蕭然草樹中
덕망 있는 노인들이 두곡에 가득한데 / 耆舊幸茲盈杜曲
가을이라고 강동을 꼭 그리워할 게 뭐라던가 / 秋懷何必憶江東
오사에다 이리저리 새 붓을 휘두르고 / 烏絲錯落揮新翰
백발을 흩날리며 석양 바람에 앉았다네 / 白髮飄颻坐晩風
사귐에는 노소가 없는 것이 무방하지요 / 交契不妨無少長
머지않아 우리들도 늙은이가 될 테니까 / 幾何吾屬亦成翁
술자리의 여흥을 거두려고 / 酒席收餘興
숲 속에서 혼자 소나무에 기대고 있다네 / 林園獨倚松
멀리 보이는 나무는 향수 자아내고 / 鄕愁生遠樹
맑게 갠 봉우리 가을빛이 물들었구나 / 秋色上晴峯
대중 따라 시 읊고 노래하고 / 嘯詠聊從衆
미치광이도 용납해줘 다행이라오 / 疎狂幸見容
점점 알겠네 두 두락 밭이 / 漸知田二頃
천종록보다 꽤나 나은 것을 / 頗勝祿千種
은거 생활이 적성에 맞으면서도 / 屛居良適性
대릉 갈 기약은 늘 있지 / 猶赴大陵期
지방 술로는 상락이 있고 / 地釀開桑落
바람 거문고가 죽지를 울린다오 / 風琴動竹枝
숲에 가을 들면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 林秋星的的
산에는 밤이라도 달 더디 뜬다네 / 山夜月遲遲
내 좋은 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자꾸나 / 放達從吾好
조잘대는 일은 어린애에게 맡기고 / 啁啾任小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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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가을밤 죽란사 모임에서 시 한 수가 지어질 때마다 남고(南皐)가 날 위해 낭송을 했는데 그 목소리가 맑고도 애절하여 사람을 눈물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장난삼아 절구(絶句)를 읊어본 것이지 원래 시를 꼭 쓰려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뜻이 거칠고 졸작들이 많다. 원래는 19수였는데 지금 다 지워 버리고 10수만을 남겼다
검양강 북쪽에 갈바람이 일더니만 / 黔陽江北動秋風
망해루 서쪽으로 올 기러기 내려왔네 / 望海樓西來早鴻
돌아가는 배를 타고 동협으로 가지 말라 / 莫上歸舟走東峽
오색구름 짙은 곳에 왕궁이 있느니라 / 五雲深處有王宮
벽오동 가지에 갈바람이 불어오니 / 秋風吹入碧梧枝
서북 하늘에 뜬 구름이 조각조각 옮겨가네 / 西北浮雲片片移
제발이지 진길료를 울며 있게 하지 말라 / 愼莫啼留秦吉了
단산에 늙은 봉이 너무나도 슬프단다 / 丹山老鳳不勝悲
쌍쌍이 날다가는 제각기도 나는 제비 / 雙燕雙飛復各飛
단청해 둔 들보를 가을이면 떠난다네 / 淸秋故與畫梁違
금년에는 분홍실을 발에 매 두지 않았으니 / 今年不用紅絲繫
봄바람에 올지 말지 그 누가 알겠는가 / 誰識春風歸未歸
미음 동쪽 언저리에 강물은 활등 같고 / 渼陰東畔水如彎
수도 없는 청산이요 그리고 또 벽산이지 / 無限靑山與碧山
지금도 생각나네 마당촌 버들 아래서 / 尙憶馬當村柳外
낚싯배에 몸을 싣고 푸른 물결 타던 일이 / 釣舟搖曳綠波間
용문산 북쪽 월계 서쪽에 / 龍門山北粤溪西
두 서너 마지기 척박한 밭이 있고 / 却有石田三兩畦
무궁화 울타리에 초가집도 그대로인데 / 茅屋槿籬閒自在
가을이면 나뭇잎이 바윗길에 가득하다네 / 秋來木葉滿巖蹊
복희 신농 떠난 후로 세속이 야박하여 / 羲農去矣俗云淆
아침이면 돕던 사이가 저녁에 벌써 노발대발 / 朝作魚呴暮虎虓
술독 앞에서 뻔질나게 크게 쓴 글자들이 / 樽前大筆淋漓字
결국은 유생의 절교로 변해 버리지 / 道是劉生廣絶交
삼각산 중봉 이름 백운대인데 / 三角中峯號白雲
하늘의 생황 소리가 달 속에서 들려온다네 / 九天笙樂月中聞
그 옛날 갈바람에 남고와 갔을 때는 / 秋風憶與南皐去
의기가 등등하여 온 세상을 흔들 만했지 / 逸氣凌凌駕入垠
그 옛날 봄바람에 예주에서 배를 타고 / 春風憶上蕊州船
꽃과 버들 속에서 홀로 자기도 했었는데 / 獨宿江花江柳邊
그때는 남고와 짝이 되지 못했기에 / 不與南皐作仙侶
황려성 밖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네 / 黃驪郭外思凄然
백로와 갈매기는 원래가 단짝이라 / 瘦鷺輕鷗本自雙
창강 찾아가는 것이 십 년 두고 꿈이라네 / 十年歸夢在滄江
무슨 일로 물이 잦고 서리도 내렸건만 / 如何水落霜淸後
성남의 찢어진 창만 지키고 있다던가 / 猶守城南破竹牕
서리 속의 묏부리들 깎아지른 옥이런가 / 霜天華嶽玉嶙峋
말끔한 그 기운이 사백 년 내내라네 / 淑氣澄明四百春
푸른산 깊은 곳을 찾아가지 말지어다 / 休向碧山深處去
한양 사람 이내 된들 무엇이 어떠리 / 何如長作漢陽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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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죽란사 달밤에 남고와 함께 마시다[竹欄月夜同南皐飮] 9월
하얀 이슬 누른 국화 그 향기가 일반인데 / 玉露黃花一樣香
남산의 석양빛이 울을 점점 넘어오네 / 南山暮色對籬長
땅에 깔린 찬 연기에 외로운 오동 멀어 보이고 / 寒煙落地孤梧逈
하늘에 뜬 밝은 달빛 장안 만호가 시원하리 / 明月橫天萬戶涼
지레 배에 오르려고 물가에서 놀거니와 / 徑欲乘舟游渼上
말 타고서 화양으로 달려가진 말지어다 / 莫敎騎馬走華陽
오늘 밤엔 고래처럼 마셔볼 작정인데 / 今宵會辦如鯨飮
있는 술이 몇 독이며 한 독이면 몇 잔이지 / 有酒幾樽樽幾觴
지당의 가랑비에 연꽃 향기 숨어 버렸는데 / 池塘小雨歛荷香
하늘은 교교하고 가는 기러기뿐이로세 / 碧落寥寥歸鴈長
타관 땅의 고향 시름 가을 따라 멀어지고 / 三峽鄕愁秋共遠
한 백 년 먹은 마음 달과 함께 싸늘하네 / 百年心事月俱涼
황관은 산 속에 살 때만 어울리는데 / 黃冠只合棲山裏
청춘을 까닭없이 한양에서 늙히다니 / 綠髮無端老漢陽
악착스러운 무리들아 나는 너를 비웃노니 / 齷齪世人吾笑汝
야자 파서 술잔 만드는 잔재줄랑 부리지 말라 / 莫將椰子巧穿觴
국화 향기 앞에서는 난초도 무릎 꿇는데 / 崇蘭委質菊花香
뉘 때문에 백발이 이리도 성성할까 / 白髮緣誰似許長
왕실 들어갈 때가 늦어 대궐문과는 거리 멀고 / 歲晏觚稜雙闕逈
밤 늦은 촛불 아래 누대 속이 썰렁하구나 / 夜闌燈燭一樓涼
하삭에서 주고받듯 실컷 한 번 마셔볼까 / 聊成痛飮酬河朔
제양을 주름잡는 시 솜씨는 인정하네 / 快許新詩擅濟陽
이리 좋게 죽란사에서 질탕하게 놀았는데 / 好就竹欄甘跌宕
내일 아침 대릉 술자리에 무엇하러 갈 것인가 / 明朝肯赴大陵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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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김좌현을 생각하며 두 수를 써서 부치다[憶金佐賢 簡寄二首]
제철에 핀 기절 있는 국화 / 時菊有奇節
함께 감상할 자 그 누구란 말가 / 賞心誰與同
차가운 강 제대로 흘러 못 가고 / 寒江流不穩
긴 골짜기 다 뚫기도 어려워 / 長峽鑿難通
도서 속에 가는 건 세월이요 / 日月圖書裏
입질에 얹혀 있는 것 의관이로세 / 衣冠毁譽中
만날 기약을 서로 느슨하게 잡다간 / 幽期若相謾
가을도 어느덧 흘러가 버리리 / 荏苒度秋風
멀리 있는 석서자여 / 迢迢石棲子
해가 저무니 더 그리워지네 / 歲暮益懷哉
역말도 소식이 없고 / 驛馬無消息
강에 배도 그냥 오가기만 / 江船自去來
머뭇거리는 것 본성이 아니면서 / 遲回欺素性
벌렁 누워서 고재를 보기도 하지 / 偃臥見高才
매화나무 끝에 달 걸린 밤이면 / 每夜梅梢月
언제나 중얼대다가 술잔을 든다네 / 沈吟有酒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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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중희당(重熙堂)에서 천안을 대하여《사기(史記)》ㆍ《한서(漢書)》등을 논하고 물러나와 옥음(玉音)을 기록하면서 영사시(詠史詩) 다섯 수를 읊다
진평은 기이한 꾀가 많고 / 陳平多奇計
기민하고 약빠르고 침착하기도 하여 / 機警出深沈
제업을 도와 성공은 시켰으나 / 雖能贊帝業
인심 수습에는 실패를 했지요 / 終恐壞人心
지위는 높아도 역시 슬기가 짧아 / 位隆智亦昏
늘그막엔 꽤나 주저주저했지요 / 晩節費沈吟
가령 육생이 없었더라면 / 令無陸生起
뭇 흉물들을 무슨 수로 제압했으랴 / 何由制群陰
그런데 명망이 유후와 같으니 / 留侯乃齊名
이는 학과 새가 혼동된 셈이지요 / 仙鶴混塵禽
무제는 규모 크고 도량이 넓어 / 武帝特宏廓
뭇 영걸을 다 포괄하였지요 / 範圍包群英
매고와 동방삭은 광대로 취급했고 / 皐朔畜俳優
공손홍장탕은 어린애 놀리듯 했지만 / 弘湯弄孩嬰
헌헌장부 급장유는 / 軒軒汲長孺
의기 당당하여 정쟁을 잘했지요 / 伉厲業廷爭
굴레로도 잡아맬 수 없이 / 羈絡不能縻
억센 가시가 임금 뜻에 걸렸답니다 / 傲骨梗主情
대궐이 그리워 회양 마다하면서 / 戀闕辭淮陽
유순한 태도로 충심을 보였건만 / 嫵媚見衷誠
늙어 죽도록 불러들이지 않았으니 / 終老不召還
박절하고 님의 은덕 적어라 / 薄哉恩德輕
죽음으로 순결 지킨 자 예부터 많지마는 / 殉潔古紛紛
굳은 절개 유독 소무이지요 / 蘇武獨稱節
모진 형벌은 항거하기 쉬워도 / 刑虐或易抗
유혹 거절은 참으로 어려운 것 / 利誘誠難截
금방 죽는 건 오히려 가능하지만 / 溘逝有能辦
굳세지 않고는 오래 못 버티지요 / 耐久豈不烈
길고도 긴 십구 년 세월 / 悠悠十九年
봄이 가고 가을 가고 눈 내리는데 / 春風遞秋雪
양 먹이고 움 속에 있고 한 것은 / 看羊與臥窖
대강을 말한 것에 불과하지요 / 不過大綱說
고인들은 원래 말이 적어 / 古人寡言詞
자질구레한 것 모두 생략했지만 / 險艱略瑣屑
그때 그 상황 곰곰 생각하면 / 靜言思所値
간장이 철석같음을 알 수 있지요 / 乃知肝如鐵
사마천은 당사에 치우쳐서 / 史遷蔽黨私
이릉을 두둔하는 변명을 하였지만 / 游說救李陵
한실에 보답은 했을지라도 / 報漢異日事
오랑캐에 항복한 것 가증스러워 / 降胡便可憎
큰 바탕이 이미 무너졌거니 / 大質已虧缺
본의인들 무엇으로 믿을 것인가 / 本意豈有憑
머리 조아린 자체가 용감한 일 아니라서 / 叩頭元非勇
팔 걷어붙인 풍부와 같은 꼴이지 / 良同攘臂馮
왕전이 초나라 정벌 마다했듯이 / 王翦辭伐楚
상대를 알아야 그게 능력자이지 / 知彼斯爲能
곽광은 학술이 없어 / 霍光無學術
틀린 일을 자주 저질렀지요 / 於事屢顚錯
상관 집과는 가깝기 구생이었는데 / 上官親舅甥
그의 간악함을 미리 알지 못하고 / 乃不辨奸惡
화환이 터졌는데도 그대로 있다가 / 禍發守常分
끌려 들어가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 引入待鼎鑊
가령 황제가 영리하지 않았던들 / 令無帝夙慧
자기 죽고 난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 身殞亂遂作
창읍왕은 원래 미치광이였는데 / 昌邑素狂縱
국가 대계를 왜 그리 쉽게 정했으며 / 定策何諾諾
증손은 어질다는 소문 있었는데 / 曾孫負令譽
어찌하여 널리 찾아보지 않고서 / 採訪胡不博
그리 시끄럽게 맞고 보내고 하여 / 迎送太紛紛
진퇴양난 바람 잘 날 없게 했던가 / 跋𨆫靡所泊
아내야 그거 별게 아니더라도 / 陰妻猶薄物
멸족지화 당한 것 당연한 이치지요 / 湛族理本確
한실 국운 긴 것은 영령들 힘이지 / 漢祚賴靈長
주공 그림 준 것 잘한 일 아니었는데 / 周圖非善託
실속 없이 원훈이라는 이름으로 / 浪受元勳名
맨 먼저 기린각 차지하고 있지요 / 首據麒麟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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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그 얼마나 유쾌할까라는 노래[不亦快哉行] 20수
달포 넘게 찌는 장마 오나 가나 곰팡냄새 / 跨月蒸淋積穢氛
사지에 맥이 없이 아침 저녁 보내다가 / 四肢無力度朝曛
가을 되어 푸른 하늘 맑고도 넓으면서 / 新秋碧落澄寥廓
하늘 땅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으면 / 端軒都無一點雲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산골 시내 굽이진 곳 돌무더기 가로막혀 / 疊石橫堤碧澗隈
가득히 고인 물이 빙빙 돌고 있는 곳을 / 盈盈滀水鬱盤迴
막고 있는 모래주머니 긴 삽으로 툭 터서 / 長鑱起作囊沙決
우레처럼 소리 내며 쏜살같이 흘러가면 / 澎湃奔流勢若雷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날개를 묵히면서 굶고 있는 푸른 매가 / 蒼鷹鎖翮困長饑
숲 끝에서 날개쳐도 갈 곳 별로 없다가 / 林末毰毸倦却歸
매서운 북풍에 처음으로 줄을 풀고 / 好就朔風初解緤
바다 같은 푸른 하늘 마음껏 날아갈 때면 / 碧天如水盡情飛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삐걱삐걱 노 저으며 청강에 배 띄우고 / 客舟咿嘎汎晴江
쌍쌍이 무자맥질하는 물새들을 보다가 / 閒看盤渦浴鳥雙
쏜살같이 내닫는 여울목에 배가 와서 / 正到急湍投下處
시원한 강바람이 뱃전을 스쳐 가면 / 涼颸拂拂洒篷牕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깎아지른 절정을 힘겨웁게 올랐을 때 / 岧嶢絶頂倦游筇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막았다가 / 雲霧重重下界封
이윽고 서풍 결에 태양이 눈부시고 / 向晩西風吹白日
천봉만학 있는 대로 일시에 다 보이면 / 一時呈露萬千峯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야윈 말이 힘겨웁게 험한 길을 지나면서 / 𦆁驂局促歷巉巖
돌부리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찢겼다가 / 石角林梢破客衫
말에서 내려 배를 타고 평온한 앞 길 따라 / 下馬登舟前路穩
석양 하늘 순풍에 돛을 높이 달고 가면 / 夕陽高揭順風帆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낙엽은 사각사각 강언덕에 떨어지고 / 騷騷木葉下江皐
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가 넘실댈 때 / 黃黑天光蹴素濤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면 / 衣帶飄颻風裏立
하얀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 / 怳疑仙鶴刷霜毛
그 얼마나 청쾌하랴 / 不亦快哉
이웃집 처마끝이 앞마당을 막고 있어 / 隣人屋角障庭心
가을날도 바람 없고 맑은 날도 그늘진 것을 / 涼日無風晴日陰
백금으로 사들여서 모두 다 헐어내고 / 請買百金纔毁去
먼 산 묏부리들이 눈앞에 훤하게 하면 / 眼前無數得遙岑
그 얼마나 시원할까 / 不亦快哉
지루한 여름날 불볕더위에 시달려서 / 支離長夏困朱炎
등골에 땀 흐르고 베적삼이 축축할 때 / 濈濈蕉衫背汗沾
시원한 바람 끝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 洒落風來山雨急
얼음발이 단번에 벼랑에 걸린다면 / 一時巖壑掛氷簾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깊은 골에 밤이 들어 죽은 듯이 고요하고 / 淸宵巖壑寂無聲
귀신도 잠이 들고 짐승들도 기척 없을 때 / 山鬼安棲獸不驚
집채 같은 큰 바위를 두 손 번쩍 들어다가 / 挑取石頭如屋大
천 척 낭떠러지를 매질하듯 울려보면 / 斷厓千尺碾砰訇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장안의 성 안에서 움츠리고 지내기를 / 局促王城百雉中
병든 새가 조롱 속에 갇혀있듯 하다가 / 常如病羽鎖雕籠
채찍을 울리면서 교문 밖을 썩 나서면 / 鳴鞭忽過郊門外
산천과 들빛들이 눈에 온통 다 보일 때 / 極目川原野色通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흰 종이를 활짝 펴 두고 시상에 지그시 잠겼다가 / 雲牋闊展醉吟遲
우거진 녹음 속에 비가 뚝뚝 떨어질 때 / 草樹陰濃雨滴時
서까래와 같은 붓을 손에 잔뜩 움켜쥐고 / 起把如椽盈握筆
먹물이 흥건하게 일필휘지 하고 나면 / 沛然揮洒墨淋漓
그 얼마나 유쾌하랴 / 不亦快哉
장기 바둑 승부수를 내 일찍이 모르기에 / 奕棋曾不解贏輸
곁에서 물끄러미 바보처럼 앉았다가 / 局外旁觀坐似愚
한 자루 여의철을 손으로 움켜잡고 / 好把一條如意鐵
단번에 판 위를 홱 쓸어 없애 버리면 / 砉然揮掃作虛無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대숲 위에 외로운 달 소리 없이 밤 깊을 때 / 篁林孤月夜無痕
초당에 홀로 앉아 술독을 앞에 놓고 / 獨坐幽軒對酒樽
한 백 잔 마시다가 질탕하게 취한 후에 / 飮到百杯泥醉後
노래 한바탕 불러대어 근심 걱정 씻어 버리면 / 一聲豪唱洗憂煩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눈보라 분분하고 삭풍이 차가워서 / 飛雪漫空朔吹寒
숲 찾아든 여우 토끼 다리 절고 있을 때에 / 入林狐兎脚蹣跚
긴 창에 큰 화살로 홍전립 눌러 쓰고 / 長槍大箭紅絨帽
산 채로 때려 잡아 안장 곁에 꿰어차면 / 手挈生禽側挂鞍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푸르른 물결 따라 고깃배로 노닐면서 / 漁舟容與綠波間
야삼경 술에 취해 돌아갈 줄 모르다가 / 風露三更醉不還
가는 기러기 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더니만 / 歸雁一聲驚破睡
갈꽃 이불 썰렁하고 초생달이 떠 있으면 / 蘆花被冷月如彎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세간살이 모두 팔아 괴나리봇짐 꾸려 지고 / 落盡家貲結客裝
뜬구름 신세로 타향을 떠돌다가 / 雲游蹤跡轉他鄕
뜻 못 펴고 유랑하는 지기지우 길에서 만나 / 路逢失志平生友
주머니 속 돈 열 냥을 그에게 꺼내 주면 / 交與囊中十錠黃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나무 끝을 맴돌면서 어미까치 짖어대고 / 噍噍磌鵲繞林梢
시커먼 구렁이가 둥지로 기어들 때 / 黑質脩鱗正入巢
어디선가 목 긴 새가 왝하고 날아와 / 何處戛然長頸鳥
성난 호랑이처럼 머리통을 쪼아대면 / 啄將珠腦勢如虓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 琴歌來趁月初圓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 無那頑雲黑萬天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고 할 즈음에 / 到了整衣將散際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 忽看林末出嬋娟
그 얼마나 반가울까 / 不亦快哉
먼 지방 귀양살이 대궐 못내 그리워서 / 異方遷謪戀觚稜
여관 한 등 잠 못 이루고 등불만 만지작거린다 / 旅館無眠獨剪燈
뜻밖에 금계의 기쁜 소식 전하는 말 듣고 / 忽聽金鷄傳喜報
집에서 보낸 편지를 손으로 직접 뜯었을 때 / 家書手自啓緘縢
그 얼마나 흔쾌할까 / 不亦快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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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절 밤[寺夕]
지는 해 긴 나무 끝에 숨고 / 落日隱脩杪
잔잔한 못물빛 사랑스러워 / 池光幽可憐
새로 난 부들 물 위에 누웠고 / 新蒲猶臥水
듬성한 버드나무 연기처럼 뿌옇네 / 疏柳正含煙
멀리서 흠대로 끌어온 방울물이 / 小滴遙承筧
차고 남으면 잠잠히 밭으로 들어간다 / 餘流暗入田
누가 이 좋은 구학 가져다가 / 誰將好丘壑
몇몇 중들만 차지하게 했다던가 / 留與數僧專
초생달 바람에 흔들리는 숲에 걸리고 / 纖月風林外
노천 방아확 가엔 샘물 소리여라 / 幽泉露碓邊
바위도 산도 기색이 잠잠하고 / 巖巒收氣色
울과 둑은 운연에 싸여 있네 / 籬塢積雲煙
종소리 맞춰 중들은 죽을 먹고 / 鍾動隨僧粥
향은 꺼져 객과 함께 잠들었구나 / 香銷伴客眠
슬픈 일이지 옛 현달들도 / 潛嗟古賢達
중 되기 좋아한 자 더러 있었지 / 多少愛逃禪
뭇 새들은 다 깊이 자는데 / 百鳥眠皆穩
슬피 우는 것 자규뿐이로세 / 悲鳴獨子規
외로운 신세 짝인들 있겠는가 / 畸孤寧有匹
서식할 가지조차 없다오 / 棲息苦無枝
봄바람 불면 먼 추억에 잠기고 / 眇眇春風憶
창창한 밤이면 더 불안하지 / 蒼蒼夜色疑
달이 지고 사람도 다 잠들면 / 月沈人正睡
너무 청아한 것 누가 있어 알 것인가 / 淸絶竟誰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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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정각 낙성을 보고 그저 읊다[政閣成漫題] 5수
앞이 확 트여 산이 작아 보이고 / 敞閣山圍小
층층 누대라서 먼 평야가 보이네 / 層臺野望遙
관리들 꽃 심어 일 하나 더 생겼고 / 種花添吏務
달밤에 거닐며 민요도 듣겠구나 / 步月察民謠
흩어진 바둑알 아희 불러 줍게 하고 / 碁散呼童拾
줄 틀린 거문고 기생 시켜 고르래지 / 琴乖命妓調
시골 마을들 다행히 소생하고 있어 / 村閭幸蘇息
가을이 오면 조정으로 돌아가야지 / 秋至憶還朝
뾰족한 바위 모여 낭떠러지 되고 / 尖石堆成崿
네모꼴 못에는 똘물 끌어다 대네 / 方池曲引渠
물결을 쳐서 오리 싸움 말리고 / 打波分鬪鴨
밥풀 던져 잠긴 물고기 끌어올리지 / 投飯起潛魚
손님은 마시자는 약속 따라 오고 / 客趁流觴約
아희는 서가에 꽂힌 책 고르는구나 / 兒調挿架書
공사라고는 전혀 없어 / 絶無公事到
산에 들어가 있는 것과 꼭같다네 / 渾似入山居
작약이 모두 다 져야만 / 勺藥全飄白
융규가 비로소 붉은 빛을 토한다네 / 戎葵乃放紅
짧은 노래가 거드름 피우는 일 아니며 / 短歌非傲物
조금 취한 건 공사에 방해될 것 없어 / 小醉不妨公
모 심을 비 온 것 통첩으로 알리고 / 牒報移秧雨
누대에서 보리 쓰러뜨린 바람 맞는다네 / 樓迎偃麥風
해질 무렵 살포시 든 잠 / 斜陽一枕夢
꿈에 오색 구름 속을 헤맸구나 / 還入五雲中
관가의 버드나무 푸르른데 / 官柳綠煙靜
대낮에 한 마리 꾀꼬리가 우네 / 淸晝一鶯啼
불을 불면 차에서 안개가 오르고 / 吹熱茶生霧
꽃을 가미하면 술에서 무지개가 일지 / 添芳酒起蜺
송사 일어난 것 산이 불탔기 때문이며 / 訟因山燒作
시는 나무 그늘 찾아가 쓴다 / 詞向樹陰題
백성 편케하는 방법 점차 알면서도 / 漸識安民術
하도 많아 정리가 잘 안 된다네 / 芸芸莫整齊
산이 깊어 순후한 풍속 남아 있고 / 山僻餘厖俗
관직 한가로워 둔한 자에게 맞구나 / 官閒合鈍才
관리들은 복쟁이 들고 가고 / 吏携魚毒去
백성들 와서 녹용을 바친다네 / 氓獻鹿茸來
푹 자고 나서는 베개를 기울이고 / 睡足仍欹枕
자주 마시기에 잔 씻을 것 없어 / 斟頻不洗杯
알괘라 지금 조정 대신들은 / 定知廊廟上
문서더미에 쌓여 시달림 받으리 / 却困簿書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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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산골 나들이[溪行] 절구 4수
기나긴 날 향내음 둑에 풀빛이 푸릇푸릇 / 遲日芳隄草色芊
송아지는 풀을 뜯고 어미소는 졸고 있네 / 兒牛行齕母牛眠
화제가 진창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 花蹄不被靑泥汚
그래서 산전이 수전보다 낫다는게지 / 爲是山田勝水田
흔들리는 낚싯배에 비뚤어진 낚싯대가 / 釣船搖蕩釣竿欹
물에 누운 수양버들 가지 사이에 있어 / 藏在垂楊臥水枝
온종일 바람만 불고 고기는 안 오르니 / 盡日風吹魚不上
봄 물결에 배 띄우고 거나한 채 잠이나 잔다네 / 一篙春浪醉眠遲
시내 남쪽 시내 북쪽 마을이 각기 있어 / 溪北溪南各有村
해가 지면 나루에서 마소들이 떠든다네 / 晩看牛馬渡頭喧
청산 속에서 들려오는 노 젓는 소리소리가 / 數聲柔櫓靑山裏
모래둑의 늙은 버들 뿌리를 스치고 지나가네 / 衝過沙堤老柳根
산굽이를 돌고 나니 이어서 시냇가인데 / 山曲纔廻又澗邊
꽃들이 흩날리어 말굽 앞에 떨어지네 / 雜花飛落馬蹄前
횃대 같은 흰구름이 어디선가 떠오기에 / 何來一桁雲頭白
중천에 왔을 때 보니 그게 바로 연기였어 / 看到中天是燒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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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그 얼마나 유쾌할까라는 노래[不亦快哉行] 20수
달포 넘게 찌는 장마 오나 가나 곰팡냄새 / 跨月蒸淋積穢氛
사지에 맥이 없이 아침 저녁 보내다가 / 四肢無力度朝曛
가을 되어 푸른 하늘 맑고도 넓으면서 / 新秋碧落澄寥廓
하늘 땅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으면 / 端軒都無一點雲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산골 시내 굽이진 곳 돌무더기 가로막혀 / 疊石橫堤碧澗隈
가득히 고인 물이 빙빙 돌고 있는 곳을 / 盈盈滀水鬱盤迴
막고 있는 모래주머니 긴 삽으로 툭 터서 / 長鑱起作囊沙決
우레처럼 소리 내며 쏜살같이 흘러가면 / 澎湃奔流勢若雷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날개를 묵히면서 굶고 있는 푸른 매가 / 蒼鷹鎖翮困長饑
숲 끝에서 날개쳐도 갈 곳 별로 없다가 / 林末毰毸倦却歸
매서운 북풍에 처음으로 줄을 풀고 / 好就朔風初解緤
바다 같은 푸른 하늘 마음껏 날아갈 때면 / 碧天如水盡情飛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삐걱삐걱 노 저으며 청강에 배 띄우고 / 客舟咿嘎汎晴江
쌍쌍이 무자맥질하는 물새들을 보다가 / 閒看盤渦浴鳥雙
쏜살같이 내닫는 여울목에 배가 와서 / 正到急湍投下處
시원한 강바람이 뱃전을 스쳐 가면 / 涼颸拂拂洒篷牕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깎아지른 절정을 힘겨웁게 올랐을 때 / 岧嶢絶頂倦游筇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막았다가 / 雲霧重重下界封
이윽고 서풍 결에 태양이 눈부시고 / 向晩西風吹白日
천봉만학 있는 대로 일시에 다 보이면 / 一時呈露萬千峯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야윈 말이 힘겨웁게 험한 길을 지나면서 / 𦆁驂局促歷巉巖
돌부리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찢겼다가 / 石角林梢破客衫
말에서 내려 배를 타고 평온한 앞 길 따라 / 下馬登舟前路穩
석양 하늘 순풍에 돛을 높이 달고 가면 / 夕陽高揭順風帆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낙엽은 사각사각 강언덕에 떨어지고 / 騷騷木葉下江皐
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가 넘실댈 때 / 黃黑天光蹴素濤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면 / 衣帶飄颻風裏立
하얀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 / 怳疑仙鶴刷霜毛
그 얼마나 청쾌하랴 / 不亦快哉
이웃집 처마끝이 앞마당을 막고 있어 / 隣人屋角障庭心
가을날도 바람 없고 맑은 날도 그늘진 것을 / 涼日無風晴日陰
백금으로 사들여서 모두 다 헐어내고 / 請買百金纔毁去
먼 산 묏부리들이 눈앞에 훤하게 하면 / 眼前無數得遙岑
그 얼마나 시원할까 / 不亦快哉
지루한 여름날 불볕더위에 시달려서 / 支離長夏困朱炎
등골에 땀 흐르고 베적삼이 축축할 때 / 濈濈蕉衫背汗沾
시원한 바람 끝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 洒落風來山雨急
얼음발이 단번에 벼랑에 걸린다면 / 一時巖壑掛氷簾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깊은 골에 밤이 들어 죽은 듯이 고요하고 / 淸宵巖壑寂無聲
귀신도 잠이 들고 짐승들도 기척 없을 때 / 山鬼安棲獸不驚
집채 같은 큰 바위를 두 손 번쩍 들어다가 / 挑取石頭如屋大
천 척 낭떠러지를 매질하듯 울려보면 / 斷厓千尺碾砰訇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장안의 성 안에서 움츠리고 지내기를 / 局促王城百雉中
병든 새가 조롱 속에 갇혀있듯 하다가 / 常如病羽鎖雕籠
채찍을 울리면서 교문 밖을 썩 나서면 / 鳴鞭忽過郊門外
산천과 들빛들이 눈에 온통 다 보일 때 / 極目川原野色通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흰 종이를 활짝 펴 두고 시상에 지그시 잠겼다가 / 雲牋闊展醉吟遲
우거진 녹음 속에 비가 뚝뚝 떨어질 때 / 草樹陰濃雨滴時
서까래와 같은 붓을 손에 잔뜩 움켜쥐고 / 起把如椽盈握筆
먹물이 흥건하게 일필휘지 하고 나면 / 沛然揮洒墨淋漓
그 얼마나 유쾌하랴 / 不亦快哉
장기 바둑 승부수를 내 일찍이 모르기에 / 奕棋曾不解贏輸
곁에서 물끄러미 바보처럼 앉았다가 / 局外旁觀坐似愚
한 자루 여의철을 손으로 움켜잡고 / 好把一條如意鐵
단번에 판 위를 홱 쓸어 없애 버리면 / 砉然揮掃作虛無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대숲 위에 외로운 달 소리 없이 밤 깊을 때 / 篁林孤月夜無痕
초당에 홀로 앉아 술독을 앞에 놓고 / 獨坐幽軒對酒樽
한 백 잔 마시다가 질탕하게 취한 후에 / 飮到百杯泥醉後
노래 한바탕 불러대어 근심 걱정 씻어 버리면 / 一聲豪唱洗憂煩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눈보라 분분하고 삭풍이 차가워서 / 飛雪漫空朔吹寒
숲 찾아든 여우 토끼 다리 절고 있을 때에 / 入林狐兎脚蹣跚
긴 창에 큰 화살로 홍전립 눌러 쓰고 / 長槍大箭紅絨帽
산 채로 때려 잡아 안장 곁에 꿰어차면 / 手挈生禽側挂鞍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푸르른 물결 따라 고깃배로 노닐면서 / 漁舟容與綠波間
야삼경 술에 취해 돌아갈 줄 모르다가 / 風露三更醉不還
가는 기러기 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더니만 / 歸雁一聲驚破睡
갈꽃 이불 썰렁하고 초생달이 떠 있으면 / 蘆花被冷月如彎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세간살이 모두 팔아 괴나리봇짐 꾸려 지고 / 落盡家貲結客裝
뜬구름 신세로 타향을 떠돌다가 / 雲游蹤跡轉他鄕
뜻 못 펴고 유랑하는 지기지우 길에서 만나 / 路逢失志平生友
주머니 속 돈 열 냥을 그에게 꺼내 주면 / 交與囊中十錠黃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나무 끝을 맴돌면서 어미까치 짖어대고 / 噍噍磌鵲繞林梢
시커먼 구렁이가 둥지로 기어들 때 / 黑質脩鱗正入巢
어디선가 목 긴 새가 왝하고 날아와 / 何處戛然長頸鳥
성난 호랑이처럼 머리통을 쪼아대면 / 啄將珠腦勢如虓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 琴歌來趁月初圓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 無那頑雲黑萬天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고 할 즈음에 / 到了整衣將散際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 忽看林末出嬋娟
그 얼마나 반가울까 / 不亦快哉
먼 지방 귀양살이 대궐 못내 그리워서 / 異方遷謪戀觚稜
여관 한 등 잠 못 이루고 등불만 만지작거린다 / 旅館無眠獨剪燈
뜻밖에 금계의 기쁜 소식 전하는 말 듣고 / 忽聽金鷄傳喜報
집에서 보낸 편지를 손으로 직접 뜯었을 때 / 家書手自啓緘縢
그 얼마나 흔쾌할까 / 不亦快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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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정각 낙성을 보고 그저 읊다[政閣成漫題] 5수
앞이 확 트여 산이 작아 보이고 / 敞閣山圍小
층층 누대라서 먼 평야가 보이네 / 層臺野望遙
관리들 꽃 심어 일 하나 더 생겼고 / 種花添吏務
달밤에 거닐며 민요도 듣겠구나 / 步月察民謠
흩어진 바둑알 아희 불러 줍게 하고 / 碁散呼童拾
줄 틀린 거문고 기생 시켜 고르래지 / 琴乖命妓調
시골 마을들 다행히 소생하고 있어 / 村閭幸蘇息
가을이 오면 조정으로 돌아가야지 / 秋至憶還朝
뾰족한 바위 모여 낭떠러지 되고 / 尖石堆成崿
네모꼴 못에는 똘물 끌어다 대네 / 方池曲引渠
물결을 쳐서 오리 싸움 말리고 / 打波分鬪鴨
밥풀 던져 잠긴 물고기 끌어올리지 / 投飯起潛魚
손님은 마시자는 약속 따라 오고 / 客趁流觴約
아희는 서가에 꽂힌 책 고르는구나 / 兒調挿架書
공사라고는 전혀 없어 / 絶無公事到
산에 들어가 있는 것과 꼭같다네 / 渾似入山居
작약이 모두 다 져야만 / 勺藥全飄白
융규가 비로소 붉은 빛을 토한다네 / 戎葵乃放紅
짧은 노래가 거드름 피우는 일 아니며 / 短歌非傲物
조금 취한 건 공사에 방해될 것 없어 / 小醉不妨公
모 심을 비 온 것 통첩으로 알리고 / 牒報移秧雨
누대에서 보리 쓰러뜨린 바람 맞는다네 / 樓迎偃麥風
해질 무렵 살포시 든 잠 / 斜陽一枕夢
꿈에 오색 구름 속을 헤맸구나 / 還入五雲中
관가의 버드나무 푸르른데 / 官柳綠煙靜
대낮에 한 마리 꾀꼬리가 우네 / 淸晝一鶯啼
불을 불면 차에서 안개가 오르고 / 吹熱茶生霧
꽃을 가미하면 술에서 무지개가 일지 / 添芳酒起蜺
송사 일어난 것 산이 불탔기 때문이며 / 訟因山燒作
시는 나무 그늘 찾아가 쓴다 / 詞向樹陰題
백성 편케하는 방법 점차 알면서도 / 漸識安民術
하도 많아 정리가 잘 안 된다네 / 芸芸莫整齊
산이 깊어 순후한 풍속 남아 있고 / 山僻餘厖俗
관직 한가로워 둔한 자에게 맞구나 / 官閒合鈍才
관리들은 복쟁이 들고 가고 / 吏携魚毒去
백성들 와서 녹용을 바친다네 / 氓獻鹿茸來
푹 자고 나서는 베개를 기울이고 / 睡足仍欹枕
자주 마시기에 잔 씻을 것 없어 / 斟頻不洗杯
알괘라 지금 조정 대신들은 / 定知廊廟上
문서더미에 쌓여 시달림 받으리 / 却困簿書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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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매를 풀어 놓다[縱鷹篇]
북산에 눈이 개어 송골매를 불렀더니 / 北山晴雪呼蒼鷹
하루 아침 잡은 새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네 / 一朝獲禽如丘陵
쇠끝같이 모진 발톱 황금같이 맑은 눈으로 / 鐵爪勁厲金眸澄
숲 속의 새를 잡기 거침이 없더니만 / 草莽搏擊恣馮凌
별안간 몸을 돌려 솔 시렁에 와 앉더니 / 忽然回飛坐松棚
시름 쌓인 중과 같이 처절한 생각으로 / 意想凄切如愁僧
꿩 날아도 아랑곳 않고 불러도 대꾸 없이 / 雉飛不顧呼不應
다래덩굴에 매달린 병든 깃이 걱정되어 / 錯愁病翮纏枯藤
묶인 끈을 쪼아 끊고 봉해진 문 열 양으로 / 絛鏇剝啅思啓縢
팽팽한 끈 조르듯 날개깃을 활짝 펴고 / 羽毛展刷如調緪
목을 빼 둘러보며 위세를 부리더니 / 引領四顧逞威稜
바람을 차고 일거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네 / 衝風一擧倏騫騰
처음에는 홰를 치며 날개 시험을 하더니만 / 初來拍拍試翪䎖
점점 높게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 昂昂漸入浮雲層
백 번이나 선회하며 청승을 돌고서는 / 盤回百折繞靑繩
고봉준령 내려보기 밭두둑처럼 여긴다네 / 俯視峯崿齊畦塍
잽싸기는 운무 속을 날아가는 등사 같고 / 矯如雲霧翔朱螣
잘 뚫기는 작은 구멍 잘 파는 능리 같고 / 穿如暗礨逃神鯪
장쾌하긴 북해를 제어하는 곤붕 같고 / 快如溟渤掣鯤鵬
건장하긴 장추 달리는 날쌘 말과 같고 / 健如長楸騁驃驓
한유하긴 신선이 현학을 타고서 / 閑如羽客玄鶴乘
낭원의 붉은 놀 속을 날아가는 듯하고 / 飄颻閬苑瓊霞蒸
빠르기는 삭풍이 얼음 위를 불 때 / 捷如朔風吹玄氷
구슬 같은 만경창파 운거가 달리는 듯 / 玻瓈萬頃雲車輘
만리 공간에 작은 한 점 파리나 모기같이 / 萬里一點眇蚊蠅
털끝만큼 아스랗게 보이지도 잘 않고 / 毫芒滅沒迷遙瞪
소리조차 돈절하여 찾을 곳 바이없어 / 風箏索絶杳無憑
드넓은 푸른 하늘에 뿌연 연기만 어려 있다가 / 碧天空廓浮煙凝
해가 뜨고 유안의 닭이 울고 개 짖으면 / 劉安鷄犬白日昇
만인이 머리 들어 우러러 보고 기어오르지 / 萬人翹首瞻攀登
사방 공중 둘러봐도 산들만 험준하여 / 寒空四望山崚嶒
우인은 애가 타서 가슴을 치노라네 / 虞人惆悵坐拊膺
애처롭다 저 매야 기절이 높은 네가 / 吁嗟汝鷹氣岸弘
마음과 뜻 억누르고 재능을 팔기 위해 / 屈心抑志衒材能
금방울 비단실에 팔목이 매달린 채 / 金鈴綉絲苦掣肱
그물에 걸린 고기마냥 언제나 움츠리고 / 局促常似魚離罾
자그마한 모이 주머니도 다 채우지 못하는데 / 寸嗉旣克如不勝
적취병이 걸리도록 배부르게 먹겠느냐 / 何嘗飽飫成瘕癥
높고 넓은 창공의 구름 거리에 뛰어올라 / 雲衢漭濶憶超陞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벼슬하고 싶겠지만 / 玉樓迢遞思趨承
수리와 상종하며 친구가 될지언정 / 只從鵰鶚結曹朋
올빼미와 높낮음을 다투기야 할까보냐 / 肯與鴟鴞爭沈升
유리등같이 번쩍번쩍 번쩍이는 그 두 눈 / 兩眼閃鑠琉璃燈
한 번 뜨면 여우 토끼 모두가 떨겠지만 / 一燭狐兎皆凌兢
네가 지금 떠나버려 저들의 기가 대단하단다 / 汝今長往彼氣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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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산골 나들이[溪行] 절구 4수
기나긴 날 향내음 둑에 풀빛이 푸릇푸릇 / 遲日芳隄草色芊
송아지는 풀을 뜯고 어미소는 졸고 있네 / 兒牛行齕母牛眠
화제가 진창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 花蹄不被靑泥汚
그래서 산전이 수전보다 낫다는게지 / 爲是山田勝水田
흔들리는 낚싯배에 비뚤어진 낚싯대가 / 釣船搖蕩釣竿欹
물에 누운 수양버들 가지 사이에 있어 / 藏在垂楊臥水枝
온종일 바람만 불고 고기는 안 오르니 / 盡日風吹魚不上
봄 물결에 배 띄우고 거나한 채 잠이나 잔다네 / 一篙春浪醉眠遲
시내 남쪽 시내 북쪽 마을이 각기 있어 / 溪北溪南各有村
해가 지면 나루에서 마소들이 떠든다네 / 晩看牛馬渡頭喧
청산 속에서 들려오는 노 젓는 소리소리가 / 數聲柔櫓靑山裏
모래둑의 늙은 버들 뿌리를 스치고 지나가네 / 衝過沙堤老柳根
산굽이를 돌고 나니 이어서 시냇가인데 / 山曲纔廻又澗邊
꽃들이 흩날리어 말굽 앞에 떨어지네 / 雜花飛落馬蹄前
횃대 같은 흰구름이 어디선가 떠오기에 / 何來一桁雲頭白
중천에 왔을 때 보니 그게 바로 연기였어 / 看到中天是燒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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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팔월 이일 중씨(仲氏)가 가권을 거느리고 동으로 돌아가실 때 윤무구(尹无咎)와 함께 배를 타고 같이 가면서 주죽타(朱竹垞)의 원앙호 도가(鴛鴦湖櫂歌) 등 여러 운(韻)에 차운하였다
가을철 강물이 버드나무 허리에 차는데 / 秋江水與柳腰平
어영차 돛을 달고 들리느니 뱃노래로세 / 起聽抽帆第一聲
두 서너 나무 속의 기우제터 지나노라니 / 驀過雩壇三兩樹
붉은 들창 흰 섬돌에 석양빛이 밝네 / 紅欞粉砌夕陽明
서루의 긴긴 여름 나그네 신세 피곤하여 / 書樓長夏困羈棲
꽃 피거나 새 울거나 관심이 없었더니 / 不管花開與鳥啼
수국에 와 기쁘게도 마음에 든 일 만났네 / 水國欣遭如意事
노량진 서편에서 순풍 불어 오잖는가 / 便風來自露梁西
피리 불고 노래하고 즐거웠을 저 압구정 / 狎鷗亭裏好笙歌
그 당시는 금지에다 미녀 끼고 있었으리 / 當日金支擁翠蛾
지금은 적막한 집 빌어 살 자 뉘라던가 / 寂寞軒楹誰借住
수양버들만 예와 같아 매미들만 많이 우네 / 垂楊依舊暮蟬多
헝클어진 산 그림자 물 속에 누워 있고 / 氋氃山影水中斜
물 불었을 때 모래 자국 나무 끝에 남아 있네 / 木末猶棲漲後沙
생각난다 절을 찾아 책을 들고 공부할 때 / 尙憶祇林携笈日
이슬비 속 들 못에서 연꽃 구경하던 일이 / 野塘微雨賞荷花
흐르는 강 마주 보며 몇몇 집이 살고 있고 / 數家籬落對江流
양 언덕엔 참깨 검은 깨 옥수수가 다 익었네 / 兩岸胡麻蜀黍秋
농부의 말 듣다가 어부가 노래하니 / 漁唱仍隨農語起
우리도 늘그막엔 배나 무어 타야겠네 / 晩年商度在篙樓
만주 군대 간 데 없고 비만 하나 남았는데 / 滿洲兵罷一碑存
외로운 온조성에 해와 달이 빛이 없네 / 溫祚城孤日月昏
매국노 목 베라고 붓만 놀려 무엇하리 / 不要虛張誅檜筆
지금까지 강촌 가득 저 돌무더기 보게나 / 至今壘石滿江村
비탈에 매달린 집 서창이 열려 있고 / 懸厓樹屋闢書窓
은행나무 숲진 그늘 푸른 강을 덮고 / 平仲繁陰覆碧江
저게 바로 몽오정 옛터라고 말하는데 / 云是夢烏亭故址
상류의 누대로는 참으로 둘도 없었다네 / 上游臺榭儘無雙
술 취한 눈으로 석실서재 지나와서 / 石室書齋醉眠過
미음촌 어귀 당도하니 술배도 많네그려 / 渼陰村口酒船多
백구가 원래부터 어떠한 새라던가 / 白鷗元是何如鳥
노랑모자 어부들이 모두가 그 노래네 / 黃帽漁郞盡此歌
평구역에 해가 져서 까마귀도 나무에 없고 / 平邱驛樹落昏鴉
색이 묽은 마을 연기 일자로 뻗었는데 / 澹色墟煙一字斜
소리 내어 노 저으며 항구로 돌아가니 / 鳴櫓嘔啞歸港口
개구리밥 하얀 꽃이 풀 사이로 희끗거리네 / 草間微辨白蘋花
관솔불로 앞서가는 사공 뒤를 따라가니 / 松明引路信篙師
버들가지 꺾어서 물고기 꿰어 들었구나 / 串得江魚在柳絲
울 밑이고 울 머리고 싹튼 채소 꽉 차있어 / 籬下籬頭皆菜甲
밭을 밟는 아이들을 지팡이 휘둘러 나무랐네 / 麾筇小罵踐畦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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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천용자 노래[天慵子歌]
천용자 그 자가 천용인데 / 天慵子字天慵
뭇 사람들 어리석다 손가락질한다네 / 千人競指爲癡惷
평생에 갓 망건 써본 일 없고 / 生來不用巾網首
마주보면 헝크러진 쑥대머리 모양이지 / 對面蓬髮愁髼鬆
술이라면 입술도 거치잖고 바로 삼켜 / 酒不經脣直入肚
달건 시건 묽건 진하건 모두 상관 않아 / 不省甛酸與醨醲
쌀술도 보리술도 다 가리지 않고 / 稻沈麥仰斯無擇
고양이눈 같은 청주도 고름 같은 탁주도 다 좋다네 / 淸如猫睛濁如膿
어깨에는 가야금 하나를 둘러메고 / 肩荷伽倻琴一尾
왼손에는 피리 들고 바른손엔 지팡이로 / 左手一笛右一笻
봄이면 묘향산 찾아 서른여섯 골짝 바람 다쏘이고 / 春風妙香三十六洞府
가을이면 금강산 가 일만 이천 봉 달빛 거닌다네 / 秋月金剛一萬二千峯
가야금 뜯다가 피리 불다가 휘파람도 불다가 / 彈絲吹竹劃長嘯
구름처럼 노을처럼 발걸음 쉴새없이 / 雲游霞宿無停蹤
산길에선 숲을 뒤져 잠자는 범 찾아내고 / 山行朴朔搜林覓睡虎
물길에선 꽝하고 바위 굴려 못 용 놀라게 한다네 / 水行砰訇碾石駭湫龍
갈 때 입은 무명옷은 거지에게 벗어주고 / 去時綿裘施行丐
바꿔 입은 남루한 옷 성한 곳이라곤 하나 없어 / 換着敗衣襤褸無完縫
돌아와 방에 드니 아내의 싫은 소리 / 歸來入室妻苦詈
박박대며 땅을 치고 하늘에 호소하고 가슴을 두들기니 / 嚗嚗叩地呌天摽其胸
천용자는 묵묵부답 / 天慵子黙不答
고개 숙이고 찌푸린 눈썹 공손한 자세로세 / 俛首摧眉順且恭
길에서 주먹만한 괴석 하나 주워 와서 / 道拾一拳怪石至
자루를 막 끌러 옥돌인 양 만지다가 / 方且解橐摩弄如璜琮
배 고프면 이웃집으로 달려가 / 飢來走隣屋
새로 빚은 술 한잔 두잔 석잔 넉잔 얻어 마시고 / 乞飮新醅一二三四鍾
얼큰하면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 / 酒酣發高唱
높은 음은 이칙에 맞고 느린 곡은 임종에 맞는다네 / 激者中夷則徐者中林鍾
노래가 끝나면 종이 찾아 묵화를 치는데 / 歌竟索紙蘸筆爲墨畫
그림은 가파른 봉우리 성난 바위 경사 급한 여울목 그리고 늙은 소나무라네 / 畫出峭峯怒石急泉與古松
뇌성벽력 소리나는 음산한 풍경이며 / 震霆霹靂黑陰慘
눈 녹은 높은 산의 조촐한 모습 그려낸다 / 氷雪湫凘皎巃嵷
혹은 다래덩굴 괴상한 덩굴이 얽혀 있는 모양도 그리고 / 或畫壽藤怪蔓相糾綰
혹은 송골매 보라매가 맞부딪치는 광경도 그리며 / 或畫快鶻俊鷹相撞摐
혹은 하늘을 날며 구름 쫓는 신선도 그리고 / 或畫遊仙躡空放雲氣
숱진 수염과 눈썹 흩날리고 있는 것도 그린다 / 須眉葩髿森欲衝
혹은 초라한 중 오뚝이 앉아 가려운 등 긁는 모습 / 或畫窮僧兀坐搔背癢
상어 뺨에 원숭이 어깨 비뚤어진 입에 속눈썹이 눈을 덮은 궁상스러운 몰골도 그리고 / 鯊腮攫肩喎脣盍睫酸態濃
혹은 용과 귀신이 불 뿜으며 뱀과 싸우는 모습도 그리고 / 或畫龍鬼噴火鬥蛇怪
혹은 요사한 두꺼비가 달을 집어먹으며 토끼 방아 못 찧게 하는 광경도 그리지만 / 或火畫妖蟆蝕月侵兎舂
팔이 잘린대도 부녀자는 그리지 않고 / 斷捥不肯畫婦女
모란꽃 작약꽃 붉은 연꽃도 그리지 않는다네 / 與畫牧丹勺藥紅芙蓉
또 그림 팔아 술값으로 쓰지마는 / 亦肯賣畫當酒債
그날 벌어 그날에 맞게 쓴다네 / 一日但酬一日傭
자기 성명 관가에 알려질까 두려워서 / 常恐姓名到官府
알리려고 하는 자 있으면 노기발발 서슬이 시퍼렇다네 / 有欲告者怒氣勃勃如劍鋒
상산에 내가 온 지 이 년이 넘었는데 / 我來象山越二歲
누각 짓고 못도 파고 백성들도 조용하지 / 建閣穿池民物雍
천용자가 찾아와 문지방을 두드리며 / 天慵子來叩闑
사또 좀 만나자고 큰 소리로 외치더니 / 大聲呌我與官逢
곧바로 뜰을 지나 동헌으로 들어오는데 / 直躡曾階入重閤
버선 벗은 맨다리에 농부 같은 행색으로 / 赤脚不襪如野農
절도 않고 읍도 없이 걸터앉아 웃더니만 / 不拜不揖箕踞笑
거듭거듭 하는 말이 술 달라는 소리였다 / 但道乞酒語重重
자리 위에 시원한 바람 부는 듯하네 / 淸風洒然吹四座
보통사람 아님을 금방 알고 무릎 여몄지 / 一見斂膝知非庸
손 잡고 흉금 터놓고 속엣말 다 하면서 / 握手開襟寫碨磊
비 오는 아침 달 뜨는 저녁 늘 상종했었네 / 雨朝月夕常相從
배우지 않은 미명이 한유를 꺾었으며 / 不學彌明枉韓愈
어쩌면 대옹 찾은 지공과 같기도 해 / 頗似支公訪戴顒
천용자 성은 장씨라는데 / 天慵子張其姓
사는 곳을 물었더니 입 다물고 말하지 않아 / 試問鄕里其口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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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지각(池閣) 절구
가까운 봉우린 깨끗한데 먼 산은 껌껌하고 / 近峯晴洗遠峯陰
가랑비 속 지당에는 버들빛이 짙어라 / 小雨池塘柳色深
취기는 점점 깨고 일이라곤 통 없는데 / 薄醉漸醒無一事
두어 소리 새가 울며 꽃 스치고 지나가네 / 數聲啼過掠花禽
꽃 가꾸기 참으로 애 기르기 같아서 / 養花眞似育孩嬰
비 오나 개나 추우나 더우나 정신이 늘 쓰인다 / 晴雨暄涼盡可驚
칠순을 지나고야 겨우 마음 놓았는데 / 經了七旬纔放意
열 주를 심었다가 아홉 주가 살았다네 / 十株栽得九株生
꽃을 심는 사람들은 꽃만을 볼 줄 알지 / 種花人只解看花
꽃 진 후의 화사한 잎 그것은 볼 줄 몰라 / 不解花衰葉更奢
퍽 예쁘지 한 차례 장마비가 걷힌 후에 / 頗愛一番霖雨後
연약한 가지마다 돋아나는 노란 싹들이 / 弱枝齊吐嫩黃芽
큰 산 아래 구불구불 서려 있는 작은 산들 / 山下群山細屈蟠
여느 때는 한 덩어리 산으로만 보이지만 / 當時只作一山看
아침 되어 한 자락 구름이 걷힐 때는 / 朝來一段雲遮往
뾰족뾰족한 봉우리들 여덟 아홉이 분명하다 / 矗矗尖稜八九巒
삼면은 청산이요 일면이 못이어서 / 三面靑峯一面池
숱한 꽃과 나무들이 제대로 어울리는데 / 雜花芳樹總相宜
시를 읊고 글을 쓰는 한가한 기회 맞추려면 / 欲知筆墨瀟閒處
바람 오고 비가 개는 그때 그 기간뿐이라네 / 只在風來雨去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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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팔월 십오일 관찰사 이의준(李義駿)을 모시고 자하담(紫霞潭)에 배를 띄워 오연(烏淵)까지 가서 달 뜨기를 기다려 문성교(文城橋)로 갔다가 밤에 돌아왔는데, 그곳 산수(山水)들이 너무나 좋았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에 와서 놀았던 이는 없었고, 사실은 나와 이공(李公)이 처음으로 발견한 자리인 것이다
관찰사가 멀리 행부하다가 / 襜帷行部遠
광활한 천지의 맑은 가을을 보고 / 曠漭見秋淸
이 시냇가 풍경이 좋아서 / 愛玆溪澗勝
돌아돌아 문성에까지 왔다네 / 迂回戾文城
여악은 주방배에다 싣고 / 女樂載廚船
지휘기도 부하에게 맡겼지 / 褊裨領麾旌
자그마한 거룻배 하나를 / 蕭然一葦航
원례와 단 둘이만 타고서 / 獨與元禮幷
옛 철인들 두고 얘기도 하고 / 談論逮古哲
잔질하고 시 읊고 속티라곤 없었다네 / 觴詠無俗情
자하담 맑고도 푸르르고 / 霞潭湛澄綠
아득한 버들물결 넘실넘실 / 柳浪渺瀰盈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오연이며 / 烏淵倏蒼黝
붉은 빛 감도는 깎아지른 절벽들 / 峭崿含幽頳
콸콸 흐르는 물 옷에 뿜어대고 / 激湍紛洒衣
비단 같은 나무 술잔에 비추이고 / 錦樹交映觥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좋기만 한데 / 顧眄有餘懽
산 그림자가 물 위로 기우네 / 山影澹初傾
교교한 달 모래섬에 뜨니 / 皎月飛沙汀
영롱한 금물결 일렁이는데 / 灩灩金波明
물 위에 떠 있고픈 마음 버리지 못해 / 夷猶泛淸壑
금방 뭍에 오를 수가 없었다네 / 未便登岸行
밤 깊어 바람 불고 이슬 내리고 / 夜深風露重
하늘엔 별들이 반짝거릴 때 / 煜煜參斗橫
횃불들이 줄을 서 장정을 비춰 / 列炬耀長亭
하늘도 땅도 온통 훤하기만 하다 / 俯仰粲光晶
이 땅 생긴 지 오래되었으나 / 地闢良已久
아직 이렇게 놀았다는 사람 없는데 / 玆游尙無名
염려스러운 건 이 뒤 사람들이 / 尙恐後來人
마냥 존영을 받으려 할까 두려워 / 曼衍取尊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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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매를 풀어 놓다[縱鷹篇]
북산에 눈이 개어 송골매를 불렀더니 / 北山晴雪呼蒼鷹
하루 아침 잡은 새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네 / 一朝獲禽如丘陵
쇠끝같이 모진 발톱 황금같이 맑은 눈으로 / 鐵爪勁厲金眸澄
숲 속의 새를 잡기 거침이 없더니만 / 草莽搏擊恣馮凌
별안간 몸을 돌려 솔 시렁에 와 앉더니 / 忽然回飛坐松棚
시름 쌓인 중과 같이 처절한 생각으로 / 意想凄切如愁僧
꿩 날아도 아랑곳 않고 불러도 대꾸 없이 / 雉飛不顧呼不應
다래덩굴에 매달린 병든 깃이 걱정되어 / 錯愁病翮纏枯藤
묶인 끈을 쪼아 끊고 봉해진 문 열 양으로 / 絛鏇剝啅思啓縢
팽팽한 끈 조르듯 날개깃을 활짝 펴고 / 羽毛展刷如調緪
목을 빼 둘러보며 위세를 부리더니 / 引領四顧逞威稜
바람을 차고 일거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네 / 衝風一擧倏騫騰
처음에는 홰를 치며 날개 시험을 하더니만 / 初來拍拍試翪䎖
점점 높게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 昂昂漸入浮雲層
백 번이나 선회하며 청승을 돌고서는 / 盤回百折繞靑繩
고봉준령 내려보기 밭두둑처럼 여긴다네 / 俯視峯崿齊畦塍
잽싸기는 운무 속을 날아가는 등사 같고 / 矯如雲霧翔朱螣
잘 뚫기는 작은 구멍 잘 파는 능리 같고 / 穿如暗礨逃神鯪
장쾌하긴 북해를 제어하는 곤붕 같고 / 快如溟渤掣鯤鵬
건장하긴 장추 달리는 날쌘 말과 같고 / 健如長楸騁驃驓
한유하긴 신선이 현학을 타고서 / 閑如羽客玄鶴乘
낭원의 붉은 놀 속을 날아가는 듯하고 / 飄颻閬苑瓊霞蒸
빠르기는 삭풍이 얼음 위를 불 때 / 捷如朔風吹玄氷
구슬 같은 만경창파 운거가 달리는 듯 / 玻瓈萬頃雲車輘
만리 공간에 작은 한 점 파리나 모기같이 / 萬里一點眇蚊蠅
털끝만큼 아스랗게 보이지도 잘 않고 / 毫芒滅沒迷遙瞪
소리조차 돈절하여 찾을 곳 바이없어 / 風箏索絶杳無憑
드넓은 푸른 하늘에 뿌연 연기만 어려 있다가 / 碧天空廓浮煙凝
해가 뜨고 유안의 닭이 울고 개 짖으면 / 劉安鷄犬白日昇
만인이 머리 들어 우러러 보고 기어오르지 / 萬人翹首瞻攀登
사방 공중 둘러봐도 산들만 험준하여 / 寒空四望山崚嶒
우인은 애가 타서 가슴을 치노라네 / 虞人惆悵坐拊膺
애처롭다 저 매야 기절이 높은 네가 / 吁嗟汝鷹氣岸弘
마음과 뜻 억누르고 재능을 팔기 위해 / 屈心抑志衒材能
금방울 비단실에 팔목이 매달린 채 / 金鈴綉絲苦掣肱
그물에 걸린 고기마냥 언제나 움츠리고 / 局促常似魚離罾
자그마한 모이 주머니도 다 채우지 못하는데 / 寸嗉旣克如不勝
적취병이 걸리도록 배부르게 먹겠느냐 / 何嘗飽飫成瘕癥
높고 넓은 창공의 구름 거리에 뛰어올라 / 雲衢漭濶憶超陞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벼슬하고 싶겠지만 / 玉樓迢遞思趨承
수리와 상종하며 친구가 될지언정 / 只從鵰鶚結曹朋
올빼미와 높낮음을 다투기야 할까보냐 / 肯與鴟鴞爭沈升
유리등같이 번쩍번쩍 번쩍이는 그 두 눈 / 兩眼閃鑠琉璃燈
한 번 뜨면 여우 토끼 모두가 떨겠지만 / 一燭狐兎皆凌兢
네가 지금 떠나버려 저들의 기가 대단하단다 / 汝今長往彼氣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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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자효사 밤놀이[夜游資孝寺]
성터에 연기 나고 골짝에는 구름인데 / 墟煙起處谷雲沈
드문드문 묏부리들 집을 눌러 음음하네 / 寥落峯巒壓殿陰
감돌아 시내 흐르고 들길이 나 있는데 / 一澗縈廻通野徑
몇몇 중이 서식하는 아늑한 절이 있어 / 數僧棲息有祇林
별이 막 뜨고 나니 바위에 솔 검어 보이고 / 巖松欲黑星初動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산에 보리 아직 푸르다 / 山麥猶靑雪未深
떠드는 군악 소리에 싫증을 느꼈기에 / 久厭喧卑鐃吹聒
일부러 범패 소리를 거문고 가락에 맞춰보네 / 故將梵唄和鳴琴
공양 끝난 선루에 저녁종도 소리 멎고 / 禪樓飯罷夕鍾沈
초생달도 점점 기울어 만학이 껌껌하네 / 微月斜飛萬壑陰
골이 깊어 다래덩굴이 지붕을 늘 덮고 있고 / 地僻藤蘿常覆屋
기후 추워 저절로 소나무 향나무 숲이로세 / 天寒松栝自成林
나뭇길 돌이 많아 중이 더디 돌아오고 / 樵蹊犖确僧歸晩
연화촉 푸른 빛에 부처 자리가 깊어 보인다 / 蓮燭靑熒佛坐深
공무를 피하려고 절을 잠시 찾았으니 / 暫就伽藍逃簿牒
무성의 거문고가 사또로선 부끄럽구나 / 使君眞愧武城琴
낚시만큼 남은 달이 그나마 지려 하여 / 一鉤殘月欲西沈
정원은 어스레하고 늙은 잣나무 침침하네 / 庭院熹微老柏陰
유난히 밝은 뭇 별들이 언 기와 비추고 / 盡放明星輝凍瓦
하나 둘 남은 잎들이 숲에서 가끔 떨어진다 / 有時餘葉下空林
암벽 타는 다람쥐에 사는 새들이 놀라고 / 蒼鼯走壁禽棲動
울 넘보는 표범 보고서 개들도 마구 짖어 / 文豹窺籬犬吠深
노숙한 선비 자주 대해 시를 읊는 소리 듣지 / 數引老儒聞嘯詠
교방기생 불러다가 거문고 잡게 않는다네 / 不敎坊妓抱名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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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번암 채 상공의 죽음을 애도함[樊巖蔡相公輓]
눈바람 몰아치던 기유년 그 해 겨울 / 風雪牢騷己酉冬
흑초구 소매 털이 얼어서 부풀었지요 / 黑貂裘袂冷蒙茸
문 안에 들어서면 기상부터 존엄했는데 / 入門正有尊嚴氣
님 앞에서 처음으로 불평한 마음 털어놓았죠 / 命席初開碨磊胸
삼적 목을 못 베고서 나는 이미 늙었지만 / 三賊未誅吾已老
깜깜한 구천에 가도 용서 못 받을 그들이라고 당시 현륭원(顯隆園) 이장 문제로 이러한 말을 하였음. / 九泉雖暗彼難容
충의간담 그 다 갖고 어디로 가셨습니까 계축년(1793) 상소(上疏)가 있은 후 경연에서는 그를 충간의담(忠肝義膽)이라고 허여하였음. / 忠肝義膽知何處
사촉이 휘황하게 고송을 비춥니다 사촉(紗燭) 건은 계축년 상소에 나와 있음. / 紗燭煒煌照古松
고금에 유례없는 하늘이 낸 인중호걸 / 天挺人豪曠古今
이 나라 사직이 그 맘속에 있었다네 / 靑邱社稷繫疏襟
뭇 백성 의욕을 막는 일이 없었으며 / 都無夭閼群生志
만물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었다오 / 恰有包含萬物心
하늘 닿은 성난 물결도 높은 지주에 놀랐으며 / 怒浪蹴空驚砥屹
땅에 떨어진 몹쓸 꽃들 삼엄한 솔을 봤지 / 妖花墜地見松森
영남 영북 할 것 없이 일천여 리 사이에다 / 嶺南嶺北千餘里
뿌리 심고 기반 다져 사림에게 넘겼다네 / 堅築根基付士林
물도 멀고 산도 멀고 병들어 누운 이 몸 / 川嶺迢迢病裏情
동에서 온 소식이 내 넋을 놀라게 했네 / 東來消息使魂驚
교룡이 떠나버리자 운뢰도 적적하고 / 蛟龍倏逝雲雷寂
산악이 무너지니 우주 또한 가볍구나 / 山岳初崩宇宙輕
백년 가도 이 세상에 그 기운 없을 텐데 / 天下百年無此氣
나라 안 만백성들 뉘를 믿고 산단 말가 / 城中萬姓倚誰生
세 조정을 섬기면서 머리가 흰 헌걸찬 모습 / 三朝白髮魁巍象
그 옛 일들 생각하니 갓끈에 눈물 고인다 / 歷歷回思淚滿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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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확연(鑊淵)에서 동으로 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입을 딱 벌리고 있고 그 속에서 시냇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거기가 바로 오륜산(五倫山) 입구였다. 시내를 따라 점점 들어가 관적사(觀寂寺) 입구를 지나서 절 뒤의 높은 재를 따라 절까지 오르니 힘이 다 빠지고 날도 이미 저물어 갔다
절벽이 하늘에 꽂혀 하늘마저 위태위태 / 峻壁揷天天色危
바위 틈엔 거꾸로 낙락장송 가지 걸렸네 / 石罅倒挂長松枝
소나무에 바람 소리 시냇물을 건너가고 / 松籟颼颼度澗水
맑은 못 성난 폭포 간 곳마다 있네그려 / 澄潭怒瀑行相隨
돌밭 길이라 지팡이 끌면 짤각짤각 소리 나고 / 磴路曳杖石聲戛
등나무 가지에 옷을 걸면 시원한 바람 분다 / 藤梢掛衣天風吹
올려보고 내려보고 서로들 즐기다가 / 仰觀俯察相與樂
조계 가는 길 지나온 것도 까맣게 모르고서 / 曹溪路過渾不知
천 척 벼랑 부여잡고 도솔을 오르는데 / 攀厓千尺上兜率
세 발짝에 후유하고 오 보 걷고 넘어지면서 / 三步嘻吁五步蹶
솟은 바위 만져보니 어깨에 닿을 정도인데 / 矗石捫來纔及肩
높은 봉은 목을 빼도 더욱더욱 높게만 보여 / 峭峯擢頸尤昂然
깊은 골에서 무슨 수로 기갈을 풀 것인가 / 谷深無緣解飢渴
종을 불러 샘물이나 자주 길어 오래야지 / 屢呼僮僕㪺淸泉
팔다리 허리가 자꾸자꾸 마음과 눈 원망을 해 / 不禁腰肢怨心目
때때로 벌렁 누워 나무들을 붙들었지 / 時時偃臥扶山木
낙조가 산을 삼킬 때 정상에 닿고 보니 / 落照含山到上頭
강적과 싸워 이기고 많은 노획을 얻은 것 같네 / 如剋大敵收寶俘
오만하던 봉우리들 모두가 아래 있고 / 驕巒傲崿都在下
펑퍼진 풍연이 온갖 시름 씻어준다 / 漭宕風煙散百愁
비늘 같은 푸른 기와집 불전이 보이더니 / 碧瓦鱗鱗見佛殿
쇠북소리 북소리가 선루를 또 울리는구나 / 復有鐘鼓轟禪樓
소자첨 반룡시를 한바탕 외우고서 / 爲誦子瞻蟠龍句
지난 천고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 그지없네 / 感念千古情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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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산골 나들이[溪行] 절구 4수
기나긴 날 향내음 둑에 풀빛이 푸릇푸릇 / 遲日芳隄草色芊
송아지는 풀을 뜯고 어미소는 졸고 있네 / 兒牛行齕母牛眠
화제가 진창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 花蹄不被靑泥汚
그래서 산전이 수전보다 낫다는게지 / 爲是山田勝水田
흔들리는 낚싯배에 비뚤어진 낚싯대가 / 釣船搖蕩釣竿欹
물에 누운 수양버들 가지 사이에 있어 / 藏在垂楊臥水枝
온종일 바람만 불고 고기는 안 오르니 / 盡日風吹魚不上
봄 물결에 배 띄우고 거나한 채 잠이나 잔다네 / 一篙春浪醉眠遲
시내 남쪽 시내 북쪽 마을이 각기 있어 / 溪北溪南各有村
해가 지면 나루에서 마소들이 떠든다네 / 晩看牛馬渡頭喧
청산 속에서 들려오는 노 젓는 소리소리가 / 數聲柔櫓靑山裏
모래둑의 늙은 버들 뿌리를 스치고 지나가네 / 衝過沙堤老柳根
산굽이를 돌고 나니 이어서 시냇가인데 / 山曲纔廻又澗邊
꽃들이 흩날리어 말굽 앞에 떨어지네 / 雜花飛落馬蹄前
횃대 같은 흰구름이 어디선가 떠오기에 / 何來一桁雲頭白
중천에 왔을 때 보니 그게 바로 연기였어 / 看到中天是燒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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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3권 / 시(詩)
팔월 이일 중씨(仲氏)가 가권을 거느리고 동으로 돌아가실 때 윤무구(尹无咎)와 함께 배를 타고 같이 가면서 주죽타(朱竹垞)의 원앙호 도가(鴛鴦湖櫂歌) 등 여러 운(韻)에 차운하였다
가을철 강물이 버드나무 허리에 차는데 / 秋江水與柳腰平
어영차 돛을 달고 들리느니 뱃노래로세 / 起聽抽帆第一聲
두 서너 나무 속의 기우제터 지나노라니 / 驀過雩壇三兩樹
붉은 들창 흰 섬돌에 석양빛이 밝네 / 紅欞粉砌夕陽明
서루의 긴긴 여름 나그네 신세 피곤하여 / 書樓長夏困羈棲
꽃 피거나 새 울거나 관심이 없었더니 / 不管花開與鳥啼
수국에 와 기쁘게도 마음에 든 일 만났네 / 水國欣遭如意事
노량진 서편에서 순풍 불어 오잖는가 / 便風來自露梁西
피리 불고 노래하고 즐거웠을 저 압구정 / 狎鷗亭裏好笙歌
그 당시는 금지에다 미녀 끼고 있었으리 / 當日金支擁翠蛾
지금은 적막한 집 빌어 살 자 뉘라던가 / 寂寞軒楹誰借住
수양버들만 예와 같아 매미들만 많이 우네 / 垂楊依舊暮蟬多
헝클어진 산 그림자 물 속에 누워 있고 / 氋氃山影水中斜
물 불었을 때 모래 자국 나무 끝에 남아 있네 / 木末猶棲漲後沙
생각난다 절을 찾아 책을 들고 공부할 때 / 尙憶祇林携笈日
이슬비 속 들 못에서 연꽃 구경하던 일이 / 野塘微雨賞荷花
흐르는 강 마주 보며 몇몇 집이 살고 있고 / 數家籬落對江流
양 언덕엔 참깨 검은 깨 옥수수가 다 익었네 / 兩岸胡麻蜀黍秋
농부의 말 듣다가 어부가 노래하니 / 漁唱仍隨農語起
우리도 늘그막엔 배나 무어 타야겠네 / 晩年商度在篙樓
만주 군대 간 데 없고 비만 하나 남았는데 / 滿洲兵罷一碑存
외로운 온조성에 해와 달이 빛이 없네 / 溫祚城孤日月昏
매국노 목 베라고 붓만 놀려 무엇하리 / 不要虛張誅檜筆
지금까지 강촌 가득 저 돌무더기 보게나 / 至今壘石滿江村
비탈에 매달린 집 서창이 열려 있고 / 懸厓樹屋闢書窓
은행나무 숲진 그늘 푸른 강을 덮고 / 平仲繁陰覆碧江
저게 바로 몽오정 옛터라고 말하는데 / 云是夢烏亭故址
상류의 누대로는 참으로 둘도 없었다네 / 上游臺榭儘無雙
술 취한 눈으로 석실서재 지나와서 / 石室書齋醉眠過
미음촌 어귀 당도하니 술배도 많네그려 / 渼陰村口酒船多
백구가 원래부터 어떠한 새라던가 / 白鷗元是何如鳥
노랑모자 어부들이 모두가 그 노래네 / 黃帽漁郞盡此歌
평구역에 해가 져서 까마귀도 나무에 없고 / 平邱驛樹落昏鴉
색이 묽은 마을 연기 일자로 뻗었는데 / 澹色墟煙一字斜
소리 내어 노 저으며 항구로 돌아가니 / 鳴櫓嘔啞歸港口
개구리밥 하얀 꽃이 풀 사이로 희끗거리네 / 草間微辨白蘋花
관솔불로 앞서가는 사공 뒤를 따라가니 / 松明引路信篙師
버들가지 꺾어서 물고기 꿰어 들었구나 / 串得江魚在柳絲
울 밑이고 울 머리고 싹튼 채소 꽉 차있어 / 籬下籬頭皆菜甲
밭을 밟는 아이들을 지팡이 휘둘러 나무랐네 / 麾筇小罵踐畦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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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기성잡시(鬐城雜詩) 26수
3월 9일 장기(長鬐)에 도착하여 그 이튿날 마산리(馬山里)에 있는 늙은 장교(莊校) 성선봉(成善封)의 집을 정하여 있게 됐다. 긴긴 해에 할 일이 없어 때로 짧은 시구나 읊곤 하였는데 뒤섞여 순서가 없다.
1.
성산포 포구에는 바위가 수문인데 / 星山浦口石爲門
동으로 부상까지 물만이 아스라하다 / 東直扶桑水氣昏
용이 와서 섬 없앴다는 말 믿을 수 있겠는가 / 豈有龍來平島嶼
계림의 육부 역시 황폐한 마을이었다네 / 鷄林六部亦荒村
성산(星山)은 경주에 있는데, 지방인들 전설에 의하면 신용(神龍)이 포구 에서 나와 모든 섬들을 다 깎아 없애버렸기 때문에 동해에는 섬이 없다는 것임.
2.
모려령 위엘랑은 제발이지 가지 말게 / 莫向毛黎嶺山行
우거진 숲 험한 비탈이 시름을 자아낸다 / 蓁蓁厓崿使愁生
눈앞에 펼쳐진 끝도 없는 푸른 물이 / 眼前一碧無邊水
하이들 필련성을 연상케 만든다네 / 如見蝦夷匹練城
3.
산꼭대기 쓸쓸하게 사십 채 있는 인가 / 峯頂蕭條四十家
비뚤어진 거적문이 지다 남은 꽃 속에 있네 / 縣門敧側倚殘花
물을 마실 샘이라곤 도무지 없어서 / 都無一眼泉供飮
성 위에다 줄 매달고 수차를 쓰리라네 / 將謂縋城用水車
4.
조해루 용마루에 석양빛이 붉을 무렵 / 朝海樓頭落日紅
관리가 나를 몰아 성 동쪽에 나왔더니 / 官人驅我出城東
시냇가 자갈밭에 오막살이 한 채 있고 / 石田茅屋春溪上
농부가 있었는데 바로 그 집 주인일레 / 也有佃翁作主翁
5.
집집마다 두 길 넘게 울짱을 세워두고 / 樹柵家家二丈强
처마 머리에 그물 치고 긴 창들을 꽂아놓았다 / 櫩頭施罟揷長槍
왜 이다지 방비가 심하냐고 물었더니 / 問渠何苦防如許
예부터 기성에는 범과 이리가 많아서라네 / 終古鬐城壯虎狼
6.
여인들 말씨 화가 난 듯 또 어쩌면 애교스러워 / 女音如慍復如嬌
손목처럼 쓴다 해도 묘사를 다 못해 / 孫穆書中未盡描
한 푼도 돈을 들여 다리 살 생각을 않고 / 不用一錢思買髢
두 가닥 머리채를 이마 앞에다 매둔다네 / 額前紅髮揷雙條
7.
새로 짠 생선기름 온 집안이 비린 냄새 / 新榨魚油腥滿家
들깨도 안 심는데 참깨가 있을쏜가 / 靑蘇不種況芝麻
김 무침 접시에선 머리카락 끌려나오고 / 石苔充豆朼牽髮
가마솥에 지은 돌벼밥 모래가 있네그려 / 山穭烹銼飯有沙
8.
구름 바다 사이의 한 조각 외로운 돛 / 一片孤帆雲海間
울릉도 갔던 배가 이제 막 돌아왔다네 / 藁砧新自鬱陵還
만나자 험한 파도 어떻던가는 묻지 않고 / 相逢不問風濤險
가득 실은 대쪽만 보고 웃으면서 기뻐한다 / 刳竹盈船便解顔
울릉도는 강릉(江陵) 바다 속에 있음.
9.
애들은 항구에 가 고기잡게 말지어다 / 休放兒童港口漁
여덟 발 문어에게 걸려들까 무서워야 이 고기는 사람을 만나면 다리로 사람을 휘감아 물 속으로 끌어들임. / 怕他纏著八梢魚
근년에는 해구신이 이상하게 값이 뛰어 / 年來膃肭逢刁踊
서울에서 재상들이 서신 자주 보낸다네 / 頻有京城宰相書
10.
동산의 뇌록도 그 역시 진기하여 / 東山磊碌亦奇珍
돌에 박힌 파란 줄기가 복신처럼 생겼구나 / 石髓靑筋似茯神
염국에서 공물로 그를 받지 않았기에 / 染局不曾充歲貢
영릉의 종유혈이 천 년 내내 계속이라네 / 零陵乳穴自千春
뇌성산(磊城山)에서 녹석(綠石)이 나는데, 염료(染料)로 쓸 수 있는 돌로 그 지방 사람들이 그를 일러 뇌록(磊碌)이라고 하였음.
11
마산 남쪽에 자리잡은 죽림서원 / 竹林書院馬山南
느릅나무 대나무가 궂은비 속에 있네 / 脩竹新楡宿雨含
멀리서 온 납촉을 줘도 받지 않으면서 / 蠟燭遙來投不受
그래도 마을 사람들 송우암은 들먹인다 / 村人猶說宋尤庵
12.
온돌방 한 칸에다 시원한 마루 한 칸 / 炕室涼軒各一間
주인과 마주 보면 서로 웃는 얼굴이지 / 主人相對有歡顔
새로 막은 대나무 울 엉성하기 그물 같아 / 新補竹籬疏似網
앞산이 막혀서 못 볼 걱정은 없다네 / 不愁遮斷面前山
13.
제주도산 말총모자로 소나무와상 기대앉아 / 乇羅騣帽據松牀
일본산 자기 잔에다 보리숭늉을 마신다 / 日本瓷杯進麥湯
금년에는 해초들이 모두 잘 말랐는데 / 海菜今年都善曬
이른봄 날씨가 맑고 시원한 덕이라네 / 早春風日幸淸涼
14.
밥은 쌀로 국은 고기로 그것이면 그만이고 / 飯稻羹魚事便休
꽃과 나무 그걸 놓고 한가한 시름 않아 / 不將花木費閒愁
울 사이에 울퉁불퉁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가 / 籬間擁腫知何木
잎 피기에 보았더니 그게 바로 석류였네 / 新葉看來是海榴
15.
금화전에 오르고 옥당에 있을 생각 말게 / 休上金華倚玉堂
고기잡이 생리는 부러운 게 어부라네 / 魚蠻生理羨漁郞
아내 맞이할 때에는 고래수염 자를 주고 / 迎妻好贈鯨鬚尺
자식 분가시킬 때는 게딱지솥 나눠준다 작은 솥을 시속에서는 게딱지(蟹甲)라고 함. / 析子皆分蟹甲鐺
16.
밥 먹고는 잠을 자고 잠을 깨면 배가 고파 / 飯罷須眠眠罷飢
배고프면 술 찾는데 금사주를 데우라지 / 飢來命酒爇金絲
도무지 소일을 할 만한 일은 없고 / 都無一事堪銷日
이웃 영감 때로 와서 장기 두는 게 고작이야 / 隣叟時來著象棋
17.
나자 습증이 중풍으로 변했는데 / 病濕經春癱瘓成
북녘 태생이 남쪽 음식에 적응을 못해서지 / 北脾不慣喫南烹
비방인 창출술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 思服禁方蒼朮酒
약솥 들고 종은 와서 고향을 묻네그려 / 小奴持鑱問鄕名
18.
이 인생 그르친 것 책인 줄을 잘 알기에 / 書卷深知誤此生
여생 동안은 맹세코 그 은정 끊으렸더니 / 餘生逝與割恩情
아직도 마음속엔 그 뿌리가 남아 있어 / 心根苦未消磨盡
이웃 아이 책 읽는 소리 누워서 듣노라네 / 臥聽隣兒讀史聲
19.
놀도 아니요 구름도 아닌 보리가 크는 하늘 / 非靄非雲養麥天
복숭아는 술 취한 듯 버들눈은 조는 듯 / 小桃如醉柳如眠
슬슬 걸어 산 구경갈 생각이야 없으랴만 / 緩豈無步看山意
틀어박혀 지은 죄를 생각할 뿐이라네 / 只得深居念罪愆
20.
옛날에는 오서에 올라 지는 해를 보았더니 / 憶上烏棲落日看
오늘은 또 동해에서 뜨는 해를 보네그려 / 桑溟又見浴金盤
내 어찌 동해 서해 다 구경하는 몸이던가 / 吾遊豈盡東西海
강토가 원래 그리 넓지를 않아서지 / 疆場由來未許寬
옛날 금정(金井)에서 귀양살이할 때 오서산(烏棲山)에 올라가 해지는 것을 구경한 일이 있었음.
21.
초봄에는 흰 털이 두 개가 났었지만 / 初春兩個白毛新
한 개는 검은 편이고 하나만 하얗더니 / 一個猶玄一個純
이곳에 와서는 또 하나가 더 보태져서 / 此地又來添一個
세 개 모두 천연스레 하얗기가 은빛 같네 / 天然三個白如銀
22.
찌는 비린내에 파리가 너무 많아 / 鮑腥蒸鬱苦多蠅
밥은 늘 늦게 들고 잠은 늘 일찍 깨네 / 飯每徐抄睡早興
이는 분명 하늘이 게으름을 징계함이리 / 天意分明懲懶散
옛사람이 무단히 부를 써서 미워했지 / 昔人詞賦枉相憎
23.
살 깨무는 빈대 통에 잠을 잘 수가 없고 / 鼈蝨噆肌睡不成
벽에는 또 지네가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지 / 吳公行壁又堪驚
작은 벌레들 이빨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 須知䘌齒非吾有
그렇게 생각하고 저들 멋대로 하랄 수밖에 / 念此怡然順物情
24.
날 따뜻해 작은 밭에 장다리꽃 활짝 피니 / 小園風暖菜花開
노랑나비 퍼렁벌레 번갈아 드나든다 / 黃蝶靑蟲遞去來
저걸 보면 장주가 물화를 알았나봐 / 證得莊生知物化
죽장 짚고 느릿느릿 거닐면서 서성대네 / 徐携竹杖悄徘徊
25
옛날에 검정실로 짠 작은 은낭 너를 / 疇昔烏繩小隱囊
나 혼자서 끌어안고 이곳저곳 다 갔었지 / 隻身携汝到殊方
누우나 서나 네가 꼭 필요해서뿐 아니라 / 非唯臥起相須切
아버지가 만지시던 손때가 묻어서란다 / 爲是摩挲手澤方
은낭은 선인(先人)께서 쓰시던 것임.
26.
서남해 바다 물빛 금릉과 맞닿아서 / 西南海色接金陵
장사배가 며칠이면 이곳까지 닿는다네 / 商舶東來數日能
경뢰가 바라보인다 그 말 믿지 못했더니 / 未信瓊雷解相望
빽빽하게 모인 섬들 푸르르고 험하구나 / 叢攢島嶼碧崚嶒………………………………………………………………
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고시(古詩) 27수
1.
편안히 살던 십 년 전에는 / 安坐十年前
십 년 동안 할 일을 헤아리며 / 商量十年事
나가거나 들어앉거나 도에 맞게 하고 / 行藏與道揆
전원에다 자리를 잘 잡았지 / 田園整位置
하는 일들 모두 조리가 있어 / 鑿鑿有條理
밤중까지 기뻐 잠이 안 왔는데 / 中宵欣不寐
금년에 한 가지 일 잘못 판단하고 / 今年一計誤
명년에는 사건 하나 만나고 / 明年一事値
뜬구름 변하듯 모든 게 바뀌어 / 變幻如浮雲
이상한 일들이 뜻밖에 벌어지네 / 神怪出不意
풋내기 바둑이 고수를 만났으니 / 拙棋對高手
그 속임수를 무슨 수로 당하리 / 安能測詭祕
황홀하여 응수할 겨를도 없고 / 恍忽未暇應
멍한 게 푹 취한 것만 같아 / 瞢騰似沈醉
예부터도 현인 달사들이 / 自古賢達人
그 때문에 많이들 미끄러졌다네 / 以玆逢顚躓
2.
좋은 꽃이 한창 예쁠 때야 / 好花方艶時
누가 꽃되기를 바라지 않으랴만 / 誰不願爲花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하면 / 迨其萎而隕
갓 자라난 풀싹만도 못하단다 / 不如凡草芽
서쪽에 와 이십 년 노는 동안 / 西游二十年
성쇠를 거듭하기 몇 집이런가 / 盛衰知幾家
눈앞에 분명히 본 일인데 / 分明在眼前
어디 간들 전거가 없을 것인가 / 何處無前車
고동목을 다잡아 매두지 않고 / 金柅不蚤繫
기름통을 자랑만 하면서 / 膏𨍋方自夸
멋대로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는 / 翔徊俟其便
눈 깜짝할 사이 걱정거리 사고 말지 / 轉眄離虞羅
어린 시절부터 늘 경계하여 / 戒之在嬰稚
일찍이 이런 마음 갖지 않게 해야지 / 早使此心遐
3.
하늘 땅은 넓고도 가이 없어 / 二儀廓無際
만물로도 채울 수가 없다네 / 萬物不能實
작디작은 일곱 자 몸이야 / 眇小七尺軀
사방 한 발 방이면 살 수 있지 / 可容方丈室
새벽에 일어날 때 머리통은 찧더라도 / 晨興雖打頭
밤에 누우면 무릎은 펼 수 있어 / 夕偃猶舒膝
작은 빈궁은 동정하는 벗이라도 있지만 / 小窮有友憐
되게 궁하면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네 / 大窮無人恤
태평연월의 전야 백성들 / 熙熙田野氓
몸놀림 얼마나 걸림새없이 편하던가 / 動作何豪逸
4.
당파 싸움 오래도록 끝나지 않아 / 黨禍久未已
그거 참으로 통곡할 일이로세 / 此事堪痛哭
낙촉 후예들은 소식도 없고 / 未聞洛蜀裔
지보 살붙이들만 가리고 있다네 / 遂別智輔族
싸움 등살에 양심마저 다 흐려져 / 爭氣翳天良
티끌만 마음에 걸려도 막 죽인다 / 纖芥恣殺戮
순한 양들 짹소리 못하고 죽어도 / 羔羊死不號
승냥이와 범은 눈알을 부라리고 / 豺虎尙怒目
높은 자는 뒤에서 조종을 하며 / 尊者運機牙
낮은 자는 칼과 살촉을 간다네 / 卑者礪鋒鏃
그 뉘라서 큰 잔치를 열어 / 誰能辦大宴
화려한 집에다 장막을 둘러치고 / 帟幕張華屋
천 항아리에 빚어넣은 술과 / 千甕釀爲酒
만 마리 소 잡아 만든 전골로 / 萬牛臠爲肉
함께 앉아 옛 폐습 다 버리기로 하고 / 同盟革舊染
평화로운 복을 맞게 하려나 / 以徼和平福
5.
동녘 잿마루에 피어오른 흰구름 / 白雲出東嶺
처음에는 소담하기 모란꽃 같다가 / 初如牧丹花
점점점 산더미처럼 부풀어 / 轉作峯巒勢
금방이라도 천둥벼락이 떨어질 듯 / 硉矹藏雷車
뭉게뭉게 하늘을 가득 메운 / 溶溶滿碧虛
기이한 빛이 온 누리에 비치면 / 奇光照邇遐
그 모습 왜 아름답지 않으랴만 / 豈不美可愛
바람이 부는 날이면 어떻게 할까 / 風吹當奈何
별들은 붙어있는 자리가 있고 / 星曜有躔絡
초목도 뿌리와 싹이 있지만 / 草木有根芽
너는 한 곳에 못 있는 게 탈이어서 / 念汝不能住
나를 길이 탄식하게 하누나 / 使我長咨嗟
6.
못 안에서 활기차게 뛰노는 고기 / 撥剌池中魚
발랄하게 못 속을 다니면서 / 撥剌池中行
연잎 사이에서 놀기도 하고 / 游戲蓮葉間
오물대고 쪼아먹고 제멋대로였는데 / 呷唼常適情
무단히 멀리 놀고 싶은 생각으로 / 矯然思遠游
흐름 따라 큰 바다로 들어갔다네 / 隨流入滄瀛
양양한 바다 갈 곳을 잃고 / 望洋迷所向
거센 물결에 넋이 도망갔으며 / 蕩潏魂屢驚
가까스로 교룡 악어를 피했더니 / 崎嶇避蛟鰐
필경에는 큰 고래를 만나 / 至竟値長鯨
고래가 들이켜면 빨려들어가 죽었다가 / 倏鯨吸而死
고래가 뿜어내면 다시 살아났다네 / 忽鯨歕而生
자나 깨나 옛 못이 그리워서 / 耿耿思故池
시름시름 걱정만 하던 차에 / 圉圉憂心縈
그 고기를 불쌍히 여긴 용왕이 / 神龍哀此魚
세찬 비를 소리나게 내려주었다네 / 雷雨會有聲
7.
풀이면 다 뿌리가 있는데 / 百草皆有根
부평초만은 매달린 꼭지가 없이 / 浮萍獨無蔕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 汎汎水上行
언제나 바람에 끌려다닌다네 / 常爲風所曳
목숨은 비록 붙어있지만 / 生意雖不泯
더부살이 신세처럼 가냘프기만 해 / 寄命良瑣細
연잎은 너무 괄시를 하고 / 蓮葉太凌藉
행채도 이리저리 가리기만 해 / 荇帶亦交蔽
똑같이 한 못 안에 살면서 / 同生一池中
어쩌면 그리 서로 얼그럭덜그럭 할까 / 何乃苦相戾
8.
제비가 처음 날아와서는 / 鷰子初來時
쉬지 않고 비비배배 비비배배지 / 喃喃語不休
무슨 말 하는지 뜻은 잘 몰라도 / 語意雖未明
집이 없다고 호소하는 것만 같애 / 似訴無家愁
늙은 고목나무 구멍도 많은데 / 楡槐老多穴
왜 거기서 안 사는가 했더니 / 何不此淹留
다시 날아와 비비배배하는 소리 / 燕子復喃喃
사람이 한 말에 대꾸하는 것 같데 / 似與人語酬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와 쪼아먹고 / 楡穴鸛來啄
홰나무 구멍에는 뱀이 와 더듬는다고 / 槐穴蛇來搜
9.
가지 늘어진 정원 속의 대나무 / 冉冉園中竹
말쑥한 자태 너무나도 소박한데 / 修節擢澹素
지방사람들 대가 중한 줄 모르고 / 土人不重竹
대 베어 채마밭 울타리 만든다네 / 伐竹爲樊圃
네가 북쪽 지대에만 났더라면 / 苟汝生北方
사람들이 왜 널 사랑하지 않으리 / 豈不人愛護
잎 하나라도 혹시 다칠세라 / 一葉疑有損
갔다가도 다시 와서 보살피련만 / 旣去復來顧
10.
바다 장사치들 많은 이득을 노려 / 海賈射重利
사나운 파도도 마다 않는데 / 不避風濤險
높이 날 앞길만 트인다면야 / 前程有騰翥
영해 귀양살인들 왜 마다하리 / 安辭嶺海貶
서릿발 같은 탄핵 글발에 / 彈文凜如霜
정기는 위세가 꺾여버렸다네 / 正氣凌威燄
꿰뚫어지게 보는 눈 숲 속에 있거니 / 林下有慧眼
그 속셈을 무슨 수로 가린다던가 / 肝肺何能掩
11.
뜰 중심에 있는 푸르른 파초 / 庭心綠芭蕉
피어나는 잎 그 빛 너무 곱지 / 展葉何光絢
우유초는 가을 들면 씨알 따고 / 牛乳待秋摘
봉미초는 바람결에 간들대지만 / 鳳尾含風轉
아침에 피는 한 송이 꽃은 / 朝來吐一花
차마 볼 수 없는 꼴불견이지 / 陋恣不堪見
만물이 좋은 점은 하나씩인 것 / 萬物各一美
뿔과 어금니를 독차지할 수 있는가 / 齒角寧得擅
달관이 시 쓰기도 좋아한다면 / 達官好作詩
궁천한 자는 무얼 차지할 것인가 / 何以待窮賤
12.
이상하게도 융만 시절의 시는 / 異哉隆萬詩
껄끄럽기 마른 장작개비 같아 / 枯澁如槁木
원서가 설루를 깔아뭉개면 / 袁徐轢雪樓
매도하기 마치 종 다루듯 했지 / 罵誶如奴僕
청 나라 시대에는 또 한 번 변하여 / 淸人又一變
예쁘장하게 뼈와 살이 알맞았기에 / 嫩艶勻骨肉
비록 뼈대 있게 독특하진 못했어도 / 雖乏崛强態
그런대로 함축미는 있었지 / 猶能有涵蓄
그 성쇠도 세상 따라 좌우되는 것 / 盛衰隨世運
봄은 따스하고 가을은 쌀쌀하기 마련이야 / 春溫必秋肅
13.
수리부엉이도 밤중에 날면 / 茅鴟中夜飛
빠르기 순풍 만난 기러기나 같다네 / 翼若鴻遇風
속일 수 없는 것이 공리이며 / 公理不可誣
어디서나 통해야 그게 달도이지 / 達道皆相通
친구 팔아먹는 사람은 없고 / 未有賣友人
임금 섬기는 데는 그래도 충성이라네 / 猶能事君忠
막야는 철이라도 척척 끊고 / 鏌釾利食鐵
금잠은 벌레를 되는 대로 먹는다네 / 金蠶恣啗蟲
섶을 비록 산더미같이 쌓은들 / 抱薪雖如山
제 어찌 하늘을 불태우리 / 何能焚太空
14.
벗이여 달 아래서 마시려거든 / 友欲月下飮
오늘밤 달을 놓치지 말게나 / 勿放今夜月
만약에 내일로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바다에서 구름이 일 것이며 / 浮雲起溟渤
또 내일로 더 미룬다면 / 若復待來日
둥근달이 이미 이지러질 거야 / 圓光已虧缺
15.
숲 속에 표범이 엎드려 있으면 / 文豹伏林中
나무 위에서 까막까치가 짖어대고 / 烏鵲樹頭嗔
울타리에 긴 뱀이 걸렸으면 / 長蛇掛籬間
참새 떼가 조잘조잘 사람에게 알리며 / 瓦雀噪報人
개백장이 올가미 차고 지나가면 / 狗屠帶索過
뭇 개들이 요란하게 짖지 / 群吠鬧四隣
새 짐승은 곧이곧대로기에 / 禽獸不藏怒
그 아는 것이 귀신 같다네 / 其知乃如神
마음이 포학하면 겉으로 나타나는 법 / 內虐必外著
어리석은 백성이라고 어떻게 속일 것인가 / 何以欺愚民
사덕이 물론 다 아름다운 것이나 / 四德雖竝美
군자는 늘 인을 우선으로 치지 / 君子每先仁
산 풀도 밟지 않는다니 / 生草猶不履
그 기린 얼마나 어진가 / 賢哉彼麒麟
16.
태양이 빛나기 수정덩어리라도 / 太陽赫光晶
준오가 별처럼 속에 널려 있고 / 踆烏乃星羅
밝은 달이 저리도 교교하지만 / 明月皎如彼
계수나무가 늘 너울거리듯 / 桂樹長婆娑
몸 깨끗이 갖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 潔身雖自勵
생기는 오점을 누가 없애주리 / 玷汚將誰磨
깨끗이 씻어버릴 뜻 왜 없을까만 / 豈無洗濯志
약한 힘으론 바다를 끌어올 수 없어 / 弱力莫挽河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가는데 / 冉冉天色暮
두리번거리기만 하다가 어찌할까 / 徘徊當奈何
17.
우리 정원에 한 그루 뽕나무가 / 吾園一株桑
하필이면 서루 기둥 가까이 있어 / 苦近書樓楹
아기종이 가지를 쳐버리면 / 小奴剪其枝
새 가지가 더 많이 돋아나고 / 新條益暢榮
사랑방 객이 몸통을 베버려도 / 舍客伐其榦
봄이면 등걸에서 움이 돋아 / 槎蘖又春萌
해마다 치고 벰을 당하고도 / 年年受剪伐
해마다 늘 자라나기만 해 / 年年也自生
그 마음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서 / 苦心良可感
북돋우어 주고 잘 자라게 했더니 / 培壅使其成
거년 봄에는 상마상으로 하여 / 前春上馬桑
더위와 추위 모르고 살았다네 / 免使吳楚爭
좋은 나무는 버릴 수가 없는 법 / 良木不終棄
가시나무 따위가 감히 겨룰 수 있으랴 / 樲棘敢相嬰
18.
솥은 오물 버리기 위해 엎고 / 鼎顚利出否
자버러지는 펴기 위해 굽히지 / 蠖屈本求伸
악인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고 / 惡人事上帝
우리 길은 가지 발전이 제일이야 / 吾道貴自新
들리는 명성 태산 같아도 / 聞名若泰山
가까이 대하면 진짜 아닌 게 많고 / 逼視多非眞
듣기에는 도올처럼 들려도 / 聞名若檮杌
보면 볼수록 가까이할 만한 이도 있어 / 徐察還可親
칭찬은 수많은 입 거쳐야 하지만 / 讚誦待萬口
훼방은 한 입으로도 족한 것 / 毁謗由一脣
금방 기뻐하고 걱정할 게 뭐라던가 / 憂喜勿輕改
눈 깜짝할 사이 재요 먼지인 것을 / 轉眼成灰塵
19.
만물은 제각기 분수가 있고 / 萬物各有分
힘이나 숙명이 서로 틀린 게 많아 / 力命多不敵
청학은 높은 소나무에서 살고 / 靑鶴巢喬松
황작은 갈대에다 둥지 틀어야지 / 黃雀巢葦荻
황작이 높은 소나무에서 살다간 / 黃雀巢喬松
바람 불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아 / 風吹遭蕩析
난쟁이 주제에 짧은 옷 주웠대서 / 僬僥受短襦
불평을 품을 것이 뭐라던가 / 胡爲銜戚戚
조절을 꼭 그리워할 것 없이 / 藻梲何須慕
진창길이 바로 제격인 것이지 / 泥塗方自適
20.
천고의 인물 두루 골라봐도 / 歷選千古人
내가 바라는 건 진미공이야 / 但願陳眉公
곤산 속에다 오막살이 짓고는 / 結廬崑山內
도서에 파묻혀 일생을 보냈다네 / 棲身圖史中
오와 월에 궁한 선비들이 많아 / 吳越多窮儒
서로 필연으로 도우며 상종했기에 / 筆硯相磨礱
고물고물 끝이 없는 비급 총서를 / 紆餘秘笈書
엮어내는 데 별 힘 들지 않았다오 / 薈蕞不費功
우산의 풍자를 받기는 하였지만 / 縱被虞山刺
시원한 맑은 바람이 일지 / 蕭然有淸風
21.
장저 걸익은 따라가기가 어렵고 / 沮溺邈難企
또 생각나는게 소운경이야 / 且憶蘇雲卿
정원 가꾸며 기이한 행적 감추고 / 灌園晦奇跡
외 팔면서 높은 명성 숨겼었네 / 賣瓜鞱高名
참외는 크기가 항아리만 하고 / 甘瓜大如甕
물외는 길이가 술단지만 하였다 / 苦瓜長如罌
우스워라 장씨라는 사람 / 可笑張氏子
옛 정이 그리워 옥백 보냈으나 / 玉帛存故情
하룻밤에 전가족이 도망가고 없어 / 盡室一夜逃
사마가 마구 울어댔다네 / 駟馬啾交鳴
흰구름은 어딜 가나 일어나는 것 / 白雲處處起
그 즐거움을 누가 있어 다투리 / 此樂誰與爭
22
절인 고기는 썩은 냄새가 없고 / 鮑魚無敗臭
자버러지는 색이 따로 없다네 / 尺蠖無異色
안자(晏子)가 이르기를, “자버러지는 누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누렇게 되고, 푸른 것을 먹으면 몸이 금방 푸르게 변한다.” 하였음.
권세있는 집안에는 충객도 많지만 / 熱門多忠客
사랑과 그리움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 / 愛慕由悃愊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세력이 부러워서이겠지 / 無乃羨勢力
사실은 그 사람이 현명한 거야 / 斯人實賢明
문장이 높고 큰 덕을 닦으면 / 高文修大德
눈알이 벌써 희끄무레하여 / 眼珠已迷昧
자기 마음을 자기가 모른다네 / 自心不自識
뭇 선이 골짝을 메우듯 몰려오면 / 衆善趨如壑
찬미의 노래가 하북에 가득하련만 / 謠誦滿河北
23.
갈바람에 벽오동 잎이 지고 / 秋風摧碧梧
둥우리 제비도 들보를 하직한다 / 巢鷰辭雕梁
문정에는 참새 떼 모여드는데 / 鳥雀集門庭
찾던 객들 잊어버린 듯 조용하네 / 舊客如相忘
묻노라 그대 왜 그러는 것인가 / 問君何爲爾
아마 염량이 달라서이겠지 / 無乃殊炎涼
그 사람 사실로 오만방자해 / 斯人實傲妄
뭇 헐뜯음도 모두 아랑곳없이 / 衆毁皆滄浪
자신 대의명분을 지킨다면서 / 自辭負義名
은근히 상대로 하여금 드러내주게 하는데 / 微令彼過彰
뭇 악은 하류로 모여드는 법 / 衆惡歸下流
여러 입들 야단법석을 한다네 / 羣喙如蜩螗
24.
노수가 도를 강론하면서도 / 魯叟講斯道
그 절반이 왕도정치에 관한 것이며 / 王政居其半
회옹이 누차 올린 바른 상소도 / 晦翁屢抗章
그 내용은 모두 조정 당면 문제였지 / 所論皆廟算
지금 선비들은 공리공담만 좋아하고 / 今儒喜談理
실제 정치에는 빙탄처럼 용납하지 못하니 / 政術若氷炭
감히 못 나가고 깊이 들어앉았지 / 深居不敢出
나갔다간 남의 노리갯감 되니까 / 一出爲人玩
그리하여 거칠고 경박한 사람들이 / 遂令浮薄人
발벗고 나서 국사 맡게 만든다네 / 凌厲任公幹
25.
수 양제 때 시작된 과거제도 / 詞科自隋煬
그 독이 이 나라에도 유전되었다네 / 流毒至洌浿
논리 정연한 생원론이야말로 / 粲粲生員論
무릎 치며 쾌재를 부를 만하지 / 擊節成一快
피어오른 뭉게구름 같은 재주라도 / 才俊如霞雲
모두 그 속에 들어가 패하면서 / 盡向此中敗
늙어빠져 백분이 되면서도 / 龍鍾到白粉
지칠 줄 모르고 새기고 그린다네 / 雕繪猶未懈
26.
소인배들 벼슬 한자리 해보려고 / 細人巧爲宦
밤낮없이 남의 맘을 재면서 / 揣摩窮夜晝
단 한 번도 까닭이 있어 움직이지만 / 一動皆有因
백 가지 짓이 하나도 맞는 게 없어 / 百爲無一偶
열성스러운 벗 따라 꽃구경하고 / 看花趁熱友
채소 먹으며 원래 청백한 체하지 / 喫菜示素守
오활한 유자들만 생각 잘 못하고 / 迂儒少商量
비바람 맞아가며 무단히 쏘댄다네 / 風雨浪奔走
27.
벌레들도 제 몸 방어는 다 잘하고 / 昆蟲盡自衛
발톱 어금니 발굽 뿔도 골고루지 / 爪牙蹄角毒
평화롭다고 군대 접어두었다가 / 時平不講兵
적이 오면 제멋대로 맡겨둬서야 / 寇來任隳觸
명장은 송골매와 같아서 / 名將如蒼鷹
날쌔고 보는 눈도 촛불 같지만 / 驍邁眸如燭
비대한 자가 장단에 오르면 / 胖夫輒登壇
한다는 소리 지장불여복장이란다네 / 云智不如福
요즘 들어보면 홍이포라는 것이 홍이포는 오랑캐 나라의 병기임. / 近聞紅夷礮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무섭다는데 / 創制更殘酷
앉아서 태고풍이나 지키면서 / 坐守太古風
활 화살 따위나 익힌대서야 / 弓箭有課督……………………………………………………
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새로 소내에서 돌아와 윤무구에게 보이다[新自苕川還簡尹无咎]
어부처럼 배에서 이레를 보낸 끝에 / 七日浮家作釣翁
또다시 한양 성중 매인 몸이 되었구나 / 復此羈留漢城中
고삐가 풀렸다가 다시 묶인 말의 신세 / 眞同逸馬再受馽
병든 학을 누가 위해 조롱을 또 열어 줄까 / 誰許病鶴重開籠
더군다나 궂은비에 진창길이 미끄러워 / 況逢雨淖紅塵滑
친구가 못 온다는 서찰을 보냈음이랴 / 故人愆期有小札
약화로에 불 돋우고 발을 걷고 내다보니 / 藥爐添薪捲簾看
시냇물은 넘실넘실 울룩불룩 산이로세 / 溪水鱗鱗山齾齾
문전이 떠들썩하게 진창길을 헤치면서 / 門前呵唱忽衝泥
그놈의 코고는 소리 무지개에 닿는 듯하다 / 渠今鼻息干虹蜺
오랑캐 소리 자고새 소리 대꾸할 수가 없어 / 蠻語鉤輈不可答
성중에서 문을 닫고 산에서 살 듯 산다네 / 閉門市居成巖棲
마음은 아직 아이로되 얼굴이 영감이기에 / 心尙兒童貌已翁
우스갯짓 하면서도 조인중은 피한다네 / 謔浪每避稠人中
장생 자신 쓸모 없는 재목되길 바랐는데 / 莊生自甘爲樗散
적상인들 약상자 속에 담아두려 하겠는가 / 狄相還肯貯藥籠
미끄러운 수미늪에 이리가 꼬리 빠졌다가 / 狼尾却蘸隃糜滑
한가로이 남궁에 와 서찰이나 뒤진다오 / 閒取南宮弄書札
힘들여서 작은 일에 매달릴 게 뭐라던가 / 不用勞苦媚齷齪
마음대로 거닐면서 늘그막을 보내야지 / 逝將消搖抵老齾
벼슬길은 빠지기 쉬워 봄날의 진창 같고 / 宦途汨沒如春泥
요지경 속 세상 물정 아침에 뜬 무지개야 / 世態眩幻疑朝蜺
언제인가 비가 개고 순풍이 일게 되면 / 會待雨歇便風起
돛을 다시 손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네 / 再理雲帆還故棲
병아리가 홰를 치며 어미닭이 벌써 됐네 / 雛鷄腷膊成鷄翁
세월이 그리 빨라 오월이 다 되단말가 / 飜驚節物近天中
바닷가 저자에는 준치가 났다더니 / 已聞鰣魚生海市
가다 보면 앵두를 대그릇에 쏟고 있데 / 行見含桃寫筠籠
원교산 나무들 녹음이 윤택하여 / 員嶠綠樹芳陰滑
뼈살촉으로 미늘 뚫기 시합하자고 약속했다 / 䔀射骲頭試穿札
꽃을 따며 아름다운 보조개를 즐겨 보고 / 折花耽看弱暈靨
중봉의 결함처를 돌을 쌓아 메운다네 / 疊石新補中峯齾
이원의 계집애들 붉은 찰흙 밟고서 / 梨園女兒蹋紅泥
피리 불고 비파 뜯고 깃발이 휘날려도 / 笙瑟交陳雜羽蜺
소소와 고기맛과는 도무지 상관없어 / 簫韶肉味都不管
강가에서 조용하게 사는 것만 다 못하다네 / 不如江上安幽棲
그대나 내나 내년이면 영감이라 할 것이니 / 爾我來年合稱翁
미공의 팔십에 비하면 꼭 절반을 산 셈이군 / 眉公八十正當中
골짝 찾아 방랑하는 그 신세도 안됐지만 / 祇愁放浪尋丘壑
뭐가 괴로워 단속받게 새장으로 들어가리 / 何苦檢束投樊籠
산골에 비가 내려 밭두둑에 넘칠 때 / 遠憶峽雨田畦滑
써레질을 하노라면 끌리는 물소리 찰찰하지 / 耖耮曳水鳴札札
석류꽃이 터지려면 입술이 두툼해지고 / 榴花欲綻重脣肥
생선구이 반찬이면 이 빠져도 걱정없어 / 鱠炙不愁衰齒齾
일부러 취하려고 진창되게 마시고서 / 取醉直至酣如泥
기고만장 토한 기염 무지개가 될 무렵에 / 吐燄萬丈成虹蜺
풍진 세상 내리보고 죽은 고목들 다 치워버리면 / 下燭坌埃廓菑翳
방황하는 물건 없이 다 제자리 잡으련만 / 群物得所無棲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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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자신을 비웃음[自笑]
취한 듯이 깬 듯이 반평생을 보내면서 / 如醉如醒度半生
간 곳마다 푸짐한 건 이 몸의 이름이지 / 到頭贏得此身名
진창 모래 천지인데 갈기 늦게 흔들었고 / 泥沙滿地掉鬐晩
하늘 가득 그물인데 경솔하게 날개 폈어 / 網罟彌天舒翼輕
제산에 지는 해를 누가 잡아맬 것인가 / 落日齊山誰繫住
풍파 드센 초수를 마음대로 어이 가리 / 衝風楚水可橫行
형제라고 운명이 다 같지야 않겠지만 / 同胞未必皆同命
세상물정 어두운 선비 나 자신을 비웃노라네 / 自笑迂儒闇世情
초초한 그 옷차림 바로 너를 속인 것이지 / 草草冠裳是汝欺
십년을 쏘댔지만 피곤 말고 소득이 뭔가 / 十年驅策秪奔疲
만물을 다 안다면서 대답 못하는 우자이며 / 智周萬物愚無對
천인이 이름 알아도 그 뒤에는 훼방인 것을 / 名動千人謗已隨
미인이 흔히 박명하다고 그 기록 안 보았던가 / 不見紅顔多薄命
백안으로 보는 자는 언제나 친지 쪽이데 / 由來白眼在親知
뱀비늘에 매미날개 게서 뭘 기대하리 / 蛇鱗蜩翼終何待
우스워라 나야말로 철저한 멍청이로세 / 自笑吾生到底癡
의로 인거 어디인지 갈피를 못 잡고서 / 迷茫義路與仁居
그 길을 찾으려고 약관 시절에 방황했지 / 求道彷徨弱冠初
이 세상 모든 일을 모두 다 알 양으로 / 妄要盡知天下事
책이라고 생긴 것은 다 읽기로 생각했다네 / 遂思窮覽域中書
태평시절 괴롭게도 활에 다친 새였더니 / 淸時苦作傷弓鳥
남은 목숨 이제는 그물에 걸린 고기로세 / 殘命仍成掛網魚
천 년 두고 어느 누가 나를 알 자 있을는지 / 千載有人知我否
마음 잘못 먹은 게 아니라 재주 적어 그런거야 / 立心非枉是才疏
뜬세상에 사귈 사람 몇이나 된다던가 / 浮世論交問幾人
조시사람 잘못 알고 진정으로 대해서야 / 枉將朝市作情眞
국화그림자 아래서는 시 잘한다는 이름 높고 / 菊花影下詩名重
단풍나무 단 속에선 연회가 잦은 법이지 / 楓樹壇中讌會頻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는 좋게 보고 / 驥展好看蠅附尾
개미가 기어올라도 용은 그냥 둬둔다네 / 龍顚不禁蟻侵鱗
세상의 온갖 꼴들 웃음이 절로 나와 / 紛綸物態成孤笑
동화의 먼지 속에다 묻어두고 말자꾸나 / 一任東華暗軟塵
강직하면 세상 살기 참으로 어려워 / 骯髒深知涉世難
광대들이 떼로 모여 유자라면 비웃어대지 / 俳優叢集笑儒冠
열정이라곤 전혀 없이 적은 녹이나 다투고 / 都無熱肺爭微祿
달관이나 꿈꾸면서 얼굴빛은 안 그런 체 / 未作卑顔事達官
살구나무 동산에서 술이나 늘 마시고 / 紅杏園林留酒飮
이끼 낀 집에 앉아 책을 들고 보기도 하지 / 綠苔門巷抱書看
배를 삼킬 큰 고기는 큰 바다 못 만나서 / 呑舟不遇瀛溟水
낚시 물고 낚싯대에 매달리기 일쑤라네 / 容易含鉤上竹竿
금화거나 옥서거나 세상 인연 모두 끊고 / 金華玉署解塵緣
아슴푸레 그리운 곳 소수 종산뿐이라네 소수(苕水)ㆍ종산(鍾山)은 광주(廣州)에 있음. / 苕水鍾山興杳然
아내 불러 뽕나무 심을 밭이나 더 넓히고 / 喚婦夸張桑柘圃
채소밭은 자식 시켜 가꾸라고 하면 되지 / 敎兒經略菜苽田
하늘이 점지한 복은 인색하기 그지없어도 / 天於淸福慳無比
땅이 만든 벽촌에는 풍년이 없지 않아 / 地設荒陬待有年
뭐니뭐니 해도 오늘 당장 마시는 게 제일이지 / 萬事不如今日飮
내일 일을 생각하면 그는 벌써 바보라네 / 思明日事是癡癲
낙심하고 실망하고 이십 년을 보내면서 / 圉圉纍纍二十秋
꿈속에 얻은 것을 깨고 나서 거뒀다네 / 夢中微獲覺來收
사방에 난 헛 명예 그도 모두 지나간 일 / 浮名四達已陳跡
몸말고는 있는 게 없고 남은 것은 대머리뿐 / 外物一空餘禿頭
옛날에는 강좌에서 고하를 쳤었는데 / 顧賀昔稱江左望
지금은 채릉이 농서의 추물이라오 / 蔡陵今作隴西羞
기구한 생각일랑 지금 당장 하지 말자 / 眼前莫造崎嶇想
구름 따라 물 따라 가는 대로 가면 되지 / 隨意雲行又水流
불행하게 온 빈궁을 쫓으려고 하지 말자 / 不幸窮來莫送窮
곤궁을 이기는 것 그게 영웅 호걸이지 / 固窮眞正是豪雄
재가 된 한안국을 누가 다시 돌아보리 / 成灰孰顧韓安國
강 건널 때 언제나 여마동을 만난다네 / 臨渡常逢呂馬童
사랑 받건 욕을 먹건 장주의 춘몽이요 / 寵辱莊生春夢裏
현자거나 우자거나 술취한 두보 노래 속이야 / 賢愚杜老醉歌中
어젯밤 바다 위에 부슬부슬 내린 비로 / 海天昨夜霏霏雨
잡다한 나무숲에 온갖 꽃들 다 폈겠다 / 雜沓林花萬樹紅
여송 과왜 풍속들이 동으로 동으로 밀려와서 / 呂宋瓜哇東復東
바람 타고 날아오는 쑥대처럼 빠르다네 / 被風吹轉似飛蓬
늘그막의 탕목읍이 장기현이 기란말가 / 晩年湯沐長鬐縣
상전벽해 다 겪은 머리 짧은 영감이로세 / 小劫滄桑短髮翁
고기반찬 상에 가득 이 어디 박한 녹인가 / 滿案魚蝦非薄祿
정원 두른 송죽은 맑은 바람 만들어낸다 / 匝園松竹也淸風
읽고 남은 천 권 책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 破書千卷將何措
구덩이 속을 평지처럼 네 덕으로 살고 있단다 / 坎窞如夷是汝功
입이 많으면 쇠도 녹는 것 할머니가 아는 일이지 / 衆口銷金太母知
뭇 주먹 돌팔매를 이상하게 여길 것 없어 / 叢拳下石莫驚疑
사람들이 겁나서지 내가 미워 하는 짓 아니며 / 人方怯耳非憎我
하늘의 뜻인 것을 그 누구를 한할건가 / 天實爲之欲恨誰
북극에 별들은 어제와 똑같은데 / 北極星辰如昨日
서강의 풍랑은 어느 때나 멎을는지 / 西江風浪竟何時
막다른 골목에서 이 마음 좁아질까봐 / 窮途只怕胸懷窄
바다쪽 사립문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오 / 臨海柴門竚立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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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추회(秋懷) 8수. 신유년 가을 장기(長鬐)에 있으면서
남자섬 서쪽이 게가 바로 석호인데 / 藍子洲西是石湖
줄연기 갈대비에 푸르른 듯 흐리다네 / 菰煙蘆雨碧糢糊
소신은 남가일몽 다시는 꾸지 않고 / 小臣不復南柯夢
강가에서 낚시꾼이나 되는 것이 원이라오 / 願作江邊一釣徒
제비가 새끼 데리고 멀리 날기 익히면서 / 燕母將雛習遠飛
제 고향 가고파 검정옷을 입히누나 / 七分歸思著烏衣
비비배배 어쩌고 저쩌고 그 모두가 헛소리지 / 喃喃剌剌皆瞞語
갈바람만 불어오면 날 버리고 가려면서 / 纔得秋風棄我歸
곱게 누른 탱자가 공놀이하기 알맞아서 / 枳子姸黃合弄丸
애들은 집다툼하고 할아비는 좋아한다 / 童孩鬪累阿翁歡
하는 짓들 기껏해야 쇠똥구리 재주 부리며 / 看渠不過蜣螂技
관가의 정원에 백로단만 따 없애네 / 摘損官園白露團
꽃게의 엄지발이 참으로 유명한데 / 紅擘蝤蛑儘有名
아침마다 대하는 것 가자미국뿐이라네 / 朝朝還對鰈魚羹
개구리알도 밀즉도 먹으라고 서로 권하면서 / 䵷蛇蜜喞猶相餉
남쪽 요리와 북쪽 요리가 다르다고 말을 말게 / 休說南烹異北烹
나무굼벵이 개똥벌레 자취 없어 쓸쓸한데 / 蠹死螢乾孤客心
가을 가면 겨울 온다고 철벌레가 우네그려 / 流商刻羽候虫吟
빈 뜰에 물풀들아 너울너울 춤추지 말라 / 空階藻荇休翻舞
대숲에 걸린 달도 머지않아 지려 한다 / 落月無多掛竹林
새재는 구불구불 달수는 평평한데 / 鳥嶺靡迤㺚水平
서쪽으로 가는 길손 끊이지가 않는다네 / 行人絡繹向西行
동해에 풍진이 일어나고부터서는 / 自從東海生塵後
하늘로 이어지는 무지개다리 놓여지리 / 應是虹橋接上淸
석양에 부는 바람 푸르른 세파 일고 / 綠漪吹緊夕陽風
선명한 겨울꽃이 풀 속에 숨어 있다 / 熠熠寒花隱草中
귀뚜라미 잡는 애들 이상하게 생각 말게 / 莫怪村童拈蟋蟀
고기 낚는 영감이 시켜서 한 일이라네 / 指揮原有釣魚翁
네 구석에 외막 치고 외밭을 지키느라 / 四脚瓜田守草樓
외밭 영감 온 식구가 거기 다 매달렸다 / 瓜翁盡室此淹留
즐거운 그 속 일을 남이 누가 알 것인가 / 此中樂事人誰識
산과 바다 어디서나 떠들어대도 일없다네 / 海鬧山喧了不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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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탐진 풍속 노래[耽津村謠] 15수
누리령 잿마루에 바위가 우뚝한데 / 樓犁嶺上石漸漸
길손이 눈물 뿌려 사시사철 젖어 있다 / 長得行人淚灑沾
월남을 향하여 월출산을 보지 마소 / 莫向月南瞻月出
봉마다 모두가 도봉산 모양이라네 / 峯峯都似道峯尖
월출산은 강진(康津)에 있고, 도봉산은 양주(楊州)에 있음.
동백나무 잎들은 얼어도 무성하고 / 山茶接葉泠童童
눈 속에 꽃이 피면 붉기가 학 이마 같아 / 雪裏花開鶴頂紅
갑인년 어느 날에 소금비가 내린 후로 / 一自甲寅鹽雨後
유하나무 감귤나무도 모두 말라 없어졌다네 / 朱欒黃柚盡枯叢
바닷가 왕대나무 키가 커서 백 자러니 / 海岸篔簹百尺高
지금은 낚싯배 상앗대로도 못 쓴다네 / 如今不中釣船篙
정원지기가 날마다 새 대를 가꾸어서 / 園丁日日培新笋
죽력 내내 권문세가에 바치기 때문이야 / 留作朱門竹瀝膏
성벽은 다 무너져 언덕바지 설렁한데 / 崩城敗壁枕寒丘
해가 지면 징소리만 주춧돌을 울린다네 / 鐃吹黃昏古礎頭
여러 섬에 나무들을 해마다 베어만 내지 / 諸島年年空斫木
청조루를 중건하는 사람은 통 없다네 / 無人重建聽潮樓
무논에 바람 불면 보리물결 장관이고 / 水田風起麥波長
보리타작 할 무렵에 모를 게다 꽂는다 / 麥上場時稻揷秧
배추는 눈 속에서 새로 잎이 파랗고 / 菘菜雪天新葉綠
병아리는 섣달에 솜털이 노랗다네 / 鷄雛蜡月嫩毛黃
석제원 북쪽에는 갈림길이 하 많아서 / 石梯院北路多歧
예부터 낭자들이 이별하는 곳이라네 / 終古娘娘此別離
한도 많은 문 앞의 수양버들 나무들은 / 恨殺門前楊柳樹
그통에 다 꺾이고 남은 가지 몇 개 없어 / 炎霜摧折少餘枝
눈처럼 새하얀 새로 짜낸 무명베를 / 棉布新治雪樣鮮
이방에 낼 돈이라고 졸개가 와 뺏는구나 / 黃頭來博吏房錢
누전의 조세를 성화같이 독촉하여 / 漏田督稅如星火
삼월하고 중순이면 세 실은 배를 띄운다네 / 三月中旬道發船
왕적(王籍)에 누락된 민전(民田)이 6백 여 결(結)에 이르는데 그것을 재
결(災結)로 거짓 보고하고 있으니 국가 조세가 얼마나 많이 축이 나겠는가.
완주의 황옻칠은 맑기가 유리 같아 / 莞洲黃漆瀅琉璃
그 나무가 진기한 것 천하가 다 알고 있지 / 天下皆聞此樹奇
작년에 성상께서 세액을 견감했더니 / 聖旨前年蠲貢額
봄바람에 밑둥에서 가지가 또 났다네 / 春風髡蘖又生枝
오만족 총각인지 머리털은 더부룩한데 / 烏蠻總角髮如雲
써내는 글씨 보니 중국 문자 아니로세 / 寫出三倉法外文
자바섬이 아니면 루손섬에서 왔으렷다 / 不是瓜哇應呂宋
장미빛 옥합에서 야릇한 향내 풍기네 / 薔薇玉盒發奇芬
이때 표류선이 제주도에 정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음.
백련사 누대 앞에 둥그렇게 비친 물결 / 蓮寺樓前水一規
봄이면 눈 같은 조수 문중방까지 오른다네 / 春潮如雪上門楣
유명한 절 다해봐야 두륜사가 으뜸이지 / 名藍總隷頭輪寺
서산대사 공적 기린 어제비가 있으니까 / 爲有西山御製碑
시골 애들 습자법이 어찌 그리 엉망인지 / 村童書法苦支離
점획과파 모두가 낱낱이 비뚤어져 / 點畫戈波箇箇欹
글씨방이 옛날에 신지도에 열려 있어 / 筆苑舊開新智島
아전들 모두가 이광사에게 배웠었는데 / 掾房皆祖李匡師
가시밭길 어느 때나 앞길이 트일는지 / 荊棘何年一路開
누른 띠밭 참대나무 주릿대 비슷하네 / 黃茅苦竹似珠雷
형방의 아전들이 소란 떠는 것이 / 形房小吏傳呼急
서울에서 누가 또 귀양을 왔군그래 / 知是京城謫客來
삼월이면 송지에 말시장이 열리는데 / 三月松池馬市開
오백 푼만 집어주면 천재마를 고르게 되지 방언에 좋은 말을 일러 천재마(天才馬)라고 함. / 一駒五百揀天才
흰말총 체라던지 검은말총 갓이랑은 / 白騣籮子烏騣帽
그 모두가 한라산 목장에서 온 거라오 / 都自拏山牧裏來
전복이야 옛날부터 점대에서도 즐겼지만 / 自古漸臺嗜鰒魚
동백기름이 창자 훑어낸다는 것 헛말이 아니로세 / 山茶濯䐈語非虛
성 안의 아전들 들창문 안에는 / 城中小吏房櫳內
규장각 학사들의 서찰이 다 꽂혔네 / 徧挿奎瀛學士書
도독 영문 둔 지가 이백 년이 되었는데 / 都督開營二百年
부두에는 왜놈 배를 다시 매지 못했었지 / 皐夷不復繫倭船
진린의 사당 속엔 봄풀이 우북한데 / 陳璘廟裏生春草
아낙들이 돌을 던져 아들 점지 해달란다네 / 漁女時投乞子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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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탐진의 농가[耽津農歌]
납일에 훈풍 불고 눈도 정히 개었는데 / 臘日風薰雪正晴
울 가에는 이러쯔쯔 쟁기 끄는 소리로세 / 籬邊札札曳犂聲
머슴놈 게으르다 주인영감 호통치며 / 主翁擲杖嗔傭懶
금년 들어 이제 겨우 두벌갈이 하느냐네 / 今歲纔翻第二畊
벼논에 물을 빼고 보리를 심었다가 / 稻田洩水須種麥
보리 베어 낸 즉시 모를 또 심는다네 / 刈麥卽時還挿秧
지력을 하루라도 놀리려고 아니하여 / 不肯一日休地力
푸른색 누른색이 철을 따라 아름답지 / 四時嬗變色靑黃
한강 부근 가래들은 그 길이가 두 발이어서 / 洌水之間丈二鍬
장정들이 힘 합해도 허리가 아프다던데 / 健夫齊力苦酸腰
남쪽의 짧은 삽은 아이들도 한 손으로 / 南童隻手持短鍤
두둑 치고 물을 대고 쉽게 쉽게 하네그려 / 容易治畦引灌遙
김을 매고 북을 줘도 호미를 쓴 일 없고 / 穮蔉從來不用鋤
논에 나는 잡초도 손으로 뽑아 없앤다네 / 手搴稂莠亦須除
어찌하면 맨다리에 방게 물어 흐르는 피를 / 那將赤脚蜞鍼血
은대에서 계속 올리는 상소문에다 그리게 할까 / 添繪銀臺遞奏書
은대(銀臺)는 정협(鄭俠)이 했던 일을 원용한 것임.
집집마다 모품팔이 아낙네들 정신없어 / 秧雇家家婦女狂
보리 베는 반상도 도우려 들지 않는다네 / 不曾刈麥助盤床
거주민들은 자기 남편을 일러 반상(盤床)이라고 하였음.
이가에게 약속 어기고 장가에게 가는 것은 / 輕違李約趨張召
돈모가 밥모보다 더 낫기 때문이라네 / 自是錢秧勝飯秧
순전히 돈으로 품삯을 치르는 것을 돈모[錢秧]라고 하고, 밥을 제공하고 품삯을 그만큼 감하는 것을 밥모[飯秧]라고 하였음.
부호들은 일반 꿰미 많은 돈도 안 아끼고 / 豪家不惜萬緡錢
썰물 때 돌을 쌓아 바다를 막는다 / 疊石防潮趁月弦
조개 줍던 바다에서 지금은 벼를 수확 / 舊拾蚌螺今穫稻
간석지가 논이 되어 옥토로 변했다네 / 由來瀉鹵是腴田
게으른 습성은 옥토에서 생기기에 / 懶習眞從沃壤然
상농가도 덩그렇게 해뜨도록 잠만 잔다 / 上農猶復日高眠
느릅나무 그늘에서 술주정을 부리다가 / 楡陰醉罵移時歇
소 한 마리 몰고 나와 마른밭을 간다네 / 徐取一牛耕旱田
경기(京畿) 지방에서는 마른밭을 갈 때면 모두 소 두 마리를 채워가지고
갊.
넓디넓은 연못에도 물고기를 안 기르고 / 陂澤漫漫不養魚
애들더러 연꽃도 심지를 말란다네 / 兒童愼莫種芙蕖
연밥 따면 관가에다 바쳐야 할 뿐 아니라 / 豈惟蓮子輸官裏
틈 있으면 관리들이 고기잡을까 싶어서야 / 兼怕官人暇日漁
대통에다 쇠꼬챙이 가장귀를 만들어서 / 竹管鐵箸夾成丫
이삭 하나 훑으려면 손이 한 번 꼭 간다네 / 一穗須經一手爬
볏단째로 떨어대는 북쪽지방 타작법을 / 北方打稻皆全𥡥
너희에게 자랑을 좀 했더라면 좋았을걸 / 豪快眞堪向汝誇
곳곳마다 모래밭 목화 심기 알맞은 땅 / 處處沙田吉貝宜
봄에 짠 옥천산이 제일 좋다고 하는 게지 / 玉川春織最稱奇
어찌하면 고무래로 살짝살짝 발라내어 / 那將碌碡輕輕展
바둑판에 바둑마냥 씨앗을 죽 골라낼까 / 落子調勻似置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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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탐진어가(耽津漁歌) 10장
계량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 / 桂浪春水足鰻鱺
그를 잡으로 활배가 푸른 물결 헤쳐간다 / 橕取弓船漾碧漪
배 위에다 그물을 장치한 배를 방언으로 활배[弓船]라고 하였음.
높새바람 불어오면 일제히 나갔다가 / 高鳥風高齊出港
새[鳥]는 을(乙)이고, 을은 동쪽을 말하므로 동북풍을 일러 높새바람[高鳥風]이라고 함.
마파람 세게 불면 그때가 올 때라네 / 馬兒風緊足歸時
말[馬]은 오(午)이므로 남풍을 일러 마파람[馬兒風]이라고 함.
세 물때가 지나가고 네 물때가 돌아오면 / 三汛纔廻四汛來
가령 첫째 날이 초승이면 셋째 날을 ‘한 물’, 다섯째 날은 ‘세 물’이라고 함.
까치파도 세게 일어 옛 어대가 파묻힌다 / 鵲漊波沒舊漁臺
루(漊)는 큰 파도를 말하는데, 파도가 하얗게 일어 마치 까치떼가 일어나는 것 같은 것을 일러 까치파도[鵲漊]라고 함.
어촌에 사람들은 복어만 좋다 하고 / 漁家只道江豚好
농어는 몽땅 털어 술과 바꿔 마신다네 / 盡放鱸魚博酒杯
복어를 먹다가 죽는 사람이 자주 있었음.
물에 비친 관솔불이 아침노을 흡사한데 / 松燈照水似朝霞
긴 통들이 차례로 모래뭍에 꽂혀 있네 / 鱗次筒兒植淺沙
물 속에 사람 그림자 비쳐들게 하지 말라 / 莫遣波心人影墮
적호상어 그를 보고 달려들까 두렵구나 / 怕他句引赤胡鯊
상어 큰 놈을 신적호(新赤胡)라 하는데 그는 사람 그림자만 보면 뛰어 올라와 삼켜버린다고 함.
추자도 장삿배가 고달도에 묵고 있는데 / 楸洲船到獺洲淹
추자(楸子)ㆍ고달(古獺)은 다 섬 이름임.
제주산 갓 차양을 한 배 가득 싣고 왔다네 / 滿載耽羅竹帽簷
돈도 많고 장사도 잘한다고 하지마는 / 縱道錢多能善賈
간곳마다 거센 파도 마음 놓을 때 없으리 / 鯨波無處得安恬
물머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계집애들 / 兒女脘脘簇水頭
그 어미가 수영을 가르치는 날이라네 / 阿孃今日試新泅
그 중에서 오리처럼 물 속 헤엄 치는 여자 / 就中那箇花鳧沒
남포 사는 신랑감이 혼수감을 보내왔다네 / 南浦新郞納綵紬
작은 배 가죽신발 부두를 메웠는데 / 瓜皮革履滿回汀
올해에는 선첩을 선혜청에서 받는다네 / 船帖今年受惠廳
균역법[均役] 시행 이후로는 아무리 작은 배라도 그 표첩(標帖)을 모두 선혜청(宣惠廳)에서 받게 되었음.
어부들 살기가 좋아졌다 말을 말라 / 莫道魚蠻生理好
종다래끼 하나도 그냥 둘 상공 아니란다 / 桑公不赦小笭箵
종선이 떠나면서 북을 둥둥 울리고는 / 䑸船初發鼓鼕鼕
자서(字書)에는 종(䑸)이란 글자가 없는데, 주교사(舟橋司)가 척씨(戚氏) 제도를 취하면서 종선이라는 명칭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조선(漕船)은 모두가 주교사에 소속된 배이기 때문에 종선이라고 한 것임.
지국총 지국총 들리느니 뱃노래라네 / 歌曲唯聞指掬蔥
수신사 아래 가서 모두가 엎드려서 / 齊到水神詞下伏
칠산바다 순풍을 맘속으로 비노라 / 黙祈吹順七山風
어촌에선 모두가 낙지국을 즐겨 먹고 / 漁家都喫絡蹄羹
붉은 새우 녹색 맛살은 치지를 않는다 / 不數紅鰕與綠蟶
홍합이 연밥같이 작은게 싫어서 / 澹菜憎如蓮子小
돛을 달고 동으로 울릉도를 간다네 / 治帆東向鬱陵行
낙제(絡締)란 장거(章擧 낙지)를 말한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나와 있음.
육방관속 서슬이 성주를 압도하고 / 掾閣嵯峨壓政軒
아전들이 날마다 어촌을 찾는다네 / 朱牌日日到漁村
선첩의 진짜 가짜 따질 것이 뭐라던가 / 休將帖子分眞贋
관이란게 원래부터 문 지키는 호랑인데 / 官裏由來虎守門
궁복포 앞에는 나무가 배에 가득 바로 완도(莞島)임. / 弓福浦前柴滿船
황장목 한 그루면 그 값이 천금이라네 / 黃腸一樹直千錢
임금 관을 만드는 데 쓰이는 소나무를 황장목이라고 함.
수영의 방자놈은 인정이 두둑하여 / 水營房子人情厚
수양버들 아래 가서 술에 취해 누워 있다 / 醉臥南塘垂柳邊
이 나라 풍속에 뇌물을 일러 인정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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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오징어 노래[烏鰂魚行]
오징어가 물가를 돌다가 / 烏鰂水邊行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보았는데 / 忽逢白鷺影
새하얗기 한 조각 눈결이요 / 皎然一片雪
눈에 빛나기 잔잔한 물과 같아 / 炯與水同靜
머리 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 擧頭謂白鷺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 子志吾不省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 / 旣欲得魚噉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하는가 / 云何淸節秉
내 배에는 언제나 한 주머니 먹물 있어 / 我腹常貯一囊墨
한 번만 뿜어내도 주위가 다 시커멓기에 / 一吐能令數丈黑
고기들 눈이 흐려 지척 분간을 못하고 / 魚目昏昏咫尺迷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남북을 분간 못하지 / 掉尾欲往忘南北
내가 입으로 삼켜대도 고기들은 깜박 몰라 / 我開口呑魚不覺
나는 늘 배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 / 我腹常飽魚常惑
그대는 깃이 너무 희고 털도 너무 유별나서 / 子羽太潔毛太奇
위 아래가 흰옷인데 누가 의심 안 하겠나 / 縞衣素裳誰不疑
간 곳마다 고운 얼굴 물에 먼저 비치기에 / 行處玉貌先照水
먼 데서 바라보고 고기 모두 피해가니 / 魚皆遠望謹避之
온종일 서 있은들 그대 무얼 기대하리 / 子終日立將何待
다리만 시근시근 배는 늘 고프지 / 子脛但酸腸常飢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어 입고 / 子見烏鬼乞其羽
본색일랑 감춰두고 적당하게 살아가소 / 和光合汙從便宜
그리하면 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 / 然後得魚如陵阜
암컷도 먹이고 새끼들도 먹일거네 / 啗子之雌與子兒
백로가 오징어에게 말하기를 / 白鷺謂烏鰂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마는 / 汝言亦有理
하늘이 나에게 결백함을 주었으며 / 天旣賦予以潔白
자신이 보기에도 더러운 곳 없는 난데 / 予亦自視無塵滓
어찌하여 그 작은 밥통 하나 채우자고 / 豈爲充玆一寸嗉
얼굴과 모양을 그렇게야 바꾸겠나 / 變易形貌乃如是
고기가 오면 먹고 달아나면 쫓지 않고 / 魚來則食去不追
꼿꼿이 서 있으며 천명대로 살 뿐이지 / 我惟直立天命俟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 烏鰂含墨噀且嗔
멍청하다 너야말로 굶어죽어 마땅하리 / 愚哉汝鷺當餓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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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장기 농가(長鬐農歌) 10장(章)
보릿고개 험한 고개 태산같이 험한 고개 / 麥嶺崎嶇似太行
단오명절 지나야만 가을이 시작되지 / 天中過後始登場
사월이면 민간에 식량이 달려 시속에서는 그때를 일러 보릿고개라고 함.
풋보리죽 한 사발을 그 누가 들고 가서 / 誰將一椀熬靑麨
주사의 대감도 좀 맛보라고 나눠줄까 / 分與籌司大監嘗
방언으로 재상(宰相)을 대감이라고 함.
못노래는 애절하고 논에 물은 넘실대는데 / 秧歌哀婉水如油
아가가 유별나게 수줍다고 야단이야 방언에, 새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름. / 嗔怪兒哥別樣羞
하얀 모시 새 적삼에 노란 모시 치마를 / 白苧新襦黃苧帔
장롱 속에 길이 간직 추석 오기만 기다린다네 / 籠中十襲待中秋
노란 모시베는 경주(慶州)에서 남.
부슬부슬 새벽비가 담배 심기 알맞기에 / 曉雨廉纖合種煙
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밑에다 심는다네 / 煙苗移揷小籬邊
올봄에는 영양에서 가꾸는 법 따로 배워 / 今春別學英陽法
금사처럼 만들어 팔아 그로 일년 지내야지 / 要販金絲度一年
영양현(英陽縣)에서 좋은 담배가 생산 됨.
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 / 新吐南瓜兩葉肥
밤 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 / 夜來抽蔓絡柴扉
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는 까닭은 / 平生不種西瓜子
아전놈들 트집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 / 剛怕官奴惹是非
작기가 주먹만한 갓 까놓은 병아리들 / 鷄子新生小似拳
여리고 노란 털이 깜찍하게 예쁘다네 / 嫩黃毛色絶堪憐
어린 딸 공밥 먹는다 말하는 자 누구더뇨 / 誰言弱女糜虛祿
꼼짝 않고 뜰에 앉아 성난 솔개 보는 것을 / 堅坐中庭看嚇鳶
어저귀 베어내고 삼밭을 매느라고 / 檾麻初剪牡麻鋤
늙은 할멈 쑥대머리 밤에야 빗질하고 / 公姥蓬頭夜始梳
일찍 자는 첨지를 발로 차 일으키며 / 蹴起僉知休早臥
풍로에 불 지피고 물레도 고치라네 / 風爐吹火改繅車
방언에, 자기 집 영감을 첨지(僉知)라고 부르는데, 아무 직첩(職牒)이 없어도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었음.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 / 萵葉團包麥飯呑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 合同椒醬與葱根
금년에는 넙치마저 구하기가 어려운데 / 今年比目猶難得
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친다네 / 盡作乾鱐入縣門
송아지가 외밭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 不敎黃犢入瓜田
서편 뜰 고무래 옆에 옮겨 매 두었는데 / 移繫西庭碌碡邊
새벽녘에 이정이 와 코를 뚫어 몰고 가며 / 里正曉來穿鼻去
동래 하납 배를 챙겨 짐 싣는다 하더라네 / 東萊下納始裝船
하납(下納)이란, 영남 세미(稅米) 절반을 일본으로 실어 보내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하납이라고 하였음.
마당을 절반 떼어 배추를 심었는데 / 菘葉新畦割半庭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났네 / 苦遭蟲蝕穴星星
어찌하면 훈련대 앞 가꾸는 법 배워다가 / 那將訓鍊臺前法
파초 같은 배추잎을 볼 수가 있을까 / 恰見芭蕉一樣靑
서울 배추도 훈련원(訓鍊院) 밭의 것이 가장 좋음.
시골사람 꽃이래야 기껏하면 장독 가에 / 野人花草醬罌邊
맨드라미 봉선화 그것이 고작이지 / 不過鷄冠與鳳仙
쓸모없는 바다석류 붉기가 불 같기에 / 無用海榴朱似火
늦은 봄날 옮겨다가 객창 앞에다 심었다네 / 晩春移在客窓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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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우연히 시냇가에 갔다가 해당화 한 그루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는 소동파(蘇東坡)가 정혜원(定惠院)에서 해당화를 읊었던 일이 생각나 드디어 그 운(韻)을 차하다
늪지대가 비습하고 몹쓸 나무만 많이 있어 / 澤障地卑多惡木
묵은 길을 거닐자면 외로움을 느끼는데 / 荒徑徘徊念幽獨
이리 이빨 용 발톱이 잡다한 그 한 쪽에 / 狼齒龍爪雜沓邊
한 그루 해당화 향기가 독특하네 / 一樹玫瑰香絶俗
장사치들 저자에 가 어깨 맞대고 야단인데 / 屠沽側肩爭市門
아리따운 옥인은 빈 골짝에 있네그려 / 玉人嬋媛在空谷
진주 파는 가게에는 고기눈깔 원래 많은 법 / 由來魚目滿珠肆
미인을 황금옥에 누가 들게 할 것인가 / 誰遣蛾眉入金屋
서울 사람 기르는 꽃들 도리가 고작인데 / 京城養花皆桃李
썩은 쥐로 배 채우고 고기 먹었다 자랑이지 / 腐鼠充膓誇嗜肉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나온 말임.
매괴를 잘못 알고 해당이라 부르다니 / 錯把玫瑰呼海棠
능석이 까닭없이 오족이 된 셈이지 / 陵舃無端爲烏足
우리 나라에서는 매괴를 해당화라 부름. 오족(烏足)은 《장자(莊子)》에 있는 말임.
화사의 글자 하나 보지도 않고서 / 花史曾無一字窺
더러운 마음으로 깨끗함을 더럽혀서야 / 滓穢生心汚淸淑
예로부터 성현들도 말 많은 것 미워한 것은 / 自古賢聖憎多口
괴롭게도 엉뚱한 헐뜯음을 당했기 때문이야 / 苦遭讒人入左腹
취약한 게 꽃술인데 너만은 꼿꼿하여 / 花心脆弱汝獨貞
굳은 절개 맑은 기상 대나무같이 늠름하고 / 脩節淸標凜如竹
붉은 수염 푸른 가시가 네 몸을 보호하니 / 紅芒綠刺謹防身
나비 벌이 제 감히 눈독을 들일쏜가 / 紫蝶黃蜂敢注目
언제나 두려운 건 놔주지 않을 도끼이지 / 常恐斤斧不相赦
험난한 세상길이 민산 촉도 같으니까 / 世路崎險如岷蜀
야 장하다 고운 바탕에 특이한 향기 갖고 / 吁嗟麗質秉奇芬
잡초 속에서 끝까지 딱 버티고 서있는 너 / 叢矢終然集一鵠
산을 메운 나무꾼들 너를 어찌 알까보냐 / 樵蘇滿山豈識汝
구부러지고 냄새나는 가죽나무나 좋아하지 / 去羨臭樗枝拳曲
꽃 앞에 홀로 서서 꽃과 얘기 나누다보니 / 獨立花前與花語
쓸쓸한 둘의 뜻이 서로 느껴지는 것만 같아 / 兩意凄然相感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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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삼성사(三聲詞)
걷잡기 어려운 심정 언제 그렇던가 / 何處難爲情
초롱초롱한 밤 다듬이소리지 / 淸夜搗衣聲
처음에는 조용조용 외방망이 울리다가 / 寂寂初聞隻杵動
갑작스레 또드락뚝딱 두방망이가 울어대지 / 跳跳忽作雙杵鳴
외방망이가 은호리병에서 시간 따라 듣는 댕강 방울이라면 / 隻杵銀壺殘漏數點滴
두방망이는 연못에 줄기차게 쏟아지는 천 줄기 소낙비지 / 雙杵荷塘急雨千珠傾
문 열고 하늘 보면 둥근달은 옥과 같고 / 開門看天月如玉
대그림자 너울대고 지붕에는 서리 가득 / 竹影褵褷霜滿屋
걷잡기 어려운 심정 언제 그렇던가 / 何處難爲情
봄 낮에 솜을 빠는 소리일레 / 春晝洴澼聲
봄바람이 비를 불어 호수언덕 지나가고 / 春風吹雨過湖岸
우물에 물 넘치고 성에는 구름 걷힐 때 / 碧甃水溢城雲晴
세차게 나는 방망이 소리 느릿느릿 나는 소리 / 急杵聲多緩杵少
마음속 굽이굽이 정성이 담겨 있어 / 柔腸曲曲懷精誠
낭군 옷만 눈같이 서리같이 새하얗게 바래지기 바라고 / 但願郞衣潔白如霜雪
첩의 손 첩의 발은 트고 갈라지고 싯벌겋게 얼어도 좋다네 / 妾手妾足胼胝凍赤猶可悅
견디기 어려운 심정 또 언제 그렇던가 / 何處難爲情
이른아침 수레 잡아끌던 소리지 / 晴朝攬車聲
처마 밑 따스한 햇살에 고양이는 등 쪼이고 / 茅檐日暖猫炙背
목화랑 솜이랑은 앞기둥에 쌓여 있네 / 吉貝綿子堆前楹
앵무새 제비새끼 끊임없이 조잘대고 / 鸚言燕語連不絶
온가족이 안락하게 함께 살기 바라는데 / 室家安樂謀共生
우리 집 동창은 햇볕을 바로 받고 / 吾家東牕正紅旭
어린 딸은 손으로 나사축을 놀리련만 / 穉女手調螺螄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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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말에 뿔이 나다[馬生角]
달수로는 사월이요 해로는 갑자년 / 建巳之月歲甲子
그때 내가 강진현 동리에 있었는데 / 我在康津縣東里
대낮에 큰 거리가 왁자지껄하더니만 / 忽聞淸晝衚衕咽
세 겹으로 둘러싸고 장판을 이뤘었다 / 束聚三帀人成市
말 이마 한 가운데 뿔이 돋아나서 / 有馬生角角當額
칠양마을 사람들이 그를 몰고 예 왔다네 / 七羊村民牽到此
처음에는 녹용처럼 부드럽고 연한 것이 / 初如鹿茸脆而軟
고치만큼 밤톨만큼 툭 튀어나왔기에 / 漸抽繭栗嶄然起
잘라내고 쑥으로 떠도 금방 또 자라나서 / 鋸截艾燋旋復生
뾰족한 그 길이가 가운뎃손가락 정도였다 / 其長觺觺齊中指
이상하다 조물주가 각 물건을 만들면서 / 吁嗟物形天各賦
뿔을 그에게 주려면 왜 이까지 주었을까 / 將予之角豈予齒
옛날에 기린이라는 얼룩말이 있었다는데 / 古有駮馬名騏麟
그 말이 혹 기린처럼 뿔이 하나 있었던가 / 無乃一角麒麟似
불연이면 이야말로 상서롭지 못한 물건 / 不然此物非禎祥
진인이 했던 말이야 그게 무슨 사실일까 / 秦人設言非眞爾
암염소 뿔나고 수컷 새끼 낳았다고 세상에 들은 일 없고 / 童羖乳羝世莫聞
개와 닭이 불행 예고한 전설은 많지마는 / 犬禍鷄妖多稗史
보장 풍상이 그것조차 대비하질 않았는데 / 保章馮相猶失職
말에 뿔난 이까짓 일을 누가 기록해 둘 것인가 / 區區馬角之生誰復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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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일곱 그리움[七懷]
지금도 생각나네 이교 주점에서 / 尙憶圯橋店
문에 들어서자 눈물 못 가누던 일이 / 臨門涕泗橫
전원은 후일 생각할 일이고 / 田園他日計
무덤은 늘그막에나 찾아야지 / 丘墓晩年情
보내신 서자 보니 안력 짐작하겠고 / 眼力徵來字
머리 흰 것 옛날 생각 해본답니다 / 眉毫憶舊莖
띳집이 너무나도 낮고 작아 / 茅齋絶低小
바듯이 감와라고 이름했군요 / 堪臥强爲名
중부(仲父)를 생각하며, 중부께서 새로 마련한 거소에다 감와실(堪臥室)이라고 재호를 써 걸었음.
새로 옮겨가신 가곡은 / 稼谷新移處
어천에 비하여 어떻던가요 / 漁川較孰贏
떠돌이 생활 나라를 떠난 듯하고 / 流離如去國
늙으면 의지하고픈 게 형이지요 / 衰晩欲依兄
땅 넓으면 농사 많이 짓고 / 土廣饒農事
산이 깊으면 물정에는 어둡지요 / 山深遠物情
처량한 몇 줄의 서찰 / 凄涼數行札
휘파람 한 번에 눈물이 갓끈 적시네 / 長嘯一沾纓
계부(季父)를 생각하며.
쓸쓸한 강산의 집이요 / 寥落江山屋
외롭게 홀로 늙는 몸이구려 / 煢孤獨老身
인간에 아우는 있다지만 / 人間猶有弟
한마을에 가까운 사람 없어 / 村裏更無親
제사에도 많은 의식 소략할 텐데 / 祭祀儀文略
지대의 기색은 새로워라 / 池臺氣色新
다만 오래오래 수를 누려 / 但敎年壽永
이생에 인연을 다시 맺읍시다 / 重結此生因
백씨(伯氏)를 생각하며.
아쉬워라 경제에 능한 솜씨가 / 嗟哉經濟手
늙도록 고기잡이 신세라니 / 投老作漁郞
떼를 타라던 영감 잘못 배워 / 枉學乘桴叟
늘 경쇠 치던 양을 그렸지요 / 長懷擊磬襄
간곳마다 나타나는 것 고래요 / 鯨鯢隨地見
도깨비들 사람 쫓느라 바쁘다네 / 魑魅逐人忙
지금도 생각나는건 선왕이 계시던 날 / 尙憶先王日
재상감이라고 인정하시던 일이라오 / 丁寧許廟堂
중씨(仲氏)를 생각하며.
선인께서 늦아들 보시고서 / 先人有餘子
늙도록 늘 그를 사랑했지 / 垂暮每憐渠
충주 가는 길을 벌써 알고서 / 已識忠州路
늙은 어머니 모시고 살았었지 / 能將老母居
그때 보면 그림을 좋아했는데 / 舊看多畫癖
지금 의서를 읽으라고 하고싶다 / 今勸讀醫書
외로운 처지의 두 누이동생은 / 零丁有二妹
지금 죽었느냐 살아 있느냐 / 存沒近何如
아우 약횡(若鐄)을 생각하며.
두 자식 다 조정에 있을 감들인데 / 二子金閨器
풀이 꺾여 오두막지기가 되었구나 / 摧殘守敝廬
두 눈에는 백 년 두고 눈물이요 / 百年雙淚眼
석 달 만에 오가는 서신 한 통 / 三月一封書
부지런히 보리농사 수확하고 / 勤力謀收麥
처량하지만 채소 심는 법 배우라 / 凄涼學種蔬
복희 문왕의 옛 심법을 / 羲文舊心法
너희 아니면 누가 내 뒤 이을 것이냐 / 微爾孰宗余
두 아들을 생각하며.
앞길은 늘 막히는 운세로되 / 身値屯邅運
가문에는 준수한 인물이 나 / 家生俊邁郞
독서하는 소리 항상 또랑또랑하고 / 讀書常了了
부 짓는 솜씨도 여지가 창창해 / 作賦已蒼蒼
뜻은 너대로 웅장하게 키우고 / 志每依渠壯
체구는 날 닮아 건장하려므나 / 軀應似我長
애들 추키는 것 벽이 있어서가 아니라 / 譽兒非有癖
늘그막 당해 잊기가 어려워서라네 / 垂老奈難忘
조카를 생각하며. 소자첨(蘇子瞻)이 여러 자질(子姪)들에게 부친 시에, “애들 추키는 것 두 영감들 벽이기는 하지마는, 삼대 이전부터 덕을 심어온 터란다[譽兒雖是兩翁癖 積德已自三世種]"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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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제4권 / 시(詩)
얄미운 모기[憎蚊]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 猛虎咆籬根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 我能齁齁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 脩蛇掛屋角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且臥看蜿蜒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一蚊譻然聲到耳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단다 / 氣怯膽落腸內煎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揷觜吮血斯足矣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 吹毒次骨又胡然
베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 布衾密包但露頂
금방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고 / 須臾瘣癗萬顆如佛巓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 頰雖自批亦虛發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 髀將急拊先已遷
싸워봐야 소용 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 力戰無功不成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년과 맞먹는다네 / 漫漫夏夜長如年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 汝質至眇族至賤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 何爲逢人輒流涎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 / 夜行眞學盜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말가 / 血食豈由賢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할 때는 / 憶曾校書大酉舍
집 앞에 창송과 백학이 줄서 있고 / 蒼松白鶴羅堂前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 六月飛蠅凍不起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소리 들었는데 / 偃息綠簟聞寒蟬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 如今土床薦藁鞂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 蚊由我召非汝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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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다3部.끝.

첫댓글
올려주신 長篇 漢詩 많은 자료들 고맙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가 되십시오.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기만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