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한여름
오전 7시, 공기는 약간 축축하고 햇볕도 아직 뜨겁지 않다. 엄마는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 청바지, 티셔츠로 갈아입고 테니스화를 신은 뒤 대용량 물통과 양동이를 차에 싣고 숲속으로 탐험을 나선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당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덤불을 헤치고 나가던 중 옷소매가 날카로운 것에 들러붙는다.
붙은 것을 떼어내려다 손바닥 모양의 잎사귀 바로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자그마한 붉은색 열매를 발견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빨간색과 보라색이 얽히고설킨데 보석이 숨겨져 있다. 45도 각도로 가시가 돋친 억세 줄기에서 작은 열매가 자라고 있다. 꽤 높이 자라서 잘 익은 열매를 따려면 엄마는 덤불을 쳐내야한다,
딸 수 있을 만큼 잘 익은 열매는 아직 조금 뿐이다. 나머지 열매는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나중에 엄마는 팔과 얼굴이 온통 긁히고 손가락은 과즙으로 물들어 한 줌의 불랙베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흥분이 가득한 눈빛에 숨 까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오늘 제대로 하나 건진 것 같아."
엄마는 오직 블랙베리만 보였다. 블랙베리는 수확하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그만큼 엄마의 도전정신을 부추기는 듯했다. 블랙베리를 발견한 이튿날, 엄마는 큼지막한 통을 챙기고 가시에 찔리지 않게 팔을 보호할 긴소매 옷을 입고, 숲속에 있는 바로 그곳으로 돌아갔다. 수확물에 온통 정신이 팔린 엄마는 블랙베리 19리터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엔 26리터, 그 이튿날엔 38리터, 그렇게 53리터, 73리터로 매일 같이 전날 기록을 깨뜨렸다. 문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우리 부엌은 야생블랙베리와 갖은 블랙베리 가공품으로 가득 찼고, 엄마는 친구, 친척, 심지어 원수 같은 사람에게까지 그걸 떠주었다.
엄마으 블랙베리 수확은 채집의 스릴감과 주변 사람 모두를 먹일 수 있다는 만족감에서 시작되었다.
한번 시작하자 엄마는 멈출 수가 없었다. 긁힌 상처에 블랙베리 과즙이 스며들어 엄마 손에는 수배 갈래의 가는 보라색 선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과 아는 사람끼리 나눠 먹기에는 블랙베리가 너무 많아졌다. 어떤 때는 그걸 가공하는 작업을 하느라 부엌이 꽉 차서, 부엌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부엌에 들어가고 싶어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바닥에는 공장처럼 조립 라인이 설치되어, 한쪽에는 방금 딴 블랙베리가 담긴 커다란 양철통이 있고, 가운데 물이 담긴 큰 데야가, 다른 한쪽에는 깨끗이 씻은 블랙베리가 담긴 깨끗한 통이 있었다. 블랙베리를 씻은 다음 엄마는 키친타월을 깐 시트 팬에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다가 그걸 지퍼백에 넣어 냉장고나 냉동실에 보관하곤 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니 냉장고에 블랙베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부엌은 말 그대로 블랙베리로 넘쳐났다. 바로 이때 번뜩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엄마는 부엌 바닥에 쪼그리로 앉아,깨끗하게 씻은 블랙베리를 5리터짜리 지펴백에 담고, 이제 판매를 시작할 따라고 결정 내렸다. 미국 여성들의 생활 방식을 따라 익히면서 이들이 베이킹과 병조림 만들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된 엄마는 업소용 냉동고 두 대를 구매했고 지역 신문에 광고를 냈다. 작은 자연산 블렉베리, 생과 및 냉동판매 5리터에 13달러.
면 주 만에 우리 집은 지역에서 블랙베리 판매로 가장 붐비는 곳이 되었고,우리 가족은 여름을 "블랙베리 시즌"이라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매일같이 새로 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작은 블랙베리 찾으세요? 좋아요, 제대로 찾아오셨어요." 엄마는 보라빛으로 물든 손으로 손님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이건 엄마에게 상승의 시간이었다. 엄마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갖게 됐고,이건 오직 엄마만 거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르크스 주의 용어를 빌리자면, 엄마에겐 상품과 생산수단이 둘 다 있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엄마는 당신을 이등 시민으로 대우했던 공동체를 먹여 살릴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이로써 그간 겪은 설움도 넘어가주고 너그럽게 행동 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몰라도 이제 셔헤일리스에서 엄마을 알아조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이웃 동네에서도 우리 집에 야생 블랙베리나 블랙베리 파이, 잼 같은 가공품을 사러 오렴서 엄마는 더 유명세를 떨쳤다.
엄마에 대한 소문이 펴졌고, 이제 엄마는 "중국 여자"가 아니라 "블랙베리 여사"로 알려졌다. 동네 사람들은 내게 "그래, 네가 블랙베리 여사 딸이지?"라고 인사를 건냈다.
엄마에대한 평판이 세로워지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엄마는 더 열심히 일했다. 블랙베리 넝쿨 하나를 다 따고 나면 또 다른 넝쿨을 찾아 나서야 했다. 숲에서 별다른 수확을 건지지 못한 날에는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와 분하다는 투로 말했다. "오늘은 5리터도 다 못 채웠지 뭐야."
그렇게 실망스러운 날을 보내고 나면 엄마는 열매가 잔뜩 열린 넝쿨을 찾아 숲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숲이 깊어질수록 채집은 더 위험해졌다. 적을 마주치기도 했다. 엄마가 찾는 열매를 노리는 곰도 있었고 사냥터를 침범해오는 외국인을 좋은 눈으로 보지 않는 총을 든 백인 남성들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누눅들지 않았다. 사냥꾼들과도 맞먹을 수 있게 38구경 권총을 구입했다. 그 무엇도 엄마를 막을 수 없었다.
그 여름은 엄마를 바꾸어 놓았다. 엄마는 더 이상 관심을 끌거나 이익을 얻기 위해 여성성에 기대지 않았다. 숲에서 일하게 되면서 엄마는 주름 장식이 있는 원피스와 하이힐을 벗고, 벌목꾼 같은 옷을 입었다. 나는 한때 이상적인 여성미를 상징했던 엄마의 남성적인 힘도 마찬가지로 체화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엄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성적인 부모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체화[體化]되다.~ 직접 경험을 통해 자기 것이되다.
본문에는 해석이 없고 체화되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한 것임]
아버지는 그로부터 한 해 전에 심장마비로 겪은 쇠약한 노인처럼 보였다. 나는 침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정신을 잃고 있던 아버지를 발견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격렬하게 흔들며 내게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쳤다. 내가 911과 통화하는 동안, 곧 과부가 될지도 모르는 엄마는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분노에 찬 외침이 들렸던 것 같다, 돈! 돈! 돈! 나 두고 가면 안돼, 이 쌍놈의 새끼야! 아버지가 이 비참한 시골 마을에 엄마를 버리고 떠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엄마는 이곳에서 당신을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총을 든 블랙베리 여사로 다시 태어났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