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속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과 공자의 '인(仁)'과의 관계
논어에서 공자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공자의 사상적 핵심은 하나로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인(仁)’이다. 가장 중요한 중심 가치로서 공자는 궁극적으로 이 ‘인(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공자에게 이 ‘인’이 무엇이라고 물으면 지금에 와서는 우리는 이를 사랑 또는 인간다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하면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에 분명하게 확 와닿도록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공자의 제자도 그랬던 것일까, 논어에서 스승에게 많은 예시와 가치를 통해서 그것이 ‘인’한 것인지 묻고 있다. 그래서 공자는 다양한 설명을 통해 ‘인’을 설명하고자 하지만 사실 너무 내용이 많아서 가끔은 더 감이 안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인간다움을 통해서 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근데 그것이 맞는 것인지 자꾸 의문이 들었다. 그건 ‘인’을 통해 ‘인간다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통해 ‘인’을 이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을 이해해가는 과정에서 과연 공자는 무엇이 더 인하다고 할까 더 궁금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우연히 예능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피의 게임’이라는 보게 된 이후였다. 이 콘텐츠는 다양한 나이와 직업을 가진 10명의 남녀들이 일명 피(Blood)의 저택에 머물면서 서바이벌 형식의 다양한 게임을 통해 매일 1명씩 탈락하게 되어 결국, 마지막에 최후의 1인이 되어 3억원의 상금을 타기 위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초반에 ‘탈락’하는 이들은 완전한 끝이 아니며 피(Parasite)의 저택의 지하에 숨어 마치 ‘기생충’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5명이 탈락하여 팀이 될 때까지 기다린 후 지상으로 올라갈 때를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지하층의 생활이 지상층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처절한 생활이라는 것이다. 지상층에는 음식과 술, 그리고 청결하고 편안한 휴식 공간이 넘치도록 당연히 주어지지만, 지하층은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으며, 오직 ‘박스 접기’를 통해 1 박스 당 100원으로 바꾸어 실제 물가와 똑같이 그것을 직접 구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 비누, 칫솔, 침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점은 사실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일 먼저 탈락하게 된 가장 어린 20살의 여성 참가자가 있었다. 그분은 첫날에 다른 참가자와의 아무런 유대를 쌓지 못하고 처음 만난 날 첫인상과 한 시간의 짧은 인사 후, 다른 8명의 투표로 인해 탈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하층에서 정말 혼자서 아무것도 갖춰있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물론 그 다음날부터 한 명씩 사람들이 오게 되었지만 정말 원시적인 환경 속에서 한번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지하층에서만 5일을 보내게 된다. 이때, 문제는 대결의 승리를 통해 지상층과 지하층이 바뀌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 어린 여성 참가자분이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인해 지하층을 자기가 원래 왔을 때 모습 그대로 바꾸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는 이미 앞에서 다른 참가자와는 친분을 쌓은, 뒤늦게 지하층에 오게 된 또 다른 지하층의 두 명의 멤버들에게는 그러한 행동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어린 여성 참가자를 이해가 도저히 안된다고 하면서 급기야 서로 ‘싸이코’ 같다고 표현한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 어린 여성 참가자를 바로 이 ‘싸이코’라고 표현한 지점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그 여성처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하기보다 그 여성분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직 어리고 가혹했던 그 여성의 상황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조금 그 행동의 정도가 지나쳤을지언정 그것을 ‘싸이코’라고 매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그 여성과 같은 입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상황에 있지도 않았던 인물이 ‘싸이코’라고 평가하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왜 그랬을까라는 고민이 많이 들었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요즘은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으면 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라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그들의 비율은 불과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한 이야기에서 나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여성분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그 여성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싸이코’로 표현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인한 태도라고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보면 함께 했던 동료들이 지하층에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해서 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싸이코’로 프레임을 씌워서 본다는 것이 과연 인한 태도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인(인간적인)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와 더 친한지, 더 마음이 가는지를 행동의 기준으로 행동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방송이고 편집본에 불과하니 시청자에게 모든 내용을 보여주지도 않았으며 단편적인 부분을 가지고 온전히 평가할 수 없기도 하다. 비판하기보다 우리에게 이런 좋은 생각거리를 주지 않았나 하면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그 방송을 보았던 몇 명의 패널(사회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도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저러한 행동 충분히 이해된다.”와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가”로 말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자라면 과연 이를 지켜보고 어떠한 평가를 내릴지, 무엇이 인한 것이라고 바라볼지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좀 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맞추어 공자의 생각이 어떨지 고민해보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공자식으로 접근해서 바라본다면 좀 더 다양하게 동시에 인간적으로 상황을 잘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의식은 논어, 학이 편의 마지막 장인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인(仁)’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이를 근거로 앞의 두 사람의 행동이 ‘인’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공자가 말한 인, 곧 인간다움은 공자 당시에 생각하는 인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과 일치되는 보편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당시에 적용되는 특수한 부분도 있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간다움도 나와 너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인간다움이 있는가 하면 나만, 또는 너만 생각하는 특수한 인간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이 둘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페이크 다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점을 좀 더 극단화시켜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들 예능 프로그램에서 때때로 악마화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나와 다른 부분 또는 나와 같은 부분을 확인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때때로는 무조건적인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을 추구해야 하되, 각각의 다른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개방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