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황금기둥
비 내리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불쑥 의기투합하여
남대문 시장으로 달려가는,
조금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를 나는 사랑합니다.
들꽃이 하얗게 핀 벌판을 바라보며
이 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연상하는 친구,
고급 레스토랑보다
마로니에 공원을 만남의 장소로
고집하는 그녀에게서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실감합니다.
물질적인 쪽 보다는 고상한 쪽에
삶의 가치를 두고 사는
친구에게 호감이 갑니다.
아파트 평수와
고급 승용차를 과시하는 친구보다
베란다 한쪽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자랑하는 순박한 친구를 사랑합니다.
최신형 냉장고로 바꾸지 못해
안달하는 친구보다
올해의 베스트 셀러를 아직 읽지못해
안타까워하는 친구가
내게는 더 소중합니다.
루비와 에메랄드를 구별하지 못해도
"르누와르"와 "반 고흐"의 그림을
구별할 줄 아는 친구,
"소양강 처녀"의 가사는 다 못 외워도
"운명"이나"미완성"의 주제는 따라
흥얼거릴줄 아는 친구에게 매력을 느낌니다.
일일 연속극에만 매달리지 않고
"종묘 너구리의 삶"이나
"한국의 야생화"에도 관심을 갖는 친구,
"열린 음악회"를 보며
임웅균씨와 인순이의 열창에 환호하고,
"추적60분"의 가정폭력 실태에 분개하는
그녀에게서 신선함을 느낌니다.
따듯하고 소박한 마음을 지닌
친구를 더욱 사랑합니다.
가볍고 폭신한 캐시미어 스웨터보다
투박한 손뜨개 스웨터를 좋아하고,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실크 잠옷보다
헐렁한 면 잠옷을 즐겨입는 친구에게
정이 갑니다.
고급 제과점에서 산 멋진 케이크보다
내가 구운 어설픈 케이크에
감격하는 친구가 있어 나는 행복합니다.
유명화가의 그림보다 이리저리 물감이 번진
내 수채화를 더 귀히 여기고,
어쭙잖은 내 글을 "챨스 램"의 수필만큼이나
높이 평가해 주는 친구가 있어
나는 살 맛이 납니다.
그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듯
나 또한 친구가 자랑스럽습니다.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듯,
나 또한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언제까지나 좋은 친구이고 싶습니다.
- 강해경의
수필집 '내 마음의 황금기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