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의 어느 날, 점심시간에 회사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검색창 아래에 사이버 대학교 광고가 떴다. 순간, 접었던 꿈이 떠올랐지만 현실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광고가 또 보였다. 입학 신청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라는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유아 교육과 입학을 꿈꿨다.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데 노력에 비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내 성적은 대학과 멀어져만 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생계를 위해 곧바로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해 보자!' 마감을 3일 앞둔 날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온라인으로 입학시험을 치렀다. 가볍게 도전한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떨렸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 갈 때쯤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모님은 축하한다는 말 대신 학자금은 알아서 하라는 말부터 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속상했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는데,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듣지 못하다니. '그래, 내 주제에 무슨.' 포기하자 마음먹었지만 등록금 납부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초조하고 착잡했다. 그때 사정을 들은 회사 사수가 30만 원을 주며 말했다. “진짜 네 꿈과 관련된 일을 했으면 좋겠어." 피 한 방울 안 섞이지 않은 그가 내준 따뜻한 마음에 용기를 냈다. 그렇게 생애 첫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공부가 오랜만이라 책상 앞에 고작 30분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사이버 대학교라 친구 없이 홀로 고립된 채 지냈고,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집에서 놀면서 집안일도 안 한다는 부모님의 한소리에 청소며 빨래까지 하느라 마음이 더 시끄러웠다. 무엇보다 공부한다고 돈을 쓰기만 하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게 과연 잘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시험 기간에는 종일 앉아만 있었고, 이석증이 찾아와 식은땀이 흐르고 구역질이 나도 병원 갈 시간이 아까워 꾹 참고 공부만 했다. 길었던 한 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표에 놀랐다. 학점 4.5점 만점에 4.42점으로 학과 수석이 된 것이다. 수석이면 다음 학기에 전액 장학금이 나와 등록금 걱정은 내려놓고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진짜 대학교도 아니지 않느냐며 좋은 성적에도 별 반응이 없었지만 난 내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스물다섯 봄, 그토록 원했던 오프라인 대학교의 유아 교육과 편입에 성공했다. 멋진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며 늦깎이 대학생으로서 감사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내려 한다. 유치원 교사가 되기 위해, 나를 도와준 사수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니?"라고 물으면 "원하던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그날을 위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_ 김종해
청소부 엄마
연극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대부분 모녀지간인 듯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청소부 엄마였다. 청소부 엄마와의 첫 만남은 영화관에서였다.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중 하나가 영화관이었다. 관객들이 상영관 안에 버리고 간 팝콘과 음료수 컵을 한가득 안고 나가면, 청소부 아줌마들은 자기 몸만 한 쓰레기통에 분리수거를 했다. 시름을 맡기듯 쓰레기를 한 움큼 맡긴 채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갔다. 하루는 혼자 청소를 하는데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다음 영화 상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내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자 청소부 아줌마는 상영관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아이고, 혼자 하느라 힘들었겠구먼." 하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청소를 끝내자 아줌마는 "어여 가 봐. 학생은 카운터도 봐야 하고 바쁘잖아."라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는 로비로 뛰어갔다.
다음 날, 아줌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어디 안 좋으세요?" "몸살에 걸렸는지 열이 나고 어지럽네." "그럼 얼른 병원 가셔야죠!" "퇴근이 두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아깝잖아." 머리를 짚은 채 컵을 치우는 아줌마를 보니 속이 상했다. 나는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어디가 아픈 건지 몰라 종류별로 약을 사 들고 와 아줌마를 찾았다. "아주머니! 이 약 드시고 퇴근하면 꼭 병원 가보세요." 아줌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려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고마워서 어떡해...," 그러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한껏 작아진 아줌마의 등을 토닥였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한 아줌마는 일하며 번 돈으로 두 아들을 장가 보냈다. 그런데 아들들은 도통 찾아오질 않고, 이렇게 아픈 날 알아 주는 이 하나 없어 서러웠는데 약을 들고 돌아온 내 모습에 눈물이 터졌단다. 우리는 그 뒤로 서로를 엄마와 딸이라고 불렀다. 있는 돈 다 빼앗아가 인연을 끊은 친엄마 이야기를 하자 아줌마는 내게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 했다. 돈을 뺏기고 갈 곳이 없어 길바닥에 나앉아 종일 굶은 이야기를 할 땐 같이 눈물 흘리며 화도 내 줬다. 연극이 끝난 후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닦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연극이 많이 슬픈가 봐요?" 돌아보니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가 서 있었다. "여기서 몇 년을 청소하면서도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어요. 너무 비싸 서...,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딸이랑 꼭 보고 싶어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내가 주책없이 말이 많았죠?" "아니에요. 꼭 따님이랑 같이 보러 오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버스 차장에 기대 여러 다짐을 했다. 청소부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어야겠다고. 엄마가 아플 때 외롭지 않게 약 한 봉지 사다 주는 딸이 되겠다고. 이젠 내가 엄마의 모든 시름을 청소할 테니 편히 쉬라 말해 줄 수 있는 딸이 되겠다고. 장주영 | 서울시 관악구 (제19회 생활문예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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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봄의 향기로 가득한
좋은 계절,,
봄꽃 힐링하시면서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어른들은 온라인 학교는
학교같지 않다고 말씀 합니다 ㅎ
주경야독(晝耕夜讀) 한 사람들은
얼마나 소중한 학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