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 맥 론
"아빠! 내일 새벽에는 절에 혼자 가지 마시고,저도 깨워 주세요."
아들(고1)의 이 말에,"환희심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묘한 감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꿈 마져도 신비로워 눈을 뜨니 새벽1시 30분.
일본에 계신"묘우아이"스님께 "사랑하는 스님"이란 타이틀로 메일
한통 보내고 나서는 계속 잠을 못 이룬다.4시면:우리 부.자는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는 길동무가 되어 "전등사'로 향할꺼다.
보석 도매업을 하면서,금방도 운영 하면서,금괴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후.가산을 정리 했으나 미흡 하여,"망미동"에 있는 다세대 주택
방2칸 짜리로 옮겨 ,곤궁하게 살고 있을때.어느날 아내는 내게:"얼이
아빠! 나 이대로는 병이 날것 같아요.답답하고...그래서 종교를 가져
보고 싶은데,괜챦죠?"하는 것이였다.
그때까지 나는;문학과 종교.철학에 심취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는
있었으나,어떤 특정 종교를 선택 하지는 않았었고,대대로"쌍계사"에
시주하는 집안 내력 때문에"불교"를 모태 신앙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되,사이비 종교나 광신적인 것은 피 하는게 좋겠다."
라고만 말 하고,아내의 자유의사에 맡기면서,"설마,대학까지 나온
사람이니 정도(正道)를 걷겠지."하는 믿음으로 관망하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어떤 아주머니가 천주교 신자 였는데,어린 아이들이 자주
어울리다 보니,엄마들도 가까웠고,그 영향이였는지 "망미동 성당"에
나가겠다고 했다.그리고는 공부를 시작 했고,"캐더키즘"까지 마쳐
영세를 받았다.세례명은 "로사"라고,겸연쩍게 내게 말 하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그 이후로 아내는 제대로 신앙 생활을 안했고,"캐리어우먼"(?)
이 되면서 부터는 아예 발길을 끊더니만,
몇년전 사무실이"양정"에 있을때;직원들 독려해 내 보내고 나면,
경리 아가씨와 둘 뿐이라 시간이 좀 있을때."달마대사"님의"혈맥론"을
먹 갈아 세필로 써서,표구 하거나 혹은 한지채로 30여분에게 선물을
하던 중.문득,아내 생각이 나서 한 작품을 표구해 집으로 가져 갔다.
그때 이미 손수 쓴 글(졸필 이나마)이 몇점 벽 마다 장식 되어 있는
터라,그 글은 그냥 화장대 거울에 세워 뒀다.
그 이후;우연의 일치 였는지,부처님의 가피 였는지,아내는 자연 스럽게
절을 찿았고,강요나 장광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관세음 보살"상의
목걸이 메달이 늘 가슴에 매달려 있다.뿐만 아니라,아들녀석도;애비
손목에 있는 단주를 달라더니,잘때도 빼지 않는다.어머님은 긴 108염주
를 돌리시며 6자 염불로 지새우고,나 역시 새벽에 절을 찿는게 일상화 되
었다.
아들의 동행 요구에 잠을 설치는 이 야릇한 체험을 글로 써 올리며,
나는 지금 어린애 처럼 들떠 있다.그리고,단주를 몇번씩 사주고,
책을 사주고,"장안사"로 안내 하여 절하는 법을 알려 주던,
"진미"보살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南無阿彌陀佛!觀世音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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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 맥 론
동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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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31 13:1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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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래학님은 생불이십니다 어쩐지 좋았습니다 존경받는 아버지요 존경받는 남편으로써 식구들 모두를 부처님으로 탄생시키셨으니 이 얼마나 큰일을 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