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팀 플레이어 박지성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
[존 브루인 : ESPN Soccernet Editor]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수로서 꾸준히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어떤 역할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5년 동안 퍼거슨 휘하에 있었던 스타 군단 가운데, 수 많은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수가 있다.
박지성은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선수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적응력이 좋고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박지성은 2009년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아스널을 상대로 골을 넣었던 것처럼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맨체스터에서
그는 동료들을 독려하는 것보다는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맨유는 지난 2010-11 시즌 효율적인 경기 운영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고 박지성도 거기에 한 몫을 했다.
호날두의 화려한 개인기를 볼 수 없게 되고 웨인 루니가 슬럼프에 빠졌음에도, 맨유는 2월까지 무패를 기록하는 근성을 보여줬다.
그 와중에 박지성은 꾸준히 골을 넣으며 핵심적인 선수로 자리잡았다.
울브즈를 상대로 두 골을 터뜨리며 승리의 주인공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좋아하는’ 상대인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또다시 득점포를 가동했다.
그는 첼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골을 넣음으로써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다시 보여줬다.
박지성은 세 명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기용되거나 왼쪽 날개로 뛰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수비 가담을 소홀히 하는 나니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호날두가 유나이티드에 있었을 때 해본 적이 있는 익숙한 역할이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항상 뛰기 편안한 자리에 기용하는 건 아니다.
라이언 긱스 같은 고참들이 ‘지’라고 부르는 박지성은 자신이 익숙한 위치를 벗어나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언제나 비판적인 맨유 팬들은 그런 점을 못마땅히 여길 수도 있다.
맨유가 지난 시즌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올 시즌에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
박지성은 입단 후 매년 그랬던 것처럼 큰 경기에서 한 방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퍼거슨 감독이 중앙 미드필드에 난 구멍을 메우지 않고 땜질 처방을 하는 바람에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지난 달 아약스와의 유로파 리그 2차전에서 맨유는 얼빠진 플레이를 보여준 끝에 패하고 말았는데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건 행운이었다.
결과적으로 맨유의 문제는 박지성과 톰 클레벌리가 나란히 포진한 미드필드에서 비롯되었던 게 분명했다.
클레벌리는 맨유가 8-2로 이겼던 작년 8월 아스널전 이후 처음으로 홈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클레벌리는 플레이메이커이기 때문에 박지성은 사실상 앵커맨으로 기용되었지만 그 역할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측면 수비에 보탬이 될 순 있지만, 특히 퍼거슨 감독이 아약스전에 내세웠던 경험이 부족한 중앙 수비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클레벌리가 고전하면서 박지성은 더 부담스러운 짐을 지게 됐고, 결국 클레벌리는 부상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대신 투입된 폴 스콜스 덕분에 안정을 되찾긴 했지만, 어쨌든 박지성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소화해 내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고 박지성만 비난해선 안 된다.
사실 그의 자리에 프랑스 출신 유망주인 폴 포그바가 뛰기로 되어 있었는데, 보도에 의하면 계약서 상의 문제로 퍼거슨 감독이 그를 명단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키가 크고 늘씬한 체격의 포그바는 ‘제 2의 파트릭 비에라’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박지성이 절대로 따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맨유 팬들은 스콜스나 예전의 로이 킨과 같은 중앙 미드필더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선수를 오랫동안 갈망해 왔지만, 퍼거슨 감독은 글레이저 가문이 영입 자금을 대준다고 하더라도 돈을 쓸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선수들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동원됐다.
최근에는 박지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동그란 구멍을 네모난 쐐기로 막는 것과 다름없다.
작년 말,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블랙번과의 일전에서 패한 맨유의 라인업에서 박지성은 풀백 하파엘과 함께 중원에 나섰다.
그건 퍼거슨 감독의 명백한 실수였고 다시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됐다.
루니와 (곧 이적할 것으로 보이는) 대런 깁슨이 팀내 음주 규정 위반으로 출전하지 못한 가운데, 박지성과 하파엘은 그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다.
퍼거슨 감독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그런 실책을 피할 수도 있었다. 2010-11시즌 막바지에 우승을 노리고 있었던 맨유는 아스널 원정에서 박지성을 중원으로 이동시키는 바람에 패하고 말았다.
안데르손을 내보내고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투입하면서 박지성이 중앙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고, 박지성이 알렉스 송에 대한 결정적인 태클을 놓치면서 이어진 아스널의 공격에서 아론 램지의 결승골이 터졌다.
박지성은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만, 강력한 태클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팀동료 마이클 캐릭처럼 공을 가로채는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맨유가 결국 승점 9점차로 우승을 놓치면서 잊혀졌을지 몰라도,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적응력이 전방과 양측면까지라면 몰라도 미드필드 깊숙한 곳까지는 무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서른 한 살이 된 박지성이 이제 “한 물 갔다”라고 생각하는 맨유 팬들도 있지만 그가 아약스와 블랙번을 상대로 악전고투했던 걸 감안하면 그건 너무 가혹한 평가다.
아약스의 덴마크 신성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박지성보다 훨씬 더 경험이 풍부한 앵커맨을 상대했더라도 맹활약했을 테니까.
아약스전 졸전의 여파로 퍼거슨 감독은 아마도 박지성을 다시는 그 자리에 기용하기 않을 지도 모른다.
그건 박지성과 소속팀 모두에게 이로운 결정일 것이다.
박지성은 전형적인 팀 플레이어로서 올드 트라포드에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이 원하는 것처럼 어떤 포지션에서도 뛸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