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 나의 첫 클라이언트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후, 나는 바로 사례관리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사례관리를 요청한 가족들 즉 ‘클라이언트’의 수가 충분치 않아서 이기도 했지만,
사모님, 즉 센터장의 배려로, 나는 사모님의 사례관리 가족인 다대포의 ‘연우,윤우’을 함께 관리 하게 되었다. 연우, 윤우는 연년생으로 입양되었다. 입양후 발달장애가 발견되어 그에 필요한 언어치료, 상담치료를 지원해 주고 있는 가족이다. 가족의 요청에 의해 방문할 때, 나는 사모님과 동행한다. 가까운 발치에서 ‘실습생’이 되어 부모님과의 상담시, 아이들과의 면담시,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올수 있도록 조용히 보조했다. 방문 상담을 통하여 모든 정보 수집과 클라이언트의 필요와 현황를 파악하면 그다음 단계로, 아이들의 담당 학원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고객의 진도와 현황을 파악, 상의하여 앞으로의 단계를 설정한다. 그리고 부모님의 요구와 학원 담당 선생님들의 의견을 잘 결합하여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최선이라 판단되는 결정에 대하여 상의후, 필요한 예산을 책정하고, 예산 결재가 나면 집행된다.
도움이 필요한 클라이언트에게 다가가 최고의 목표인 ‘신뢰’를 얻어내어 그들의 삶안으로, 관계속으로 들어가는 이 일의 진중함과 엄중함의 무게를 느꼈다.
일년전 이맘때쯤, 전화벨이 울려 화면을 보니 카나 였다.
“숙, 진과 우리가족이 도움이 필요한데, 꼭 네가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라는 간단하지만,깊은 근심이 서려있는 통화였다. 나는 서슴치 않고 “물론이지, 난 너희들의 친구인데, 그리고 나에게 전화해줘서 고마워” 라고 답변하고 그 사연을 듣기 위해 다음날 스쿨버스정류장에서 만났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잠시 놀이터에서 놀게 하고 우리는 근처 햇볕이 따스한 벤치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다.
작년, 카나는 자녀인 진과 준나의 ‘국제학교’의 입학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고 서류들을 준비해야 했다. 그중 한 가지가 병원에 가서 ‘건강체크’를 하는 것이었다.
지정 병원에서 아이들의 ‘건강체크’를 위한 여러 가지 검사가 끝내고 결과지를 기다리고 있는 중 병원으로부터 ‘면담’을 통보받았다. 하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남편에게 전화로 상황설명을 하고, 그날 ‘통역’으로 도와줄수 있는 회사직원의 동행도 부탁했다.
드디어, 약속날, 회사직원의 통역을 통해 들은 결과는 ‘진’의 심장의 크기가 다른 아이들보다 좀 커 보인다며, 부산대학병원의 아동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엄마 카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으로써 어린자녀를 데리고 거치고 통과해야하는 많은 관문앞에서 많은 고민과 궁리를 했을 것이다.
카나는, 나에게 이 여정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의 회사에 도움을 부탁할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이 좋아하고 편안해 하는 사람, 자신의 가족을 알고 좋은 관계인 사람이 ‘나’ 라며 일본인 특유의 정중함으로 부탁했다.
나는 카나의 손을 잡고 기꺼이 동행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나는 비공식적이지만 나의 첫 고객 ‘진’의 전담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핸드폰 메모지에 진의 의뢰내용을 구구절절히 메모했다.
우선 나는 부산대학병원의 아동병원에 예약하기 위해 ‘진’의 여권과 거류증 사진, 지정병원의 ‘진단서, 또는 ’의뢰서‘의 내용도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대화중, 카나는 또 다른 ‘진’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진’은 ‘한개의 신장’을 가지고 태어나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다면서 ‘비뇨기과’의 예약도 같이 부탁했다.
다음날, 부산대학 아동병원의, 심장과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외래일정을 잡아주면서 진료시간1시간 전에 와서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한다고 안내해주었다.
비뇨기과에는 외래일정을 심장과와 같은 외래날에,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을 초음파와 비슷한 시간대로 부탁해 모든 일정을 나의 고객 ’진‘을 고려하고 배려하여 얻어냈다.
카나에게 병원에서 온 예약확인 문자와 걱정말라는 위로의 문자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까지 오랫동안을 기다려야만 했다.
드디어 외래 날, 아침 일찍 제시가 집앞으로 나를 픽업 왔다. 엄마 카나가 준비해온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소풍가는 기분을 만들며 1시간 정도의 거리를 갔다. 병원 도착 후, 나는 가족을 데리고 ‘접수대’로 가서 예약문자를 보이고 계산을 한 뒤 영수증들을 들고 지하의 검사실로 갔다.
인생 처음으로 가보는 ‘아동병원’이었다. 모든 벽면에 동물과 꽃그림, 만화의 캐릭터들로 가득하게 그려져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불안한 기색이 여력한 진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동물과 만화캐릭터를 손으로 가르키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심하며 서로 아무말 없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잠시후, 진 인생의 첫 채혈을 위해 우리 모두는 일심의 되어 진의 시선을 벽의 그림들로 유인하기 위해 나와 카나가 수다를 떨었다. 바늘을 본 진은 겁먹은 얼굴로 몇 번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지만, 간호사님과 우리의 협력으로 ’앗‘하는 짧은 외마디 비명이 다였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용감한 보이’라고 엄지 척하며 열렬히 칭찬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잠시 부모들에게 커피타임을 허락하고 나는 진의 손을 잡고 병원 이곳저곳을 구경다녔다. 아동병원이라 가는 곳마다 아이들을 배려한 소품들 장난감들로 불안감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릴수 있을 것 같았다. 구경길에, 가끔씩 어린이 암병동의 아이들을 만났다. 웃으면서 눈인사로 응원하고 격려했다.
검사결과가 나와서, 심장과 선생님을 가족과 만났다. 의사선생님은 심장병이 아니라며 ‘호흡기과’로 우리를 안내해주었고 호흡기과 선생님은 ‘가슴갑상선샘비대증’이라는 진단을 하셨다. 성장기의 아동들에게 흔히 있을수 있으나 그 크기가 또래 기준보다 커니 정기적으로 검진하면서 관찰하자고 하셨다.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은 정상아이와 다름없으니 가격한 운동만 삼가시키라고 했다.
모든 진료후, 나의 고객의 요구대로 미국보험사에 제출할 영어로 된 서류들과 영수증을 챙겨
병원을 나오는 우리모두는 행복하고 감사했다.
나는 더 감사했다. ‘이방인 남편의 병고’로 5여년의 시간동안 카페 드나들 듯이 병원을 다녔다. 그 고통속에서 어쩔수 없이 체득한 육체적, 정신적인 경험이 나의 이웃을 위해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되어 나의 고통이 ‘선‘으로 전환되어지는 현장에 있게 하심에!
‘이방인 남편’과 이 땅에서의 32년 결혼생활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어려움과 needs를 충분히 알고 이해하기에 진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수 있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의 진리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이렇게 나는 첫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사회복지사’로 나의 고객을 두 번째 만날 날은 5월12일이다.
첫댓글 사회복지에 진심인 글이 생활에 잘 묻어 나는 것 같아 굉장히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사모님 발치에서 실습생의 자세로 연우와 윤우를 관리하다가 일본에서 겪었던 경험이 사회복지사로서의 두꺼운 밑바탕이 되신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입양아를 보조하는 일은 역시 신체 및 정신적으로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꺼이 봉사의 길을 거니시메 육체와 정신이 업그레이드 되었다고도 생각해요. 고통이 선으로 순환되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복지사의 신분으로 일하는 것이 아닌 숙님만의 길이 협력하고 싶게 하는 길로 변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문장 구조와 끝맺음이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느낍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