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피는 들국화는 칠십 언저리쯤 되는 분들께는 향수를 자극하는 전설적인 록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가끔 유튜브의 동영상으로 들국화의 리더였던 전인권 씨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지만 들국화 멤버들의 근황은 챙겨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행진'이나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전설적인 노래를 대하게 되면 젊었을 때의 그 희열이 여전히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실망스러운 점은 전인권 씨의 매력이 이전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변해버린 외모보다는 힘에 부쳐 보이는 호흡과 성량이 안타까워 보여서다.
어제 올린 '옵빠'라는 글에 재치 있는 댓글이 달렸는데
경상도 사람은 들국화를 덜국화로 발음한다고 해서 떠 오른 생각이다.
맞는 지적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알려진 것처럼 억양이나 발음이 특이하다.
이전 김영삼 대통령이 경상도 분이셨는데
'경제가 위기입니다'를 '갱재가 이깁니다'
'해운대를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해운대를 새개적인 간강 도시로 만들갰따'라고 해서
국민들에게 학실히 (확실히) 경상도 억양을 각인시켜주었던 것처럼
일반적으로 경상도 사람들은 특정한 발음을 잘 못한다고 인식된다.
예를 들면
- 'ㅅ'과 'ㅆ'이 구분되지 않는 '살'과 '쌀'과 같은 단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 'ㅡ'와 'ㅓ'를 'ㅔ'와 'ㅐ'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글'을 읽다는 '걸'을 읽다가 되고 '은마 아파트'는 '언마 아파트'가 되며 '게 - Crab'는 '개 -dog'가 된다.
- 'ㅑ, ㅕ, ㅛ, ㅠ'와 같은 모음을 발음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명인'을 '문맹인'으로 발음하게 되어 깨우친 문명인이나 덜 깨우친 문맹인이나 모두 똑같이 덜 깨우친 '문맹인'되기도 하고
'명물'(유명한) 이 정반대의 '맹물'(아무것도 아닌)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국회 생중계 방송에서는 어떤 상임 위원장이
(그러면 김병식 증인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를
'그르면 김벵식 정인에 대한 동헹멩렝장을 즌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도 했었다.
아무튼 고양이를 앵구 (경상도의 남부해안지역)라고 하는 억세 보이기도 하고 특이한 말들을
나는 국민학교 4학년 (우리 나이로 10살) 무렵 경상도 고향을 떠나온 이후 거진 60여 년이 흘렀기에
순박했던 내 고향의 억양이 얼마간 바뀌었고 정겹던 토박이의 낱말들을 일부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천년 왕조의 세월을 빛낸 신라 가야의 오랜 말인 고향의 말을 나는 평생 입에 달고 다니며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여태까지 없었다.
아니 차라리 이제는 거진 27년을 사용하지 못해서 차츰 잊혀 가는 것이 슬프기까지 하다.
고향의 문호인 박경리 선생은
(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토록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 - 김약국의 딸들 서문 중에서 ) 라며 고향의 심미적인 예술성을 노래했으니
그런 고향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은 당연히 정감이 넘치는 말이며
김춘수 시인은
얼마나 고향의 말을 기품 있게 여겼는지 앵오리라는 그림처럼 정겨운 시를 남겼다.
고향 말을 집어내는 시인의 언어 감각이 그 얼마나 예민한가.
이제는 많이 잊었지만 나는 정녕코 나의 고향말을 사랑한다.
( 앵오리 )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잠자리를 앵오리라고 한다.
부채를 부치라고 하고
고추를 고치라고 한다.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통영을 토영이라고 한다.
팔을 폴이라고 하고
팥을 퐅이라고 한다.
코를 케라고 한다.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멍게를 우렁싱이라고 하고
똥구멍을 미자발이라고 한다.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통영을 퇴영이라고 하셨고
동경을 딩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까치는 까치라고 하셨고 까치는
깩 깩 운다고 하셨다.그러나
남망산은 난방산이라고 하셨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내 또래 외삼촌이
오매 오매 하고 우는 것을 나는 보았다. (김춘수)
첫댓글
재미나는 글을 쓰셨어요.
저도 고향이 경상도인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글을 쓸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표준어로 쓸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대화할 때는 발음이 어떻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남편이 KAL 빌딩에서 근무했는데,
대한한공의 전신 대한항공공사에 근무하던
제 친구 남편을 점심시간에 자주 마주친다는데
'점슴이나 같이 합시다.' 라고 저에게 이르거던요.^^
사실, 말이 무뚝뚝하긴 해요.
하지만, 앞과 뒤가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경상도 분들의 특징이었는데,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도 말씨를 듣고
아~ 고향 사람이구나 하고 ...
반가운 마음이 들어요.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셨지요.
저도 초량동에서 초중시절 6년정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통영과 부산의 말도 차이가 많이 나더군요.
서글퍼지만 이제 저는 고향말과 억양을 많이 이자뿟습니다 .
옛날 칼빌딩이면 소공동 인가요? 소공동 빌딩에서 3년정도 근무했는데 좀 지난 시간이라 아스무리 생각납니다.
ㅎㅎ 저는 추억 글을 쓸 때 대화부분은
일부러 사투리를 그냥 씁니다.
글 느낌이 실감도 나고, 그렇게라도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그 경상도 사투리로 영어를 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ㅎㅎ
제 외할머니는 제 이름 규익을 발음하시기
어려워서 늘 기익이라 하셨지요.
ㅎ 가끔 사투리 잊지않고 글에서 잘 구사하더군요
저는 글로 표현하는것도 이제 쉽지 않아요. 안타깝게 고향말을 많이 잊었습니다
활짝 핀 것은 '들국화'
조금 덜 핀 것은 '덜국화'입니다.
ㅎ
국화중에 덜 떨어져서 모지리 같은 꽃을 덜국화라고 하지요.
캬~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ㅎ
@단풍들것네
바로 밑에 마음님 댓글 좀 보시고 쪼매 닮아보이소.
활짝 핀 들국화 보다 살짝 덜 핀 덜국화가
소박하고 수줍은 국화 본연의 분위기를 더 잘 가지고 있는 것인대요.
거기에 뭔 모지리가 등장하고 그러신답니까? ㅎ
지방 토속어는 감칠맛이 나지요.
남의 지방 토속어를 들으면 아하 그쪽 사람이구나, 하지만
내 지방 토속어를 들으면 흐뭇함 내지 동질감을 느끼게 되데요.
그런데 가끔은 왜 발음을 못 고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가끔 경상도 출신인지를 몰라보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런 경우는 보통 여인들입니다.
엄청난, 각고의 노력을 헸을테지만 그런 경우에도 급하면 경상도 악양이 드러나지요.
성인일 경우에는 경상도식의 억양 바꾸는게 불가능할것 같아요.
제가 대구를 떠난 지 45년이
되었는데도 경상도 억양은
그대롭니다.
'쌀' 은 의식적으로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ㅎ
이젠 아이들도 저한테
그냥 엄마 편하데로 경상도 말 편하게
쓰라고 합니다.
고향 사투리는 넘 정겹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단풍 님의 이 글도 참
정겹기만 합니다.ㅎ
그렇지요 아주 어리지 않으면 대부분 억양은 그대로 이지요.
저도 억양은 경상도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통영 부산 서울 말이 뒤섞여 정체가 모호하니 제자신을 제가 싫어합니다 ㅎ
제가 은근히 경상도 사람들과 친합니다 .
그 중 단풍님도 ㅎㅎㅎ
그래서 경상도 사투리도 웬만큼은 잘 알아 듣지요.
단풍님은 어느정도 사투리를 쓰시는지
궁금하긴 해요 .
영어도 사투리 영어발음이시죠?
어허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능겨~
충청도식의 굿모니~이잉~ 때애앵큐~유우~ 보다 한결 낫지유~
그리고 저는 충청도 사람은 별로라요
특히 서산쪽은 영 아니올씨다 임다. 마누라가 서산인데 충청도는 아주 숭시럽고 징그러버요~
대신 정읍여인이 정겹고 이뿌지요 ㅎ 다음 생에는 전주나 정읍여인으로 ~ 우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