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2
- 재방송
정채원
이 방엔 거울이 없다 그저 울 거는 많다 옆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물구나무 선 것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들이 널려 있다 훌쩍거리는 소리에 돌아다보니 상자가 하나 우그러지는 중이다 구겨진 종이들로 가득하다 구겨진 것들을 보면 펴보고 싶어진다 꿈이냐 현실이냐 선택하라는 글귀, 언제나 선택은 어렵다 아, 저기 유리창에라도 비춰보자 오른쪽으로 가란다 오른쪽 탁자 위엔 양면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한쪽은 실물 크기로 다른 한쪽은 확대경으로 된 거울이다 확대도 축소도 원치 않아 토끼귀는 토끼귀로 쥐똥은 쥐똥으로 보여줘 내가 내 눈동자를 볼 순 없겠지만 너도 네 정수리를 볼 순 없겠지만 네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여줘 뒷모습은 뒷모습으로 담게 해줘 하긴 때로는 왜곡이 위안이 되기도 하지 둥근 거울로 찍어낸 너는 만두피처럼 동글동글하지만 늘 티격태격하지 왼쪽 문을 열면 대형 사각 전신 거울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모난 전신이 실시간으로 활개치고 있어 네모냐 동그라미냐 문을 닫았다 열었다 접었다 폈다 그 방엔 거울이 널려 있다 찡그린 얼굴, 하품하는 얼굴, 속눈썹 떨어뜨리며 우는 얼굴, 고개를 숙여도 뒤로 돌아도 생방으로 같은 얼굴을 두 번 보여주는 거울은 없다
사탕 마술
정채원
사탕 한 봉지를 뜯어놓고
갖고 싶은 걸 골라보라 하네
하얗고
동그랗고
먼지투성이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그러나 사탕은 너무 단순해
달콤한 피 냄새에 박동은 빨라지고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사탕목걸이를 걸어주고
나를 공중 높이 던져 올렸다
진창으로 패대기치려고?
지상에선 이유 없는 눈발 날리다
그대 떠난 발자국에
진눈개비 내려앉는 초겨울저녁
사탕은 얼 줄 모른다
녹을 뿐이다
깨물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