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반전시위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2000년대 들어 전세계에서 시위문화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한국은 시위의 메카라고 불렸습니다. 화염병은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1970년대 대학가는 마치 거대한 투쟁장이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과 젊은 경찰 그리고 군인까지 젊은이들이 서로 편을 나눠 한쪽은 시위하고 한쪽은 막는 그런 광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경찰과 군인이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군사 독재 정권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니 했겠죠. 박정희 독재가 총 한방으로 끝나고 이제는 과격한 시위가 없어지려나 했지만 서울의 봄을 지나 전두환 일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난 뒤 시위는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특히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이후 전국에 걸쳐 시위는 더욱 빈번해지고 치열해졌습니다. 백골단이라는 특수경찰이 시위을 진압하면서 부상자도 그리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습니다. 대학가주변에는 그 매케하고 눈을 뜰 수 없는 최루탄과 페퍼포그 냄새가 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대학가에서 시위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대학은 너무도 조용한 그런 장소로 변했습니다. 언제 대학 정문앞에 피를 흘리는 대학생과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앞세운 경찰이 서 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대학가에는 이제 그 흔한 대자보 보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아마 미국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 대학가는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8일 컬럼비아대학에서 학생 100여 명이 경찰에 체포된 지 나흘만에 예일대와 뉴욕대에서도 수십 명이 무더기로 연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와의 전쟁이후 미국 대학가에 퍼지고 있는 반 시온니즘과 친 팔레스타인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중동지역 출신들도 물론 있겠지만 미국 백인들 그 가운데서 대학생들이 가진 정서가 분출하는 것이어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경찰이 진압하면서 점점 과격해지고 타 대학으로도 번져 나가는 양상입니다. MIT공대와 터프츠대, 에머슨대 등 보스턴 지역뿐 아니라 미시간대와 캘리포니아대 그리고 버클리대 등 미국 전역의 대학으로 점거 시위가 번지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그동안 미국인들 내부에 존재한 친 유대주의에 반하는 반 유대주의와 그런 표현을 둘러싼 논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는 단순하게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 아닌 이스라엘의 집권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집단 학살 혐의를 받고 있는 네타냐후정권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주의로 판단되는 것에는 시위자들도 경계하는 상황입니다. 학생들은 원래 반 유대주의가 시위 목표가 아니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 극우 민족주의 운동인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극우 세력인 시온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망치게 할 뿐 아니라 중동지역의 평화를 파괴시키는 주된 이유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인들이 내는 세금이 왜 그런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극우주의세력 즉 시온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 바로 지금 이스라엘 총리인 네타냐후인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60년전인 1960년대 미국을 강타했던 그 반전시위의 데자뷰라는 말도 나옵니다. 1960년대 미국의 대규모 반전시위는 전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세계 2차대전 종식과 곧 이어 발생한 미소대립 그리고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왜 싸워야 하는 지도 모르는 채 전쟁터에서 사라져간 그 희생자들의 친구와 선배 후배들은 깨닳게 됩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왜 타국의 전쟁에 가서 죽어야만 하는지를 말이죠. 그런 그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다양합니다.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는 흑백인종차별을 극복하자는 운동도 힘차게 벌어졌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려던 존 F 케네대 대통령이 암살을 당합니다. 베트남 전쟁은 더욱 악화됩니다. 미소 냉전이 격해지는 가운데 미국과 소련 사이에 우주 개발 경쟁이 불을 뿜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사안들이 모아져서 당시 1960년대 미국의 반전시위는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물론 히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젊은 물결과 밥딜런과 조엔 바이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통기타가수들의 등장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대학가 시위가 일어나는지가 궁금합니다. 단순하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만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뭔가 새로운 흐름이 조성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미국을 강력한 반전시위로 이끈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미중대립과 갈등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1960년대 미소 양진영의 갈등으로 전세계는 얼마나 피로를 느꼈습니까. 지금 미중 대립과 갈등도 마찬가집니다. AI의 대거 등장과 그로 인해 인간의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조금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몇년전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과의 전면전 우려 등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강한 자극을 준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또한 그동안 너무도 무심하게 세상을 바라본 것이 아니냐는 미국 젊은이들의 자성도 한 몫을 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요상한 행동의 트럼프를 만든 것도 미국이라는 자괴심이 미국 대학의 젊은 학생들에게 생긴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번 이 시위만으로 볼 때는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더욱 긴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수 진영 보다는 상대적으로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인정하고 강조하는 진보노선을 추구하는 미국 민주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랍계와 유대인 표심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시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가 더욱 번질 경우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입장에서는 트럼프보다 상대적으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미국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보입니다. 아여튼 이번 미국 대학생 반전시위는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60년전의 그 모습같아 보입니다.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4년 4월 24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