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당장을 위해서 영원을 버리는 어리석음 (찬 435)
1. 25장은 아브라함의 죽음을 기록한다.
약속을 받은 사람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 약속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해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준다(11).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 후에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일곱 아들을 낳았지만, 생전에 이 아들들에게 소유를 주어서 모두 동방으로 내보냈다(6). 약속의 아들 이삭을 구별하고 그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본문은 또한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 이스마엘의 죽음도 기록한다(17). 비록 아브라함의 죽음의 기사가 여기 나오지만, 이후의 이야기들이 연대기적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 아브라함은 야곱과 에서가 15세가 될 때까지는 살았기 때문이다.
2. 본문은 한 세대를 지나 이삭의 이야기로 진입하는 것을 강조한다(19).
결혼 후 자식을얻지 못하던 이삭은 하나님께 간구했고 그 응답으로 리브가가 잉태하게 된다(21). 약속의 수혜자를 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임을 다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리브가는 뱃속의 쌍둥이 아이들이 서로 싸워 고통을 당하자, 남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기도했다(22). 여기 ‘싸우는지라’고 한 단어는 ‘깨부수다, 짓누르다’는 뜻으로 이 싸움이 매우 강한 싸움이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기도에 대해서 예언을 주셨는데, 이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것이었다(23). 결국 이 예언을 둘러싼 갈등을 증폭시키는 과정이 이후의 모든 이야기들을 형성한다. 두 아들이 태어나자 첫째는 붉어서 에서라고 이름했고 둘째는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야곱이라고 했다(25~26). 야곱이란 이름은 나중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다’ 혹은 ‘속여서 뺏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부정적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3. 이야기는 또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들의 장성한 시절을 묘사한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으로 들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온순한) 사람으로 장막에 거했다(25:27). 여기에는 분명히 전달하려는 뉘앙스가 있는데, 에서가 이 땅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야곱은 ‘조용한’ 자였는데, 이는 본래 ‘완전한, 흠이 없는, 결점이 없는’이란 뜻이다(욥 1:8). ‘장막에 거했다’는 것은 고대 수메르 왕들의 묘사에 많이 등장하는 바, 존귀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서는 세속적인 성격이 점점 드러나는 가운데 사냥이 주는 위험과 자유를 만끽하고 살았지만, 야곱은 꾸준하고 안정된 관리형의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 이야기에는 세속적 본능이란 주제가 등장한다. 이삭이 에서를 편애한 것은 그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세속적인 감각과 자기 만족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감각의 절정은 에서의 삶에서 드러났다. 야곱이 죽을 ‘쑤었다’(끓이다)고 할 때 이 동사는 ‘주제넘는 행동’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 동사는 야곱이 자기의 먹이감을 노리고 주제넘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고 말한다(30). ‘먹게 하라’는 말은 한 입에 확 들이킨다는 뉘앙스를 전하는데 이것은 에서의 기질에 맞는 말이다. ‘붉은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반복적으로 쓰이는 것도 에서의 충동적 성향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다. 야곱은 죽 한 그릇을 장자의 명분과 바꿀 것을 요구하고 맹세까지 하게 함으로써 장자의 명분을 팥죽으로 샀다. 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다’(34).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는 성경의 판단이 여기 있다.
4. 에서는 현재를 위해 살며 그로 인해 치를 대가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속적인 사람의 모습을 반영한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넘긴다는 맹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7장에서는 마치 그런 맹세를 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구한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시했다는 선언이 본문의 핵심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경멸한 것이다. 육체적인 욕구를 위해서 영적인 공급을 희생하는 것,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한 것을 포기하는 태도를 지적한다. 이것은 우선 순위와 가치관의 문제다. 뒤죽박죽이 된 우선 순위의 삶을 사는 것은 비극이다.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반면 야곱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동적인 형을 대상으로 한 계산된 조작을 행했다. 비록 본문이 야곱의 잘잘못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에서의 잘못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만, 영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비열한 수단으로 그것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문은 가르쳐준다.
5. “하나님 아버지, 당장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유익을 위해서 영원하고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그 소망을 가지고 비열한 방법이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방법으로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